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진료’ 이후 계속되는 정부 ‘물밑 구상’…원격의료 ‘만지작’?

입력 2020.06.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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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박정임씨는 치매와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85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노모는 2010년에 심혈관 수술을 한 뒤 10년째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고, 7년 전부터는 치매 진단을 받아 정신과 약도 복용 중이다.

지난 2월 말 대구에서 빠르게 확산한 코로나19는 특히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심혈관 질환과 치매뿐만 아니라 고령으로 안과와 이비인후과 등 다녀야 하는 병원이 한두 곳이 아닌데,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다니던 병원에서도 고령의 환자가 오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그즈음 다행히도 전화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고 어머니를 직접 병원에 모시고 갈 필요가 없어졌지만, 병원 자율에 맡긴 전화진료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어머니가 귀가 안 좋아서 원래 다니던 병원에 전화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는데 안 해주겠다고 해서 한동안 귀 진료를 못 봤었어요. 환자 입장에선 이미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에 병원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요. 전화진료를 안 해준다고 하면 어렵게 다른 병원을 찾기보다는 그 기간에 진료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비대면진료 32만건…보건당국 '전화진료 인센티브' 지급

현행 의료법상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이른바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그러나 지난 2월 23일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조정한 보건당국은 한시적으로 병원에 전화진료를 허용했다. 당시 전화진료는 해묵은 원격진료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면서 의사들의 반발 속에 추진됐다.

전화진료가 시작된 2월 24일 이후 3개월 동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접수된 전화진료 건수는 모두 32만 6,725건, 총 42억 원이 넘는 진찰료가 청구됐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4월 중순부터 전문병원과 종합병원에 한해 환자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평가해 지급하는 '의료질평가지원금' 명목의 지원금을 지급해왔다. 복지부는 최근 이 같은 지원방침을 동네 의원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달 28일, 복지부가 일선 병·의원에 안내한 '의료기관 지원 길라잡이'에는 동네 의원이 전화진료를 하면 의사들에게 '전화상담관리료' 명목으로 진찰료의 30%를 더 주고, 야간이나 휴일엔 30%를 가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화진료 지원금을 받은 사례도 상세히 나와 있다. 하루 평균 10건의 전화상담을 했던 한 내과의원이 지원금으로만 월 83만 원을 더 벌었다는 내용이다.

전화진료를 할 때 추가로 들어가는 각종 행정비용을 보전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동시에 의사들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이용해 이미 수차례 우려를 표했던 비대면진료를 확대하려는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가 어제(3일) 발표한 전국 개원의 1,865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전체의 46%가 병원 폐업을 검토하고 있고, 82%가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 병원 운영이 가능한 기간이 '1년 이내'라고 답했다.


대한의협 변형규 보험이사는 지원금 제도에 대해 "원격의료로 가려는 수순"이라며 "동네 의원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비대면진료를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정말 지원을 하려는 거라면 '한시적 진찰료 인상' 등 의료계가 필요로 하는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가장 우려하는 비대면진료에 대한 지원금을 주는 방식은 우려스럽다"는 설명이다.

'비대면진료' 효과 연구 시작…의협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통행"

KBS 취재결과 실제로 물밑에선 비대면진료에 대한 연구가 진행 또는 논의되고 있다.

심평원은 복지부의 정책연구용역을 받아 코로나19 기간에 이뤄진 전화진료 30만 건에 대한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실제 전화진료에 참여한 환자들을 인터뷰해 효과와 개선점을 분석하고 있는데, 환자 대부분은 의료계 자율에만 맡겨놓은 전화진료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전화진료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상을 이뤄졌는지 조사하고 제2, 제3의 감염병 확산 상황이 오면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연구"라며 연구 취지를 설명했다.

더 나아가 원격의료의 효과 전반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한 의료계 연구기관은 의료인과 헬스케어산업계 종사자가 참여해 원격의료와 관련한 기술의 효과나 부작용 등을 분석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해당 연구기관 관계자는 "최근 신성장동력으로 비대면 의료 산업을 정부에서 육성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반대로 의료계에서는 우려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과학적인 근거 위에서 분석해보고 관련 정책이 시행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줄여보자는 차원에서 연구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어제(3일) 발표한 3차 추경안에도 '원격·비대면 의료'라는 말은 없지만, 곳곳에 관련 예산이 잡혀있다.

▲건강취약계층 30만 명 ICT기반 건강관리시스템 도입에 44억 원, ▲IoT/AI 활용 디지털 돌봄 시스템 구축에 47억 원이 배정됐는데, 만성질환자나 노약자, 격오지 환자들에게 헬스케어 기기를 지급해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원격의료에 대해 '제도화는 없다'고 공언했던 정부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이미 원격의료 활성화에 대한 명분 쌓기에 나섰고, 이 같은 움직임에 의료계는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의협 변 이사는 "정부에서는 추진안을 물밑에서 만들어 갑자기 던진다"며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을 수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일방통행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시적 전화진료 허용으로 원격의료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각자 담론에 갇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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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진료’ 이후 계속되는 정부 ‘물밑 구상’…원격의료 ‘만지작’?
    • 입력 2020-06-04 08:00:24
    취재K
대구에 사는 박정임씨는 치매와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85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노모는 2010년에 심혈관 수술을 한 뒤 10년째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고, 7년 전부터는 치매 진단을 받아 정신과 약도 복용 중이다.

지난 2월 말 대구에서 빠르게 확산한 코로나19는 특히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심혈관 질환과 치매뿐만 아니라 고령으로 안과와 이비인후과 등 다녀야 하는 병원이 한두 곳이 아닌데,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어려웠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다니던 병원에서도 고령의 환자가 오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그즈음 다행히도 전화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고 어머니를 직접 병원에 모시고 갈 필요가 없어졌지만, 병원 자율에 맡긴 전화진료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어머니가 귀가 안 좋아서 원래 다니던 병원에 전화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는데 안 해주겠다고 해서 한동안 귀 진료를 못 봤었어요. 환자 입장에선 이미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경우에 병원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요. 전화진료를 안 해준다고 하면 어렵게 다른 병원을 찾기보다는 그 기간에 진료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비대면진료 32만건…보건당국 '전화진료 인센티브' 지급

현행 의료법상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이른바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그러나 지난 2월 23일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조정한 보건당국은 한시적으로 병원에 전화진료를 허용했다. 당시 전화진료는 해묵은 원격진료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면서 의사들의 반발 속에 추진됐다.

전화진료가 시작된 2월 24일 이후 3개월 동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접수된 전화진료 건수는 모두 32만 6,725건, 총 42억 원이 넘는 진찰료가 청구됐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4월 중순부터 전문병원과 종합병원에 한해 환자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평가해 지급하는 '의료질평가지원금' 명목의 지원금을 지급해왔다. 복지부는 최근 이 같은 지원방침을 동네 의원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달 28일, 복지부가 일선 병·의원에 안내한 '의료기관 지원 길라잡이'에는 동네 의원이 전화진료를 하면 의사들에게 '전화상담관리료' 명목으로 진찰료의 30%를 더 주고, 야간이나 휴일엔 30%를 가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화진료 지원금을 받은 사례도 상세히 나와 있다. 하루 평균 10건의 전화상담을 했던 한 내과의원이 지원금으로만 월 83만 원을 더 벌었다는 내용이다.

전화진료를 할 때 추가로 들어가는 각종 행정비용을 보전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동시에 의사들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이용해 이미 수차례 우려를 표했던 비대면진료를 확대하려는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가 어제(3일) 발표한 전국 개원의 1,865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전체의 46%가 병원 폐업을 검토하고 있고, 82%가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 병원 운영이 가능한 기간이 '1년 이내'라고 답했다.


대한의협 변형규 보험이사는 지원금 제도에 대해 "원격의료로 가려는 수순"이라며 "동네 의원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해 비대면진료를 확대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정말 지원을 하려는 거라면 '한시적 진찰료 인상' 등 의료계가 필요로 하는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가장 우려하는 비대면진료에 대한 지원금을 주는 방식은 우려스럽다"는 설명이다.

'비대면진료' 효과 연구 시작…의협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통행"

KBS 취재결과 실제로 물밑에선 비대면진료에 대한 연구가 진행 또는 논의되고 있다.

심평원은 복지부의 정책연구용역을 받아 코로나19 기간에 이뤄진 전화진료 30만 건에 대한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실제 전화진료에 참여한 환자들을 인터뷰해 효과와 개선점을 분석하고 있는데, 환자 대부분은 의료계 자율에만 맡겨놓은 전화진료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보험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전화진료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질환을 가진 환자를 대상을 이뤄졌는지 조사하고 제2, 제3의 감염병 확산 상황이 오면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연구"라며 연구 취지를 설명했다.

더 나아가 원격의료의 효과 전반에 대한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한 의료계 연구기관은 의료인과 헬스케어산업계 종사자가 참여해 원격의료와 관련한 기술의 효과나 부작용 등을 분석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해당 연구기관 관계자는 "최근 신성장동력으로 비대면 의료 산업을 정부에서 육성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반대로 의료계에서는 우려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과학적인 근거 위에서 분석해보고 관련 정책이 시행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줄여보자는 차원에서 연구 필요성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어제(3일) 발표한 3차 추경안에도 '원격·비대면 의료'라는 말은 없지만, 곳곳에 관련 예산이 잡혀있다.

▲건강취약계층 30만 명 ICT기반 건강관리시스템 도입에 44억 원, ▲IoT/AI 활용 디지털 돌봄 시스템 구축에 47억 원이 배정됐는데, 만성질환자나 노약자, 격오지 환자들에게 헬스케어 기기를 지급해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원격의료에 대해 '제도화는 없다'고 공언했던 정부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이미 원격의료 활성화에 대한 명분 쌓기에 나섰고, 이 같은 움직임에 의료계는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의협 변 이사는 "정부에서는 추진안을 물밑에서 만들어 갑자기 던진다"며 "이해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을 수정해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일방통행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시적 전화진료 허용으로 원격의료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각자 담론에 갇혀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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