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급하니까 건너뛰자?…추경안 일부 ‘예타 피하기’ 논란

입력 2020.06.26 (07:02) 수정 2020.06.2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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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이 많이 드는 대규모 국책 사업은 사전에 경제·정책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조사 대상은 총사업비와 투입될 국가 재정 규모에 따라 정해지는데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현재 조속한 심사와 통과를 촉구하는 3차 추경안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3차 추경안 사업 가운데는 정식으로 예타 면제를 받지도 않았는데, 조사를 건너뛴 사업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예타를 받아야 하는 대상임에도 꼼수를 써 예타를 받지 않도록 했다는 지적입니다.

■ "기존 사업 하위 사업으로 집어넣어 예타 피하기?"

논란이 제기된 사업은 '그린뉴딜 선도 100대 유망기업 지원 사업'입니다. 정부가 그린뉴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3차 추경안에 신규 편성한 사업인데, 중소벤처기업부와 환경부가 함께 3년간 100개 기업에 3,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750억 원 규모인 중기부의 '사업화 지원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았어야 함에도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중기부가 사실상 신규 성격인 '사업화 지원 사업'(내역사업)을 기존에 있던 '창업 사업화 지원 사업'(세부사업)의 하위 사업에 넣는 방식으로, 조사를 피해갔다는 게 지적의 핵심 내용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정부 예산안의 사업은 세부사업 밑에 여러 내역사업으로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통상 예타는 이 '세부사업'이 신규일 경우에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규가 아닌 '기존에 있던' 세부사업 하위의 내역사업이 되면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예타를 피해 갔다는 얘기입니다.


■ "하위 내역 사업이어도 필요하면 예타 받아야"

그렇다면, '아무리 거액의 국고가 지원된다 해도 세부사업 밑 하위에 있는 내역사업으로만 하면 무조건 예타를 피할 수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기재부 훈령의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에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한 단서가 있습니다.

하위 사업일지라도 같은 세부사업 밑에 다른 하위 사업들과 비교해 독립적이고, 사업 규모가 예타 대상(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고 지원 300억 원 이상)이면 조사를 받도록 한 겁니다.


■ 예타 받아야 하는 신규 사업?…"맞다" VS "아니다"

하위 사업(내역사업)이어도 위 기준에 맞는다면 예타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이에 맞춰서 다시 앞서 말씀드린 그린뉴딜 선도 100대 유망기업 지원 사업 내에 중기부의 '사업화 지원 사업'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총 사업비 750억 원이니 규모로는 예타 조사 대상 요건에 맞습니다.

결국 다른 하위 사업들과 비교해서 독립적, 다시 말해 성격이 다른 신규 사업인지를 살펴보는 게 관건이 되겠습니다.


창업 사업화 지원 사업의 기존 내역 사업들은 대상이 예비창업자 혹은 창업기업들로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린뉴딜 유망기업 육성 사업'은 녹색산업 분야를 선도할 그린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합니다. 신재생에너지, 탄소 저감, 첨단수자원, 청정생산 등 그린뉴딜 분야에서 성장잠재력 있는 창업·벤처·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문제가 되는 사업이 "그린뉴딜이라고 하는 특정 분야에만 국한됐고, 창업기업뿐만 아니라 기존 중소기업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신규사업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 소장은 "1개 기업당 지원금이 15억 원으로 기존 내역 사업들과 비교해도 금액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며 "예타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 3차 추경안 분석_위원회별 분석 보고서 중국회 예산정책처 3차 추경안 분석_위원회별 분석 보고서 중

예산정책처도 비슷한 맥락에서 앞으로 국회 추경안 심사과정에서 이 사업이 예타 대상인지 아닌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의 해명은 이러한 지적과는 다릅니다. 중기부와 기재부는 이번 사업이 기존에 있던 창업사업화지원 사업(세부 사업)에서 '지원 대상 조정과 방식 조정'에 해당돼 편성된 것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중기부 관계자는 "이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시각을 좀 달리할 수 있기는 하다."라며 "일단 사업 편성을 해서 빨리 좀 시급성을 다투는 성격에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사실상 동일한 사업인데…하나는 세부사업, 하나는 과제?"

사실 '그린뉴딜 선도 100대 유망기업 지원 사업'에는 예타와 관련돼 위에서 설명해드린 중기부의 750억 원 규모의 '사업화 지원 사업' 외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입니다. 중기부에서 3년간 750억 원, 환경부에서 3년간 375억 원을 각각 투입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같은 내용의 이 두 사업을 중기부는 기존 세부사업 밑에 '과제 유형'('과제'는 내역사업보다도 하위라고 보면 됩니다)으로, 환경부는 신규 세부사업으로 분류했습니다.

환경부의 375억 원 사업은 신규 세부사업이지만 예타 대상 요건인 총 사업비 500억 원을 넘지 않으니 예타를 받지 않습니다. 동일한 내용의 사업이면 같은 잣대로 본다면 중기부의 750억 원 사업도 신규 세부사업이어야 할 듯한데 내역 사업도 아닌 '과제 유형'으로 분류하다 보니 총 사업비 500억 원이 넘지만 역시 예타를 받지 않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R&D 지원사업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단정하기에는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국고 들어가는 사업, 급해도 적정성 면밀히 살펴야"

3차 추경 예타 조사와 관련해서 이 같은 "피하기 논란'만 있는 게 아닙니다.

3차 추경안에는 시급성을 이유로 예타 면제를 의결한 사업만 9개, 규모는 9,300억 원이 넘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 사업들에 대해서도 "의무는 아니지만, 재정소요와 중장기적 성격을 고려해 사업 규모와 수단 등 타당성을 검토하는 사업계획의 적정성 검토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연일 조속한 3차 추경 통과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기를 살리려면 한시가 급하다는 건데 시급성엔 동감하지만 35조 원의 역대급 추경 심사에서 해당 사업들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따지고 살피는 일이 국회의 책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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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급하니까 건너뛰자?…추경안 일부 ‘예타 피하기’ 논란
    • 입력 2020-06-26 07:02:55
    • 수정2020-06-26 07:14:06
    취재후·사건후
 세금이 많이 드는 대규모 국책 사업은 사전에 경제·정책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조사 대상은 총사업비와 투입될 국가 재정 규모에 따라 정해지는데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현재 조속한 심사와 통과를 촉구하는 3차 추경안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3차 추경안 사업 가운데는 정식으로 예타 면제를 받지도 않았는데, 조사를 건너뛴 사업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예타를 받아야 하는 대상임에도 꼼수를 써 예타를 받지 않도록 했다는 지적입니다.

■ "기존 사업 하위 사업으로 집어넣어 예타 피하기?"

논란이 제기된 사업은 '그린뉴딜 선도 100대 유망기업 지원 사업'입니다. 정부가 그린뉴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3차 추경안에 신규 편성한 사업인데, 중소벤처기업부와 환경부가 함께 3년간 100개 기업에 3,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750억 원 규모인 중기부의 '사업화 지원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았어야 함에도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중기부가 사실상 신규 성격인 '사업화 지원 사업'(내역사업)을 기존에 있던 '창업 사업화 지원 사업'(세부사업)의 하위 사업에 넣는 방식으로, 조사를 피해갔다는 게 지적의 핵심 내용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정부 예산안의 사업은 세부사업 밑에 여러 내역사업으로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통상 예타는 이 '세부사업'이 신규일 경우에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규가 아닌 '기존에 있던' 세부사업 하위의 내역사업이 되면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예타를 피해 갔다는 얘기입니다.


■ "하위 내역 사업이어도 필요하면 예타 받아야"

그렇다면, '아무리 거액의 국고가 지원된다 해도 세부사업 밑 하위에 있는 내역사업으로만 하면 무조건 예타를 피할 수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기재부 훈령의 「예비타당성조사 운용지침」에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한 단서가 있습니다.

하위 사업일지라도 같은 세부사업 밑에 다른 하위 사업들과 비교해 독립적이고, 사업 규모가 예타 대상(총 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고 지원 300억 원 이상)이면 조사를 받도록 한 겁니다.


■ 예타 받아야 하는 신규 사업?…"맞다" VS "아니다"

하위 사업(내역사업)이어도 위 기준에 맞는다면 예타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이에 맞춰서 다시 앞서 말씀드린 그린뉴딜 선도 100대 유망기업 지원 사업 내에 중기부의 '사업화 지원 사업'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총 사업비 750억 원이니 규모로는 예타 조사 대상 요건에 맞습니다.

결국 다른 하위 사업들과 비교해서 독립적, 다시 말해 성격이 다른 신규 사업인지를 살펴보는 게 관건이 되겠습니다.


창업 사업화 지원 사업의 기존 내역 사업들은 대상이 예비창업자 혹은 창업기업들로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린뉴딜 유망기업 육성 사업'은 녹색산업 분야를 선도할 그린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합니다. 신재생에너지, 탄소 저감, 첨단수자원, 청정생산 등 그린뉴딜 분야에서 성장잠재력 있는 창업·벤처·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문제가 되는 사업이 "그린뉴딜이라고 하는 특정 분야에만 국한됐고, 창업기업뿐만 아니라 기존 중소기업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신규사업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 소장은 "1개 기업당 지원금이 15억 원으로 기존 내역 사업들과 비교해도 금액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며 "예타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피해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 3차 추경안 분석_위원회별 분석 보고서 중
예산정책처도 비슷한 맥락에서 앞으로 국회 추경안 심사과정에서 이 사업이 예타 대상인지 아닌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의 해명은 이러한 지적과는 다릅니다. 중기부와 기재부는 이번 사업이 기존에 있던 창업사업화지원 사업(세부 사업)에서 '지원 대상 조정과 방식 조정'에 해당돼 편성된 것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중기부 관계자는 "이걸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시각을 좀 달리할 수 있기는 하다."라며 "일단 사업 편성을 해서 빨리 좀 시급성을 다투는 성격에 하게 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사실상 동일한 사업인데…하나는 세부사업, 하나는 과제?"

사실 '그린뉴딜 선도 100대 유망기업 지원 사업'에는 예타와 관련돼 위에서 설명해드린 중기부의 750억 원 규모의 '사업화 지원 사업' 외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입니다. 중기부에서 3년간 750억 원, 환경부에서 3년간 375억 원을 각각 투입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같은 내용의 이 두 사업을 중기부는 기존 세부사업 밑에 '과제 유형'('과제'는 내역사업보다도 하위라고 보면 됩니다)으로, 환경부는 신규 세부사업으로 분류했습니다.

환경부의 375억 원 사업은 신규 세부사업이지만 예타 대상 요건인 총 사업비 500억 원을 넘지 않으니 예타를 받지 않습니다. 동일한 내용의 사업이면 같은 잣대로 본다면 중기부의 750억 원 사업도 신규 세부사업이어야 할 듯한데 내역 사업도 아닌 '과제 유형'으로 분류하다 보니 총 사업비 500억 원이 넘지만 역시 예타를 받지 않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R&D 지원사업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닌 것으로 단정하기에는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국고 들어가는 사업, 급해도 적정성 면밀히 살펴야"

3차 추경 예타 조사와 관련해서 이 같은 "피하기 논란'만 있는 게 아닙니다.

3차 추경안에는 시급성을 이유로 예타 면제를 의결한 사업만 9개, 규모는 9,300억 원이 넘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 사업들에 대해서도 "의무는 아니지만, 재정소요와 중장기적 성격을 고려해 사업 규모와 수단 등 타당성을 검토하는 사업계획의 적정성 검토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연일 조속한 3차 추경 통과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기를 살리려면 한시가 급하다는 건데 시급성엔 동감하지만 35조 원의 역대급 추경 심사에서 해당 사업들의 타당성을 꼼꼼하게 따지고 살피는 일이 국회의 책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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