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면역 여권’ 아십니까? 새로운 ‘코로나 차별’ 부르는 이유

입력 2020.06.10 (07:00) 수정 2020.06.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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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여권'에 관한 두 가지 풍경입니다.

먼저 타이완입니다.

타이완 정부가 외국 기업인들이 입국할 때 적용되는 격리기간을 현행 14일에서 5~10일로 줄이기로 했다고 빈과일보 등이 9일 전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은 '코로나19 음성 증명서'를 소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출발지 국가에서 행한 PCR(유전자증폭)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증명서를 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면역 여권'(immunity passports 또는 면역 면허 immunity license, 면역 증명 immunity certificates)이라고 불립니다.

코로나 시대, 국가 간의 이동에 '면역 여권'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일상이 된다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은 영국입니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지난달 코로나19 항체검사기를 승인했습니다.

스위스 로슈사의 제품으로 피 검사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항체 검사를 통해 '면역 여권'을 발급하면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추가로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집단 면역을 파악하는 데 항체 검사가 도입될 수 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코로나19 항체가 있거나 혹은 감염되지 않았음을 인증하는 증명서가 나올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도입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면역 여권', 문제는 없을까요?

'면역 여권'은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동반합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은 기본권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비례의 원칙이라고도 하며,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내용으로 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0일 자 기사에서 면역 여권의 윤리성 문제를 짚었습니다.

이 면역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산책, 식료품 구입과 같은 일상 활동에서부터 여행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잉 금지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경우 최소한의 제한적 대안(least restrictive alternative)을 선택해야 하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미국 생명윤리학자 나탈리 코플러 박사와 프랑수아즈 베일리스 박사는 지난달 22일 과학저널 '네이처' 기고문에서도 윤리적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면역 여권 발급은 '추적' 시스템과 병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이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생물학을 기반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문서를 만드는 것은 인권을 억압하고 차별을 증가시키는 '나쁜 생각'"이라고 두 박사는 지적했습니다.


기술적인 한계도 분명합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4월 25일 발표한 자료에서 "코로나19 항체를 지닌 사람이 재감염이 안 되는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면역 여권이나 무위험 증명서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면역력이 있다는 증명을 받고 나서 공중보건 권고 사항을 무시하면 오히려 코로나19 전파를 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코플러 박사와 베일리스 박사는 혈청학적 검사 자체의 신뢰도 역시 아직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CNBC 방송은 4일 에미레이트 항공이 3월 일부 승객들에게 항체 검사를 실시했을 때 정확도가 30%에 그쳐 이후 두바이 보건 당국은 항체 검사를 완전히 금지했다고 전했습니다.

비용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의미 있는 '면역 여권'을 만들려면 사실상 전 국민, 나아가 전 인류를 대상으로 검사해야 하는데 시간도 비용도, 그리고 이를 위한 행정력까지 생각하면 비용 대비 편익 분석에서 답이 안 나와 보입니다.

코플러 박사와 베일리스 박사는 차라리 이 비용을 들일 거면 기존의 추적·검사 기반의 관리와 더불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자원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윤리적 차별성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면역 여권을 위한 비용이 청구되지 않아야 하고, 채무불이행 등의 다른 이유를 들어 발급이 거절돼서는 안 되며 인종·종교·재산과도 무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밖에 면역 여권의 사기 위조 문제와 '수두 파티'처럼 면역 여권을 받으려고 일부러 감염을 원하게 될 수도 있게 된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칠레에서는 이미 면역 증명서나 면역 여권이 사용되고 있고, 이탈리아와 독일도 이 아이디어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타이완의 경우, 면역 증명서를 가진 경우에도 격리 해제를 위해서는 자비 부담으로 이뤄지는 PCR 검사를 또다시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아직 신뢰도가 부족한 것을 반증합니다.

면역 여권 또는 면역 증명은 운전면허나 여행용 여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유를 위한 제도가 반대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 ‘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Issue.html?icd=1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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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06-10 07: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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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여권'에 관한 두 가지 풍경입니다.

먼저 타이완입니다.

타이완 정부가 외국 기업인들이 입국할 때 적용되는 격리기간을 현행 14일에서 5~10일로 줄이기로 했다고 빈과일보 등이 9일 전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은 '코로나19 음성 증명서'를 소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출발지 국가에서 행한 PCR(유전자증폭)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증명서를 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면역 여권'(immunity passports 또는 면역 면허 immunity license, 면역 증명 immunity certificates)이라고 불립니다.

코로나 시대, 국가 간의 이동에 '면역 여권'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일상이 된다 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은 영국입니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지난달 코로나19 항체검사기를 승인했습니다.

스위스 로슈사의 제품으로 피 검사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항체 검사를 통해 '면역 여권'을 발급하면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추가로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집단 면역을 파악하는 데 항체 검사가 도입될 수 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코로나19 항체가 있거나 혹은 감염되지 않았음을 인증하는 증명서가 나올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도입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면역 여권', 문제는 없을까요?

'면역 여권'은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동반합니다.

과잉금지의 원칙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은 기본권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비례의 원칙이라고도 하며,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내용으로 합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0일 자 기사에서 면역 여권의 윤리성 문제를 짚었습니다.

이 면역 여권이 없다는 이유로 산책, 식료품 구입과 같은 일상 활동에서부터 여행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잉 금지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경우 최소한의 제한적 대안(least restrictive alternative)을 선택해야 하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미국 생명윤리학자 나탈리 코플러 박사와 프랑수아즈 베일리스 박사는 지난달 22일 과학저널 '네이처' 기고문에서도 윤리적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면역 여권 발급은 '추적' 시스템과 병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이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생물학을 기반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문서를 만드는 것은 인권을 억압하고 차별을 증가시키는 '나쁜 생각'"이라고 두 박사는 지적했습니다.


기술적인 한계도 분명합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4월 25일 발표한 자료에서 "코로나19 항체를 지닌 사람이 재감염이 안 되는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면역 여권이나 무위험 증명서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면역력이 있다는 증명을 받고 나서 공중보건 권고 사항을 무시하면 오히려 코로나19 전파를 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코플러 박사와 베일리스 박사는 혈청학적 검사 자체의 신뢰도 역시 아직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CNBC 방송은 4일 에미레이트 항공이 3월 일부 승객들에게 항체 검사를 실시했을 때 정확도가 30%에 그쳐 이후 두바이 보건 당국은 항체 검사를 완전히 금지했다고 전했습니다.

비용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의미 있는 '면역 여권'을 만들려면 사실상 전 국민, 나아가 전 인류를 대상으로 검사해야 하는데 시간도 비용도, 그리고 이를 위한 행정력까지 생각하면 비용 대비 편익 분석에서 답이 안 나와 보입니다.

코플러 박사와 베일리스 박사는 차라리 이 비용을 들일 거면 기존의 추적·검사 기반의 관리와 더불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자원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윤리적 차별성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면역 여권을 위한 비용이 청구되지 않아야 하고, 채무불이행 등의 다른 이유를 들어 발급이 거절돼서는 안 되며 인종·종교·재산과도 무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밖에 면역 여권의 사기 위조 문제와 '수두 파티'처럼 면역 여권을 받으려고 일부러 감염을 원하게 될 수도 있게 된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칠레에서는 이미 면역 증명서나 면역 여권이 사용되고 있고, 이탈리아와 독일도 이 아이디어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타이완의 경우, 면역 증명서를 가진 경우에도 격리 해제를 위해서는 자비 부담으로 이뤄지는 PCR 검사를 또다시 받아야 합니다.

그만큼 아직 신뢰도가 부족한 것을 반증합니다.

면역 여권 또는 면역 증명은 운전면허나 여행용 여권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자유를 위한 제도가 반대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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