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나쁜 아빠’ 어떻게 됐을까? ‘양육비 체납’의 말로는 없었다

입력 2020.06.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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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청량리 시장에서 벌어진 이 폭행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7년 넘게 양육비 지급을 거부한 '나쁜 아빠'가 찾아온 전 부인을 폭행하고 위협해 언론이 떠들썩했죠. 이 남성은 동행 취재 중이던 방송사 기자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폭행해 손가락 골절상을 입혔습니다.

결국 다음날 폭행 혐의로 입건됐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 양육비 7년 안 내고 버텨도 '언터쳐블'

전 남편 박 씨는 처벌됐을까요? 아직 아닙니다. 5개월이 지났는데 겨우 경찰 조사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라도 법이 정한 양육비를 제때 내고 있을까요? 이것도 아닙니다. 법원이 2012년 12월부터 매달 6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지금까지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고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 있느냐고요? 우리나라 법이 그렇습니다.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아도 내지 않겠다고 버티면, 이 체납자를 처벌하거나 지급을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1월 17일 청량리시장, 박 씨 일행이 밀린 양육비 지급을 요구하는 강 씨를 둘러싸고 위협하는 장면 [사진제공 및 설명=배드파더스] 1월 17일 청량리시장, 박 씨 일행이 밀린 양육비 지급을 요구하는 강 씨를 둘러싸고 위협하는 장면 [사진제공 및 설명=배드파더스]

양육비 지급 명령? 무시하면 그만
감치 명령? 안 받으면 그만

현행법상 양육비 지급 명령을 위반한 채무자에게 내려지는 가장 큰 처분은 '감치(監置)' 명령입니다.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인데, 형사처벌이 아니라 행정제재입니다.

7년 넘게 양육비를 체납한 박 씨도 '감치 10일' 명령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감치'는 상습, 고의 체납자에게 처벌의 의미도,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는 수단도 못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긴 고생 끝에 '감치' 명령을 받아내도, 주거지로 등록된 주소로 배달되는 '감치 결정' 문서를 6개월만 받지 않고 피해 다니면, 이 결정은 무효가 됩니다. 박 씨는 청량리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장사를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3차례나 감치 명령서가 전달되지 않고 되돌아왔습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면 강 씨는 또 사비를 들여, 처음부터 다시 양육비 지급 소송을 시작해야 합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운데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는 사례의 11% 만이 감치 신청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료:양육비이행관리원)


'운전면허 정지'보다 강력한 개정안 발의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처벌

미래통합당 전주혜 의원이 어제(25일) 강력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양육비 체납자의 출국금지와 명단공개를 요청할 수 있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3개 조항이 핵심입니다.

양육비 집행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양육비 지급 정상 이행률이 15.2%에 불과한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정도의 강제력과 처벌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료:여성가족부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양육비 해결모임’ 2019년 2월 14일 헌법재판소 앞 ‘양육비 해결모임’ 2019년 2월 14일 헌법재판소 앞

사실 이 3가지 조항은 이달 초,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정지'를 요청할 수 있게 바뀐 '양육비이행 개정법'이 처음 발의될 때 같이 담겼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양육비를 내지 않았다고 이런 처벌을 하는 것은 과하다'는 이유로 빠졌습니다.

특히 법무부는 '출국금지'와 '명단공개'는 형사처벌이 전제돼야 가능한 조치라며 난색을 보였는데, 결국 관건은 우리 사회가 '양육비 의무 미이행'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내년 6월 시행될 개정법 제21조 3(운전면허 정지처분 요청)은 "여성가족부장관은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감지명령 결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지방경찰청장에게 채무자의 운전면허 효력을 정지시킬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美, "양육비 미지급은 개인 간 채무 아닌 사회 공공의 문제"

미국은 50개 주 전체가 양육비 의무 미이행자의 면허를 정지·취소하는 규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운전면허는 기본이고 직업면허·전문면허가 대상에 포함되고, 주에 따라 총기면허와 사업면허까지 양육비를 체납하면 정지 또는 취소됩니다.

1996년 미 연방정부가 '양육비 이행 강화'를 위해 이처럼 강력한 제재를 명시한 연방법을 제정하자,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아래가 각 주 대법원들이 당시 내린 판결의 핵심입니다.


■ 양육비 미지급자 = 세금 도둑

미국은 또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부모가 이를 회피하면, 국가가 대신해서 다른 데 써야 할 세금으로 '아동복지'나 '저소득가정 지원' 비용을 충당하게 돼, '세금 누수'라는 관점을 세웠습니다.

'국가 비용' 차원에서 접근하니까 처벌도 매우 강력합니다. 양육비를 체납하면 주에 따라 징역은 최대 14년(아이다호), 벌금은 최고 12만 5천 달러(오레곤)에 달하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자료:미국 각 주 정부 법령-국회 입법조사처)

양육비 지급 미이행, 이로 인한 한부모 가정의 빈곤과 아동 방임을 '개인 대 개인의 채무'로 치부하고, '형사 처벌까지 할 죄냐'고 되묻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무겁습니다.

■ "양육비 미지급 = 아동 학대"

*한부모 가정 양육자
"양육비를 못 받으면 먹고 살기 위해 제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어요. 이혼 후 5~6년은 소송에 매달리느라 어린 자식을 뒷전에 둘 수밖에 없었고, 법이 나와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다음엔 일자리를 찾고 잘리지 않고 버티느라 내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도 옆에서 지켜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게 아동 학대 아닌가요?"

양육비 지급 미이행은 자녀 방임으로 이어지고, 방임은 곧 학대라는 한부모들의 외침에 21대 국회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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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그 ‘나쁜 아빠’ 어떻게 됐을까? ‘양육비 체납’의 말로는 없었다
    • 입력 2020-06-26 11:37:54
    취재K
올해 1월, 청량리 시장에서 벌어진 이 폭행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7년 넘게 양육비 지급을 거부한 '나쁜 아빠'가 찾아온 전 부인을 폭행하고 위협해 언론이 떠들썩했죠. 이 남성은 동행 취재 중이던 방송사 기자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폭행해 손가락 골절상을 입혔습니다.

결국 다음날 폭행 혐의로 입건됐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됐을까요?

■ 양육비 7년 안 내고 버텨도 '언터쳐블'

전 남편 박 씨는 처벌됐을까요? 아직 아닙니다. 5개월이 지났는데 겨우 경찰 조사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라도 법이 정한 양육비를 제때 내고 있을까요? 이것도 아닙니다. 법원이 2012년 12월부터 매달 6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지금까지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고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 있느냐고요? 우리나라 법이 그렇습니다.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아도 내지 않겠다고 버티면, 이 체납자를 처벌하거나 지급을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1월 17일 청량리시장, 박 씨 일행이 밀린 양육비 지급을 요구하는 강 씨를 둘러싸고 위협하는 장면 [사진제공 및 설명=배드파더스]
양육비 지급 명령? 무시하면 그만
감치 명령? 안 받으면 그만

현행법상 양육비 지급 명령을 위반한 채무자에게 내려지는 가장 큰 처분은 '감치(監置)' 명령입니다.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인데, 형사처벌이 아니라 행정제재입니다.

7년 넘게 양육비를 체납한 박 씨도 '감치 10일' 명령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감치'는 상습, 고의 체납자에게 처벌의 의미도,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는 수단도 못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긴 고생 끝에 '감치' 명령을 받아내도, 주거지로 등록된 주소로 배달되는 '감치 결정' 문서를 6개월만 받지 않고 피해 다니면, 이 결정은 무효가 됩니다. 박 씨는 청량리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장사를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3차례나 감치 명령서가 전달되지 않고 되돌아왔습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면 강 씨는 또 사비를 들여, 처음부터 다시 양육비 지급 소송을 시작해야 합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운데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을 받는 사례의 11% 만이 감치 신청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료:양육비이행관리원)


'운전면허 정지'보다 강력한 개정안 발의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처벌

미래통합당 전주혜 의원이 어제(25일) 강력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양육비 체납자의 출국금지와 명단공개를 요청할 수 있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하도록 한 3개 조항이 핵심입니다.

양육비 집행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양육비 지급 정상 이행률이 15.2%에 불과한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정도의 강제력과 처벌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료:여성가족부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양육비 해결모임’ 2019년 2월 14일 헌법재판소 앞
사실 이 3가지 조항은 이달 초,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정지'를 요청할 수 있게 바뀐 '양육비이행 개정법'이 처음 발의될 때 같이 담겼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양육비를 내지 않았다고 이런 처벌을 하는 것은 과하다'는 이유로 빠졌습니다.

특히 법무부는 '출국금지'와 '명단공개'는 형사처벌이 전제돼야 가능한 조치라며 난색을 보였는데, 결국 관건은 우리 사회가 '양육비 의무 미이행'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내년 6월 시행될 개정법 제21조 3(운전면허 정지처분 요청)은 "여성가족부장관은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감지명령 결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지방경찰청장에게 채무자의 운전면허 효력을 정지시킬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美, "양육비 미지급은 개인 간 채무 아닌 사회 공공의 문제"

미국은 50개 주 전체가 양육비 의무 미이행자의 면허를 정지·취소하는 규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운전면허는 기본이고 직업면허·전문면허가 대상에 포함되고, 주에 따라 총기면허와 사업면허까지 양육비를 체납하면 정지 또는 취소됩니다.

1996년 미 연방정부가 '양육비 이행 강화'를 위해 이처럼 강력한 제재를 명시한 연방법을 제정하자,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요? 아래가 각 주 대법원들이 당시 내린 판결의 핵심입니다.


■ 양육비 미지급자 = 세금 도둑

미국은 또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부모가 이를 회피하면, 국가가 대신해서 다른 데 써야 할 세금으로 '아동복지'나 '저소득가정 지원' 비용을 충당하게 돼, '세금 누수'라는 관점을 세웠습니다.

'국가 비용' 차원에서 접근하니까 처벌도 매우 강력합니다. 양육비를 체납하면 주에 따라 징역은 최대 14년(아이다호), 벌금은 최고 12만 5천 달러(오레곤)에 달하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자료:미국 각 주 정부 법령-국회 입법조사처)

양육비 지급 미이행, 이로 인한 한부모 가정의 빈곤과 아동 방임을 '개인 대 개인의 채무'로 치부하고, '형사 처벌까지 할 죄냐'고 되묻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무겁습니다.

■ "양육비 미지급 = 아동 학대"

*한부모 가정 양육자
"양육비를 못 받으면 먹고 살기 위해 제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어요. 이혼 후 5~6년은 소송에 매달리느라 어린 자식을 뒷전에 둘 수밖에 없었고, 법이 나와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다음엔 일자리를 찾고 잘리지 않고 버티느라 내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도 옆에서 지켜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게 아동 학대 아닌가요?"

양육비 지급 미이행은 자녀 방임으로 이어지고, 방임은 곧 학대라는 한부모들의 외침에 21대 국회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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