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은 달라질 수 있을까?…멀고먼 ‘현실화’의 길

입력 2020.05.20 (18:06) 수정 2020.05.2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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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갖고 있던 경기도 안성의 '힐링센터'의 공시가격은 2013년 기준 1억5천2백만 원이었습니다. 정의연은 이 건물을 7억5천만 원에 샀습니다. '공시가' 1억5천만 원짜리 단독주택이 7억 5천만 원에 '실거래'된 것입니다.

공시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산 것처럼 보이지만, 언론이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왜 공시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주고 샀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공시가격이 너무 낮고, 시세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거래가는 이른바 "파는 사람 마음"이라고 한다는데, 공시가격은 어떻게 정해지길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단독주택의 공시가격 산정...'표준-개별 대량 산정방식'

아파트와 다가구주택 같은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은 전수조사를 통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단독주택은 좀 다릅니다. 한 동네에 대표주자 격인 주택을 몇 개 선정합니다. 이를 '표준부동산'이라고 하는데 표준부동산의 적정가격을 평가·산정하고, 이를 기초로 다른 집들의 특성을 고려해 적정가격을 산정하는 이른바 '표준-개별 대량산정방식'입니다.

국토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2013년 정의연이 안성 힐링센터를 매입할 당시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에는 표준 단독주택이 3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면적 모두 힐링센터보다 좁고, 구조도 벽돌집이나 조립식패널입니다. 게다가 3채 모두 사용승인 연도가 오래됐습니다. 힐링센터는 훨씬 최근에 지어졌고, 연면적이 195㎡에 이르며 스틸하우스 구조인 점을 감안해 다른 곳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시가격이 책정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국에 이 같은 '표준 단독주택'은 모두 22만 호 정도입니다. 전체 396만호의 5.5% 정도입니다. 당연히 더 늘려야, 개별 단독주택에 대한 보다 정확한 가격 산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한국감정원과 국토연구원은 적정 표준 단독주택이 23만~25만 가구라고 봤습니다. 감사원이 '더 늘려라'라고 의견을 내자 국토부도 답을 내놨습니다. "표본 수 확대를 위해서는 예산이 추가 소요되는 만큼, 예산편성 과정에서 재정 당국과 협의할 계획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주택의 경우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개별공시가격을 상정하는데, 주택이 아닌 논과 밭 등은 어떻게 공시지가를 산정할까요? 이 역시 같은 방법인데 바로 표준이 되는 땅을 선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개별 땅값을 매기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표준지'를 선정하는데 이게 '표준지공시지가'입니다. 상중리의 표준지는 모두 14곳입니다. 단독주택이 지어진 땅도 있고, 과수원, 임야, 논, 밭 등 다양합니다.

(출처: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 (출처: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

그런데 '개별단독주택'과 '개별토지' 가격을 산정하는 지자체 부서는 각각 다릅니다. 똑같은 단독주택을 놓고도, '집 값(건물+땅)'은 세무담당 부서에서 산정하고, '땅값'은 토지담당 부서에서 또 따로 산정합니다. 감사원은 "담당 부서와 담당자가 달라 하나의 부동산에 대해 각각 다르게 토지특성을 조사․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땅+집' 값이 땅값보다 적다?…'역전현상' 22만8천 호

또 한가지 문제는 '공시비율'입니다. 주택에 대해서는 산정된 가격의 80% 비율만 공시가격으로 결정한다는 겁니다. 건물의 가치가 거의 없는 오래된 주택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토지 담당 부서에서는 해당 땅의 가치를 1,000만 원으로 산정했습니다. 그런데 세무부서에서는 건물이 오래돼 가치가 없으니 땅값만 계산해 똑같이 1,000만 원으로 산정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주택 공시비율을 적용하면 1,000만 원의 80%인 800만 원이 공시가격이 됩니다. '땅값'이 '집+땅'값보다 더 비싸게 매겨지는 이른바 '역전 현상'이라는 황당한 경우가 생긴 겁니다.

문제는 이런 역전현상이 나타난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사원은 전국 주택의 5.9%인 22만8천 호의 개별주택에서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역전현상' 대책 내놓은 국토부…"부서 간 상호 검증"

감사원 지적에 따라 국토부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우선 주택에 적용하는 80%의 공시비율을 2020년 공시가격부터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지자체 내에서 주택조사와 토지조사를 담당하는 부서 간 상호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같은 부동산을 놓고 서로 다른 부서에서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를 각각 산정하더라도 추후에 서로 검증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단독주택의 시세대비 공시가 비율인 '현실화율'은 53%에 불과합니다.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현실화율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이렇게 공시가격 자체의 신뢰도가 의심받게 된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 기초생활보장급여 대상 선정, 감정평가 등 60여 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정부는 오늘(20일) 주거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10월까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마련해 일관된 현실화율 제고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시세와 차이, 지역별로 공시가격의 불균형, 고가주택의 저평가 논란 등의 산적한 문제들이 얼마나 해결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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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0 18:06:49
    • 수정2020-05-20 18:08:19
    취재K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갖고 있던 경기도 안성의 '힐링센터'의 공시가격은 2013년 기준 1억5천2백만 원이었습니다. 정의연은 이 건물을 7억5천만 원에 샀습니다. '공시가' 1억5천만 원짜리 단독주택이 7억 5천만 원에 '실거래'된 것입니다.

공시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산 것처럼 보이지만, 언론이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왜 공시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주고 샀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공시가격이 너무 낮고, 시세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거래가는 이른바 "파는 사람 마음"이라고 한다는데, 공시가격은 어떻게 정해지길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단독주택의 공시가격 산정...'표준-개별 대량 산정방식'

아파트와 다가구주택 같은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은 전수조사를 통해 이뤄집니다. 하지만 단독주택은 좀 다릅니다. 한 동네에 대표주자 격인 주택을 몇 개 선정합니다. 이를 '표준부동산'이라고 하는데 표준부동산의 적정가격을 평가·산정하고, 이를 기초로 다른 집들의 특성을 고려해 적정가격을 산정하는 이른바 '표준-개별 대량산정방식'입니다.

국토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2013년 정의연이 안성 힐링센터를 매입할 당시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에는 표준 단독주택이 3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면적 모두 힐링센터보다 좁고, 구조도 벽돌집이나 조립식패널입니다. 게다가 3채 모두 사용승인 연도가 오래됐습니다. 힐링센터는 훨씬 최근에 지어졌고, 연면적이 195㎡에 이르며 스틸하우스 구조인 점을 감안해 다른 곳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시가격이 책정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국에 이 같은 '표준 단독주택'은 모두 22만 호 정도입니다. 전체 396만호의 5.5% 정도입니다. 당연히 더 늘려야, 개별 단독주택에 대한 보다 정확한 가격 산정이 가능할 것입니다. 한국감정원과 국토연구원은 적정 표준 단독주택이 23만~25만 가구라고 봤습니다. 감사원이 '더 늘려라'라고 의견을 내자 국토부도 답을 내놨습니다. "표본 수 확대를 위해서는 예산이 추가 소요되는 만큼, 예산편성 과정에서 재정 당국과 협의할 계획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주택의 경우 이와 같은 방법으로 개별공시가격을 상정하는데, 주택이 아닌 논과 밭 등은 어떻게 공시지가를 산정할까요? 이 역시 같은 방법인데 바로 표준이 되는 땅을 선정하고 그걸 기준으로 개별 땅값을 매기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표준지'를 선정하는데 이게 '표준지공시지가'입니다. 상중리의 표준지는 모두 14곳입니다. 단독주택이 지어진 땅도 있고, 과수원, 임야, 논, 밭 등 다양합니다.

(출처: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
그런데 '개별단독주택'과 '개별토지' 가격을 산정하는 지자체 부서는 각각 다릅니다. 똑같은 단독주택을 놓고도, '집 값(건물+땅)'은 세무담당 부서에서 산정하고, '땅값'은 토지담당 부서에서 또 따로 산정합니다. 감사원은 "담당 부서와 담당자가 달라 하나의 부동산에 대해 각각 다르게 토지특성을 조사․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땅+집' 값이 땅값보다 적다?…'역전현상' 22만8천 호

또 한가지 문제는 '공시비율'입니다. 주택에 대해서는 산정된 가격의 80% 비율만 공시가격으로 결정한다는 겁니다. 건물의 가치가 거의 없는 오래된 주택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토지 담당 부서에서는 해당 땅의 가치를 1,000만 원으로 산정했습니다. 그런데 세무부서에서는 건물이 오래돼 가치가 없으니 땅값만 계산해 똑같이 1,000만 원으로 산정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주택 공시비율을 적용하면 1,000만 원의 80%인 800만 원이 공시가격이 됩니다. '땅값'이 '집+땅'값보다 더 비싸게 매겨지는 이른바 '역전 현상'이라는 황당한 경우가 생긴 겁니다.

문제는 이런 역전현상이 나타난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사원은 전국 주택의 5.9%인 22만8천 호의 개별주택에서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역전현상' 대책 내놓은 국토부…"부서 간 상호 검증"

감사원 지적에 따라 국토부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우선 주택에 적용하는 80%의 공시비율을 2020년 공시가격부터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지자체 내에서 주택조사와 토지조사를 담당하는 부서 간 상호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같은 부동산을 놓고 서로 다른 부서에서 토지와 주택의 공시가를 각각 산정하더라도 추후에 서로 검증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단독주택의 시세대비 공시가 비율인 '현실화율'은 53%에 불과합니다.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현실화율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이렇게 공시가격 자체의 신뢰도가 의심받게 된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 기초생활보장급여 대상 선정, 감정평가 등 60여 개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정부는 오늘(20일) 주거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10월까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마련해 일관된 현실화율 제고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시세와 차이, 지역별로 공시가격의 불균형, 고가주택의 저평가 논란 등의 산적한 문제들이 얼마나 해결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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