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오명’ 故 진승록 교수에 국가배상 판결…“수사기관 불법 행위로 명예 실추”

5·16 군사정변 직후 간첩으로 몰려 재판에 넘겨졌다가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고 진승록 전 서울대 법과대학장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재판장 이지현)는 고 진승록 전 학장의 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2억 2천여만 원의 위자료를 줘야 한다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진 전 학장은 1946년부터 고려대 교수, 1950년부터 서울대 법과대학장, 1952년부터 고시위원장을 지내는 등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법원의 영장 없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간첩과 간첩방조 혐의로 체포·구금됐습니다.

진 전 학장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납북됐다가 같은 해 10월 돌아왔는데, 군사정권이 이를 이유로 진 전 학장에게 간첩 혐의를 씌운 겁니다.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961년 12월 1심 군법회의는 진 전 학장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는 징역 12년이 선고됐고 1963년 5월 대법원이 형을 확정했습니다. 진 전 학장은 같은 해 6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재판장 차문호)는 지난해 5월 16일 고 진승록 전 학장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진 전 학장이 간첩 활동이나 이를 방조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거의 없다며, 과거 유죄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진 전 학장이 중앙정보부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진 전 학장의 딸은 지난해 10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국가 소속 수사관 등의 불법행위로 진 전 학장과 배우자, 자녀들이 유·무형의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국가는 유족에게 국가배상법에 따라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진 전 학장이 고려대,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면서 민법 교과서를 저술했고 고시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저명인사였는데, 국가 소속 수사관 등의 불법행위로 그 명예가 크게 실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딸 진 씨에게 이미 지급된 형사보상금 1억 2천여만 원을 공제한 뒤, 위자료 2억 2천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