[취재후] 투병 중에도 양육비 고민하던 엄마…어린 두 아들이 지킨 빈소

입력 2020.05.14 (07:01) 수정 2020.05.1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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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다 12일 세상을 떠난 ‘투준맘’ 김지혜 씨의 빈소를 9살, 11살 두 아들이 지켰습니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다 12일 세상을 떠난 ‘투준맘’ 김지혜 씨의 빈소를 9살, 11살 두 아들이 지켰습니다.

■ 9살·11살 두 아들이 지킨 '투준맘' 빈소

얼마전 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던 김지혜 씨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5년 전 이혼하고, 초등학생 형제를 홀로 키우던 지혜 씨는 자신이 떠난 뒤 남게 될 아이들이 어렵게 클 것이 제일 걱정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양육비를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모든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본인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양육비 해결 운동에 나섰습니다.

의료진의 예상보다도 다섯 달을 더 버텼던 지혜 씨가 그제(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9살, 11살 두 아들이 상주가 됐습니다. 형제는 몸에 맞지 않은 헐렁한 상복을 입은 채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도, 손님들이 오면 금세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조문객들을 맞았습니다.

빈소에서 만난 지혜 씨의 어머니 박 모 씨는 "마지막까지 정신이 또렷하던 딸아이가 떠난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고통이 심했는데도 가족들을 생각해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넘길 때까지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 지난한 법적 절차,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 될까 우려

하지만 지혜 씨 어머니는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고 했습니다. 장례가 끝나는 대로 각종 법적 절차에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밀린 양육비를 받고, 앞으로 받아야 할 양육비를 제대로 받게 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우선 박 씨가 가장 염려하는 건 지혜 씨 전 남편이 아이들의 친권을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지혜 씨의 전 남편인 박 모 씨도 개인적인 상황이 정리되면, 아이들을 데려와서 기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지혜 씨의 가족들이 우려하는 것은 친권자가 아이들의 재산에 대한 관리권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지혜 씨는 생전에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당초 아이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돌려놨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밀린 양육비입니다. 지금까지의 양육비 5천만 원가량에 대한 채권은 지혜 씨가 아이들에게 남긴 '유산' 같은 것인데, 이에 대한 관리권이 다시 전 남편에게 돌아가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던 부모가 밀린 양육비를 해결하지 않은 채 '양육비를 낼 거면 내가 기르겠다'며 나서는 경우가 있다"며, "진심으로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양육비를 아끼겠다는 차원이라면 아이들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된다"라고 우려했습니다.

물론 친권을 주장한다고 곧장 친권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2013년부터 친권과 유산을 배우자에게 자동으로 넘기지 않고 법원이 판단해 결정하는 '최진실법'이 시행됐습니다. 재판부는 부모가 어떤 이유로 친권을 요구하는지, 친권을 가질 자격은 충분한지, 아이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봅니다.

지혜 씨의 경우 전 남편이 몇 차례를 빼고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온 점, 아이들에 대한 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친권자로 지정해 달라는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미 5년간 양육비로 다퉈 온 지혜 씨의 어머니로서는 이 과정이 쉽지 않고,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두렵습니다.

지혜 씨의 남편은 KBS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생활고 탓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했다"며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밀린 양육비를 해결하고 아이들도 데려와서 키우고 싶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친권이나 양육권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의 할머니와 대화를 통해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양육비 문제, '개인사' 아닙니다

만약 친권을 두고 다투는 일이 없다고 해도 여전히 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우선 미성년 후견인 신청입니다. 그래야 여태 밀린 양육비를 지혜 씨 대신 어머니가 받을 수 있고, 그 외에 아이들의 법적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의 양육비를 받으려면 '장래양육비지급청구'에도 나서야 합니다. 현재는 양육비 채권자가 지혜 씨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절차입니다.

그나마 지혜 씨의 경우에는 한 법무법인이 업무를 대신 진행해 줘 이 지난한 과정을 모두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이런 절차를 모두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혜 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진성 남성욱 변호사는 "지혜 씨의 사례에서 보듯 지금 양육비와 관련한 다툼은 완전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원 판결이 나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말기암 판정을 받고도 남은 두 아들의 양육비를 받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던 '투준맘' 김지혜 씨. 이런 안타까운 사례를 막으려면 더 이상 양육비를 개인사로 남겨두지 않고, 양육비 이행 의무를 강화하는 입법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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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투병 중에도 양육비 고민하던 엄마…어린 두 아들이 지킨 빈소
    • 입력 2020-05-14 07:01:40
    • 수정2020-05-14 07:12:59
    취재후·사건후

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다 12일 세상을 떠난 ‘투준맘’ 김지혜 씨의 빈소를 9살, 11살 두 아들이 지켰습니다.

■ 9살·11살 두 아들이 지킨 '투준맘' 빈소

얼마전 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양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던 김지혜 씨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5년 전 이혼하고, 초등학생 형제를 홀로 키우던 지혜 씨는 자신이 떠난 뒤 남게 될 아이들이 어렵게 클 것이 제일 걱정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양육비를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모든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본인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양육비 해결 운동에 나섰습니다.

의료진의 예상보다도 다섯 달을 더 버텼던 지혜 씨가 그제(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9살, 11살 두 아들이 상주가 됐습니다. 형제는 몸에 맞지 않은 헐렁한 상복을 입은 채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도, 손님들이 오면 금세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조문객들을 맞았습니다.

빈소에서 만난 지혜 씨의 어머니 박 모 씨는 "마지막까지 정신이 또렷하던 딸아이가 떠난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고통이 심했는데도 가족들을 생각해서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넘길 때까지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 지난한 법적 절차,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 될까 우려

하지만 지혜 씨 어머니는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고 했습니다. 장례가 끝나는 대로 각종 법적 절차에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밀린 양육비를 받고, 앞으로 받아야 할 양육비를 제대로 받게 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우선 박 씨가 가장 염려하는 건 지혜 씨 전 남편이 아이들의 친권을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지혜 씨의 전 남편인 박 모 씨도 개인적인 상황이 정리되면, 아이들을 데려와서 기르겠다는 입장입니다. 지혜 씨의 가족들이 우려하는 것은 친권자가 아이들의 재산에 대한 관리권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지혜 씨는 생전에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당초 아이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돌려놨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밀린 양육비입니다. 지금까지의 양육비 5천만 원가량에 대한 채권은 지혜 씨가 아이들에게 남긴 '유산' 같은 것인데, 이에 대한 관리권이 다시 전 남편에게 돌아가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던 부모가 밀린 양육비를 해결하지 않은 채 '양육비를 낼 거면 내가 기르겠다'며 나서는 경우가 있다"며, "진심으로 아이를 잘 기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양육비를 아끼겠다는 차원이라면 아이들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된다"라고 우려했습니다.

물론 친권을 주장한다고 곧장 친권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2013년부터 친권과 유산을 배우자에게 자동으로 넘기지 않고 법원이 판단해 결정하는 '최진실법'이 시행됐습니다. 재판부는 부모가 어떤 이유로 친권을 요구하는지, 친권을 가질 자격은 충분한지, 아이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봅니다.

지혜 씨의 경우 전 남편이 몇 차례를 빼고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온 점, 아이들에 대한 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친권자로 지정해 달라는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미 5년간 양육비로 다퉈 온 지혜 씨의 어머니로서는 이 과정이 쉽지 않고,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두렵습니다.

지혜 씨의 남편은 KBS와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생활고 탓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했다"며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밀린 양육비를 해결하고 아이들도 데려와서 키우고 싶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친권이나 양육권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의 할머니와 대화를 통해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양육비 문제, '개인사' 아닙니다

만약 친권을 두고 다투는 일이 없다고 해도 여전히 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우선 미성년 후견인 신청입니다. 그래야 여태 밀린 양육비를 지혜 씨 대신 어머니가 받을 수 있고, 그 외에 아이들의 법적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의 양육비를 받으려면 '장래양육비지급청구'에도 나서야 합니다. 현재는 양육비 채권자가 지혜 씨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절차입니다.

그나마 지혜 씨의 경우에는 한 법무법인이 업무를 대신 진행해 줘 이 지난한 과정을 모두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이런 절차를 모두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혜 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진성 남성욱 변호사는 "지혜 씨의 사례에서 보듯 지금 양육비와 관련한 다툼은 완전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원 판결이 나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죠.

말기암 판정을 받고도 남은 두 아들의 양육비를 받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던 '투준맘' 김지혜 씨. 이런 안타까운 사례를 막으려면 더 이상 양육비를 개인사로 남겨두지 않고, 양육비 이행 의무를 강화하는 입법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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