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 좀 알려줘”…‘컨닝’ 걸린 사관생도에 법원 “퇴학 정당”

입력 2020.06.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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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자율성의 주체인 교육기관의 하나인 동시에 군장교를 배출하기 위하여 국가가 모든 재정을 부담하는 특수교육기관으로서,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한 리더쉽을 갖추고 군사전문가로서의 기초자질을 겸비한 정예 지휘관을 양성하는 데 그 교육목표가 있으므로 그 사관생도의 징계처분에 관하여는 위와 같은 특수한 설립목적 및 교육목표에 따른 교장의 자율적 판단·결정이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대법원 2012.9.12. 선고 2012두9482 판결)

■ '시험문제 컨닝' 걸려 퇴학당한 사관생도, "부당하다" 소송

201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생도 A 씨가 임관을 앞두고 퇴학을 당하게 된 건 지난해 11월 15일 군사영어 수시시험을 볼 때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A 씨는 그날 3교시에 시험을 응시할 예정이었는데, 다른 사관생도 B 씨는 1교시에 먼저 시험을 봤습니다.

점수를 잘 받고 싶었던 A 씨는 시험을 보기 전 B 씨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문제를 전달받았습니다. 이 문제를 종이에 옮겨 적어 답안을 외운 뒤 종이를 교반 뒤쪽 스탠딩 책상 위에 올려뒀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시험을 보던 중 감독교수에게 딱 적발되고 맙니다. 종이의 주인인 A 씨는 훈육위원회와 교육운영위원회를 거쳐 같은 해 12월 9일 퇴학 처분을 받게 됐습니다.

A 씨는 이 처분이 부당하다며 지난해 12월 31일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홍순욱)는 A 씨가 육군사관학교장을 상대로 "퇴학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사관생도 "절차적 하자에 평등원칙 위배" 주장

A 씨는 우선 퇴학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퇴학처분을 심의하고 의결한 훈육위원회가 단 15분 동안만 진행돼 A 씨에게 실질적인 의견 진술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고, 심의 2시간 후에 곧바로 A 씨 없이 교육위원회가 개최돼 퇴학처분이 결정된 것은 A 씨에게 보장된 항고할 기회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모두 침해한 조치라는 겁니다.

이어 A 씨는 '퇴학'이라는 징계가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다른 사관생도들의 비슷한 부정행위에는 장기근신 처분을 내린 사례들이 존재하는 데 반해 A 씨에게만 퇴학이라는 과도한 조처를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또 자신이 먼저 B 씨에게 시험문제를 물어보지 않았고 B 씨가 스스로 A 씨를 비롯한 여러 사관생도에게 시험 문제에 관한 정보를 알려줬으니, 부정행위가 의도적이거나 계획적인 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A 씨가 기존에 징계를 받은 전력도 없고 오히려 훈육관 표창을 받고 분대장생도로 임명되는 등 평소 생활태도가 좋았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 법원 "의도적·계획적 부정행위…육사 교육목적에 현저히 위배"

하지만 1심 법원은 학교 측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우선 재판부는 A 씨 퇴학이 절차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A 씨에게 훈육위원회에서 의견을 진술할 기회가 제공됐고, 규정상 근신이 아닌 퇴학처분에 대해선 항고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지난해 12월 2일 문답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을 동반할 수 있다는 부분을 분명히 고지받았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선 다른 주장을 했지만, A 씨가 앞서 학교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했던 점도 근거가 됐습니다. A 씨는 부정행위 적발 당일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해 불안한 마음에 B 씨에게 시험문제를 물어봤고 이에 B 씨가 시험문제를 알려줬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써냈습니다. B 씨 역시 같은 날 여기에 부합하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고요.

A 씨는 심지어 문답 조사를 받을 때 '내가 B 씨에게 시험문제에 관해 물어봤다. 변명할 여지가 없고 어떤 처벌이 내려져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볼 때 A 씨가 먼저 B 씨에게 시험문제를 알려달라고 부탁해, B 씨가 문제를 알려준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결국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부정행위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어 A 씨가 다른 생도들과의 평등원칙 위배를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A 씨가 자신과 비교하며 제시했던 근신 사례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판단입니다.

우선 교수가 시험 답안지를 가지러 간 사이에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보고 다시 넣으려다 걸린 사례는 우발적인 행위였고 아예 시험을 치기 전에 발각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시험 도중 수학공식을 적은 쪽지를 보다가 적발된 사례 역시, 해당 쪽지가 '컨닝' 목적이 아니라 평소 수시로 암기하기 위해 넣어둔 것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생도들이 과제 답안을 서로 복사해 제출한 사례도 공통 과제를 준비하다가 답안 전부나 일부를 복사한 게 문제가 된 것으로 경위나 의도성, 계획성 등에서 A 씨 사건과 차이가 뚜렷하다고 재판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는 그동안 의도적, 계획적으로 시험 부정행위를 한 사관생도들에 대해선 퇴학처분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거죠.

재판부는 육군사관학교만의 특수성도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육군사관학교의 사관생도는 장차 육군의 지휘관으로서 휘하 장병들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므로, 사관생도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의무를 철저히 준수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그럼에도 A 씨는 의도적, 계획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사관생도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명예의 최저기준을 위반했고, 이로 인해 육군사관학교와 사관생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 부정행위는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적 품성을 갖춘 군 장교를 양성하려는 육군사관학교의 교육목적에 현저하게 위배되는 행위"라며 "A 씨가 주장하는 제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퇴학처분이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은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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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2 08:00:06
    취재K
육군사관학교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자율성의 주체인 교육기관의 하나인 동시에 군장교를 배출하기 위하여 국가가 모든 재정을 부담하는 특수교육기관으로서,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한 리더쉽을 갖추고 군사전문가로서의 기초자질을 겸비한 정예 지휘관을 양성하는 데 그 교육목표가 있으므로 그 사관생도의 징계처분에 관하여는 위와 같은 특수한 설립목적 및 교육목표에 따른 교장의 자율적 판단·결정이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대법원 2012.9.12. 선고 2012두9482 판결)

■ '시험문제 컨닝' 걸려 퇴학당한 사관생도, "부당하다" 소송

2016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생도 A 씨가 임관을 앞두고 퇴학을 당하게 된 건 지난해 11월 15일 군사영어 수시시험을 볼 때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A 씨는 그날 3교시에 시험을 응시할 예정이었는데, 다른 사관생도 B 씨는 1교시에 먼저 시험을 봤습니다.

점수를 잘 받고 싶었던 A 씨는 시험을 보기 전 B 씨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문제를 전달받았습니다. 이 문제를 종이에 옮겨 적어 답안을 외운 뒤 종이를 교반 뒤쪽 스탠딩 책상 위에 올려뒀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시험을 보던 중 감독교수에게 딱 적발되고 맙니다. 종이의 주인인 A 씨는 훈육위원회와 교육운영위원회를 거쳐 같은 해 12월 9일 퇴학 처분을 받게 됐습니다.

A 씨는 이 처분이 부당하다며 지난해 12월 31일 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홍순욱)는 A 씨가 육군사관학교장을 상대로 "퇴학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 사관생도 "절차적 하자에 평등원칙 위배" 주장

A 씨는 우선 퇴학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퇴학처분을 심의하고 의결한 훈육위원회가 단 15분 동안만 진행돼 A 씨에게 실질적인 의견 진술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고, 심의 2시간 후에 곧바로 A 씨 없이 교육위원회가 개최돼 퇴학처분이 결정된 것은 A 씨에게 보장된 항고할 기회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모두 침해한 조치라는 겁니다.

이어 A 씨는 '퇴학'이라는 징계가 평등원칙에 어긋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다른 사관생도들의 비슷한 부정행위에는 장기근신 처분을 내린 사례들이 존재하는 데 반해 A 씨에게만 퇴학이라는 과도한 조처를 내렸다는 주장입니다.

또 자신이 먼저 B 씨에게 시험문제를 물어보지 않았고 B 씨가 스스로 A 씨를 비롯한 여러 사관생도에게 시험 문제에 관한 정보를 알려줬으니, 부정행위가 의도적이거나 계획적인 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A 씨가 기존에 징계를 받은 전력도 없고 오히려 훈육관 표창을 받고 분대장생도로 임명되는 등 평소 생활태도가 좋았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 법원 "의도적·계획적 부정행위…육사 교육목적에 현저히 위배"

하지만 1심 법원은 학교 측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우선 재판부는 A 씨 퇴학이 절차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봤습니다. A 씨에게 훈육위원회에서 의견을 진술할 기회가 제공됐고, 규정상 근신이 아닌 퇴학처분에 대해선 항고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겁니다. 또 A 씨가 지난해 12월 2일 문답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을 동반할 수 있다는 부분을 분명히 고지받았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선 다른 주장을 했지만, A 씨가 앞서 학교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시인했던 점도 근거가 됐습니다. A 씨는 부정행위 적발 당일 '시험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해 불안한 마음에 B 씨에게 시험문제를 물어봤고 이에 B 씨가 시험문제를 알려줬다'는 취지의 사실확인서를 써냈습니다. B 씨 역시 같은 날 여기에 부합하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했고요.

A 씨는 심지어 문답 조사를 받을 때 '내가 B 씨에게 시험문제에 관해 물어봤다. 변명할 여지가 없고 어떤 처벌이 내려져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을 볼 때 A 씨가 먼저 B 씨에게 시험문제를 알려달라고 부탁해, B 씨가 문제를 알려준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결국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부정행위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이어 A 씨가 다른 생도들과의 평등원칙 위배를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A 씨가 자신과 비교하며 제시했던 근신 사례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판단입니다.

우선 교수가 시험 답안지를 가지러 간 사이에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보고 다시 넣으려다 걸린 사례는 우발적인 행위였고 아예 시험을 치기 전에 발각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시험 도중 수학공식을 적은 쪽지를 보다가 적발된 사례 역시, 해당 쪽지가 '컨닝' 목적이 아니라 평소 수시로 암기하기 위해 넣어둔 것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생도들이 과제 답안을 서로 복사해 제출한 사례도 공통 과제를 준비하다가 답안 전부나 일부를 복사한 게 문제가 된 것으로 경위나 의도성, 계획성 등에서 A 씨 사건과 차이가 뚜렷하다고 재판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는 그동안 의도적, 계획적으로 시험 부정행위를 한 사관생도들에 대해선 퇴학처분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거죠.

재판부는 육군사관학교만의 특수성도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육군사관학교의 사관생도는 장차 육군의 지휘관으로서 휘하 장병들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므로, 사관생도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의무를 철저히 준수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그럼에도 A 씨는 의도적, 계획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사관생도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명예의 최저기준을 위반했고, 이로 인해 육군사관학교와 사관생도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이 사건 부정행위는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적 품성을 갖춘 군 장교를 양성하려는 육군사관학교의 교육목적에 현저하게 위배되는 행위"라며 "A 씨가 주장하는 제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퇴학처분이 사회 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은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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