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의 눈] 7년 전 ‘판박이’ 사건…대한민국은 달라지지 않았다

입력 2020.06.15 (21:10) 수정 2020.06.15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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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3년 울산에서 8살 어린이가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갈비뼈 16대가 부러진 채 숨졌습니다.

이른바 '서현이 사건'입니다.

이후 국회와 민간단체가 같이 진상조사위를 꾸렸고, 이듬해 국내에서는 유일한 아동학대 사망 보고서인 '이서현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학대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아동보호망이 제대로 작동했나 집중 점검한 겁니다.

이 보고서는 2002년 영국에서 발간된 '클림비 보고서'의 한국판으로도 불립니다.

클림비라는 8살 여자어린이가 학대로 숨지자 영국 정부는 2년 동안 진상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냈고, 이후 아동보호시스템을 학대 예방 중심으로 전면 개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서현 보고서'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박영민 기자가 이 보고서 전문을 입수해 자세히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서현이의 학대 사실이 확인된 건 사망 2년 전, 유치원 교사의 신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치원 교사/음성변조 : "보이지 않는 곳에 멍이 많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한 날에는 보니까 머리 정수리가 퉁퉁 부었어요."]

이 교사는 "1년 전과 두 달 전에도 학대 흔적을 발견했다"라며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원가정 보호조치'를 결정했습니다.

이 상담원이 서현이를 직접 만난 건 처음 신고가 들어온 직후 2번뿐이었습니다.

이후 두 달간 학대 행위자인 의붓어머니, 친아버지와 전화 상담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이 서현이의 아동학대 위험성 점수는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아이를 보지도 않고 보호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나아졌다, 아동이 무표정한 것이 사라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윤혜미/아동권리보장원장 : "하루에 2건은 (사례 조사를) 다녀와야 해요. 그런데 지역이 다 흩어져 있고요. 꼭 가야 할 시간이 아니면 전화를 쓰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제한적인 개입조차 서현이 가족의 이사로 아예 끊어졌습니다.

부모가 상담을 거부한 겁니다.

[당시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음성변조 : "외부나 타기관에서 본인들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계모와 친부가 거부 반응이 있었거든요."]

이후 울산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현이는 다리가 부러지고 양손과 발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누구도 학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현이는 숨질 때까지 국가 아동보호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현이 사건 이후 국회에서는 아동학대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동학대 사건은 오히려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남인순/의원/'이서현 사건' 진상조사위원장 : "피해 아동들이 원상 회복될 때까지 사례 관리를 해야 하는데, (한곳에서) 아동 학대 조사 업무와 여러 가지 피해자 보호하는 업무들, 사례 관리들을 같이 다 했었기 때문에 굉장히 업무가 가중됐습니다."]

서현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나온 지 6년.

하지만 여전히 상담원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자녀를 학대한 부모가 상담을 거부해도 강제할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KBS 뉴스 박영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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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의 눈] 7년 전 ‘판박이’ 사건…대한민국은 달라지지 않았다
    • 입력 2020-06-15 21:13:02
    • 수정2020-06-15 21: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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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13년 울산에서 8살 어린이가 의붓어머니에게 맞아 갈비뼈 16대가 부러진 채 숨졌습니다.

이른바 '서현이 사건'입니다.

이후 국회와 민간단체가 같이 진상조사위를 꾸렸고, 이듬해 국내에서는 유일한 아동학대 사망 보고서인 '이서현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학대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기까지 아동보호망이 제대로 작동했나 집중 점검한 겁니다.

이 보고서는 2002년 영국에서 발간된 '클림비 보고서'의 한국판으로도 불립니다.

클림비라는 8살 여자어린이가 학대로 숨지자 영국 정부는 2년 동안 진상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냈고, 이후 아동보호시스템을 학대 예방 중심으로 전면 개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서현 보고서'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박영민 기자가 이 보고서 전문을 입수해 자세히 분석해봤습니다.

[리포트]

서현이의 학대 사실이 확인된 건 사망 2년 전, 유치원 교사의 신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치원 교사/음성변조 : "보이지 않는 곳에 멍이 많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한 날에는 보니까 머리 정수리가 퉁퉁 부었어요."]

이 교사는 "1년 전과 두 달 전에도 학대 흔적을 발견했다"라며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원가정 보호조치'를 결정했습니다.

이 상담원이 서현이를 직접 만난 건 처음 신고가 들어온 직후 2번뿐이었습니다.

이후 두 달간 학대 행위자인 의붓어머니, 친아버지와 전화 상담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이 서현이의 아동학대 위험성 점수는 꾸준히 하락했습니다.

아이를 보지도 않고 보호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나아졌다, 아동이 무표정한 것이 사라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윤혜미/아동권리보장원장 : "하루에 2건은 (사례 조사를) 다녀와야 해요. 그런데 지역이 다 흩어져 있고요. 꼭 가야 할 시간이 아니면 전화를 쓰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제한적인 개입조차 서현이 가족의 이사로 아예 끊어졌습니다.

부모가 상담을 거부한 겁니다.

[당시 포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음성변조 : "외부나 타기관에서 본인들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계모와 친부가 거부 반응이 있었거든요."]

이후 울산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현이는 다리가 부러지고 양손과 발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누구도 학대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현이는 숨질 때까지 국가 아동보호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현이 사건 이후 국회에서는 아동학대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아동학대 사건은 오히려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남인순/의원/'이서현 사건' 진상조사위원장 : "피해 아동들이 원상 회복될 때까지 사례 관리를 해야 하는데, (한곳에서) 아동 학대 조사 업무와 여러 가지 피해자 보호하는 업무들, 사례 관리들을 같이 다 했었기 때문에 굉장히 업무가 가중됐습니다."]

서현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가 나온 지 6년.

하지만 여전히 상담원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자녀를 학대한 부모가 상담을 거부해도 강제할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KBS 뉴스 박영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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