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권대희법’…경기도 ‘3천만 원 지원’에도 의사들 “싫다”

입력 2020.06.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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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수술실 CCTV 의무화 '권대희법' 폐기
경기도, 민간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지원
의사회 "의사 인권 말살…사업 포기해야"

故 권대희 씨는 2016년 숨졌다.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발생한 과다출혈 때문이었다. 권 씨 유족 측은 소송을 택했다. 병원 측과 2년이 넘는 소송 끝에 결국 지난해 민사 소송에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성형외과를 상대로 5억 3천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엔 당시 수술을 녹화한 CCTV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 씨의 유족 측은 "CCTV 영상이 없다면 소송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에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연관기사] 환자단체협회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하라” 국회 앞 촉구

국회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른바 '권대희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의사단체의 반발로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 보지 못하고 끝내 폐기됐다.

수술실 CCTV가 설치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수술실 CCTV가 설치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법안은 폐기됐지만 끝나지 않은 논란

그러나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경기도가 민간병원에 수술실 CCTV 설치비용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권대희법'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사이, 경기도가 먼저 수술실 CCTV 설치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병원 한 곳당 설치비용을 3천만 원까지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치다. 설치를 강제할 근거가 없으니 비용을 지원해서라도 자율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기도는 이미 지난 2018년부터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을 시작으로 산하 공공병원에 수술실 CCTV를 도입했다. 지난해에 수원, 의정부, 파주 등 6개 공공병원으로 수술실 CCTV를 전면 확대했다. 경기도는 수술실뿐만 아니라 경기의료원 포천병원과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의 신생아실도 CCTV를 설치했다.

[연관기사] [취재후] 신생아 거꾸로 든 간호사…“‘제2아영이 사건’ 막자”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수술실 CCTV 설치지원 사업 갈등…사업 재공모

그러나 의사회 등의 반발로 경기도의 수술실 CCTV 지원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사업 참여 신청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도는 신청기간을 늘려 오는 19일까지 참여 병원을 재공모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공병원에 수술실 CCTV 설치를 즉시 시행하고 의무화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환자가 마취되어 무방비상태로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이 대리수술, 추행 등 온갖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며 "법과 규칙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충실하게 지키는 대다수 선량한 의료인들은 수술실 CCTV를 반대할 이유가 없고, 그것이 오히려 무너진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의사회 인터넷 홈페이지경기도의사회 인터넷 홈페이지

의사회 "지원사업 신청자 전무사태 반성해야"

그러나 경기도의사회의 입장은 달랐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2일 성명서를 내고 "경기도의 CCTV 설치 사업에 경기도 민간병원 중 한 곳도 설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며 "CCTV 감시는 의사와 환자의 불신조장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누구도 CCTV로 감시받으며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기본권 침해의 상호감시, 불신조장의 사회주의 국가의 발상"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수술실 CCTV 감시 아래에서는 수술하는 의사들 대다수가 환자 수술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수술에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는 곧바로 최선의 진료가 필요한 수술 받는 환자의 피해로 연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수술실 CCTV법' 입법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전원위원회를 열고 '권대희법'에 대해 수술실 부정 의료행위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수술실 CCTV를 의무화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동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경기도의 민간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지원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논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권대희법'은 20대 국회와 함께 사라졌다. 날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시범적으로라도 운영해보자'란 절충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막 출발한 21대 국회는 이 '수술실 CCTV 의무화'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과연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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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기된 ‘권대희법’…경기도 ‘3천만 원 지원’에도 의사들 “싫다”
    • 입력 2020-06-10 13:53:46
    취재K
수술실 CCTV 의무화 '권대희법' 폐기 <br />경기도, 민간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지원 <br />의사회 "의사 인권 말살…사업 포기해야"
故 권대희 씨는 2016년 숨졌다.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발생한 과다출혈 때문이었다. 권 씨 유족 측은 소송을 택했다. 병원 측과 2년이 넘는 소송 끝에 결국 지난해 민사 소송에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성형외과를 상대로 5억 3천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엔 당시 수술을 녹화한 CCTV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 씨의 유족 측은 "CCTV 영상이 없다면 소송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술실에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연관기사] 환자단체협회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하라” 국회 앞 촉구

국회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른바 '권대희법'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의사단체의 반발로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 보지 못하고 끝내 폐기됐다.

수술실 CCTV가 설치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법안은 폐기됐지만 끝나지 않은 논란

그러나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경기도가 민간병원에 수술실 CCTV 설치비용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은 '권대희법'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사이, 경기도가 먼저 수술실 CCTV 설치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병원 한 곳당 설치비용을 3천만 원까지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치다. 설치를 강제할 근거가 없으니 비용을 지원해서라도 자율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경기도는 이미 지난 2018년부터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을 시작으로 산하 공공병원에 수술실 CCTV를 도입했다. 지난해에 수원, 의정부, 파주 등 6개 공공병원으로 수술실 CCTV를 전면 확대했다. 경기도는 수술실뿐만 아니라 경기의료원 포천병원과 여주 공공산후조리원의 신생아실도 CCTV를 설치했다.

[연관기사] [취재후] 신생아 거꾸로 든 간호사…“‘제2아영이 사건’ 막자”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수술실 CCTV 설치지원 사업 갈등…사업 재공모

그러나 의사회 등의 반발로 경기도의 수술실 CCTV 지원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사업 참여 신청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도는 신청기간을 늘려 오는 19일까지 참여 병원을 재공모하는 등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공병원에 수술실 CCTV 설치를 즉시 시행하고 의무화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환자가 마취되어 무방비상태로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이 대리수술, 추행 등 온갖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며 "법과 규칙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충실하게 지키는 대다수 선량한 의료인들은 수술실 CCTV를 반대할 이유가 없고, 그것이 오히려 무너진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제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의사회 인터넷 홈페이지
의사회 "지원사업 신청자 전무사태 반성해야"

그러나 경기도의사회의 입장은 달랐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2일 성명서를 내고 "경기도의 CCTV 설치 사업에 경기도 민간병원 중 한 곳도 설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며 "CCTV 감시는 의사와 환자의 불신조장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누구도 CCTV로 감시받으며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기본권 침해의 상호감시, 불신조장의 사회주의 국가의 발상"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수술실 CCTV 감시 아래에서는 수술하는 의사들 대다수가 환자 수술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수술에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는 곧바로 최선의 진료가 필요한 수술 받는 환자의 피해로 연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수술실 CCTV법' 입법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전원위원회를 열고 '권대희법'에 대해 수술실 부정 의료행위 방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수술실 CCTV를 의무화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동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경기도의 민간병원 수술실 CCTV 설치 지원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논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권대희법'은 20대 국회와 함께 사라졌다. 날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시범적으로라도 운영해보자'란 절충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막 출발한 21대 국회는 이 '수술실 CCTV 의무화'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과연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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