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지 못한 컵라면…‘구의역 김 군’ 4년

입력 2020.05.27 (21:35) 수정 2020.05.2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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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작업 도구와 아직 뜯지도 못한 컵라면.

밥 먹을 시간도 없던 19살 비정규직 청년의 유품들입니다.

"거기선 라면 먹지 말고 밥먹어. 미안해, 행복해..."

애도하는 마음들이 한장 한장 스크린도어를 채웠죠.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구의역 김군.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지 벌써 4년 입니다.

KBS는 달라진 게 없는 노동 현장 실태 집중적으로 짚어봅니다.

김군이 사고 당했던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김지숙 기자, 4년이 지났는데, 추모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네요?

[기자]

네, 김군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바로 이곳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손보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는데요.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추모벽이 마련됐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시민들이 써붙인 메모지가 가득 차 있는데요.

몇 개 읽어보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곳에서는 아무 걱정없길 바란다는 글도 있고요, 제2 제3의 김군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등의 문구들도 보입니다.

아래에는 시민들이 놓고간 국화꽃들이 놓여져 있고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김 군을 위로하는 커피와 케이크도 눈에 띕니다.

무시된 2인 1조 작업 원칙,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 김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원인들이었는데요, 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또다른 김군들의 현장, 양예빈, 허효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4년이 지나도…‘위험의 외주화’는 현재진행형

깊은 새벽 지하철 9호선 석촌역.

스크린도어 점검이 한창입니다.

["관제, 관제 석촌역 PSD점검 시작하겠습니다."]

나사를 조이고, 센서를 점검하는 이들, 서울교통공사 자회사 직원들입니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혼자 일할 때도 많다는 게 노조측의 주장입니다.

[신상환/9호선 노조지부장 : "평시 상황에서는 (2인 1조가) 지켜질 수 있지만, 장애가 발생하거나 중복된 업무가 발생했을 때는 두개 현장에 사람이 나눠서."]

지난해 개통된 김포도시철도, 작업 일지만 보면 2명이 함께 일한 걸로 돼 있습니다.

[이재선/김포골드라인노조위원장 : "출동을 혼자 할지라도 근무자는 두명이니까 (두명이라고 적는거죠)."]

구의역 김군이 숨진 지 4년, 지금도 또다른 김군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깁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업무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몇 개 업무를 주로 담당하세요?) 다섯가지. 스크린도어랑 소방설비랑 자동제어 , 승강설비 용역, 기계설비 용역..."]

원청과 하청 구조도 김 군 사고의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자회사 3 곳을 만들어 운영을 맡겼습니다.

사실상 원청 하청 구조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겁니다.

관리 인원도 1km당 평균 10명, 본사의 1/7 수준입니다.

[이재선/김포골드라인 노조위원장 : "자회사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구조이다보니까 자회사 입장에서는 최저가 운영비로 운영을 해야 되다 보니까."]

[강희관/서울 9호선 기술차장 : "최신설비이기 때문에 관리 하는 입장에서도 직원들도 현재 인력들을 가지고 최선을."]

김 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위험의 외주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예빈입니다.

'2인 1조' 하나만 지켜도…"수많은 김군들 살릴 수 있었다"

30년 넘게 나가셨던 일터에서 아버지를 잃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남은 거라곤 검은빛 땀이 서린 안전모 하나.

돌아가신 곳에 꽃 한송이 놓기까지 9일이 걸렸습니다.

[김수찬/삼표시멘트 사망 노동자 아들 : "현장 보존을 위해서 들어갈 수가 없다. (사고난 지) 3일째 되는 날까지도 정확하게 들은 얘기가 없어요."]

아버지는 삼표시멘트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였습니다.

2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됐고, 결국 숨졌습니다.

사고 때 1명만 더 있었더라면...

[김수찬/삼표시멘트 사망 노동자 아들 : "아버지 사망 원인은 질식사니까 2인 1조였다면 무조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크게 다치더라도 그래도 살아계시지 않을까..."]

원청인 삼표시멘트 측이 사과를 하긴 했지만,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수찬/삼표시멘트 사망 노동자 유족 : "하청을 교묘하게 같이 끼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이해가 안돼요. 명확하게 저쪽(원청)에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폐목재를 처리하다 파쇄기에 빨려 들어간 26살 청년.

모두 홀로 일하다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올해부터 시행된 '김용균법'에 '2인 1조' 규정은 빠졌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도 여전히 가능하고, 사람이 죽어도 노동자들은 또 현장에 투입됩니다.

[이재형/민주노총 삼표지부장 : "두려워서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고가 나면 사고 원인을 먼저 분석하고 그 다음에 재발 방지, 안전하게 조치가 됐을 때 돌아가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닙니까."]

김용균법을 개정하고, 재해기업을 엄하게 처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이번 삼표시멘트 재해 말고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질병이 아닌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315명입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앵커]

위험한 현장에선 반드시 두 명이 같이 근무해야 한다.

간단한 원칙이 안 지켜지는 건 금방 잊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장소 역시 우리가 잊고 있는 걸 말해줍니다.

노동자 서른여덟 명이 숨진 이천 화재 참사, 한 달이 다 되는데 유족들은 장례도 못치르고, 합동분향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고 직후 이어졌던 추모객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경찰의 수사 진척은 지지부진하고 무릎 꿇고 ‘책임지겠다'하던 관련 책임자들 역시, 협상이 시작되자 태도가 달라진 걸로 알려졌습니다.

“잊혀져가는 것 같습니다”

분향소 지키던 한 유족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돌아보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된다는 사실.

4년 전의 구의역과, 한 달 전 이천의 비극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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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뜯지 못한 컵라면…‘구의역 김 군’ 4년
    • 입력 2020-05-27 21:41:33
    • 수정2020-05-27 22:13:20
    뉴스 9
[앵커]

작업 도구와 아직 뜯지도 못한 컵라면.

밥 먹을 시간도 없던 19살 비정규직 청년의 유품들입니다.

"거기선 라면 먹지 말고 밥먹어. 미안해, 행복해..."

애도하는 마음들이 한장 한장 스크린도어를 채웠죠.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구의역 김군.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지 벌써 4년 입니다.

KBS는 달라진 게 없는 노동 현장 실태 집중적으로 짚어봅니다.

김군이 사고 당했던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김지숙 기자, 4년이 지났는데, 추모하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네요?

[기자]

네, 김군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바로 이곳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손보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졌는데요.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추모벽이 마련됐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시민들이 써붙인 메모지가 가득 차 있는데요.

몇 개 읽어보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곳에서는 아무 걱정없길 바란다는 글도 있고요, 제2 제3의 김군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잊지 않겠다는 등의 문구들도 보입니다.

아래에는 시민들이 놓고간 국화꽃들이 놓여져 있고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김 군을 위로하는 커피와 케이크도 눈에 띕니다.

무시된 2인 1조 작업 원칙,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 김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원인들이었는데요, 4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또다른 김군들의 현장, 양예빈, 허효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4년이 지나도…‘위험의 외주화’는 현재진행형

깊은 새벽 지하철 9호선 석촌역.

스크린도어 점검이 한창입니다.

["관제, 관제 석촌역 PSD점검 시작하겠습니다."]

나사를 조이고, 센서를 점검하는 이들, 서울교통공사 자회사 직원들입니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혼자 일할 때도 많다는 게 노조측의 주장입니다.

[신상환/9호선 노조지부장 : "평시 상황에서는 (2인 1조가) 지켜질 수 있지만, 장애가 발생하거나 중복된 업무가 발생했을 때는 두개 현장에 사람이 나눠서."]

지난해 개통된 김포도시철도, 작업 일지만 보면 2명이 함께 일한 걸로 돼 있습니다.

[이재선/김포골드라인노조위원장 : "출동을 혼자 할지라도 근무자는 두명이니까 (두명이라고 적는거죠)."]

구의역 김군이 숨진 지 4년, 지금도 또다른 김군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얘깁니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업무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몇 개 업무를 주로 담당하세요?) 다섯가지. 스크린도어랑 소방설비랑 자동제어 , 승강설비 용역, 기계설비 용역..."]

원청과 하청 구조도 김 군 사고의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자회사 3 곳을 만들어 운영을 맡겼습니다.

사실상 원청 하청 구조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겁니다.

관리 인원도 1km당 평균 10명, 본사의 1/7 수준입니다.

[이재선/김포골드라인 노조위원장 : "자회사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구조이다보니까 자회사 입장에서는 최저가 운영비로 운영을 해야 되다 보니까."]

[강희관/서울 9호선 기술차장 : "최신설비이기 때문에 관리 하는 입장에서도 직원들도 현재 인력들을 가지고 최선을."]

김 군을 죽음으로 몰고 간 '위험의 외주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예빈입니다.

'2인 1조' 하나만 지켜도…"수많은 김군들 살릴 수 있었다"

30년 넘게 나가셨던 일터에서 아버지를 잃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남은 거라곤 검은빛 땀이 서린 안전모 하나.

돌아가신 곳에 꽃 한송이 놓기까지 9일이 걸렸습니다.

[김수찬/삼표시멘트 사망 노동자 아들 : "현장 보존을 위해서 들어갈 수가 없다. (사고난 지) 3일째 되는 날까지도 정확하게 들은 얘기가 없어요."]

아버지는 삼표시멘트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였습니다.

2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됐고, 결국 숨졌습니다.

사고 때 1명만 더 있었더라면...

[김수찬/삼표시멘트 사망 노동자 아들 : "아버지 사망 원인은 질식사니까 2인 1조였다면 무조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크게 다치더라도 그래도 살아계시지 않을까..."]

원청인 삼표시멘트 측이 사과를 하긴 했지만,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수찬/삼표시멘트 사망 노동자 유족 : "하청을 교묘하게 같이 끼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이해가 안돼요. 명확하게 저쪽(원청)에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폐목재를 처리하다 파쇄기에 빨려 들어간 26살 청년.

모두 홀로 일하다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올해부터 시행된 '김용균법'에 '2인 1조' 규정은 빠졌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도 여전히 가능하고, 사람이 죽어도 노동자들은 또 현장에 투입됩니다.

[이재형/민주노총 삼표지부장 : "두려워서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사고가 나면 사고 원인을 먼저 분석하고 그 다음에 재발 방지, 안전하게 조치가 됐을 때 돌아가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닙니까."]

김용균법을 개정하고, 재해기업을 엄하게 처벌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이번 삼표시멘트 재해 말고도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질병이 아닌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모두 315명입니다.

KBS 뉴스 허효진입니다.

[앵커]

위험한 현장에선 반드시 두 명이 같이 근무해야 한다.

간단한 원칙이 안 지켜지는 건 금방 잊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장소 역시 우리가 잊고 있는 걸 말해줍니다.

노동자 서른여덟 명이 숨진 이천 화재 참사, 한 달이 다 되는데 유족들은 장례도 못치르고, 합동분향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고 직후 이어졌던 추모객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경찰의 수사 진척은 지지부진하고 무릎 꿇고 ‘책임지겠다'하던 관련 책임자들 역시, 협상이 시작되자 태도가 달라진 걸로 알려졌습니다.

“잊혀져가는 것 같습니다”

분향소 지키던 한 유족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돌아보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된다는 사실.

4년 전의 구의역과, 한 달 전 이천의 비극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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