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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북녘땅 전사자 147명은 어떻게 돌아왔나?
입력 2020.06.26 (15:09) 취재K
■ 북녘땅 전사자 유해 봉환, 20여 년의 역사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미국 하와이에서 국군 전사자 147명의 유해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봉환된 유해는 모두 북한 땅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북한에서 미국을 거쳐 귀환한 겁니다. 청와대는 이번 봉환으로 "북한 지역에서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국군 전사자 유해는 모두 확인해 봉환했다"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북한의 대남 파상 공세로 남북관계가 기로에 놓인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어떻게 북한 땅에 묻혀 있던 유해가 국내로 송환됐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발굴부터 감식, 귀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을 설명드립니다.


■ '북·미 공동 유해 발굴' '한·미 공동 감식'의 합작품

유해 봉환 경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북한과 미국이 공동 발굴한 유해에 대해 한미가 공동 감식을 벌여 국군 전사자를 찾아낸 경우입니다.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장진호 지역 등 4곳에서 발굴한 유해 208상자를 미국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북한 단독으로 한 유해 발굴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북한 땅에서 미군 전사자 유해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과 북한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공동으로 북한 땅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합니다. 2010년에는 미 국방부 내 '전쟁포로 및 유해발굴 감식국'에 전담팀이 구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발굴된 유해에 대해 한·미가 공동 감식을 했습니다. 모두 4차례 이뤄집니다. 1차로 2011년 22개 개체를 감식했고, 국군 전사자 12구를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개체란 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덩어리를 뜻합니다. 이 유해는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국내로 모셔졌고, 첫 봉환 행사가 열렸습니다. 2015년과 2017년, 2018년에도 공동 감식이 진행됐고, 1~4차 공동 감식을 통해 봉환된 유해는 총 92구입니다.

두 번째 경로는 북한이 단독 발굴해 미국으로 보낸 유해를 한·미가 공동 감식한 경우입니다. 앞서 밝혔듯,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유해 208상자를 미국에 보냈습니다. 이 유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한·미 공동 감식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7년에서야 분석이 시작됐고, 70명의 국군 전사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경로는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회담의 결과물입니다. 이 회담 이후 북한은 자체 발굴한 유해 55상자를 미국에 보냈는데, 여기서 국군 전사자 유해 77구가 나온 겁니다. 상자에는 여러 명의 뼛조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상자 개수와 유해 숫자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어느 시기에 유해를 발굴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오늘 브리핑에서 "북한에서 단독 발굴한 유해 중 국군 전사자로 판명 날 수 있는 유해는 전부 국내로 송환이 완료됐다고 보면 된다"며 "이후 북한의 단독 발굴이 있거나, 유해가 다시 전달되면 추가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 신원 확인 유해는 149구뿐…“유가족 DNA 확보 시급”

앞서 설명해 드린 세 가지 경로를 거쳐 봉환된 유해는 지금까지 총 239구입니다. 여기에 우리 국군이 자체 발굴해 보관하고 있는 전사자 유해도 만여 구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49구에 불과합니다.

신원 확인 실적이 저조한 건 유가족 DNA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재관 부대변인은 "가족의 품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가족 DNA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유가족들이 유해감식발굴단(☎1577-5625)에 적극적으로 연락해 DNA 시료 채취가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 70년 만에…북녘땅 전사자 147명은 어떻게 돌아왔나?
    • 입력 2020-06-26 15:09:00
    취재K
■ 북녘땅 전사자 유해 봉환, 20여 년의 역사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미국 하와이에서 국군 전사자 147명의 유해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봉환된 유해는 모두 북한 땅에서 발굴된 것입니다. 북한에서 미국을 거쳐 귀환한 겁니다. 청와대는 이번 봉환으로 "북한 지역에서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국군 전사자 유해는 모두 확인해 봉환했다"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북한의 대남 파상 공세로 남북관계가 기로에 놓인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어떻게 북한 땅에 묻혀 있던 유해가 국내로 송환됐는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발굴부터 감식, 귀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을 설명드립니다.


■ '북·미 공동 유해 발굴' '한·미 공동 감식'의 합작품

유해 봉환 경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북한과 미국이 공동 발굴한 유해에 대해 한미가 공동 감식을 벌여 국군 전사자를 찾아낸 경우입니다.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장진호 지역 등 4곳에서 발굴한 유해 208상자를 미국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북한 단독으로 한 유해 발굴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북한 땅에서 미군 전사자 유해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미국과 북한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공동으로 북한 땅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합니다. 2010년에는 미 국방부 내 '전쟁포로 및 유해발굴 감식국'에 전담팀이 구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발굴된 유해에 대해 한·미가 공동 감식을 했습니다. 모두 4차례 이뤄집니다. 1차로 2011년 22개 개체를 감식했고, 국군 전사자 12구를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개체란 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덩어리를 뜻합니다. 이 유해는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국내로 모셔졌고, 첫 봉환 행사가 열렸습니다. 2015년과 2017년, 2018년에도 공동 감식이 진행됐고, 1~4차 공동 감식을 통해 봉환된 유해는 총 92구입니다.

두 번째 경로는 북한이 단독 발굴해 미국으로 보낸 유해를 한·미가 공동 감식한 경우입니다. 앞서 밝혔듯, 북한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유해 208상자를 미국에 보냈습니다. 이 유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한·미 공동 감식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7년에서야 분석이 시작됐고, 70명의 국군 전사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경로는 2018년 북·미 싱가포르 회담의 결과물입니다. 이 회담 이후 북한은 자체 발굴한 유해 55상자를 미국에 보냈는데, 여기서 국군 전사자 유해 77구가 나온 겁니다. 상자에는 여러 명의 뼛조각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상자 개수와 유해 숫자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어느 시기에 유해를 발굴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오늘 브리핑에서 "북한에서 단독 발굴한 유해 중 국군 전사자로 판명 날 수 있는 유해는 전부 국내로 송환이 완료됐다고 보면 된다"며 "이후 북한의 단독 발굴이 있거나, 유해가 다시 전달되면 추가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 신원 확인 유해는 149구뿐…“유가족 DNA 확보 시급”

앞서 설명해 드린 세 가지 경로를 거쳐 봉환된 유해는 지금까지 총 239구입니다. 여기에 우리 국군이 자체 발굴해 보관하고 있는 전사자 유해도 만여 구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49구에 불과합니다.

신원 확인 실적이 저조한 건 유가족 DNA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재관 부대변인은 "가족의 품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가족 DNA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유가족들이 유해감식발굴단(☎1577-5625)에 적극적으로 연락해 DNA 시료 채취가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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