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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고열’ 맞지만 ‘고열작업장’은 아니다?…노동청 “거기 빼고 대책 내”
입력 2020.06.16 (11:08) 수정 2020.06.16 (11:09) 취재후·사건후
■현대제철 외주업체 직원 2명 쓰러져 1명 사망

폭염 속 쓰러진 노동자 심정지 상태로 이송 폭염 속 쓰러진 노동자 심정지 상태로 이송

폭염이 시작됐던 지난 9일, 당진 현대제철 내 연주공장에서 54살 박 모 씨가 쓰러졌습니다. 지상 30m 크레인에서 냉방장치에 해당하는 '캡쿨러' 수리작업을 하던 외주업체 직원이었습니다.

쇳물을 식혀 고체로 만드는 연속주조공장(연주공장)이었는데 당시 작업장 온도는 43도, 박 씨의 체온은 40.2도였고요. 박 씨는 심정지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이튿날인 10일에는 당진 현대제철 내 다른 작업장에서 또 다른 50대 외주업체 직원이 쓰러졌습니다. 석탄 연료 저장고에서 배관 수리 작업 중이었는데요. 다행히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노동청은 가스 질식이나 온열 질환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열(高熱)' 맞지만 법에서 정한 12곳만 고열사업장?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지난 9일 노동자가 숨졌는데도 노동청은 중대재해를 적용한 작업중지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숨진 노동자가 고온 고열의 작업환경에서 일한 건 사실이지만 법에서 정한 '고온·고열 작업장'에는 속하지 않아 중대재해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59조가 근거였습니다. 이 조항에는 제철소 내 용광로나 소결로, 압연장소 등 12곳을 '고온·고열 작업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주업체 직원이 쓰러져 숨진 곳은 연주공장 위 크레인 이동통로였고요. 노동청은 이 장소가 법에 정한 '고온·고열 작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본 겁니다.

현대제철에서 작성한 숨진 노동자 작업일지현대제철에서 작성한 숨진 노동자 작업일지

■뒤늦은 부분 작업중지 명령

노동청은 중대재해 적용을 하지 않은 다른 이유로 숨진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들었습니다. 평소 혈압이 높고 당뇨와 고지혈증이 있었다는 건데요. 이번 사망 사고가 기저 질환 때문인지,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국과수의 부검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 국과수 1차 구두소견이 '관상동맥에 의한 심근경색과 급성 심장마비'로 나오면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기저 질환 연관성을 판단하기 어려워지자 지난 12일 박 씨가 숨진 연주공장 내 냉방장치 작업장에 한해 부분작업중지 명령을 내린 겁니다.

하지만 '고열작업에 의한 중대재해'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또 박 씨가 작업을 하면서 규정대로 휴식을 했는지, 기저 질환이 있었다면 어떻게 위험작업에 투입됐는지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고 장소만 빼고 개선대책 마련해라?"‥자기 모순에 빠진 노동청

노동청은 현대제철에 '고온·고열사업장 현황'과 개선대책을 지시했습니다. 직접 현장을 조사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니 현대제철이 먼저 자료를 제출하라는 겁니다. 이를 토대로 현장 점검을 해 필요한 행정조치를 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노동청 논리라면 '고온·고열 사업장'은 법에서 정한 12곳입니다. 사망 사고가 난 연주공장은 빠지는 건데요, 결국 '사고 장소는 빼고 개선대책을 마련하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에 대해 노동청은 현대제철이 제출하는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직답을 피했습니다.

고열작업장 규정한 산업안전보건 규칙 559조고열작업장 규정한 산업안전보건 규칙 559조

■노동청 적극적인 대응 아쉬워

노동청이 근거로 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59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면 '고온·고열 작업장'으로 볼 수 있다'는 조항인데요. 노동청이 재량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559조에 정한 12곳 외에 제철소 내 수많은 곳에서 실질적인 고온, 고열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안전수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고온·고열 작업장에 대한 구체적인 고시를 통해 제2의, 제3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부는 최근 폭염대비 고온 작업장 안전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학교 식당의 조리실도 위험 작업장으로 보고 철저하게 수칙을 지키도록 했는데요. 올해 폭염이 지난해보다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폭염 사고에 대한 노동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 [취재후] ‘고열’ 맞지만 ‘고열작업장’은 아니다?…노동청 “거기 빼고 대책 내”
    • 입력 2020-06-16 11:08:53
    • 수정2020-06-16 11:09:01
    취재후·사건후
■현대제철 외주업체 직원 2명 쓰러져 1명 사망

폭염 속 쓰러진 노동자 심정지 상태로 이송 폭염 속 쓰러진 노동자 심정지 상태로 이송

폭염이 시작됐던 지난 9일, 당진 현대제철 내 연주공장에서 54살 박 모 씨가 쓰러졌습니다. 지상 30m 크레인에서 냉방장치에 해당하는 '캡쿨러' 수리작업을 하던 외주업체 직원이었습니다.

쇳물을 식혀 고체로 만드는 연속주조공장(연주공장)이었는데 당시 작업장 온도는 43도, 박 씨의 체온은 40.2도였고요. 박 씨는 심정지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이튿날인 10일에는 당진 현대제철 내 다른 작업장에서 또 다른 50대 외주업체 직원이 쓰러졌습니다. 석탄 연료 저장고에서 배관 수리 작업 중이었는데요. 다행히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노동청은 가스 질식이나 온열 질환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열(高熱)' 맞지만 법에서 정한 12곳만 고열사업장?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지난 9일 노동자가 숨졌는데도 노동청은 중대재해를 적용한 작업중지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숨진 노동자가 고온 고열의 작업환경에서 일한 건 사실이지만 법에서 정한 '고온·고열 작업장'에는 속하지 않아 중대재해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59조가 근거였습니다. 이 조항에는 제철소 내 용광로나 소결로, 압연장소 등 12곳을 '고온·고열 작업장'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외주업체 직원이 쓰러져 숨진 곳은 연주공장 위 크레인 이동통로였고요. 노동청은 이 장소가 법에 정한 '고온·고열 작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본 겁니다.

현대제철에서 작성한 숨진 노동자 작업일지현대제철에서 작성한 숨진 노동자 작업일지

■뒤늦은 부분 작업중지 명령

노동청은 중대재해 적용을 하지 않은 다른 이유로 숨진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들었습니다. 평소 혈압이 높고 당뇨와 고지혈증이 있었다는 건데요. 이번 사망 사고가 기저 질환 때문인지,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국과수의 부검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 국과수 1차 구두소견이 '관상동맥에 의한 심근경색과 급성 심장마비'로 나오면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기저 질환 연관성을 판단하기 어려워지자 지난 12일 박 씨가 숨진 연주공장 내 냉방장치 작업장에 한해 부분작업중지 명령을 내린 겁니다.

하지만 '고열작업에 의한 중대재해'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또 박 씨가 작업을 하면서 규정대로 휴식을 했는지, 기저 질환이 있었다면 어떻게 위험작업에 투입됐는지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고 장소만 빼고 개선대책 마련해라?"‥자기 모순에 빠진 노동청

노동청은 현대제철에 '고온·고열사업장 현황'과 개선대책을 지시했습니다. 직접 현장을 조사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니 현대제철이 먼저 자료를 제출하라는 겁니다. 이를 토대로 현장 점검을 해 필요한 행정조치를 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노동청 논리라면 '고온·고열 사업장'은 법에서 정한 12곳입니다. 사망 사고가 난 연주공장은 빠지는 건데요, 결국 '사고 장소는 빼고 개선대책을 마련하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에 대해 노동청은 현대제철이 제출하는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며 직답을 피했습니다.

고열작업장 규정한 산업안전보건 규칙 559조고열작업장 규정한 산업안전보건 규칙 559조

■노동청 적극적인 대응 아쉬워

노동청이 근거로 든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59조'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면 '고온·고열 작업장'으로 볼 수 있다'는 조항인데요. 노동청이 재량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559조에 정한 12곳 외에 제철소 내 수많은 곳에서 실질적인 고온, 고열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안전수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정하는 고온·고열 작업장에 대한 구체적인 고시를 통해 제2의, 제3의 안타까운 사망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부는 최근 폭염대비 고온 작업장 안전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학교 식당의 조리실도 위험 작업장으로 보고 철저하게 수칙을 지키도록 했는데요. 올해 폭염이 지난해보다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폭염 사고에 대한 노동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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