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국방부는 왜 유엔사에 유감을 표명했을까?

입력 2020.05.28 (07:00) 수정 2020.05.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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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북한군이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4발의 총탄을 발사했고, 우리 군은 이에 대응해 10여 발씩 2차례 경고 차원의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유엔군사령부가 26일 SNS를 통해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국방부는 곧이어 '유감을 표명한다'는 공식입장을 냈습니다.
유엔사, 국방부의 태도는 모두 이례적입니다.

■유엔사는 '반쪽조사'가 될 줄 몰랐을까?

유엔사는 GP총격사건의 조사 결과를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고, 공보장교인 리 피터스 대령의 동영상까지 게시했습니다.

유엔사의 조사결과 발표유엔사의 조사결과 발표


United Nations Command’s investigation of the North and South Korea guard post gunfire exchange within the Demilitarized Zone determined both sides committed Armistice Agreement violations on May 3, 2020. 
유엔군사령부는 2020년 5월 3일 발생한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 간 감시초소 (GP) 총격사건을 조사한 결과 남북한 양측 모두가 정전협정을 위반하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However, the investigation was unable to definitively determine if the four rounds were fired intentionally or by mistake.
조사팀은 (북한군의) 총격 4발이 고의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는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유엔사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남북한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고 북한군의 총격이 고의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 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겁니다.

누가 먼저, 얼마나 쐈느냐에 관계 없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총격을 가해 총탄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가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유엔사는 설명했습니다.

또 유엔사 다국적 특별조사팀이 사건 발생 다음 날, 탄흔과 탄두가 발견된 비무장지대 한국군 GP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했지만, 북한군 측 조사는 이뤄지지 못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군에 총격 사건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요청하였고 북한군은 이를 수신했지만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결국 북한군 측 조사는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전협정'에 따른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새로울 것도 없는 조사 결과를 굳이 발표한 것처럼 보입니다.

국방부의 '유감' 표명에 담긴 속내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유엔사는 우리 군 당국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우선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에 대해 군 관계자는 "과잉대응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게 아니겠는가"라며 "4발에 대응해 30발 이니까 유엔사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군은 비례성, 충분성 원칙에 따라 대응했고, 적절했다고 본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또 북한군의 총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며 '고의성'과 '우발적 실수'에 동등한 무게를 둔 것도 우리 군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군 당국은 그동안 발생 시간과 기상, 상황 발생 이후 특이 동향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고의성은 없다'는 데 무게를 뒀습니다.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유엔사의 이번 조사결과가 북한군의 총격에 대한 실제적 조사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함"

■ 유엔사와 정부, 한미간 불편한 속내 표출?

유엔사의 조사 결과 발표와 국방부의 유감 표명, 모두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유엔사와 우리 정부 간의 쌓인 갈등이 표출됐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유엔사는 지난 2018년 정전협정 규정을 들어 인력과 물자 등의 군사분계선(MDL) 통행을 허가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무산된 이후 유엔사의 '권한'을 두고 국내에서 문제 제기가 잇따랐습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그동안 비무장지대 출입, 군사분계선 통과와 관련해 (정부와 유엔사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공개했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한 강연에서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군사령부”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유엔사의 존재를 조금은 무시하는 듯한 경향을 보이는데 대해 정전협정의 주체로서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유엔사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맞물려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모습도 묻어난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발표 그 이상 해석은 경계하는 분위깁니다. 미 국방부는 유엔사 발표에 대한 질의에 "유엔사에서 나온 언론 발표를 참고하라"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습니다. 중국과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우리 군 당국과의 마찰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달래야 하는 숙명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사실상 이끄는 유엔사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반쪽자리' 조사 결과를 내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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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국방부는 왜 유엔사에 유감을 표명했을까?
    • 입력 2020-05-28 07:00:36
    • 수정2020-05-28 07:00:50
    취재후·사건후
지난 3일 중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북한군이 우리 군 감시초소(GP)에 4발의 총탄을 발사했고, 우리 군은 이에 대응해 10여 발씩 2차례 경고 차원의 사격을 실시했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유엔군사령부가 26일 SNS를 통해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국방부는 곧이어 '유감을 표명한다'는 공식입장을 냈습니다.
유엔사, 국방부의 태도는 모두 이례적입니다.

■유엔사는 '반쪽조사'가 될 줄 몰랐을까?

유엔사는 GP총격사건의 조사 결과를 페이스북을 통해 밝히고, 공보장교인 리 피터스 대령의 동영상까지 게시했습니다.

유엔사의 조사결과 발표

United Nations Command’s investigation of the North and South Korea guard post gunfire exchange within the Demilitarized Zone determined both sides committed Armistice Agreement violations on May 3, 2020. 
유엔군사령부는 2020년 5월 3일 발생한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 간 감시초소 (GP) 총격사건을 조사한 결과 남북한 양측 모두가 정전협정을 위반하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However, the investigation was unable to definitively determine if the four rounds were fired intentionally or by mistake.
조사팀은 (북한군의) 총격 4발이 고의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는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유엔사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남북한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고 북한군의 총격이 고의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 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겁니다.

누가 먼저, 얼마나 쐈느냐에 관계 없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총격을 가해 총탄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가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유엔사는 설명했습니다.

또 유엔사 다국적 특별조사팀이 사건 발생 다음 날, 탄흔과 탄두가 발견된 비무장지대 한국군 GP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했지만, 북한군 측 조사는 이뤄지지 못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군에 총격 사건과 관련한 정보 제공을 요청하였고 북한군은 이를 수신했지만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결국 북한군 측 조사는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전협정'에 따른 원론적인 입장만 밝힌, 새로울 것도 없는 조사 결과를 굳이 발표한 것처럼 보입니다.

국방부의 '유감' 표명에 담긴 속내

하지만 이번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유엔사는 우리 군 당국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우선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것에 대해 군 관계자는 "과잉대응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게 아니겠는가"라며 "4발에 대응해 30발 이니까 유엔사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군은 비례성, 충분성 원칙에 따라 대응했고, 적절했다고 본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또 북한군의 총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며 '고의성'과 '우발적 실수'에 동등한 무게를 둔 것도 우리 군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군 당국은 그동안 발생 시간과 기상, 상황 발생 이후 특이 동향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고의성은 없다'는 데 무게를 뒀습니다.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유엔사의 이번 조사결과가 북한군의 총격에 대한 실제적 조사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함"

■ 유엔사와 정부, 한미간 불편한 속내 표출?

유엔사의 조사 결과 발표와 국방부의 유감 표명, 모두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유엔사와 우리 정부 간의 쌓인 갈등이 표출됐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유엔사는 지난 2018년 정전협정 규정을 들어 인력과 물자 등의 군사분계선(MDL) 통행을 허가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무산된 이후 유엔사의 '권한'을 두고 국내에서 문제 제기가 잇따랐습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그동안 비무장지대 출입, 군사분계선 통과와 관련해 (정부와 유엔사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공개했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한 강연에서 "남북 관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엔군사령부”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유엔사의 존재를 조금은 무시하는 듯한 경향을 보이는데 대해 정전협정의 주체로서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유엔사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맞물려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모습도 묻어난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발표 그 이상 해석은 경계하는 분위깁니다. 미 국방부는 유엔사 발표에 대한 질의에 "유엔사에서 나온 언론 발표를 참고하라"며 추가 언급을 자제했습니다. 중국과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우리 군 당국과의 마찰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달래야 하는 숙명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사실상 이끄는 유엔사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반쪽자리' 조사 결과를 내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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