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의 폭력,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다

입력 2020.06.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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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난폭 운전에 항의하는 상대방 운전자를 가족 앞에서 무차별하게 폭행해 전국적 공분을 일으킨 일명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 기억하실 텐데요. 1심 재판부가 오늘(4일) 가해 운전자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사건 당시 가해 운전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등장해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할 정도로 비난이 들끓었지만, 상해 정도가 경미해 형량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였는데 어떻게 실형이 선고된 걸까요.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 발생부터 기소까지


사건은 지난해 7월 4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2차선 도로 위에서 일어났습니다. 1차선으로 가던 아반떼를 뒤따라가던 카니발이 추월해서 일명 칼치기(차와 차 사이를 빠르게 통과해 추월하는 난폭운전)로 들어갔고, 아반떼는 급정거했습니다.

아반떼 운전자는 2차선으로 이동해 신호 대기 중인 상태에서 창문을 열고, 1차선에 있는 카니발 운전자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카니발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아반떼 운전석으로 향했고, 들고 있던 플라스틱 생수통을 아반떼 운전자에게 던지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습니다.

조수석에 있던 아반떼 운전자의 부인이 휴대폰으로 이 모습을 촬영하자 휴대전화를 빼앗아 멀리 던져버리기까지 했는데, 당시 피해 차량 뒷좌석에는 5살과 8살 된 자녀도 함께 타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 전국적으로 공분을 일으켰는데요. 무려 21만 명의 국민 청원이 쇄도하자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게 수사가 진행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가해 운전자인 34살 A씨에 대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A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에 대한 염려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A씨를 수사한 경찰은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운전자 폭행과 재물 손괴 등의 혐의를 적용해 A씨를 검찰에 송치했는데요. 뒷좌석에서 피해자의 자녀들이 보고 있는데도 운전자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도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최종 기소단계에서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제외하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그건 공개가 어렵다. 양해해달라"면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신호 대기 중 차 밖에서 폭행…'특가법' 적용 가능?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오늘(4일) 1심 선고공판을 열고 A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는데요. 재판 과정에서 쟁점은 '특가법' 적용 여부였습니다.

'특가법'이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특정 범죄에 대해 가중 처벌을 하기 위해 제정된 법인데요.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도 특가법 적용 대상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명시했습니다.

A씨는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나 당시 피해자는 자동차를 완전히 정차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특가법에서 정한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특가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규정에서 '운행 중'이란 '운행 중 또는 일시 주정차한 경우로 운전자에 대한 폭행으로 인해 운전자, 승객 또는 보행자 등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는 운행 중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자동차 통행이 빈번한 편도 2차로의 2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 발생한 것으로, 운전자에 대한 폭행으로 인해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충분한 곳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만삭의 아내와 함께 아픈 자녀의 진료를 받기 위해 급하게 병원으로 가던 중 우발적으로 이 사건에 이르게 되고,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면서도 "당시 피해 차량 뒷좌석에 자녀들이 타고 있어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큰데도, 피해자들이 먼저 욕설을 하는 등 도발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여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습니다.

"도로 위 폭력 위험 막는 일벌백계 판결"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한문철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재판부는 가족들의 고통은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상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집행유예를 할까, 아니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으니 실형을 선고할까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이어 "이번 판결은 앞으로 도로 위에서의 폭력, 로드 레이지(Road Rage, 도로 위 분노)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경고로 보인다"며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게 되면 그로 인해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막기 위한 일벌백계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평했습니다.

선고를 내린 장찬수 부장판사는 법정 구속되는 A씨를 향해 "제 자신도 성격이 매우 급하지만 피고인은 성격이 너무 급한 것 같다. 피고인, 사람은 바른길로 가야 한다. 옆길로 가면 위험하다"면서 "이번 판결이 끝나고 난 뒤 곰곰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충고를 남겼습니다.

이에 A씨는 "재판부가 피해자와 합의할 기회를 줬는데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피해자에게도 사과의 말을 남긴 채 고개를 떨궜습니다.

[연관 기사]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 가해자 '징역 1년 6월'…법정구속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6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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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4 18:31:35
    취재K
지난해 난폭 운전에 항의하는 상대방 운전자를 가족 앞에서 무차별하게 폭행해 전국적 공분을 일으킨 일명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 기억하실 텐데요. 1심 재판부가 오늘(4일) 가해 운전자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사건 당시 가해 운전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등장해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동의할 정도로 비난이 들끓었지만, 상해 정도가 경미해 형량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였는데 어떻게 실형이 선고된 걸까요.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 발생부터 기소까지


사건은 지난해 7월 4일,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2차선 도로 위에서 일어났습니다. 1차선으로 가던 아반떼를 뒤따라가던 카니발이 추월해서 일명 칼치기(차와 차 사이를 빠르게 통과해 추월하는 난폭운전)로 들어갔고, 아반떼는 급정거했습니다.

아반떼 운전자는 2차선으로 이동해 신호 대기 중인 상태에서 창문을 열고, 1차선에 있는 카니발 운전자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카니발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아반떼 운전석으로 향했고, 들고 있던 플라스틱 생수통을 아반떼 운전자에게 던지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습니다.

조수석에 있던 아반떼 운전자의 부인이 휴대폰으로 이 모습을 촬영하자 휴대전화를 빼앗아 멀리 던져버리기까지 했는데, 당시 피해 차량 뒷좌석에는 5살과 8살 된 자녀도 함께 타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 전국적으로 공분을 일으켰는데요. 무려 21만 명의 국민 청원이 쇄도하자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게 수사가 진행되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가해 운전자인 34살 A씨에 대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A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에 대한 염려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A씨를 수사한 경찰은 특가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운전자 폭행과 재물 손괴 등의 혐의를 적용해 A씨를 검찰에 송치했는데요. 뒷좌석에서 피해자의 자녀들이 보고 있는데도 운전자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도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최종 기소단계에서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제외하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그건 공개가 어렵다. 양해해달라"면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신호 대기 중 차 밖에서 폭행…'특가법' 적용 가능?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오늘(4일) 1심 선고공판을 열고 A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는데요. 재판 과정에서 쟁점은 '특가법' 적용 여부였습니다.

'특가법'이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특정 범죄에 대해 가중 처벌을 하기 위해 제정된 법인데요. '운행 중인 자동차 운전자에 대한 폭행'도 특가법 적용 대상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명시했습니다.

A씨는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나 당시 피해자는 자동차를 완전히 정차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특가법에서 정한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특가법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규정에서 '운행 중'이란 '운행 중 또는 일시 주정차한 경우로 운전자에 대한 폭행으로 인해 운전자, 승객 또는 보행자 등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는 운행 중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은 자동차 통행이 빈번한 편도 2차로의 2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 발생한 것으로, 운전자에 대한 폭행으로 인해 공중의 교통안전과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충분한 곳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이 만삭의 아내와 함께 아픈 자녀의 진료를 받기 위해 급하게 병원으로 가던 중 우발적으로 이 사건에 이르게 되고,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 않은 점은 유리한 정상"이라면서도 "당시 피해 차량 뒷좌석에 자녀들이 타고 있어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큰데도, 피해자들이 먼저 욕설을 하는 등 도발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여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습니다.

"도로 위 폭력 위험 막는 일벌백계 판결"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한문철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재판부는 가족들의 고통은 크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상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집행유예를 할까, 아니면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으니 실형을 선고할까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 변호사는 이어 "이번 판결은 앞으로 도로 위에서의 폭력, 로드 레이지(Road Rage, 도로 위 분노)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경고로 보인다"며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하게 되면 그로 인해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막기 위한 일벌백계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평했습니다.

선고를 내린 장찬수 부장판사는 법정 구속되는 A씨를 향해 "제 자신도 성격이 매우 급하지만 피고인은 성격이 너무 급한 것 같다. 피고인, 사람은 바른길로 가야 한다. 옆길로 가면 위험하다"면서 "이번 판결이 끝나고 난 뒤 곰곰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충고를 남겼습니다.

이에 A씨는 "재판부가 피해자와 합의할 기회를 줬는데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피해자에게도 사과의 말을 남긴 채 고개를 떨궜습니다.

[연관 기사] 제주 카니발 폭행 사건 가해자 '징역 1년 6월'…법정구속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6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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