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 “기본소득이 창의 가져올 것”

입력 2020.06.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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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과 함께 지능화 시대가 밀려오는가 싶더니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뉴 노멀(New-normal) 시대가 다가왔다.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전환 시대 인간의 길'이라는 주제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 UN 생물다양성협약 의장 등을 역임하며 통섭학자로 널리 알려진 최 교수는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인간과 생태계가 공존하는 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학자와의 인터뷰인 만큼 취재진이 기본소득에 관한 질문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최 교수는 기본소득 논의를 언급하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전한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활 양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큰 틀에서 바꾸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하나의 신체기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야말로 오장육부에 하나가 더 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간과 함께 하는 기계가 돼버렸지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됐어요. 지금 세계 거대 기업들이 전부 스마트폰 중심의 회사들이잖아요.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업은 오히려 힘이 없는 것 같고, 그걸 활용해서 무언가를 하는 기업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죠. 우리 사회도 여기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도 좀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세상으로의 이행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 여기서 뒤처지는 분들은 끌어안는 정책을 가져가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접촉은 줄고 온라인 생활은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생활방식이 어떻게 바뀔 거라고 보시는지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사피엔스보다 체격도 컸고 머리도 더 좋았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150명 정도 단위로 모여 살았죠. 사피엔스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승자가 됐습니다. 개미나 침팬지도 집단생활을 하지만, 같이 살지 않는 옆 동네 개체가 무리 안에 들어오면 절대 그냥 두지 않습니다. 물고 뜯어서 죽이죠. 우리는 서울역 대합실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지나다녀도 함께 살아가죠. 사피엔스는 무리 생활의 마지막 진화 단계를 넘어선 지구상의 유일한 종(種)이에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잘 안 모일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우리는 또 끈끈하게 모여서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러고 살 겁니다. 문제는, 제 예상대로라면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문제인데, 눈 앞의 방역에만 매달리다보니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는 소홀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맞아요. 바이러스라는 놈이 저 혼자 스스로 걸어서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니까 이렇게 되는 것이죠.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을 보게 되는데요. 저를 비롯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생태계 위기가 심각하다고 경고하고, 이렇게 가면 이번 세기 안에 인간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악담까지 하는데 많은 분들이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전문가도 아닌 분들이 "야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냐? 우리가 자연을 건드리면 큰일 나겠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서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드디어 실천에 옮길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해요."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에 대해 말하던 최재천 교수가 문득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가 묻지 않은 주제였다.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에 대해 말하던 최재천 교수가 문득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가 묻지 않은 주제였다.

-코로나 사태가 디지털 세상으로의 이행을 재촉하다보니 가뜩이나 심각한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을지 우려가 큽니다.

"직업이라는 게 생겼다가 없어지고 하는 것은 역사에 늘 있어온 일입니다. 예전에 '전화 교환양'이라는 직업이 있었잖아요? 여성들 수백 명이 앉아가지고 코드 뽑아서 꽂고 하는 직업이 있었어요. 지금 전세계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죠. 저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지 '일거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A.I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질까?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할 일이 없으면 우리는 일을 만들 것이거든요. 예전부터 인간은 일을 하든 안하든 밥이 있으면 먹여주는 것까지는 했어요. 그러다가 근대 전문 직업사회가 되면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이렇게 됐죠. 저는 기본소득을 그렇게 이해하는 거예요. 일단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까지는 하자. 새로운 걸 하자는 게 아니라 인류가 예전부터 하던대로 하자는 거예요."

-기본소득을 말씀해주시니 좀 더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소득 주면 놀고 먹을 것'이라는 반대가 많은데요, 인류가 진화해온 본성과 관련지어 해주실 말씀이 있을 듯합니다.

"배가 불렀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계속 놀겠다?' 이런 인간은 없어요. 심심하니까 무슨 짓이든 합니다. 거기서 다양성이 나오는 것이죠. 앞으로 A.I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은 좀 놀아도 돼요. A.I를 그렇게까지 겁낼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노동을 재정의하고 사회를 재구성하면 되는 거죠. 그 전제는, A.I로 몇몇 사람들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득을 많은 사람들이 고르게 나눌 수 있는 사회체제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조금씩 일하면서, 즐기면서, 자아를 찾아가면서, 인류가 그토록 원하던 기가 막힌 세상이 오는 건지도 몰라요. 이건 우리 손에 달린 거죠.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다시 구성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그렇게 겁먹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수님께서 평소 강조해오신 생태계의 유전적 다양성과, 지금 말씀해주신 사회의 다양성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겠지요?

"그럼요. 야생 상태의 철새들은 유전자 구성이 다양해서 무리에 조류인플루엔자가 찾아와도 몇 마리만 죽고 나머지는 다들 잘 삽니다. 우리가 기르고 있는 닭은, 알 잘 낳고 육질 좋은 것을 위해서 거의 복제 닭 수준의 빈곤한 유전자 성질을 갖도록 인간들이 만들어냈죠. 그러다보니 닭장 안에 인플루엔자가 퍼지면 예외 없이 몰살당해요. 우리가 유전자 다양성만 갖추고 있으면 외부에서 적이 침입해와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다양성이라는 건 그렇게 생존에 굉장히 좋은 것이죠. 문화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다양한 데서 나오는 것이지,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서 창의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양성과 창의성은 항상 함께 가는 성질입니다. 기본소득을 주면 생계에만 매달리던 사람들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볼 수 있죠. 저는 기본소득이 다양성을 확보해줄 거라는 생각이고요, 그 다양성이 창의성을 만들어낼 거라는 데에 추호의 의심도 안 합니다. 그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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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천 교수 “기본소득이 창의 가져올 것”
    • 입력 2020-06-15 07:00:12
    취재K
2010년대 중반부터 인공지능과 함께 지능화 시대가 밀려오는가 싶더니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뉴 노멀(New-normal) 시대가 다가왔다.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전환 시대 인간의 길'이라는 주제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 UN 생물다양성협약 의장 등을 역임하며 통섭학자로 널리 알려진 최 교수는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인간과 생태계가 공존하는 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학자와의 인터뷰인 만큼 취재진이 기본소득에 관한 질문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최 교수는 기본소득 논의를 언급하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전한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생활 양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큰 틀에서 바꾸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하나의 신체기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야말로 오장육부에 하나가 더 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간과 함께 하는 기계가 돼버렸지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미래가 됐어요. 지금 세계 거대 기업들이 전부 스마트폰 중심의 회사들이잖아요. 스마트폰을 만드는 기업은 오히려 힘이 없는 것 같고, 그걸 활용해서 무언가를 하는 기업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죠. 우리 사회도 여기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부도 좀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세상으로의 이행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 여기서 뒤처지는 분들은 끌어안는 정책을 가져가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접촉은 줄고 온라인 생활은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생활방식이 어떻게 바뀔 거라고 보시는지요.

"네안데르탈인이 우리 사피엔스보다 체격도 컸고 머리도 더 좋았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150명 정도 단위로 모여 살았죠. 사피엔스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집단 생활을 하면서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승자가 됐습니다. 개미나 침팬지도 집단생활을 하지만, 같이 살지 않는 옆 동네 개체가 무리 안에 들어오면 절대 그냥 두지 않습니다. 물고 뜯어서 죽이죠. 우리는 서울역 대합실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지나다녀도 함께 살아가죠. 사피엔스는 무리 생활의 마지막 진화 단계를 넘어선 지구상의 유일한 종(種)이에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들이 잘 안 모일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우리는 또 끈끈하게 모여서 끌어안고 뽀뽀하고, 그러고 살 겁니다. 문제는, 제 예상대로라면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일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문제인데, 눈 앞의 방역에만 매달리다보니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는 소홀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맞아요. 바이러스라는 놈이 저 혼자 스스로 걸어서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니까 이렇게 되는 것이죠.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을 보게 되는데요. 저를 비롯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생태계 위기가 심각하다고 경고하고, 이렇게 가면 이번 세기 안에 인간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런 악담까지 하는데 많은 분들이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전문가도 아닌 분들이 "야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냐? 우리가 자연을 건드리면 큰일 나겠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서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드디어 실천에 옮길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을 해요."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에 대해 말하던 최재천 교수가 문득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가 묻지 않은 주제였다.
-코로나 사태가 디지털 세상으로의 이행을 재촉하다보니 가뜩이나 심각한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을지 우려가 큽니다.

"직업이라는 게 생겼다가 없어지고 하는 것은 역사에 늘 있어온 일입니다. 예전에 '전화 교환양'이라는 직업이 있었잖아요? 여성들 수백 명이 앉아가지고 코드 뽑아서 꽂고 하는 직업이 있었어요. 지금 전세계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죠. 저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지 '일거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A.I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질까?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할 일이 없으면 우리는 일을 만들 것이거든요. 예전부터 인간은 일을 하든 안하든 밥이 있으면 먹여주는 것까지는 했어요. 그러다가 근대 전문 직업사회가 되면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이렇게 됐죠. 저는 기본소득을 그렇게 이해하는 거예요. 일단 재워주고 먹여주는 것까지는 하자. 새로운 걸 하자는 게 아니라 인류가 예전부터 하던대로 하자는 거예요."

-기본소득을 말씀해주시니 좀 더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소득 주면 놀고 먹을 것'이라는 반대가 많은데요, 인류가 진화해온 본성과 관련지어 해주실 말씀이 있을 듯합니다.

"배가 불렀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계속 놀겠다?' 이런 인간은 없어요. 심심하니까 무슨 짓이든 합니다. 거기서 다양성이 나오는 것이죠. 앞으로 A.I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은 좀 놀아도 돼요. A.I를 그렇게까지 겁낼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노동을 재정의하고 사회를 재구성하면 되는 거죠. 그 전제는, A.I로 몇몇 사람들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득을 많은 사람들이 고르게 나눌 수 있는 사회체제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조금씩 일하면서, 즐기면서, 자아를 찾아가면서, 인류가 그토록 원하던 기가 막힌 세상이 오는 건지도 몰라요. 이건 우리 손에 달린 거죠.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다시 구성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그렇게 겁먹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수님께서 평소 강조해오신 생태계의 유전적 다양성과, 지금 말씀해주신 사회의 다양성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겠지요?

"그럼요. 야생 상태의 철새들은 유전자 구성이 다양해서 무리에 조류인플루엔자가 찾아와도 몇 마리만 죽고 나머지는 다들 잘 삽니다. 우리가 기르고 있는 닭은, 알 잘 낳고 육질 좋은 것을 위해서 거의 복제 닭 수준의 빈곤한 유전자 성질을 갖도록 인간들이 만들어냈죠. 그러다보니 닭장 안에 인플루엔자가 퍼지면 예외 없이 몰살당해요. 우리가 유전자 다양성만 갖추고 있으면 외부에서 적이 침입해와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다양성이라는 건 그렇게 생존에 굉장히 좋은 것이죠. 문화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성이라는 것은 다양한 데서 나오는 것이지,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서 창의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양성과 창의성은 항상 함께 가는 성질입니다. 기본소득을 주면 생계에만 매달리던 사람들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볼 수 있죠. 저는 기본소득이 다양성을 확보해줄 거라는 생각이고요, 그 다양성이 창의성을 만들어낼 거라는 데에 추호의 의심도 안 합니다. 그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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