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강의 듣는데, 등록금은 다 내라고?”

입력 2020.06.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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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 20학번의 대부분은 2001년생입니다. 21세기 시작과 함께 태어난 세대죠.

교수들이 만드는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1년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습니다.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암울한 국제 정세 등을 선정 사유로 들었는데요.

이 해에 국제적으로 보면 9·11 테러가 있었습니다. 제가 출입하고 있는 교육 쪽을 보면 교육 정책을 제대로 해보고자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한 해입니다.

■"사실상 사이버 대학...왜 등록금은 그대로?"


'오리무중'의 해에 태어난 대학 새내기들의 운명은 2020년 현재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고교 졸업식부터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는 입학식과 OT, MT를 몽땅 경험하지 못한 첫 세대라는 한탄까지 떠돕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래도 등록금은 변함없이 내라는 거죠. 대학생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여파로 대부분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데다, 대학 시설을 이용하지 못했으니 등록금을 일부 환불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의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15일 기준 193개 4년제 대학 중 '1학기 전체 온라인 수업'인 대학이 80개교(41.5%), '코로나 안정 시까지 온라인 수업'인 대학이 85개교(44.0%)로 전체 4년제 대학의 이번 학기에 85.5%가 온라인 수업을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코로나 19 여파로 대학들이 대면 수업 등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데다 대학시설도 이용하지 못했으니 등록금을 일부 환불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수업만 하는 사이버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150만 원 정도인 점과 비교해본다면, 이번 학기에 400만 원가량의 등록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대학들 "학생들 말은 맞다…그 돈은 국가에서?"


전국총학생회협의회가 대학생 6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근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7.9%는 등록금 반환에 찬성했습니다.

이 같은 대학 내 여론에 대해서 상당수 대학은 재정적 이유를 들어 망설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방역과 온라인 수업 준비에도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이 들어갔다는 이유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4년제 대학 200여 곳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정부 지원금인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특별장학금 형태로 학생들에게 일부 돌려주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보낸 예산안을 보면 교육부가 전국 대학 143곳에 배분할 대학혁신지업사업 예산은 7,528억 원입니다. 애초보다 503억 원이 삭감됐다지만, 상당한 액수입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얼마전 “대학들의 어려운 재정 상황을 해소하고, 2학기 준비를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사업비 집행기준을 정비하겠다”며 “각 대학이 원격수업 지원과 방역 관리에 사업비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생긴 재정적 여력으로 각 대학이 알아서 등록금을 일부 돌려주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교육부 "국가예산으론 안 돼...대학이 알아서"

문제는 일부 대학에서 아예 이 지원비를 활용해 모든 학생에게 일정 금액을 특별장학금 형태로 나눠주는 방안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교육부에선 펄쩍 뛰고 있죠.

교육부는 확고하게 “정부 지원금을 등록금 반환 명목의 특별장학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등록금 반환 또한 '대학 총장 소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경북 경산에서 8박 9일간 하루 10시간씩 230km를 걸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까지 간 경산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어려움은 이해되나, 대학들도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대학들이 10만~20만 원 가량의 특별장학금을 자체 지급하는 게 최선이라는 거죠.

■학생들 "국회로 가자!", 그런데 건국대는....


전국 30여 개 총학생회가 모인 또 다른 대학생단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오늘(15일) 교육부 앞에서 등록금 반환 도보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5박 6일 동안 150km가량을 걸어 서울 국회 앞에서 20일 기자회견을 열 예정입니다.

전대넷은 주무 부처인 교육부가 방관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제는 교육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이유도 밝혔습니다.

최근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국가 재난상황에서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어려운 경우 국가 또는 학교가 재학생에게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습니다.

이 단체는 각 대학과 교육부를 상대로 한 등록금 반환 소송을 위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도 대학 등록금을 반환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등록금 반환을 둘러싼 핑퐁 게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늘(15일) 건국대에서 사실상 등록금을 환불해주는 첫 사례가 나올 전망입니다.

올해 서울캠퍼스 1학기 재학생 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 고지서에서 일정 비율을 감면해주는 방식을 두고 학교 측과 총학생회가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건국대의 이 같은 결정은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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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bs.co.kr/news/listIssue.html?icd=1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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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강의 듣는데, 등록금은 다 내라고?”
    • 입력 2020-06-15 17:21:25
    취재K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 20학번의 대부분은 2001년생입니다. 21세기 시작과 함께 태어난 세대죠.

교수들이 만드는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1년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습니다.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암울한 국제 정세 등을 선정 사유로 들었는데요.

이 해에 국제적으로 보면 9·11 테러가 있었습니다. 제가 출입하고 있는 교육 쪽을 보면 교육 정책을 제대로 해보고자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한 해입니다.

■"사실상 사이버 대학...왜 등록금은 그대로?"


'오리무중'의 해에 태어난 대학 새내기들의 운명은 2020년 현재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고교 졸업식부터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는 입학식과 OT, MT를 몽땅 경험하지 못한 첫 세대라는 한탄까지 떠돕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래도 등록금은 변함없이 내라는 거죠. 대학생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여파로 대부분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는 데다, 대학 시설을 이용하지 못했으니 등록금을 일부 환불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의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15일 기준 193개 4년제 대학 중 '1학기 전체 온라인 수업'인 대학이 80개교(41.5%), '코로나 안정 시까지 온라인 수업'인 대학이 85개교(44.0%)로 전체 4년제 대학의 이번 학기에 85.5%가 온라인 수업을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코로나 19 여파로 대학들이 대면 수업 등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데다 대학시설도 이용하지 못했으니 등록금을 일부 환불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수업만 하는 사이버대학의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150만 원 정도인 점과 비교해본다면, 이번 학기에 400만 원가량의 등록금을 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대학들 "학생들 말은 맞다…그 돈은 국가에서?"


전국총학생회협의회가 대학생 6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근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7.9%는 등록금 반환에 찬성했습니다.

이 같은 대학 내 여론에 대해서 상당수 대학은 재정적 이유를 들어 망설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방역과 온라인 수업 준비에도 적지 않은 추가 비용이 들어갔다는 이유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4년제 대학 200여 곳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은 정부 지원금인 대학혁신지원사업비를 특별장학금 형태로 학생들에게 일부 돌려주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정부가 최근 국회에 보낸 예산안을 보면 교육부가 전국 대학 143곳에 배분할 대학혁신지업사업 예산은 7,528억 원입니다. 애초보다 503억 원이 삭감됐다지만, 상당한 액수입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얼마전 “대학들의 어려운 재정 상황을 해소하고, 2학기 준비를 원활히 추진할 수 있도록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사업비 집행기준을 정비하겠다”며 “각 대학이 원격수업 지원과 방역 관리에 사업비를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생긴 재정적 여력으로 각 대학이 알아서 등록금을 일부 돌려주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교육부 "국가예산으론 안 돼...대학이 알아서"

문제는 일부 대학에서 아예 이 지원비를 활용해 모든 학생에게 일정 금액을 특별장학금 형태로 나눠주는 방안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교육부에선 펄쩍 뛰고 있죠.

교육부는 확고하게 “정부 지원금을 등록금 반환 명목의 특별장학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등록금 반환 또한 '대학 총장 소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달 초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경북 경산에서 8박 9일간 하루 10시간씩 230km를 걸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까지 간 경산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의 어려움은 이해되나, 대학들도 코로나 19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대학들이 10만~20만 원 가량의 특별장학금을 자체 지급하는 게 최선이라는 거죠.

■학생들 "국회로 가자!", 그런데 건국대는....


전국 30여 개 총학생회가 모인 또 다른 대학생단체인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오늘(15일) 교육부 앞에서 등록금 반환 도보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5박 6일 동안 150km가량을 걸어 서울 국회 앞에서 20일 기자회견을 열 예정입니다.

전대넷은 주무 부처인 교육부가 방관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제는 교육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이유도 밝혔습니다.

최근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국가 재난상황에서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어려운 경우 국가 또는 학교가 재학생에게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국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습니다.

이 단체는 각 대학과 교육부를 상대로 한 등록금 반환 소송을 위해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도 대학 등록금을 반환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등록금 반환을 둘러싼 핑퐁 게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늘(15일) 건국대에서 사실상 등록금을 환불해주는 첫 사례가 나올 전망입니다.

올해 서울캠퍼스 1학기 재학생 만 5천여 명을 대상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 고지서에서 일정 비율을 감면해주는 방식을 두고 학교 측과 총학생회가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건국대의 이 같은 결정은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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