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숨 좀 쉬어보렴”…새끼 업고다닌 어미 돌고래의 사연

입력 2020.06.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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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프라이팬과 뜨겁게 녹아내린 접착제로 9살 딸아이의 손가락과 발을 지지고, 목에 쇠사슬을 묶어 테라스에 속박하고, 9살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질식해 숨지게 하고...

부모가 저질렀다고는 차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두 아동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인간임을 부끄럽게 하는 대자연의 모습을 볼 때면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요. 최근 제주 앞바다에서 포착된 한 어미 돌고래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뭉클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돌고래들이)노는 거예요? 아닌데, 걸려있는 것 같은데요."
"어어, 새끼다. 찍어봐봐!"

지난 11일, 제주시 구좌읍 앞바다에서 돌고래 조사 연구를 하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조사팀. 떼 지어 이동하는 돌고래 무리 사이로, 자신의 등 지느러미에 물체를 매달고 이동 중인 돌고래 한 마리에 연구진의 시선이 멈췄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돌고래 모습이 좀 이상했습니다. 외관은 한눈에 봐도 피부가 허옇게 드러난 상태였고, 스스로 수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습니다. 작은 돌고래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마다, 큰 돌고래가 물속으로 따라 들어가서 주둥이로 들쳐 올린 뒤, 자신의 등 위로 얹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이들은 어미 돌고래, 그리고 죽은 새끼 돌고래였습니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 앞바다에서 포착된 어미 남방큰돌고래와 죽은 새끼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제주 구좌읍 종달리 앞바다에서 포착된 어미 남방큰돌고래와 죽은 새끼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2주 전 태어난 직후 폐사 추정…"어미가 죽음 인지하지 못한 듯"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는 매년 4차례, 계절에 맞춰 제주도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의 개체 수와 생태를 연구하는 정기 조사를 벌입니다. 어미와 새끼 돌고래를 만난 건 지난 11일, 연구팀의 조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연안에서 돌고래떼를 발견한 연구진은 돌고래 무리를 쭉 따라가며 관찰 조사를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한 해역에 멈춰 서서 떼를 지어 다니며 노는 돌고래들을 가까이 관찰하기 위해, 연구진은 보트를 띄워 조심스레 접근했습니다.

연구진은 여기에서 어미 돌고래가 이미 죽은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리려는 안타까운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아가야, 숨 쉬어 보렴." 어미 돌고래의 애절한 유영

새끼 돌고래는 몸을 채 펴지 못해 구부정한 상태로, 태어난 직후 죽은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습니다. 새끼 돌고래의 사체는 꼬리지느러미와 꼬리자루를 제외하고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김현우 박사는 이미 2주 전쯤 새끼가 죽은 것으로 봤습니다. 김 박사는 "죽은 새끼의 크기나 상태를 고려할 때, 어미 돌고래가 2주 이상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보인 것 같다"면서 "이미 새끼는 죽고 부패했지만, 어미 돌고래는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새끼 돌고래를 들쳐 올리기 위해 어미가 물속으로 따라 들어오는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새끼 돌고래를 들쳐 올리기 위해 어미가 물속으로 따라 들어오는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돌고래는 사람처럼 포유류로, 허파로 숨을 쉽니다. 아가미로 호흡하는 다른 수생 동물과는 달리 어떻게든 수면 밖으로 나와, 대기 중에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습니다.

어미 뱃속에서 태어난 직후엔 유영 능력이 떨어져 수면 위로 잘 올라가지 못하는데, 어미 돌고래가 주둥이로 새끼를 들쳐 등 쪽에 올리는 이유도 바로 새끼가 숨을 쉬는 것을 돕기 위한 행동입니다.

어미 돌고래는 이날도 자신의 몸에서 새끼 사체가 떨어지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새끼를 주둥이 위에 얹거나 등에 업고 유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였던 탓에 몸이 굽어 있어, 어미의 등에 올린 채 장기간 이동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짜노(어찌하나), 우짜노(어찌하나)." 어미를 바라보는 연구진들의 안타까움이 영상 목소리로도 담겼습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어미 돌고래가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어미 돌고래가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돌고래 무리 근처에서 보트를 타고 이 모습을 관찰하던 연구진은 약 5분간 어미의 행동을 촬영했습니다. 돌고래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서둘러 조사를 종료한 겁니다.

"죽은 새끼 포기하지 않는 어미 돌고래, 세계 곳곳에서 드물게 관찰"

연구진이 고래연구센터에 구축된 DB 자료에서 검색해 보니, 해당 어미 돌고래는 지난 2008년 4월 처음 발견해 'JBD085'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개체로, 지금까지도 관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암컷 성체로 확인됐습니다. 자료를 보면 이 돌고래는 과거에도 출산 경험이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이처럼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한동안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드물게 관찰되는 특이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주도 남방큰돌고래 무리에서도 지난 2017년과 2018년에 한 차례씩 관찰된 바 있습니다.

제주 앞바다에서 떼 지어 이동하는 남방큰돌고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제주 앞바다에서 떼 지어 이동하는 남방큰돌고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과학자들은 죽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애착 행동은 무리의 개체를 지키기 위한 방어 행동의 일종으로 추정합니다.

김현우 박사는 "돌고래 중에서도 남방큰돌고래가 특히 고도로 사회화된 동물"이라며 "항시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돌고래로서 자신이 속한 무리를 지키려는 본능이 매우 강하다. 그 본능이 발현된 바람에 새끼가 죽었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 그룹의 개체 보호를 위해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도 연안에서는 요즘 돌고래 무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연안으로 나가 돌고래를 관람하는 관광용 선박도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제주 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돌고래 무리를 만나면 다가가거나 진로를 방해하지 말고,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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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야, 숨 좀 쉬어보렴”…새끼 업고다닌 어미 돌고래의 사연
    • 입력 2020-06-26 18:23:32
    취재K
달군 프라이팬과 뜨겁게 녹아내린 접착제로 9살 딸아이의 손가락과 발을 지지고, 목에 쇠사슬을 묶어 테라스에 속박하고, 9살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질식해 숨지게 하고...

부모가 저질렀다고는 차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두 아동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인간임을 부끄럽게 하는 대자연의 모습을 볼 때면 '동물이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요. 최근 제주 앞바다에서 포착된 한 어미 돌고래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뭉클함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돌고래들이)노는 거예요? 아닌데, 걸려있는 것 같은데요."
"어어, 새끼다. 찍어봐봐!"

지난 11일, 제주시 구좌읍 앞바다에서 돌고래 조사 연구를 하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조사팀. 떼 지어 이동하는 돌고래 무리 사이로, 자신의 등 지느러미에 물체를 매달고 이동 중인 돌고래 한 마리에 연구진의 시선이 멈췄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돌고래 모습이 좀 이상했습니다. 외관은 한눈에 봐도 피부가 허옇게 드러난 상태였고, 스스로 수영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습니다. 작은 돌고래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마다, 큰 돌고래가 물속으로 따라 들어가서 주둥이로 들쳐 올린 뒤, 자신의 등 위로 얹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이들은 어미 돌고래, 그리고 죽은 새끼 돌고래였습니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 앞바다에서 포착된 어미 남방큰돌고래와 죽은 새끼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2주 전 태어난 직후 폐사 추정…"어미가 죽음 인지하지 못한 듯"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는 매년 4차례, 계절에 맞춰 제주도 앞바다에서 남방큰돌고래의 개체 수와 생태를 연구하는 정기 조사를 벌입니다. 어미와 새끼 돌고래를 만난 건 지난 11일, 연구팀의 조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연안에서 돌고래떼를 발견한 연구진은 돌고래 무리를 쭉 따라가며 관찰 조사를 이어가던 중이었습니다. 한 해역에 멈춰 서서 떼를 지어 다니며 노는 돌고래들을 가까이 관찰하기 위해, 연구진은 보트를 띄워 조심스레 접근했습니다.

연구진은 여기에서 어미 돌고래가 이미 죽은 새끼 돌고래를 수면 위로 들어 올리려는 안타까운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아가야, 숨 쉬어 보렴." 어미 돌고래의 애절한 유영

새끼 돌고래는 몸을 채 펴지 못해 구부정한 상태로, 태어난 직후 죽은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습니다. 새끼 돌고래의 사체는 꼬리지느러미와 꼬리자루를 제외하고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한 상태였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 김현우 박사는 이미 2주 전쯤 새끼가 죽은 것으로 봤습니다. 김 박사는 "죽은 새끼의 크기나 상태를 고려할 때, 어미 돌고래가 2주 이상 이런 반복적인 행동을 보인 것 같다"면서 "이미 새끼는 죽고 부패했지만, 어미 돌고래는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새끼 돌고래를 들쳐 올리기 위해 어미가 물속으로 따라 들어오는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돌고래는 사람처럼 포유류로, 허파로 숨을 쉽니다. 아가미로 호흡하는 다른 수생 동물과는 달리 어떻게든 수면 밖으로 나와, 대기 중에서 숨을 쉬어야 살 수 있습니다.

어미 뱃속에서 태어난 직후엔 유영 능력이 떨어져 수면 위로 잘 올라가지 못하는데, 어미 돌고래가 주둥이로 새끼를 들쳐 등 쪽에 올리는 이유도 바로 새끼가 숨을 쉬는 것을 돕기 위한 행동입니다.

어미 돌고래는 이날도 자신의 몸에서 새끼 사체가 떨어지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새끼를 주둥이 위에 얹거나 등에 업고 유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였던 탓에 몸이 굽어 있어, 어미의 등에 올린 채 장기간 이동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짜노(어찌하나), 우짜노(어찌하나)." 어미를 바라보는 연구진들의 안타까움이 영상 목소리로도 담겼습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죽은 새끼 돌고래를 어미 돌고래가 들어 올리려 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돌고래 무리 근처에서 보트를 타고 이 모습을 관찰하던 연구진은 약 5분간 어미의 행동을 촬영했습니다. 돌고래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서둘러 조사를 종료한 겁니다.

"죽은 새끼 포기하지 않는 어미 돌고래, 세계 곳곳에서 드물게 관찰"

연구진이 고래연구센터에 구축된 DB 자료에서 검색해 보니, 해당 어미 돌고래는 지난 2008년 4월 처음 발견해 'JBD085'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개체로, 지금까지도 관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암컷 성체로 확인됐습니다. 자료를 보면 이 돌고래는 과거에도 출산 경험이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이처럼 어미 돌고래가 죽은 새끼를 한동안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드물게 관찰되는 특이 행동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주도 남방큰돌고래 무리에서도 지난 2017년과 2018년에 한 차례씩 관찰된 바 있습니다.

제주 앞바다에서 떼 지어 이동하는 남방큰돌고래 모습.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과학자들은 죽은 새끼에 대한 어미의 애착 행동은 무리의 개체를 지키기 위한 방어 행동의 일종으로 추정합니다.

김현우 박사는 "돌고래 중에서도 남방큰돌고래가 특히 고도로 사회화된 동물"이라며 "항시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돌고래로서 자신이 속한 무리를 지키려는 본능이 매우 강하다. 그 본능이 발현된 바람에 새끼가 죽었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 그룹의 개체 보호를 위해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주도 연안에서는 요즘 돌고래 무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연안으로 나가 돌고래를 관람하는 관광용 선박도 있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제주 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돌고래 무리를 만나면 다가가거나 진로를 방해하지 말고,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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