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뒤에 눈물”…감정노동 사각지대

입력 2020.06.02 (10:40) 수정 2020.06.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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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손님과 민원인을 응대하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람들.

법이 만들어졌다지만, 여전히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감정노동자들을 서윤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손님 앞에 무릎을 꿇은 백화점 점원들.

공짜 수리가 어렵다는 회사 방침을 설명했지만, 계속된 항의에 고개를 숙인 겁니다.

[점원/음성변조 : "그게 아니고요, 고객님. 본사 방침인데요."]

전주시 민원 콜센터,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전주시청 콜센터입니다."]

코로나 19가 확산한 뒤로, 여러 지원 정책들이 나오면서 민원이 3배 넘게 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많게는 하루 3백 통이 넘는 전화를 받으면서 더 힘이 들게 하는 건 민원인의 말 한마디입니다.

[전주시 민원 콜센터 상담원/음성변조 : "'지원 대상자가 아닌데 나도 지원을 받겠다'라고, 안 되는 부분에서 계속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두 해 전 기준, 전북지역의 감정노동자는 26만 8천 명으로 추산됩니다.

취업자 3명 가운데 1명꼴로, 주로 손님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몸담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의 감정노동자 2천7백여 명을 조사했더니, 70%가 능력 밖의 일이나,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손님들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시달림으로 인한 고통은 몸과 마음의 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상근/전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든지 여러 가지 근육통이라든지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 반응이 신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겠고. 정신적인 악영향이라고 하면 우울증이라든지 불안증 이런 것들을 많이 일으킬 수 있겠고요."]

지난 2천17년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18살 여고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현장실습생 15명 가운데 13명이 그만둔 '해지 방어팀'에서 일을 했는데,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여고생이 남긴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어린 학생을 죽음으로 몬, 구조적인 문제와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진상 조사나 충분한 해명조차 없었습니다.

[채민/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실습생 사망사건 대책위 참여 : "보호조치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미비했고. 오히려 고객 해지 방어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상품 판매 실적들을 회사가 경쟁적으로 추궁하지 않았나 하는 상황들이 파악됐습니다."]

두 해 전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손님의 폭언과 폭행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크면, 사업주는 업무를 중단하거나 전환해줘야 합니다.

업무 중단 등을 요구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되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습니다.

노동계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생겨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대리운전기사 등 사업주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특수고용직을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합니다.

[김강운/대리운전노조 전북지부장 : "주취 고객들에서부터 나오는 여러 가지 언사들은 대리운전 기사님들이 많은 상처를 입거든요. 감수하거나 아니면 업체로부터 업무를 차단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다는 거죠."]

원청업체에 파견된 하청업체 노동자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백승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북지역본부장 : "하청업체 동료들은 아예 이 대응 매뉴얼에도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욕설, 이런 것들을 그냥 듣고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해서 실제 원청이 해결해 주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의 죽음.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법의 현실과 의식 부족이 감정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서윤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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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음 뒤에 눈물”…감정노동 사각지대
    • 입력 2020-06-02 10:40:42
    • 수정2020-06-02 10:40:44
    930뉴스(전주)
[앵커] 손님과 민원인을 응대하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람들. 법이 만들어졌다지만, 여전히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감정노동자들을 서윤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손님 앞에 무릎을 꿇은 백화점 점원들. 공짜 수리가 어렵다는 회사 방침을 설명했지만, 계속된 항의에 고개를 숙인 겁니다. [점원/음성변조 : "그게 아니고요, 고객님. 본사 방침인데요."] 전주시 민원 콜센터, 쉴 새 없이 전화가 걸려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전주시청 콜센터입니다."] 코로나 19가 확산한 뒤로, 여러 지원 정책들이 나오면서 민원이 3배 넘게 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많게는 하루 3백 통이 넘는 전화를 받으면서 더 힘이 들게 하는 건 민원인의 말 한마디입니다. [전주시 민원 콜센터 상담원/음성변조 : "'지원 대상자가 아닌데 나도 지원을 받겠다'라고, 안 되는 부분에서 계속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두 해 전 기준, 전북지역의 감정노동자는 26만 8천 명으로 추산됩니다. 취업자 3명 가운데 1명꼴로, 주로 손님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에 몸담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의 감정노동자 2천7백여 명을 조사했더니, 70%가 능력 밖의 일이나,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손님들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시달림으로 인한 고통은 몸과 마음의 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상근/전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심장이 마구 두근거린다든지 여러 가지 근육통이라든지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 반응이 신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겠고. 정신적인 악영향이라고 하면 우울증이라든지 불안증 이런 것들을 많이 일으킬 수 있겠고요."] 지난 2천17년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18살 여고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현장실습생 15명 가운데 13명이 그만둔 '해지 방어팀'에서 일을 했는데,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여고생이 남긴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어린 학생을 죽음으로 몬, 구조적인 문제와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진상 조사나 충분한 해명조차 없었습니다. [채민/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실습생 사망사건 대책위 참여 : "보호조치라든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미비했고. 오히려 고객 해지 방어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상품 판매 실적들을 회사가 경쟁적으로 추궁하지 않았나 하는 상황들이 파악됐습니다."] 두 해 전 이른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손님의 폭언과 폭행으로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크면, 사업주는 업무를 중단하거나 전환해줘야 합니다. 업무 중단 등을 요구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되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습니다. 노동계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생겨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대리운전기사 등 사업주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특수고용직을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합니다. [김강운/대리운전노조 전북지부장 : "주취 고객들에서부터 나오는 여러 가지 언사들은 대리운전 기사님들이 많은 상처를 입거든요. 감수하거나 아니면 업체로부터 업무를 차단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는 없다는 거죠."] 원청업체에 파견된 하청업체 노동자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백승재/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북지역본부장 : "하청업체 동료들은 아예 이 대응 매뉴얼에도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욕설, 이런 것들을 그냥 듣고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해서 실제 원청이 해결해 주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의 죽음.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법의 현실과 의식 부족이 감정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KBS 뉴스 서윤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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