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해고됐는데…“코로나 우려되니 농성 금지”

입력 2020.06.02 (16:09) 수정 2020.06.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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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에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제 위기에 가장 취약한 하청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일자리에서 밀려났다."라며 "고용안정을 약속한 정부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달라."라고 요구했습니다. 참석한 해고 노동자들은 '아시아나 케이오'에서 쫓겨난 직원들입니다. '아시아나 케이오'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자회사로 여객기 내부를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매년 여행객이 늘면서 해고 걱정은 없었던 이들에게 갑자기 코로나19 후폭풍이 몰아쳤습니다. 항공 업계가 큰 타격을 받으며 직원 약 500명 가운데 120명은 희망퇴직을, 360명은 무기한 무급 휴직에 들어갔고 8명은 해고를 당해 거리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나 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아시아나 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서를 쓴다는 내가 그만둔다는 거랑 똑같은 건데..."

김계월 씨는 아시아나 케이오의 노동자로 6년 동안 여객기 청소를 담당해왔습니다. 청소해야 하는 비행기가 매년 늘었지만 인력충원은 되지 않아 일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작은 비행기를 청소하는 경우 한 대당 10분 정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짧은 시간 동안 좁은 통로를 지나다니며 청소하다 보니 여기저기 부딪혀 멍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측은 3월 한 달 동안 직원 연차 사용과 일정 기간 무급 휴가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직원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회사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얼마 뒤 사측은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급여의 70%만 받는 유급 휴가를 제안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4월 한 달만 유급 휴가를 보낸 뒤 이후 무기한 무급 휴직이나 희망퇴직에 동의하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고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다고 김계월 씨는 말했습니다. 결국 500명 가까운 직원 중 120명은 희망퇴직에, 360명가량은 무기한 무급 휴직에 동의했습니다.

아시아나 케이오 해고 노동자 김계월 씨는 동료들과 거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아시아나 케이오 해고 노동자 김계월 씨는 동료들과 거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김 씨와 7명의 동료는 "무기한 무급 휴직은 결국 그만두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해 사측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동료 7명과 김 씨는 5월 11일 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회사의 조치가 "(경영 악화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력 없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하는 부당 해고"라고 주장하면서,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사옥 앞에 농성장을 설치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 케이오측은 "회사의 다수 노조측과 협의해 진행된 사항"이라며 해고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됐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관계자는 "내부 기준에 따라 정리해고 대상자를 정했고, 그 중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한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를 유예하기로 했던 것"이라며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제안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구청 "코로나19 감염 예방 위해 집회 제한...천막 철거하라"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옥 앞에서 벌이는 농성을 하지 못하게 종로구청에서 천막 철거에 나선 겁니다. 이유는 "농성장이 인도를 막아 시민 통행을 방해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종로구 내 24시간 상주 시설은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었는데 정작 같은 이유로 일자리를 돌려달라는 집회마저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집회 제한 고시종로구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집회 제한 고시

지난달 18일에 천막이 한 번 철거되자 농성자들은 닷새 만에 두 번째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청이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계속 보내고 있어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통상 계고장을 세 번 보낸 뒤에는 철거에 돌입하는데 3번째 계고장은 지난달 26일에 발부됐습니다.

게다가 구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종로 일대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구청 관계자는 "폭발적인 확진은 없었지만 지역별로 소규모 산발적 감염 발생하는 상황을 고려한 조치"라면서 "종로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고, 확진자가 종로 일부 지역을 다녀간 것도 확인돼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청은 코로나 심각 단계가 해제될 때까지는 집회를 금지할 예정입니다.

노조원들은 구청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도 아닌데, 농성 자체를 방해하려는 집회 금지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스크 쓰고서라도 집회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인천공항 입점업체 및 위탁업체 노동자 9천명 중 전체의 45%가 휴직과 퇴직 상태로 추산됩니다. 지난 4월 말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권고사직이나 해고·계약해지를 경험한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14.3%로, 전체 평균인 5.5%를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는 유독 이런 사회적 약자에게 더 아프고 깊게 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알리려고 하는 시도 조차도 다시 코로나19 때문에 좌절되는 상황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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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때문에 해고됐는데…“코로나 우려되니 농성 금지”
    • 입력 2020-06-02 16:09:51
    • 수정2020-06-03 14:07:26
    취재K
청와대 앞에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경제 위기에 가장 취약한 하청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일자리에서 밀려났다."라며 "고용안정을 약속한 정부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달라."라고 요구했습니다. 참석한 해고 노동자들은 '아시아나 케이오'에서 쫓겨난 직원들입니다. '아시아나 케이오'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자회사로 여객기 내부를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매년 여행객이 늘면서 해고 걱정은 없었던 이들에게 갑자기 코로나19 후폭풍이 몰아쳤습니다. 항공 업계가 큰 타격을 받으며 직원 약 500명 가운데 120명은 희망퇴직을, 360명은 무기한 무급 휴직에 들어갔고 8명은 해고를 당해 거리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나 케이오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서를 쓴다는 내가 그만둔다는 거랑 똑같은 건데..."

김계월 씨는 아시아나 케이오의 노동자로 6년 동안 여객기 청소를 담당해왔습니다. 청소해야 하는 비행기가 매년 늘었지만 인력충원은 되지 않아 일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작은 비행기를 청소하는 경우 한 대당 10분 정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짧은 시간 동안 좁은 통로를 지나다니며 청소하다 보니 여기저기 부딪혀 멍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측은 3월 한 달 동안 직원 연차 사용과 일정 기간 무급 휴가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직원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회사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얼마 뒤 사측은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급여의 70%만 받는 유급 휴가를 제안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4월 한 달만 유급 휴가를 보낸 뒤 이후 무기한 무급 휴직이나 희망퇴직에 동의하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고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다고 김계월 씨는 말했습니다. 결국 500명 가까운 직원 중 120명은 희망퇴직에, 360명가량은 무기한 무급 휴직에 동의했습니다.

아시아나 케이오 해고 노동자 김계월 씨는 동료들과 거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김 씨와 7명의 동료는 "무기한 무급 휴직은 결국 그만두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생각해 사측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동료 7명과 김 씨는 5월 11일 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회사의 조치가 "(경영 악화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려는 노력 없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가하는 부당 해고"라고 주장하면서,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사옥 앞에 농성장을 설치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 케이오측은 "회사의 다수 노조측과 협의해 진행된 사항"이라며 해고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됐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관계자는 "내부 기준에 따라 정리해고 대상자를 정했고, 그 중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한 직원에 대해서는 해고를 유예하기로 했던 것"이라며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제안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구청 "코로나19 감염 예방 위해 집회 제한...천막 철거하라"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옥 앞에서 벌이는 농성을 하지 못하게 종로구청에서 천막 철거에 나선 겁니다. 이유는 "농성장이 인도를 막아 시민 통행을 방해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종로구 내 24시간 상주 시설은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었는데 정작 같은 이유로 일자리를 돌려달라는 집회마저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집회 제한 고시
지난달 18일에 천막이 한 번 철거되자 농성자들은 닷새 만에 두 번째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청이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계속 보내고 있어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통상 계고장을 세 번 보낸 뒤에는 철거에 돌입하는데 3번째 계고장은 지난달 26일에 발부됐습니다.

게다가 구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종로 일대의 집회를 금지했습니다. 구청 관계자는 "폭발적인 확진은 없었지만 지역별로 소규모 산발적 감염 발생하는 상황을 고려한 조치"라면서 "종로 일대는 유동인구가 많고, 확진자가 종로 일부 지역을 다녀간 것도 확인돼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청은 코로나 심각 단계가 해제될 때까지는 집회를 금지할 예정입니다.

노조원들은 구청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도 아닌데, 농성 자체를 방해하려는 집회 금지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스크 쓰고서라도 집회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인천공항 입점업체 및 위탁업체 노동자 9천명 중 전체의 45%가 휴직과 퇴직 상태로 추산됩니다. 지난 4월 말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권고사직이나 해고·계약해지를 경험한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14.3%로, 전체 평균인 5.5%를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는 유독 이런 사회적 약자에게 더 아프고 깊게 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알리려고 하는 시도 조차도 다시 코로나19 때문에 좌절되는 상황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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