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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5·18 민주화 운동 40주년
美 외교문서로 본 5·18 뒤 숨겨진 장면 네 가지
입력 2020.05.15 (17:15) 수정 2020.05.15 (19:53) 취재K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미국 국무부의 기밀 문건이 오늘(15일) 공개됐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 이번 기밀 문건은 모두 43건으로, 과거 일부 내용이 삭제된 채로 공개됐다가 이번에 해당 부분을 포함해 다시 공개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문건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5·18 정국에 대한 인식과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사령관·최광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 주요 인물과의 면담 내용 등이 기록돼있습니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5·18 뒤 숨겨진 장면 네 가지를 추려봤습니다.


■ 미국이 광주 시민의 중재 요청을 거절한 이유

1980년 5월 26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하기 전에 광주 시민들이 미국 정부의 중재를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입니다.

이런 데 이번에 공개된 기밀 문건에선 미국 대사관이 왜 시민들의 요청을 거부했는지가 한 줄로 서술돼 있습니다.

"대사로서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중재 역할을 맡는다면 대사관은 한쪽이나 다른 쪽이나 또는 양쪽으로부터 인질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For ambassador to assume mediation role in this messy situation would make embassy hostage to one side or other side or both.)"

신동일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 자문위원은 "미국 대사관이 거절한 이유가 확실하게 물증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 위원은 "그 당시 미국 정부가 처해 있던 난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신 위원은 "미국 정부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안보이고, 그다음이 민주주의, 인권 이런 것인데, 그 당시에 미국 정부가 봤을 때, 한반도의 안보가 10·26 이후로 계속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 위원은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한쪽에 발을 들이게 되면 점점 수렁에 빠져들어 간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신 위원은 "자신들은 안보도 중요하고, 민주주의도 중요해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을 텐데, 그런 고민의 내용이 이번에 제대로 공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1979년 1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미국인 50여 명이 이란에 인질로 억류됐던 사건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국 외교관들은 이란의 미국인 인질 사건 때문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12·12 직후 전두환이 美 대사 만나서 한 말은?

또,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가 1979년 12월 14일, 12·12 사태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만났을 때의 면담 기록도 눈길을 끕니다.

"전두환은 사적인 야심이 없고, 개인적으로는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 자유화 일정을 지지한다고 주장했으며, 한 달 안에 군부내 분열상도 정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CHON maintained he had no personal ambitions, personally supported president choi's liberalization program, and expected the unity of the military to be re-established with in a month.)"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이 12·12 사태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고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미국은 전두환에 대해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했습니다. 또 12·12 사태를 젊은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최용주 5·18 민주화운동 재단 자문위원은 "당시에 미국 정부가 소위 말하는 신군부로 등장했던 전두환을 어떻게 평가했고, 전두환 신군부 집단은 미국에 자신들이 행했던 쿠데타 행위를 어떻게 변명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최광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났을 때의 면담 기록도 눈길을 끕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직전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비서실장에게 한국 정부가 너무 강경하게 나가고 있다는 취지로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최광수 당시 실장은 한국 정부가 군부에 완전히 포획돼 있다면서 최규하 정부는 시민 사회, 대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려고 온화한 태도를 보였지만, 군부가 이를 불쾌해 했다고 답변합니다.

신군부 세력의 권력 장악 등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 실장은 그러면서, 군부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이희성 계엄사령관 "학생 통제 안 하면 베트남처럼 공산화"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당일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면담했습니다.

이 사령관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령관은 최 대통령의 계엄령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대규모 학생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을 뺄 경우 북한의 공격 위험이 커진다는 주장이 그를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美 외교문서로 본 5·18 뒤 숨겨진 장면 네 가지
    • 입력 2020-05-15 17:15:51
    • 수정2020-05-15 19:53:33
    취재K

[사진 출처 : 연합뉴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미국 국무부의 기밀 문건이 오늘(15일) 공개됐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 이번 기밀 문건은 모두 43건으로, 과거 일부 내용이 삭제된 채로 공개됐다가 이번에 해당 부분을 포함해 다시 공개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문건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5·18 정국에 대한 인식과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사령관·최광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 주요 인물과의 면담 내용 등이 기록돼있습니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5·18 뒤 숨겨진 장면 네 가지를 추려봤습니다.


■ 미국이 광주 시민의 중재 요청을 거절한 이유

1980년 5월 26일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하기 전에 광주 시민들이 미국 정부의 중재를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입니다.

이런 데 이번에 공개된 기밀 문건에선 미국 대사관이 왜 시민들의 요청을 거부했는지가 한 줄로 서술돼 있습니다.

"대사로서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중재 역할을 맡는다면 대사관은 한쪽이나 다른 쪽이나 또는 양쪽으로부터 인질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For ambassador to assume mediation role in this messy situation would make embassy hostage to one side or other side or both.)"

신동일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 자문위원은 "미국 대사관이 거절한 이유가 확실하게 물증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 위원은 "그 당시 미국 정부가 처해 있던 난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신 위원은 "미국 정부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안보이고, 그다음이 민주주의, 인권 이런 것인데, 그 당시에 미국 정부가 봤을 때, 한반도의 안보가 10·26 이후로 계속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 위원은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한쪽에 발을 들이게 되면 점점 수렁에 빠져들어 간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신 위원은 "자신들은 안보도 중요하고, 민주주의도 중요해서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을 텐데, 그런 고민의 내용이 이번에 제대로 공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1979년 1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미국인 50여 명이 이란에 인질로 억류됐던 사건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미국 외교관들은 이란의 미국인 인질 사건 때문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 12·12 직후 전두환이 美 대사 만나서 한 말은?

또,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가 1979년 12월 14일, 12·12 사태 직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만났을 때의 면담 기록도 눈길을 끕니다.

"전두환은 사적인 야심이 없고, 개인적으로는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 자유화 일정을 지지한다고 주장했으며, 한 달 안에 군부내 분열상도 정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CHON maintained he had no personal ambitions, personally supported president choi's liberalization program, and expected the unity of the military to be re-established with in a month.)"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이 12·12 사태를 사전에 계획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고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미국은 전두환에 대해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했습니다. 또 12·12 사태를 젊은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최용주 5·18 민주화운동 재단 자문위원은 "당시에 미국 정부가 소위 말하는 신군부로 등장했던 전두환을 어떻게 평가했고, 전두환 신군부 집단은 미국에 자신들이 행했던 쿠데타 행위를 어떻게 변명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최광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났을 때의 면담 기록도 눈길을 끕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기 직전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비서실장에게 한국 정부가 너무 강경하게 나가고 있다는 취지로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최광수 당시 실장은 한국 정부가 군부에 완전히 포획돼 있다면서 최규하 정부는 시민 사회, 대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려고 온화한 태도를 보였지만, 군부가 이를 불쾌해 했다고 답변합니다.

신군부 세력의 권력 장악 등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 실장은 그러면서, 군부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이희성 계엄사령관 "학생 통제 안 하면 베트남처럼 공산화"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당일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면담했습니다.

이 사령관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령관은 최 대통령의 계엄령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대규모 학생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을 뺄 경우 북한의 공격 위험이 커진다는 주장이 그를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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