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식도 폐업도 어려워…“우리는 멧돼지보다 못한 사람”

입력 2020.05.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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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병했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매몰처분과 이동제한 명령이 이어졌습니다. 매몰 처분된 돼지는 모두 38만여 마리. 경기 북부 지역과 강원 일부 지역에는 이동제한이 계속됐습니다. 이후 사육돼지에서는 사실상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사육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사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야생 멧돼지는 상황이 다릅니다. 갈수록 발병 건수가 늘어 올해 들어서는 발병이 6백여 건을 넘어섰습니다. 정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돼지 재입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이 길어지면서 농가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멧돼지보다 못한 사람”

양돈을 쉰 지 9개월째. 양돈 농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농민들은 말했습니다. “야생 멧돼지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이 현실을 더 이상 묵시할 수 없다.”

농가들은 사육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상당수가 생계안정자금으로 한 달 평균 67만 원 가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농민들 대부분이 시설 설비를 갖추기 위해 채무를 지고 있기에 생계안정자금으로 채무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도 생활이 빠듯합니다. 더이상 버티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농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재입식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폐업 신고를 하고 다른 길을 택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쉽지 않습니다.


청와대 앞에 모인 농민들.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현재 멧돼지 방역을 담당하는 환경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정부는 남북접경지역 일대에 광역울타리를 설치하고, 야생멧돼지들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울타리 안에서 멧돼지끼리 감염을 반복하면서 개체 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또 포획도 병행해왔습니다.

하지만 광역울타리 바깥에 있는 야생멧돼지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면서 정부의 이런 전략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습니다. 또 폐사체 처리도 소홀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멧돼지 폐사체를 통한 2차 감염 가능성도 계속 제기돼왔습니다.

피켓을 든 농민들은 제발 사육 돼지만 통제하지 말고, 야생멧돼지를 더 적극적으로 잡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수천 명의 수렵인들을 일제히 투입해 광역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야생멧돼지를 박멸하고 고속도로를 활용한 체계적인 야생멧돼지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겁니다. 환경부가 내세우는 광역울타리만으로는 야생멧돼지로 인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재입식 연기에 이동 제한 강화...폐업도 쉽지 않아

이런 가운데 정부는 돼지 사육 농가에 대한 이동제한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기존에 경기 북부, 강원도 일대에서 축산 차량, 분노 차량 등이 자치단체를 넘어 이동하는 것을 막는 이동제한 조치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달부터 이런 이동제한 조치에 더해, 각 축산농가들에 축산 차량이 진입하는 것 자체를 막는 출입제한 조치를 내놨습니다. 이제까지 이동 제한을 해왔던 자치단체에 인접 경기도 5개 지자체까지 포함해 모두 14개 지자체, 390여 개 농가를 대상으로 하는 조치입니다.

대규모 매몰 처분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나마 인근에서 각별히 조심하며 양돈을 해왔던 농가들에게 해당 조치는 치명적입니다. 이제 사료를 먹이거나 분뇨를 처리하려면 특정 장소까지 농가들이 직접 이동을 해야 하는 데 이것이 가능한 설비와 여력을 갖춘 농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일단 농가들의 반발을 받아들여 각 농가 상황마다 차별을 두어 출입통제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이동제한은 강화되고, 재입식은 요원한 상황이지만, 폐업을 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현재 시행된 가축전염병개정안에는 폐업지원금 금액을 가축의 연간 출하 마릿수×연간 마리당 순수익 액×2년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설 설비 투자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농민들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2년 치 영업이익만 주고 모든 시설을 다 포기하면 다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폐업 지원금이 그간 양돈 설비를 하느라 빌려온 부채를 갚는데 다 들어갈 것이 뻔한 데 어찌 이것이 진정한 지원금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 농민들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수준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법에 규정된 직접 피해 이외에는 간접 피해까지 보상하는 것은 현실 가능한 지원 방안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정부는 바이러스가 안정될 때까지 재입식을 미루고 좀 더 방역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농민들은 철저하게 방역을 완료한 농가들부터 재입식을 허용해주고 멧돼지 방역부터 잘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폐업도, 재입식도 어려운 상황에 높인 농민들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정부. 모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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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입식도 폐업도 어려워…“우리는 멧돼지보다 못한 사람”
    • 입력 2020-05-15 09:36:11
    취재K
지난해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병했습니다. 이후 대대적인 매몰처분과 이동제한 명령이 이어졌습니다. 매몰 처분된 돼지는 모두 38만여 마리. 경기 북부 지역과 강원 일부 지역에는 이동제한이 계속됐습니다. 이후 사육돼지에서는 사실상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사육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사례는 없습니다.

하지만 야생 멧돼지는 상황이 다릅니다. 갈수록 발병 건수가 늘어 올해 들어서는 발병이 6백여 건을 넘어섰습니다. 정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돼지 재입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이 길어지면서 농가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멧돼지보다 못한 사람”

양돈을 쉰 지 9개월째. 양돈 농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습니다. 농민들은 말했습니다. “야생 멧돼지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이 현실을 더 이상 묵시할 수 없다.”

농가들은 사육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상당수가 생계안정자금으로 한 달 평균 67만 원 가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농민들 대부분이 시설 설비를 갖추기 위해 채무를 지고 있기에 생계안정자금으로 채무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도 생활이 빠듯합니다. 더이상 버티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농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재입식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폐업 신고를 하고 다른 길을 택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쉽지 않습니다.


청와대 앞에 모인 농민들.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현재 멧돼지 방역을 담당하는 환경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정부는 남북접경지역 일대에 광역울타리를 설치하고, 야생멧돼지들이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울타리 안에서 멧돼지끼리 감염을 반복하면서 개체 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들도록 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또 포획도 병행해왔습니다.

하지만 광역울타리 바깥에 있는 야생멧돼지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면서 정부의 이런 전략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습니다. 또 폐사체 처리도 소홀하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멧돼지 폐사체를 통한 2차 감염 가능성도 계속 제기돼왔습니다.

피켓을 든 농민들은 제발 사육 돼지만 통제하지 말고, 야생멧돼지를 더 적극적으로 잡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수천 명의 수렵인들을 일제히 투입해 광역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야생멧돼지를 박멸하고 고속도로를 활용한 체계적인 야생멧돼지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겁니다. 환경부가 내세우는 광역울타리만으로는 야생멧돼지로 인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재입식 연기에 이동 제한 강화...폐업도 쉽지 않아

이런 가운데 정부는 돼지 사육 농가에 대한 이동제한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기존에 경기 북부, 강원도 일대에서 축산 차량, 분노 차량 등이 자치단체를 넘어 이동하는 것을 막는 이동제한 조치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달부터 이런 이동제한 조치에 더해, 각 축산농가들에 축산 차량이 진입하는 것 자체를 막는 출입제한 조치를 내놨습니다. 이제까지 이동 제한을 해왔던 자치단체에 인접 경기도 5개 지자체까지 포함해 모두 14개 지자체, 390여 개 농가를 대상으로 하는 조치입니다.

대규모 매몰 처분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나마 인근에서 각별히 조심하며 양돈을 해왔던 농가들에게 해당 조치는 치명적입니다. 이제 사료를 먹이거나 분뇨를 처리하려면 특정 장소까지 농가들이 직접 이동을 해야 하는 데 이것이 가능한 설비와 여력을 갖춘 농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일단 농가들의 반발을 받아들여 각 농가 상황마다 차별을 두어 출입통제 조치를 취하기로 했습니다.

이동제한은 강화되고, 재입식은 요원한 상황이지만, 폐업을 하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현재 시행된 가축전염병개정안에는 폐업지원금 금액을 가축의 연간 출하 마릿수×연간 마리당 순수익 액×2년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설 설비 투자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농민들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2년 치 영업이익만 주고 모든 시설을 다 포기하면 다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폐업 지원금이 그간 양돈 설비를 하느라 빌려온 부채를 갚는데 다 들어갈 것이 뻔한 데 어찌 이것이 진정한 지원금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 농민들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수준 이상의 지원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법에 규정된 직접 피해 이외에는 간접 피해까지 보상하는 것은 현실 가능한 지원 방안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정부는 바이러스가 안정될 때까지 재입식을 미루고 좀 더 방역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농민들은 철저하게 방역을 완료한 농가들부터 재입식을 허용해주고 멧돼지 방역부터 잘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폐업도, 재입식도 어려운 상황에 높인 농민들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정부. 모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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