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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훈의 시사본부] “김복동 할머니 살아 계셨다면 ‘둬라, 도도한 강물은 꺾이지 않는다’ 하셨을 것”
입력 2020.06.05 (16:08) 최영일의 시사본부
- 영화 <김복동> 들꽃영화상 심사위원특별언급상 수상... 이 상 할머니의 삶과 잘 어울려
- 이 영화, 생전에 할머니께서 ‘지금까지의 삶 남기고 싶다’는 뜻에 따라 제작된 것
- ‘희망을 잡고 살아왔다’ 말씀... 보이지도 않는 희망을 부여잡는 심정 아프게 다가와
- 생전에 ‘내가 살아있을 때 끝내야 한다’ 말씀... 마치 지금의 상황 미리 아셨던 것 같아
- 지금의 논란 잘잘못 검증 필요하지만 그동안 할머니들의 노력까지 폄훼하면 안 돼
- 위안부 할머니들 자료 여기저기 산재... 정부가 나서서 이 자료들 제대로 관리해야
- 김복동 할머니가 계셨다면 “둬라, 도도한 강물은 꺾이지 않는다.” 말씀하셨을 것 같아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초대석
■ 방송시간 : 6월 5일(금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송원근 감독 (영화 <김복동>)



▷ 오태훈 : 전 세계를 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널리 알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분이 있습니다. 나이는 94,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생전에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이 영화 김복동에 잘 담겨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셨죠. 하지만 영화 김복동은 우리 곁에 남아 있고 최근에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상 들꽃영화상에서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시사본부 금요초대석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과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송원근 : 안녕하세요? 송원근입니다.

▷ 오태훈 : 그리고 들꽃영화상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수상 하셨습니다.

▶ 송원근 : 이게 사실은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이라는 게 말이 좀 뭔가 복합적이지 않습니까? 원래 대상, 다큐멘터리 감독상 뭐 이런 식으로 있는데 사실은 없던 상을 만들어준 상입니다.
▷ 오태훈 : 그래요?

▶ 송원근 : 이 김복동이라는 영화가, 영화 자체가 어쨌든 가지고 있는 의미,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온 삶 그것 자체가 들꽃영화상과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서 반드시 이것은 본수상은 안 되더라도 특별히 심사위원이 언급은 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만든 상이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이고 그 상이 또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오신 어떤 삶의 궤적 이런 것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대상이나 다큐감독상 이런 게 아니라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으로 해서 없는 상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 자체가 김복동 할머니의 어떤 걸음과 굉장히 닮았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 오태훈 : 송 감독이 지금 뉴스타파 PD로 활동을 하고 계신데.

▶ 송원근 : 지금 2013년부터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과거에 이제 언론운동 같은 것에 대한 다큐들도 많이 제작을 하셨잖아요.

▶ 송원근 : 뉴스타파에서 최승호 전 MBC 사장, 지금 뉴스타파 PD 다시 복귀하셨습니다. 자백도 제작을 했었고 공범자들 다큐멘터리 시작을 했었고 꾸준히 우리 사회가, 언론이 어두운 암흑기에 있을 때 계속 이런 언론 문제도 짚어 왔습니다.

▷ 오태훈 : 그런 분이 왜 김복동 이 영화를 만들게 되셨나요?

▶ 송원근 : 김복동 할머니의 영화는 사실 2018년 10월경부터 기획을 해서 작년 8월에 개봉을 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김복동 할머니께서 이제 말기암 투병 중이셨는데 내가 이렇게 죽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이 그냥 다 사라져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살아왔던 길, 내가 남겼던 것 그리고 앞으로 남은 미래 세대가 알아야 할 것들 이런 부분들을 다큐멘터리나 영화 같은 걸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뜻이 있었고.

▷ 오태훈 : 할머니의 뜻이 있어서 이 영화가 나온 거예요?

▶ 송원근 :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있었고 그 뜻을 이어 받아서 당시 정의기억연대 그다음에 미디어몽구.

▷ 오태훈 : 김정환 씨?

▶ 송원근 : 네, 같이 이렇게 만나서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 할머니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들 의견 교환들을 하고 자료 같은 것들을 충분히 수집해서 기획하고 제작을 하게 된 것이죠.

▷ 오태훈 : 2018년 10월부터?

▶ 송원근 : 네, 맞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작품 완성될 때까지 시기가 한 1년이 훨씬 넘었겠네요?

▶ 송원근 : 그러니까 개봉은 8월이었으니까 개봉까지를 보면 한 10달 정도 걸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 뒀던 부분을 말씀하신다면 어떤 걸?

▶ 송원근 : 사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김복동이라는 사람의 삶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그저 김복동이라는 어떤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둬서는 안 된다.

▷ 오태훈 : 할머니 김복동만 보면 안 되겠다?

▶ 송원근 : 절대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 자체를 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 그러니까 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말씀을 하시고 김복동 할머니는 92년 1월에 말씀을 하시거든요. 증언을 하시거든요. 그 이후로 쭉 일본군 위안부 피해 운동이 걸어왔던 길이 있기 때문에 그 운동 속에서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뛰어 들었고 언제 또 좌절했었고 좌절한 것을 다시 딛고 일어서서 어떻게 이 운동을 끝내려고 정말 목숨까지 내놓고 싸워왔었는지 이런 부분들을 그 안에서 보여줘야만 이 영화가 그냥 단순하게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이 도도한 역사 속에서 김복동이라는 사람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같이 담아낼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할머니를 만나셨고 주변에서 계속 찍고 계셨을 것 아니에요.

▶ 송원근 : 할머니를 만난 것은 저는 2018년 11월이 돼서야 만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제안을 처음 받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 이제 암 투병 중이셔서 계속 만나려고 약속을 하려고 하면 응급실에 계속 실려 가시고 뭐 만나기로 한 날 병원에 실려 갔으니까 다음에 봬요. 병원으로 가도 주무시고 계시거나 수혈을 하고 계시거나 이런 모습들을 봤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직접적으로 제가 저렇게 많이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27년 가까운 시간 동안 쭉 기록되어 온 어떤 사진이나 음성.

▷ 오태훈 : 자료들?

▶ 송원근 :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어쨌든 이 영화의 기본 베이스로 김복동이 살아온 어떤 걸음으로 큰 걸음들을 두되 그것을 해석하는 것을 우리 제작진들이 하자라는 것이 이 영화의 어떤 줄기 같은 것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영화를 제작할 때 그 숱한 영상들을 계속해서 봤을 거 아니에요.

▶ 송원근 : 맞습니다. 너무 많이 봐서 사실은 이게 지금도 김복동 할머니를 생각하면 울컥할 것 같은데 이게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 어떤 현장에 나가서는 슬픈 표정을 하고 계시지만 또 어떤 현장에서 굉장히 기쁜 표정을 하시고 있고 편안하게 쉬고 계시는 모습 그러다가 다시 또 힘을 내서 내가 나가야 된다는 어떤 일념 하나로 나가시는 그런 모습들. 그러니까 영화에는 1시간 40분밖에 담겨져 있지 않지만 수없이 많은 김복동의 시간들을 저는 확인을 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정작 김복동 할머니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내 손짓이나 움직임, 표정을 송원근 감독은 계속해서 봤을 거 아닙니까.

▶ 송원근 : 그렇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애초에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알고 있던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과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느껴진 모습이 달랐어요?

▶ 송원근 : 왜냐하면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도 그렇고 김복동이라는 어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가 이런 분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알지도 못했고 감히 제가 다가설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문제가 이렇게 100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살아 있는 역사이신데 그런 문제를 제가 감히 그렇게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실제로 할머니 계시는 방의 문지방 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어쨌든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굉장히 3자적인 관점에서 이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직접 할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김복동의 삶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남겨져 있는 기록 등을 통해서 김복동이 걸어온 길들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서 실제로 이랬었구나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는 것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 확인한 것들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취재를 하러 다니고 아는 동생을 만나러 다니고 고 실제 거주하셨던 부산 다대포항을 가고 뭐 이런 취재 과정, 제작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전에는 굉장히 무섭고 다가가기 쉬운 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마음속에 계속 남아 계시는 그런. 그렇게 저 혼자 일방적인 짝사랑 같은 그런 마음으로 계속 마음속에 담아뒀던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저도 공감을 하는 게 화해치유재단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저희 시사본부에서도 김복동 할머니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이러이러한 건 문제가 됐고 잘못됐고 이거 빨리 해체해야 한다,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을 때 ‘알겠습니다.’ 저도 그냥 일상적으로 제가 얘기했던 거예요. 그냥 ‘네, 그러면 저희도 더 챙겨보고 더 애써볼게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대뜸하시는 말이 ‘아이고, 말만.’ 저한테 그런 말씀을 딱 하시는데 저 정말 충격 먹었거든요,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런 기억이 나는데 그러면 영화 제작 중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겠네요.

▶ 송원근 : 저희가 할머니 돌아가실 즈음해서 이 다큐는 그냥 일반 40분에서 50분짜리 다큐가 아니라 극장에 걸려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감하고 할머니 숨소리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제작으로 전환을 했었고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말씀 드렸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아직 남아 있을 때 그냥 혼잣말, 할머니 들릴 정도의 그런 가까운 거리에서 책임지고 사명감 가지고 잘 만들어놓겠습니다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 오태훈 :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상입니다. 들꽃영화상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수상한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과 함께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영화 만들면서 할머니와 에피소드 같은 것들 기억나는 거 있으면 하나 말씀하신다면요?

▶ 송원근 : 저는 할머니가 그렇게 아픈 모습만 보다가 2018년 11월 23일에 할머니께서 제1조선학교에 5천만 원 자신의 재산을 모두 다 기부를 하신 행사를 할머니 방에서 열거든요. 행사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방에 할머니 편찮으시니까 이불 덥고 옷만 이렇게 가지런히 입으시고 머리 단정하게 매만지신 다음에 앉아서 전달식을 이렇게 가졌습니다. 끝내고 나서 제가 할머니께 기분이 지금 어떠시냐고 여쭤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멀쩡한 인터뷰를 한 적이 그때 딱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그때 말씀하셨던 게 기분이 만점이라고 하시면서. 왜 만점이냐고 했더니 ‘이렇게 쓸 것 없는 나를 주위에서 잘 받들어줘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하고 싶은 활동, 내가 해야 하는 활동들을 원 없이 하고 갈 수 있게 됐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그런 말이 몽환적이었습니다. 왠지 꿈에서 나오는 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누워 있는 모습 말고 앉아서 이렇게 하시는 그런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할머니는 희망을 평생 잡고 왔다는 말씀을 그때 하셨는데 저는 그때 그 희망에 꽂힌 게 아니라 사실은 김복동 할머니 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실 손에 잡힐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을 싸워도 단 하나가 바뀌기가 힘든 그 시절을 겪고 왔으니까 그 시간 속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했던 희망보다 저는 부여잡았다는 그 말이 굉장히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그 희망을 지푸라기 하나라도 부여잡는 심정으로 살아왔다는 그 말씀이 굉장히 깊게 다가왔고 어쨌든 그때 받았던 인상 이런 것들이 제가 영화 작업을 하면서 절대 놓치고 가서는 안 되는 그런 마음으로 자리 잡기는 한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남은 사람이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의무가 전 있다고 보거든요.

▶ 송원근 : 그렇습니다.

▷ 오태훈 : 그런데 그걸 아직 제대로 실현시키지도 못해드리고 있는데 최근에 여러 가지 논란들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라든가 정의기억연대, 이용수 할머니 여러 가지 활동들 그리고 정의기억연대 말고 또 나눔의 집 이야기도 여러 가지 나오고. 송 감독은 최근에 논란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말씀 참 조심스러우실 것 같기는 한데.

▶ 송원근 : 저는 김복동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영상에도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데 내가 살아있을 때 이걸 끝내야 한다. 그러니까 일본의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죄를 내가 있을 때 이 문제를 끝내야 한다는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셨거든요. 그 말들이 그때는 그저 이렇게 김복동 할머니의 어떤 의지 이런 걸로만 봤었는데 지금 이렇게 돌아봤을 때 어떤 지금의 상황같이 정말 이용수 할머니나 길원옥 할머니. 살아계신 피해자 할머니도 말씀하는 거나 거동하는 거나 이런 것들이 많이 불편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 오태훈 : 그렇죠. 시간도 많이 흘렀고.

▶ 송원근 :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뭐 이렇게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특히 일본 정부의 어떤 압박이나 이런 것들 우리 내부의 적이라고 할까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날을 세우지 않을까 김복동 할머니가 미리 아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사실은 검찰 수사나 이런 것들이 시작했기 때문에 수사 결과를 보고 그 이후에 잘잘못은 당연히 검증을 해야겠지만 지금까지 흘러왔던 할머니의 노력까지 훼손되는 이런 작금의 사태 같은 것들은 우리가 자중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질문 드려볼게요. 바라시는 부분이 어떤 겁니까?

▶ 송원근 : 피해자들은 저는 1992년 1월 8일 수요시위 때부터 지금 수요시위를 할 때까지 계속 주장하셨던 것이 뭐냐 하면 그 행위가 범죄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을 하는 것이고요. 그 범죄 행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우리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 오태훈 : 잘못한 거 알고 있으면 직접적으로 사과해야지 에둘러서 마치 안 한 것처럼 이렇게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아니에요.

▶ 송원근 : 맞습니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해라. 그리고 그것이 법적으로 잘못이라는 것을 저희가 인정을 한다면 우리에게 보상, 위로금 이런 치유금이 아니라 법적으로 배상하라는 것이고 지금 일본 국민들은 대부분 이 사태가 왜 일어난 건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 교육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 교육을 하라는 것이 92년 1월 8일부터 지금까지도 할머니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입니다. 그것이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고요.

▷ 오태훈 : 요즘 이런 논란들을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30년이잖아요.

▶ 송원근 : 네, 맞습니다.

▷ 오태훈 : 수요 시위만 했던 것만으로도.

▶ 송원근 : 강산이 3번 변했어요.

▷ 오태훈 : 그러면 그동안에 수많은 할머니들의 증언, 기록들, 영상들, 자료들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걸 왜 다시 그 부분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나. 그리고 최근에 논란만 더 확대를 하나라는 생각이 있고요. 그걸 또 많이 송원근 감독께서 보셨잖아요. 그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혹시라고 그 자료들, 기록들이 너무 좀 우리가 부족하지 않나라는 아쉬움도 있습니까?

▶ 송원근 : 저희가 본 것은 사실 김복동 할머니 관련된 어떤 그런 기록들 위주였고 충분히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까지 기록되어 있는 어떤 활동 영상부터 시작해서 사진, 음성, 모든 문서들도 그렇고 다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금 이용수 할머니 같은 경우에도 지금 현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시라고 알고 있고 이용수 할머니 같은 경우에도 2007년 미국 의회에 가서 증언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도 다시 또 나중에 어떤 만들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어떤 이런 자료들이 산발적으로 여기저기 펼쳐 있다면 이걸 누군가가 중심을 잡고 이 자료들을 수집해서 제대로 관리를 하고 뭔가 그런 것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현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뭔가 나눠져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까지 다 통합해서 정부가 사실은 이걸 책임을 지고 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 오태훈 : 위안부 할머니 관련 자료마저도 여기저기서 나눠져 관리가 되고 있네요.

▶ 송원근 : 현재의 상태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오태훈 : 하긴 최근에 KBS가 9시 뉴스에서 당시의 영상을 공개를 했지 않습니까?

▶ 송원근 : 봤어요.

▷ 오태훈 : 그거 보면서도 너무 놀라기도 했는데 그런 영상들마저도 이제 와서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 답답하기는 하네요.

▶ 송원근 : 그렇죠.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영화를 보신 많은 관객들의 반응도 들어보셨을 거 같아요.

▶ 송원근 : 사실은 제가 2018년 8월 8일에 이 영화가 개봉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한 60여 차례 이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화를 보셨던 많은 분들이 하신 말씀이 대부분 뭐냐 하면 내가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내가 뉴스에도 많이 나왔고 TV에도 많이 나오고 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까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게 부끄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내가 사실은 몰랐는데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살았구나라는 것 때문에 부끄럽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평들이 가장 많았고 그것이 이 영화를 상징하는 그런 말씀들인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청취자 2808님, ‘지난해 정말 인상 깊게 본 영화였습니다. 감독님 인터뷰 반갑습니다. OST 윤미래 꽃 신청하고 싶어요.’라고 의견 주셨고 5237님 ‘김복동 할머니께서 지금의 논란을 알았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지 참 궁금합니다, 안타깝습니다라는 의견도 보내주셨습니다.

▶ 송원근 : 저는 김복동 할머니가 만약에 이 사실을 지금 현재 알고 있었다면 ’둬라.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고 역사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게 옆에서 지류가 흘러오고 흙탕물이 튀긴다고 해서 큰 도도한 강물이 꺾이지 않는다.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쨌든 영상 같은 걸로 확인했던 김복동 할머니 성정 이런 걸로 봤을 때 그런 식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 오태훈 : 영화 김복동을 만들고 나서 송원근 감독의 이전과 이후의 여러 가지 시각은 달라졌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들, 활동 준비하고 있습니까?

▶ 송원근 : 지금 일단은 사실은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 스스로 가졌던 어떤 사명감 같은 것들 이게 단순하게 그냥 내가 그 이전까지 어떤 다큐멘터리 작업 했었던 것과는 다르게 작업을 해야 한다. 비슷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영화 작업을 하면서 매일매일 기록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고 취재 결과, 취재 과정, 만났던 사람들, 갔던 장소들, 영화가 개봉되고 그다음 이후의 어떤 상황들까지 쭉 기록을 했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정리를 해서 저 역시 아무것도 몰랐던 상황에서 이 영화를 연출하는 이런 과정들 통해서 얻었던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영화 김복동의 주제가입니다. 윤미래가 부르는 꽃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이 노래 들으면서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말씀 나눈 초대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송원근 : 고맙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오태훈의 시사본부] “김복동 할머니 살아 계셨다면 ‘둬라, 도도한 강물은 꺾이지 않는다’ 하셨을 것”
    • 입력 2020-06-05 16:08:16
    최영일의 시사본부
- 영화 <김복동> 들꽃영화상 심사위원특별언급상 수상... 이 상 할머니의 삶과 잘 어울려
- 이 영화, 생전에 할머니께서 ‘지금까지의 삶 남기고 싶다’는 뜻에 따라 제작된 것
- ‘희망을 잡고 살아왔다’ 말씀... 보이지도 않는 희망을 부여잡는 심정 아프게 다가와
- 생전에 ‘내가 살아있을 때 끝내야 한다’ 말씀... 마치 지금의 상황 미리 아셨던 것 같아
- 지금의 논란 잘잘못 검증 필요하지만 그동안 할머니들의 노력까지 폄훼하면 안 돼
- 위안부 할머니들 자료 여기저기 산재... 정부가 나서서 이 자료들 제대로 관리해야
- 김복동 할머니가 계셨다면 “둬라, 도도한 강물은 꺾이지 않는다.” 말씀하셨을 것 같아

■ 프로그램명 : 오태훈의 시사본부
■ 코너명 : 시사본부 초대석
■ 방송시간 : 6월 5일(금요일) 12:20~14:00 KBS 1라디오
■ 출연자 : 송원근 감독 (영화 <김복동>)



▷ 오태훈 : 전 세계를 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널리 알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분이 있습니다. 나이는 94,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생전에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이 영화 김복동에 잘 담겨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셨죠. 하지만 영화 김복동은 우리 곁에 남아 있고 최근에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상 들꽃영화상에서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시사본부 금요초대석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과 함께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 송원근 : 안녕하세요? 송원근입니다.

▷ 오태훈 : 그리고 들꽃영화상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수상 하셨습니다.

▶ 송원근 : 이게 사실은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이라는 게 말이 좀 뭔가 복합적이지 않습니까? 원래 대상, 다큐멘터리 감독상 뭐 이런 식으로 있는데 사실은 없던 상을 만들어준 상입니다.
▷ 오태훈 : 그래요?

▶ 송원근 : 이 김복동이라는 영화가, 영화 자체가 어쨌든 가지고 있는 의미,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온 삶 그것 자체가 들꽃영화상과 너무 잘 어울린다. 그래서 반드시 이것은 본수상은 안 되더라도 특별히 심사위원이 언급은 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만든 상이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이고 그 상이 또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오신 어떤 삶의 궤적 이런 것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대상이나 다큐감독상 이런 게 아니라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으로 해서 없는 상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 자체가 김복동 할머니의 어떤 걸음과 굉장히 닮았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 오태훈 : 송 감독이 지금 뉴스타파 PD로 활동을 하고 계신데.

▶ 송원근 : 지금 2013년부터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오태훈 : 과거에 이제 언론운동 같은 것에 대한 다큐들도 많이 제작을 하셨잖아요.

▶ 송원근 : 뉴스타파에서 최승호 전 MBC 사장, 지금 뉴스타파 PD 다시 복귀하셨습니다. 자백도 제작을 했었고 공범자들 다큐멘터리 시작을 했었고 꾸준히 우리 사회가, 언론이 어두운 암흑기에 있을 때 계속 이런 언론 문제도 짚어 왔습니다.

▷ 오태훈 : 그런 분이 왜 김복동 이 영화를 만들게 되셨나요?

▶ 송원근 : 김복동 할머니의 영화는 사실 2018년 10월경부터 기획을 해서 작년 8월에 개봉을 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김복동 할머니께서 이제 말기암 투병 중이셨는데 내가 이렇게 죽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이 그냥 다 사라져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어떤 살아왔던 길, 내가 남겼던 것 그리고 앞으로 남은 미래 세대가 알아야 할 것들 이런 부분들을 다큐멘터리나 영화 같은 걸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할머니의 뜻이 있었고.

▷ 오태훈 : 할머니의 뜻이 있어서 이 영화가 나온 거예요?

▶ 송원근 : 그렇습니다. 그래서 남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있었고 그 뜻을 이어 받아서 당시 정의기억연대 그다음에 미디어몽구.

▷ 오태훈 : 김정환 씨?

▶ 송원근 : 네, 같이 이렇게 만나서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 할머니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들 의견 교환들을 하고 자료 같은 것들을 충분히 수집해서 기획하고 제작을 하게 된 것이죠.

▷ 오태훈 : 2018년 10월부터?

▶ 송원근 : 네, 맞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작품 완성될 때까지 시기가 한 1년이 훨씬 넘었겠네요?

▶ 송원근 : 그러니까 개봉은 8월이었으니까 개봉까지를 보면 한 10달 정도 걸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 뒀던 부분을 말씀하신다면 어떤 걸?

▶ 송원근 : 사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김복동이라는 사람의 삶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그저 김복동이라는 어떤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둬서는 안 된다.

▷ 오태훈 : 할머니 김복동만 보면 안 되겠다?

▶ 송원근 : 절대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 자체를 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 그러니까 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말씀을 하시고 김복동 할머니는 92년 1월에 말씀을 하시거든요. 증언을 하시거든요. 그 이후로 쭉 일본군 위안부 피해 운동이 걸어왔던 길이 있기 때문에 그 운동 속에서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뛰어 들었고 언제 또 좌절했었고 좌절한 것을 다시 딛고 일어서서 어떻게 이 운동을 끝내려고 정말 목숨까지 내놓고 싸워왔었는지 이런 부분들을 그 안에서 보여줘야만 이 영화가 그냥 단순하게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이 도도한 역사 속에서 김복동이라는 사람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한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같이 담아낼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할머니를 만나셨고 주변에서 계속 찍고 계셨을 것 아니에요.

▶ 송원근 : 할머니를 만난 것은 저는 2018년 11월이 돼서야 만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제안을 처음 받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 이제 암 투병 중이셔서 계속 만나려고 약속을 하려고 하면 응급실에 계속 실려 가시고 뭐 만나기로 한 날 병원에 실려 갔으니까 다음에 봬요. 병원으로 가도 주무시고 계시거나 수혈을 하고 계시거나 이런 모습들을 봤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직접적으로 제가 저렇게 많이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동안 27년 가까운 시간 동안 쭉 기록되어 온 어떤 사진이나 음성.

▷ 오태훈 : 자료들?

▶ 송원근 : 영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어쨌든 이 영화의 기본 베이스로 김복동이 살아온 어떤 걸음으로 큰 걸음들을 두되 그것을 해석하는 것을 우리 제작진들이 하자라는 것이 이 영화의 어떤 줄기 같은 것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영화를 제작할 때 그 숱한 영상들을 계속해서 봤을 거 아니에요.

▶ 송원근 : 맞습니다. 너무 많이 봐서 사실은 이게 지금도 김복동 할머니를 생각하면 울컥할 것 같은데 이게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 어떤 현장에 나가서는 슬픈 표정을 하고 계시지만 또 어떤 현장에서 굉장히 기쁜 표정을 하시고 있고 편안하게 쉬고 계시는 모습 그러다가 다시 또 힘을 내서 내가 나가야 된다는 어떤 일념 하나로 나가시는 그런 모습들. 그러니까 영화에는 1시간 40분밖에 담겨져 있지 않지만 수없이 많은 김복동의 시간들을 저는 확인을 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 오태훈 :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정작 김복동 할머니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내 손짓이나 움직임, 표정을 송원근 감독은 계속해서 봤을 거 아닙니까.

▶ 송원근 : 그렇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면 애초에 영화를 제작하기 전에 알고 있던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과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느껴진 모습이 달랐어요?

▶ 송원근 : 왜냐하면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도 그렇고 김복동이라는 어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가 이런 분의 삶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알지도 못했고 감히 제가 다가설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문제가 이렇게 100년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살아 있는 역사이신데 그런 문제를 제가 감히 그렇게 접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실제로 할머니 계시는 방의 문지방 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어쨌든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굉장히 3자적인 관점에서 이것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직접 할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김복동의 삶을 파악한 것이 아니라 남겨져 있는 기록 등을 통해서 김복동이 걸어온 길들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서 실제로 이랬었구나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는 것들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 확인한 것들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취재를 하러 다니고 아는 동생을 만나러 다니고 고 실제 거주하셨던 부산 다대포항을 가고 뭐 이런 취재 과정, 제작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전에는 굉장히 무섭고 다가가기 쉬운 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마음속에 계속 남아 계시는 그런. 그렇게 저 혼자 일방적인 짝사랑 같은 그런 마음으로 계속 마음속에 담아뒀던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저도 공감을 하는 게 화해치유재단 정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저희 시사본부에서도 김복동 할머니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이러이러한 건 문제가 됐고 잘못됐고 이거 빨리 해체해야 한다,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을 때 ‘알겠습니다.’ 저도 그냥 일상적으로 제가 얘기했던 거예요. 그냥 ‘네, 그러면 저희도 더 챙겨보고 더 애써볼게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대뜸하시는 말이 ‘아이고, 말만.’ 저한테 그런 말씀을 딱 하시는데 저 정말 충격 먹었거든요,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런 기억이 나는데 그러면 영화 제작 중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겠네요.

▶ 송원근 : 저희가 할머니 돌아가실 즈음해서 이 다큐는 그냥 일반 40분에서 50분짜리 다큐가 아니라 극장에 걸려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감하고 할머니 숨소리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제작으로 전환을 했었고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말씀 드렸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아직 남아 있을 때 그냥 혼잣말, 할머니 들릴 정도의 그런 가까운 거리에서 책임지고 사명감 가지고 잘 만들어놓겠습니다는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 오태훈 :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상입니다. 들꽃영화상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수상한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감독과 함께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영화 만들면서 할머니와 에피소드 같은 것들 기억나는 거 있으면 하나 말씀하신다면요?

▶ 송원근 : 저는 할머니가 그렇게 아픈 모습만 보다가 2018년 11월 23일에 할머니께서 제1조선학교에 5천만 원 자신의 재산을 모두 다 기부를 하신 행사를 할머니 방에서 열거든요. 행사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방에 할머니 편찮으시니까 이불 덥고 옷만 이렇게 가지런히 입으시고 머리 단정하게 매만지신 다음에 앉아서 전달식을 이렇게 가졌습니다. 끝내고 나서 제가 할머니께 기분이 지금 어떠시냐고 여쭤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멀쩡한 인터뷰를 한 적이 그때 딱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그때 말씀하셨던 게 기분이 만점이라고 하시면서. 왜 만점이냐고 했더니 ‘이렇게 쓸 것 없는 나를 주위에서 잘 받들어줘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하고 싶은 활동, 내가 해야 하는 활동들을 원 없이 하고 갈 수 있게 됐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그런 말이 몽환적이었습니다. 왠지 꿈에서 나오는 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누워 있는 모습 말고 앉아서 이렇게 하시는 그런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할머니는 희망을 평생 잡고 왔다는 말씀을 그때 하셨는데 저는 그때 그 희망에 꽂힌 게 아니라 사실은 김복동 할머니 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사실 손에 잡힐 수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수십 년간을 싸워도 단 하나가 바뀌기가 힘든 그 시절을 겪고 왔으니까 그 시간 속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했던 희망보다 저는 부여잡았다는 그 말이 굉장히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그 희망을 지푸라기 하나라도 부여잡는 심정으로 살아왔다는 그 말씀이 굉장히 깊게 다가왔고 어쨌든 그때 받았던 인상 이런 것들이 제가 영화 작업을 하면서 절대 놓치고 가서는 안 되는 그런 마음으로 자리 잡기는 한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그러니까 남은 사람이 희망을 현실화시키는 의무가 전 있다고 보거든요.

▶ 송원근 : 그렇습니다.

▷ 오태훈 : 그런데 그걸 아직 제대로 실현시키지도 못해드리고 있는데 최근에 여러 가지 논란들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윤미향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라든가 정의기억연대, 이용수 할머니 여러 가지 활동들 그리고 정의기억연대 말고 또 나눔의 집 이야기도 여러 가지 나오고. 송 감독은 최근에 논란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말씀 참 조심스러우실 것 같기는 한데.

▶ 송원근 : 저는 김복동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영상에도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데 내가 살아있을 때 이걸 끝내야 한다. 그러니까 일본의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죄를 내가 있을 때 이 문제를 끝내야 한다는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셨거든요. 그 말들이 그때는 그저 이렇게 김복동 할머니의 어떤 의지 이런 걸로만 봤었는데 지금 이렇게 돌아봤을 때 어떤 지금의 상황같이 정말 이용수 할머니나 길원옥 할머니. 살아계신 피해자 할머니도 말씀하는 거나 거동하는 거나 이런 것들이 많이 불편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 오태훈 : 그렇죠. 시간도 많이 흘렀고.

▶ 송원근 :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뭐 이렇게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특히 일본 정부의 어떤 압박이나 이런 것들 우리 내부의 적이라고 할까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날을 세우지 않을까 김복동 할머니가 미리 아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사실은 검찰 수사나 이런 것들이 시작했기 때문에 수사 결과를 보고 그 이후에 잘잘못은 당연히 검증을 해야겠지만 지금까지 흘러왔던 할머니의 노력까지 훼손되는 이런 작금의 사태 같은 것들은 우리가 자중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오태훈 : 질문 드려볼게요. 바라시는 부분이 어떤 겁니까?

▶ 송원근 : 피해자들은 저는 1992년 1월 8일 수요시위 때부터 지금 수요시위를 할 때까지 계속 주장하셨던 것이 뭐냐 하면 그 행위가 범죄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을 하는 것이고요. 그 범죄 행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식적으로 우리에게 우리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 오태훈 : 잘못한 거 알고 있으면 직접적으로 사과해야지 에둘러서 마치 안 한 것처럼 이렇게 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아니에요.

▶ 송원근 : 맞습니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해라. 그리고 그것이 법적으로 잘못이라는 것을 저희가 인정을 한다면 우리에게 보상, 위로금 이런 치유금이 아니라 법적으로 배상하라는 것이고 지금 일본 국민들은 대부분 이 사태가 왜 일어난 건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 교육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 교육을 하라는 것이 92년 1월 8일부터 지금까지도 할머니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입니다. 그것이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고요.

▷ 오태훈 : 요즘 이런 논란들을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30년이잖아요.

▶ 송원근 : 네, 맞습니다.

▷ 오태훈 : 수요 시위만 했던 것만으로도.

▶ 송원근 : 강산이 3번 변했어요.

▷ 오태훈 : 그러면 그동안에 수많은 할머니들의 증언, 기록들, 영상들, 자료들 이런 것들이 있는데 이걸 왜 다시 그 부분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나. 그리고 최근에 논란만 더 확대를 하나라는 생각이 있고요. 그걸 또 많이 송원근 감독께서 보셨잖아요. 그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혹시라고 그 자료들, 기록들이 너무 좀 우리가 부족하지 않나라는 아쉬움도 있습니까?

▶ 송원근 : 저희가 본 것은 사실 김복동 할머니 관련된 어떤 그런 기록들 위주였고 충분히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까지 기록되어 있는 어떤 활동 영상부터 시작해서 사진, 음성, 모든 문서들도 그렇고 다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금 이용수 할머니 같은 경우에도 지금 현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시라고 알고 있고 이용수 할머니 같은 경우에도 2007년 미국 의회에 가서 증언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도 다시 또 나중에 어떤 만들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어떤 이런 자료들이 산발적으로 여기저기 펼쳐 있다면 이걸 누군가가 중심을 잡고 이 자료들을 수집해서 제대로 관리를 하고 뭔가 그런 것들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 현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뭔가 나눠져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까지 다 통합해서 정부가 사실은 이걸 책임을 지고 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 오태훈 : 위안부 할머니 관련 자료마저도 여기저기서 나눠져 관리가 되고 있네요.

▶ 송원근 : 현재의 상태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오태훈 : 하긴 최근에 KBS가 9시 뉴스에서 당시의 영상을 공개를 했지 않습니까?

▶ 송원근 : 봤어요.

▷ 오태훈 : 그거 보면서도 너무 놀라기도 했는데 그런 영상들마저도 이제 와서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 답답하기는 하네요.

▶ 송원근 : 그렇죠.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영화를 보신 많은 관객들의 반응도 들어보셨을 거 같아요.

▶ 송원근 : 사실은 제가 2018년 8월 8일에 이 영화가 개봉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한 60여 차례 이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화를 보셨던 많은 분들이 하신 말씀이 대부분 뭐냐 하면 내가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내가 뉴스에도 많이 나왔고 TV에도 많이 나오고 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까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게 부끄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내가 사실은 몰랐는데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살았구나라는 것 때문에 부끄럽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평들이 가장 많았고 그것이 이 영화를 상징하는 그런 말씀들인 것 같습니다.

▷ 오태훈 : 청취자 2808님, ‘지난해 정말 인상 깊게 본 영화였습니다. 감독님 인터뷰 반갑습니다. OST 윤미래 꽃 신청하고 싶어요.’라고 의견 주셨고 5237님 ‘김복동 할머니께서 지금의 논란을 알았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지 참 궁금합니다, 안타깝습니다라는 의견도 보내주셨습니다.

▶ 송원근 : 저는 김복동 할머니가 만약에 이 사실을 지금 현재 알고 있었다면 ’둬라.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고 역사는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게 옆에서 지류가 흘러오고 흙탕물이 튀긴다고 해서 큰 도도한 강물이 꺾이지 않는다.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쨌든 영상 같은 걸로 확인했던 김복동 할머니 성정 이런 걸로 봤을 때 그런 식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 오태훈 : 영화 김복동을 만들고 나서 송원근 감독의 이전과 이후의 여러 가지 시각은 달라졌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들, 활동 준비하고 있습니까?

▶ 송원근 : 지금 일단은 사실은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제 스스로 가졌던 어떤 사명감 같은 것들 이게 단순하게 그냥 내가 그 이전까지 어떤 다큐멘터리 작업 했었던 것과는 다르게 작업을 해야 한다. 비슷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영화 작업을 하면서 매일매일 기록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고 취재 결과, 취재 과정, 만났던 사람들, 갔던 장소들, 영화가 개봉되고 그다음 이후의 어떤 상황들까지 쭉 기록을 했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정리를 해서 저 역시 아무것도 몰랐던 상황에서 이 영화를 연출하는 이런 과정들 통해서 얻었던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 오태훈 : 알겠습니다. 영화 김복동의 주제가입니다. 윤미래가 부르는 꽃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이 노래 들으면서 영화 김복동의 송원근 말씀 나눈 초대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송원근 : 고맙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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