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땅을 내 땅처럼…판치는 주남저수지 유수지 ‘불법 이용’

입력 2020.06.13 (15:4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동양 최대의 내륙 철새도래지 '창원 주남저수지'

창원시 동읍과 대산면에 걸쳐 있는 주남저수지는 주남과 산남, 동판 3군데 저수지로 이뤄진 습지 호수입니다. 주남저수지가 생태습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 국제보존기구의 개체보존 종인 가창오리 등 수만 마리 철새떼가 주남저수지를 월동지로 찾아오면서부터입니다. 지금은 두루미류의 중간 기착지와 천연기념물 재두루미의 월동지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겨울철 이곳을 찾는 철새만 100여 종, 20만 마리에 이릅니다. 동북아 최대의 내륙 철새도래지로 국제 습지협약인 람사르협약 보존지구로도 지정됐습니다.

# 주남저수지 생태계의 보루 '유수지'

유수지란 물을 머금는 땅을 말합니다. 큰비가 내리면 빗물을 일시 담아둬 홍수를 막고, 물고기와 철새들에게는 쉼터와 함께 먹이 사냥터를 제공합니다. 저수지에 포함된 땅으로 저수지 주변 얕은 물웅덩이와 습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수지는 바다의 개펄처럼 저수지 생태계에서 바깥에서 흘러든 오염원을 걸러 썩히는 방식으로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 때문에 유수지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사들인 국유지로 관리하면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국제적인 생태 저수지로 주목받고 있는 주남저수지 면적의 20%, 8천 640만㎡도 유수지입니다.

그런데 과거 식량 증산을 앞세운 정책을 집행하면서 생태계 보존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976년 정부는 쌀 생산량을 늘린다며 농어촌공사를 통해 유수지를 농민들에게 임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홍수 예방과 생태계 정화라는 유수지 본래 역할로 되돌릴 수 있도록 1년생 작물만 키우도록 규정했습니다.

농사를 짓겠면서 '나라 땅'인 유수지를 임대하는 사람이 불법 전용을 일삼았습니다.

# 농사만 짓겠다면서요? 폐기물 야적장에 별장까지

주남저수지 유수지를 돌아보면 눈에 띄지 않는 기슭마다, '전원주택' 같은 조립식 임시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입구는 정원처럼 잔디와 조경수로 꾸며졌고 건물 안엔 TV와 침대,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유수지 임대 계약서를 들여다보니 외지인이 농사를 짓겠다는 목적으로 빌린 땅입니다. 2천300㎡ 땅을 빌리면서 3년 동안 내는 임대료는 고작 85만 원. 영농 목적으로 싼값에 임대한 뒤 개인 별장이나 주말농장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농사 목적으로 임대 계약서를 작성한 또 다른 유수지를 찾았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각종 창고와 자재들이 쌓여 있고 주변 물웅덩이를 불법매립한 흔적도 있습니다. 애초 목적과 달리 야적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예 허가받지 않고 무단점용한 곳도 많습니다.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채 좁은 철장을 만들어놓고 염소와 개, 닭을 키우는 축사. 자신이 임대한 유수지 옆의 국유지를 폐기물 야적장이나 농장처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50년 가까이 임차인들이 유수지 주변을 불법 매립하고, 비닐하우스와 임시 건물을 지으면서 주남저수지의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 현대판 봉이 김선달? 나라 땅에 권리금까지 얹어 거래

주남저수지는 창원시민의 대표적 휴식처입니다. 주변엔 커피숍과 식당도 많습니다. 한 커피숍을 방문했습니다. 자신들의 손님만 쓸 수 있도록 정원을 꾸며놓고 전용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적도를 보니 유수지입니다. 나라 땅을 개인 영업장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유수지에 정원이나 조경시설,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형질을 훼손하는 불법 행위입니다.


또 다른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역시 전용 주차장과 야외 휴게공간은 유수지입니다. 이렇게 유수지를 영업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 취재진이 확인한 곳만 세 곳입니다.

농어촌공사는 세부적인 기준 없이 담당자 재량껏 장기 계약이나 임대 연장을 결정해왔습니다. 이런 음식점이나 커피숍이 임대 계약 연장을 신청해도 현장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관리부실 책임을 인정한 농어촌공사는 뒤늦게 시정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라 땅인 유수지에 불법 시설물을 만들어놓고 이를 사고파는 거래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수지를 싼값에 빌려 임시 주택이나 조경수 등을 조성해놓고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금 명목의 돈을 받는 겁니다. 축사를 넘겨받으면서 3천500만 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임시 건물을 넘겨받으며 4천만 원의 권리금을 줬다는 임차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싼 곳은 권리금이 1억 원이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 유수지 불법 이용의 결과는?…물고기도 살 수 없는 '오염'

주남저수지 유수지 수질은 어떨지 취재진이 직접 물을 떠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의뢰해 검사해봤습니다. 수질을 나타내는 대표적 수치인 화학적 산소요구량 'COD'는 35.2mg/L. 환경부가 수질을 나누는 7개 등급 가운데 가장 더러운 '매우 나쁨' 수준으로 물고기가 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부유 물질량도 148mg/L로 '매우 나쁨' 수준. 용존산소량 역시 4.6mg/L로 7개 등급 가운데 6번째인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불법으로 지어놓은 임시 건물엔 정화조도 없이 오·폐수를 그대로 저수지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유수지에서 키울 수 없는 다년생 과수작물, 주로 감나무를 키우며 뿌린 농약과 제초제도 유수지로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농민들이 쓰는 질소비료와 임차인들이 버린 각종 폐기물로 주변 물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매립도 문제입니다. 물과 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유수지의 특성을 악용해, 임차인들이 하천과 물웅덩이 곳곳에 흙과 나무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농지 면적 등을 늘리기 위해 이른바 '육상화'하는 겁니다.

유수지는 저수지 본류와 물길로 이어져 서로 순환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유수지 임차인들의 불법 매립과 성토로 물길이 막혀 유수지 물이 고이다 보니 수질이 좋을 리 없습니다.

불법 매립으로 인해 물웅덩이가 줄다 보니 큰비를 받아들여 홍수를 막는 기능도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장마와 태풍 때 주남저수지 주변의 침수 피해는 늘고 있습니다.

KBS는 수십 년 넘는 불법이용으로 유수지가 망가져 버린 이유, 농어촌공사의 허술한 관리 실태, 지자체의 대책 등을 TV 뉴스를 통해서도 다음 주 심층 보도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나라 땅을 내 땅처럼…판치는 주남저수지 유수지 ‘불법 이용’
    • 입력 2020-06-13 15:49:37
    취재K
# 동양 최대의 내륙 철새도래지 '창원 주남저수지'

창원시 동읍과 대산면에 걸쳐 있는 주남저수지는 주남과 산남, 동판 3군데 저수지로 이뤄진 습지 호수입니다. 주남저수지가 생태습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 국제보존기구의 개체보존 종인 가창오리 등 수만 마리 철새떼가 주남저수지를 월동지로 찾아오면서부터입니다. 지금은 두루미류의 중간 기착지와 천연기념물 재두루미의 월동지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겨울철 이곳을 찾는 철새만 100여 종, 20만 마리에 이릅니다. 동북아 최대의 내륙 철새도래지로 국제 습지협약인 람사르협약 보존지구로도 지정됐습니다.

# 주남저수지 생태계의 보루 '유수지'

유수지란 물을 머금는 땅을 말합니다. 큰비가 내리면 빗물을 일시 담아둬 홍수를 막고, 물고기와 철새들에게는 쉼터와 함께 먹이 사냥터를 제공합니다. 저수지에 포함된 땅으로 저수지 주변 얕은 물웅덩이와 습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유수지는 바다의 개펄처럼 저수지 생태계에서 바깥에서 흘러든 오염원을 걸러 썩히는 방식으로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 때문에 유수지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사들인 국유지로 관리하면서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국제적인 생태 저수지로 주목받고 있는 주남저수지 면적의 20%, 8천 640만㎡도 유수지입니다.

그런데 과거 식량 증산을 앞세운 정책을 집행하면서 생태계 보존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976년 정부는 쌀 생산량을 늘린다며 농어촌공사를 통해 유수지를 농민들에게 임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홍수 예방과 생태계 정화라는 유수지 본래 역할로 되돌릴 수 있도록 1년생 작물만 키우도록 규정했습니다.

농사를 짓겠면서 '나라 땅'인 유수지를 임대하는 사람이 불법 전용을 일삼았습니다.

# 농사만 짓겠다면서요? 폐기물 야적장에 별장까지

주남저수지 유수지를 돌아보면 눈에 띄지 않는 기슭마다, '전원주택' 같은 조립식 임시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입구는 정원처럼 잔디와 조경수로 꾸며졌고 건물 안엔 TV와 침대, 화장실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유수지 임대 계약서를 들여다보니 외지인이 농사를 짓겠다는 목적으로 빌린 땅입니다. 2천300㎡ 땅을 빌리면서 3년 동안 내는 임대료는 고작 85만 원. 영농 목적으로 싼값에 임대한 뒤 개인 별장이나 주말농장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농사 목적으로 임대 계약서를 작성한 또 다른 유수지를 찾았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각종 창고와 자재들이 쌓여 있고 주변 물웅덩이를 불법매립한 흔적도 있습니다. 애초 목적과 달리 야적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예 허가받지 않고 무단점용한 곳도 많습니다.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채 좁은 철장을 만들어놓고 염소와 개, 닭을 키우는 축사. 자신이 임대한 유수지 옆의 국유지를 폐기물 야적장이나 농장처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50년 가까이 임차인들이 유수지 주변을 불법 매립하고, 비닐하우스와 임시 건물을 지으면서 주남저수지의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 현대판 봉이 김선달? 나라 땅에 권리금까지 얹어 거래

주남저수지는 창원시민의 대표적 휴식처입니다. 주변엔 커피숍과 식당도 많습니다. 한 커피숍을 방문했습니다. 자신들의 손님만 쓸 수 있도록 정원을 꾸며놓고 전용 주차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적도를 보니 유수지입니다. 나라 땅을 개인 영업장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유수지에 정원이나 조경시설,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형질을 훼손하는 불법 행위입니다.


또 다른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역시 전용 주차장과 야외 휴게공간은 유수지입니다. 이렇게 유수지를 영업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 취재진이 확인한 곳만 세 곳입니다.

농어촌공사는 세부적인 기준 없이 담당자 재량껏 장기 계약이나 임대 연장을 결정해왔습니다. 이런 음식점이나 커피숍이 임대 계약 연장을 신청해도 현장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관리부실 책임을 인정한 농어촌공사는 뒤늦게 시정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라 땅인 유수지에 불법 시설물을 만들어놓고 이를 사고파는 거래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수지를 싼값에 빌려 임시 주택이나 조경수 등을 조성해놓고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금 명목의 돈을 받는 겁니다. 축사를 넘겨받으면서 3천500만 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임시 건물을 넘겨받으며 4천만 원의 권리금을 줬다는 임차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싼 곳은 권리금이 1억 원이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 유수지 불법 이용의 결과는?…물고기도 살 수 없는 '오염'

주남저수지 유수지 수질은 어떨지 취재진이 직접 물을 떠 낙동강유역환경청에 의뢰해 검사해봤습니다. 수질을 나타내는 대표적 수치인 화학적 산소요구량 'COD'는 35.2mg/L. 환경부가 수질을 나누는 7개 등급 가운데 가장 더러운 '매우 나쁨' 수준으로 물고기가 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부유 물질량도 148mg/L로 '매우 나쁨' 수준. 용존산소량 역시 4.6mg/L로 7개 등급 가운데 6번째인 '나쁨' 수준이었습니다.


불법으로 지어놓은 임시 건물엔 정화조도 없이 오·폐수를 그대로 저수지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유수지에서 키울 수 없는 다년생 과수작물, 주로 감나무를 키우며 뿌린 농약과 제초제도 유수지로 흘러들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농민들이 쓰는 질소비료와 임차인들이 버린 각종 폐기물로 주변 물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매립도 문제입니다. 물과 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유수지의 특성을 악용해, 임차인들이 하천과 물웅덩이 곳곳에 흙과 나무를 쌓아놓고 있습니다. 농지 면적 등을 늘리기 위해 이른바 '육상화'하는 겁니다.

유수지는 저수지 본류와 물길로 이어져 서로 순환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유수지 임차인들의 불법 매립과 성토로 물길이 막혀 유수지 물이 고이다 보니 수질이 좋을 리 없습니다.

불법 매립으로 인해 물웅덩이가 줄다 보니 큰비를 받아들여 홍수를 막는 기능도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장마와 태풍 때 주남저수지 주변의 침수 피해는 늘고 있습니다.

KBS는 수십 년 넘는 불법이용으로 유수지가 망가져 버린 이유, 농어촌공사의 허술한 관리 실태, 지자체의 대책 등을 TV 뉴스를 통해서도 다음 주 심층 보도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