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동자 故 김재순씨 추모제 열려
입력 2020.05.28 (22:13)
수정 2020.05.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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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홀로 파쇄작업을 하다 숨진 26살 청년 노동자 김재순 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재순 씨의 유족과 지인들은 김 씨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착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김애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먹고살기 위해 집을 나선 건 큰아들 재순 씨가 다섯 살 무렵 되던 때였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이, 마음 편하게 아들 얼굴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故 김재순 씨의 아버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아프고, 또 아픕니다.
[故 김재순 씨 아버지 : "아빠로서 그 뭐랄까. 역할을 못 한게. 그리고 가끔씩 볼 때, 봤을 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는게 가장 아프죠 마음이."]
손등뼈가 툭 튀어나와 구부러진 손.
산업재해로 얻은 상처인데, 아들마저 일터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할 줄 몰랐습니다.
광주에서 일한다는 아들에게 함께 살자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때 같이 용인에 데려와서 생활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얘기했더니 본인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열심히 사시라고 그렇게..."]
식당 뒤쪽 테이블에서 혼자서 저녁을 먹는 재순 씨.
평소 자주 가던 식당에서 우연히 찍힌 사고 이틀 전 모습입니다.
다음 주, 월급을 받으면 외상값을 갚겠다던 재순 씨의 말은 유언이 됐습니다.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이 늘 혼자였던 재순 씨는 오히려 주변을 더 챙겼던 마음 따뜻한 청년으로 기억됩니다.
[박종일/故 김재순 씨 지인 : "오히려 장사 안되고 그런 날에는 저 불러서 같이 먹자고 하고. 엄청 정도 많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었어요. 어른들한테도 엄청 예의 바르고."]
생전 고인이 일하다 숨진 일터 앞엔 하얀 국화꽃이 놓였습니다.
재순 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청년들은 울먹입니다.
[허지선/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조직국장 :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노동시민대책 위원회는 진상조사 참여를 요구하는 한편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죽기 전에도, 죽는 순간에도 홀로였던 스물여섯 청년 김재순 씨에 대한 추모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홀로 파쇄작업을 하다 숨진 26살 청년 노동자 김재순 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재순 씨의 유족과 지인들은 김 씨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착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김애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먹고살기 위해 집을 나선 건 큰아들 재순 씨가 다섯 살 무렵 되던 때였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이, 마음 편하게 아들 얼굴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故 김재순 씨의 아버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아프고, 또 아픕니다.
[故 김재순 씨 아버지 : "아빠로서 그 뭐랄까. 역할을 못 한게. 그리고 가끔씩 볼 때, 봤을 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는게 가장 아프죠 마음이."]
손등뼈가 툭 튀어나와 구부러진 손.
산업재해로 얻은 상처인데, 아들마저 일터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할 줄 몰랐습니다.
광주에서 일한다는 아들에게 함께 살자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때 같이 용인에 데려와서 생활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얘기했더니 본인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열심히 사시라고 그렇게..."]
식당 뒤쪽 테이블에서 혼자서 저녁을 먹는 재순 씨.
평소 자주 가던 식당에서 우연히 찍힌 사고 이틀 전 모습입니다.
다음 주, 월급을 받으면 외상값을 갚겠다던 재순 씨의 말은 유언이 됐습니다.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이 늘 혼자였던 재순 씨는 오히려 주변을 더 챙겼던 마음 따뜻한 청년으로 기억됩니다.
[박종일/故 김재순 씨 지인 : "오히려 장사 안되고 그런 날에는 저 불러서 같이 먹자고 하고. 엄청 정도 많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었어요. 어른들한테도 엄청 예의 바르고."]
생전 고인이 일하다 숨진 일터 앞엔 하얀 국화꽃이 놓였습니다.
재순 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청년들은 울먹입니다.
[허지선/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조직국장 :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노동시민대책 위원회는 진상조사 참여를 요구하는 한편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죽기 전에도, 죽는 순간에도 홀로였던 스물여섯 청년 김재순 씨에 대한 추모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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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5-28 22:13:22
- 수정2020-05-28 2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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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파쇄작업을 하다 숨진 26살 청년 노동자 김재순 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재순 씨의 유족과 지인들은 김 씨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착한 청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김애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먹고살기 위해 집을 나선 건 큰아들 재순 씨가 다섯 살 무렵 되던 때였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사이, 마음 편하게 아들 얼굴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故 김재순 씨의 아버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게 아프고, 또 아픕니다.
[故 김재순 씨 아버지 : "아빠로서 그 뭐랄까. 역할을 못 한게. 그리고 가끔씩 볼 때, 봤을 때 말이라도 따뜻하게 한마디 해주지 못했다는게 가장 아프죠 마음이."]
손등뼈가 툭 튀어나와 구부러진 손.
산업재해로 얻은 상처인데, 아들마저 일터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할 줄 몰랐습니다.
광주에서 일한다는 아들에게 함께 살자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습니다.
["그때 같이 용인에 데려와서 생활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얘기했더니 본인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열심히 사시라고 그렇게..."]
식당 뒤쪽 테이블에서 혼자서 저녁을 먹는 재순 씨.
평소 자주 가던 식당에서 우연히 찍힌 사고 이틀 전 모습입니다.
다음 주, 월급을 받으면 외상값을 갚겠다던 재순 씨의 말은 유언이 됐습니다.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이 늘 혼자였던 재순 씨는 오히려 주변을 더 챙겼던 마음 따뜻한 청년으로 기억됩니다.
[박종일/故 김재순 씨 지인 : "오히려 장사 안되고 그런 날에는 저 불러서 같이 먹자고 하고. 엄청 정도 많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인성교육이 잘 되어 있었어요. 어른들한테도 엄청 예의 바르고."]
생전 고인이 일하다 숨진 일터 앞엔 하얀 국화꽃이 놓였습니다.
재순 씨의 죽음을 추모하며 청년들은 울먹입니다.
[허지선/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조직국장 : "너의 미래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마, 여기엔 이제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는 소년은 없다네’."]
노동시민대책 위원회는 진상조사 참여를 요구하는 한편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죽기 전에도, 죽는 순간에도 홀로였던 스물여섯 청년 김재순 씨에 대한 추모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애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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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린 기자 thirst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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