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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의 기회 그리고 복역 중 석방”…이춘재 연쇄살인은 계속됐다
입력 2020.07.02 (17:02) 취재K
“3번의 기회 놓쳤다”
“수사대상자 선정했지만…검거 못 해 죄송”
1990년 복역 중 집행유예 그리고 7개월 뒤 ‘또다시’
“3번의 기회 그리고 복역 중 석방”…이춘재 연쇄살인은 계속됐다
3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이춘재 연쇄살인`은 지난해 7월 당시 사건 현장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가 처제 살해 혐의로 부산 교소도에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만에 경찰은 이춘재가 14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9건의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냈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 분노하는 건 "왜 그렇게 오랫동안(1986년~1991년) 많은 사람들이(14명) 목숨을 잃어야 했느냐?" "경찰은 도대체 뭘 했던 거냐?"일 것이다.

당시 사건에 동원된 경찰 인력은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대상에 오른 용의자만 21,280여 명에 달했다.


"이춘재도 용의선상에 올랐다...그것도 세 차례"

세 차례에 걸쳐 이춘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첫 번째는 미제 6차 사건(1987. 5. 26) 발생 이후인 1987년 7월, 이춘재는 연쇄살인사건과 별건인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를 받지만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가 더 이상이 진행되지 못했다. 이춘재는 풀려났고 5개월 뒤 87년 12월 한 여고생이 수원의 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번째는 미제 8차 사건(1988. 9. 16)을 수사 중이던 1988년 11월, 경찰은 이춘재를 조사했다. 이번에는 이춘재의 '음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이춘재의 음모가 "혈액형과 형태적 소견이 상이하다"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현장음모 혈액형은 'B형'으로 감정되지만,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 때문에 이춘재는 그렇게 용의선상에서 또 배제됐다.

국과수는 당시의 감정 결과에 대해 "모발의 경우 혈액형 항원이 극미량으로 존재하고 당시 감정기법으로는 항원 분비량의 차이 등 모발 특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감정 결과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1989년 7월 7일에 발생한 초등생 J양 실종사건과 관련해 1990년 1월, 경찰은 이춘재를 수사했다. 하지만 6차 사건에서 발견된 족장(발자국) 255mm와 이춘재의 족장(발자국) 265mm가 불일치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번에도 이춘재는 경찰서에서 풀려나게 된다.

만약 1987년 7월 처음 이춘재가 수사선상에 올랐을 때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그 이후 발생한 8건의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경찰은 당시 이춘재를 수사대상자로 선정해 수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조기에 검거하지 못하고,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은 경찰의 큰 잘못으로,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몇 달에 한 번씩, 짧게는 이틀 만에

이춘재의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4건 발생했다. 1986년 4건, 1987년 3건, 1988년 2건, 1989년 1건, 1990년 1건, 1991년 3건이다. 몇 달에 한 번씩, 짧게는 '이틀'만에 살인했다.

1986년 12월 12일 20대 여성을 살해한 이춘재는 이틀 뒤 또 다른 20대 여성에게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 이춘재에게, 1989년 7월 7일 초등생을 살해하고 다음 범행인 여중생을 살해하는 1990년 11월 15일까지 '1년 4개월'의 범행 공백기(?)가 생긴다.

1990년 복역 중 집행유예...7개월 뒤 '또다시'

이춘재는 1989년 9월 경기 수원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듬해 2월 1심 재판부는 이춘재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두 달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이춘재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이춘재는 그해 11월 다시 살인을 이어갔고, 이번에 희생자는 13살 여중생었다.

강도예비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춘재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범행 공백기가 생겼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춘재는 같은 해 11월 그리고 이듬해 1월과 3월, 4월 범행을 저질렀다.

"군 전역 후 무료함에 스트레스?"

그렇다면 이춘재는 왜 이런 잔혹한 범죄를 이어갔을까?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 상태에서,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다.

또 성범죄와 살인을 이어갔지만,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점차 범행수법도 잔혹해졌으며 가학적인 형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기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의 말이다.

"이춘재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프로파일러들이 면담한 결과, 과거 동생이 초등학교 다닐 때 물에 빠져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도 그런 것을 표출하거나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렇게 성장하다가 군대에서 기갑부대에 배속됐고 자기가 탱크를 몰고 앞으로 갈 때 다른 탱크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면서 대단히 큰 우월감을 맛봤다. 군대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이 나서 한다. 그러다가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욕구 해소와 내재한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에 나섰다."

경찰은 이춘재는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과 교도소 생활만을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과시하고 언론과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살인의 추억? 진실은 드러났지만...

이춘재는 86년부터 91년까지 14명을 살해했다. 그리고 94년 1월 자신의 집으로 처제를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인근 공사장에 유기했다. 이춘재가 유일하게 처벌을 받은 살인사건이다.

경찰의 수사가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마무리됐지만, 이춘재에 대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만료돼 처벌은 못 한다.

이춘재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살인인 피해자 권 모(69) 씨의 시신이 당시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 것은 1991년 4월 3일이다. 이 때문에 권 씨의 시신이 발견된 날로부터 15년이 지난 2006년 4월 2일을 기해 이춘재에 대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만료됐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007년 법 개정 후 25년으로 늘었다가 2015년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완전히 폐지됐다.
  • “3번의 기회 그리고 복역 중 석방”…이춘재 연쇄살인은 계속됐다
    • 입력 2020.07.02 (17:02)
    취재K
“3번의 기회 놓쳤다”
“수사대상자 선정했지만…검거 못 해 죄송”
1990년 복역 중 집행유예 그리고 7개월 뒤 ‘또다시’
“3번의 기회 그리고 복역 중 석방”…이춘재 연쇄살인은 계속됐다
30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이춘재 연쇄살인`은 지난해 7월 당시 사건 현장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가 처제 살해 혐의로 부산 교소도에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1년 만에 경찰은 이춘재가 14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9건의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냈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 분노하는 건 "왜 그렇게 오랫동안(1986년~1991년) 많은 사람들이(14명) 목숨을 잃어야 했느냐?" "경찰은 도대체 뭘 했던 거냐?"일 것이다.

당시 사건에 동원된 경찰 인력은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대상에 오른 용의자만 21,280여 명에 달했다.


"이춘재도 용의선상에 올랐다...그것도 세 차례"

세 차례에 걸쳐 이춘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첫 번째는 미제 6차 사건(1987. 5. 26) 발생 이후인 1987년 7월, 이춘재는 연쇄살인사건과 별건인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리고 경찰의 수사를 받지만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가 더 이상이 진행되지 못했다. 이춘재는 풀려났고 5개월 뒤 87년 12월 한 여고생이 수원의 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두 번째는 미제 8차 사건(1988. 9. 16)을 수사 중이던 1988년 11월, 경찰은 이춘재를 조사했다. 이번에는 이춘재의 '음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이춘재의 음모가 "혈액형과 형태적 소견이 상이하다"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현장음모 혈액형은 'B형'으로 감정되지만,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기 때문에 이춘재는 그렇게 용의선상에서 또 배제됐다.

국과수는 당시의 감정 결과에 대해 "모발의 경우 혈액형 항원이 극미량으로 존재하고 당시 감정기법으로는 항원 분비량의 차이 등 모발 특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감정 결과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1989년 7월 7일에 발생한 초등생 J양 실종사건과 관련해 1990년 1월, 경찰은 이춘재를 수사했다. 하지만 6차 사건에서 발견된 족장(발자국) 255mm와 이춘재의 족장(발자국) 265mm가 불일치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번에도 이춘재는 경찰서에서 풀려나게 된다.

만약 1987년 7월 처음 이춘재가 수사선상에 올랐을 때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그 이후 발생한 8건의 살인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경찰은 당시 이춘재를 수사대상자로 선정해 수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조기에 검거하지 못하고,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은 경찰의 큰 잘못으로, 깊이 반성하고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몇 달에 한 번씩, 짧게는 이틀 만에

이춘재의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4건 발생했다. 1986년 4건, 1987년 3건, 1988년 2건, 1989년 1건, 1990년 1건, 1991년 3건이다. 몇 달에 한 번씩, 짧게는 '이틀'만에 살인했다.

1986년 12월 12일 20대 여성을 살해한 이춘재는 이틀 뒤 또 다른 20대 여성에게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 이춘재에게, 1989년 7월 7일 초등생을 살해하고 다음 범행인 여중생을 살해하는 1990년 11월 15일까지 '1년 4개월'의 범행 공백기(?)가 생긴다.

1990년 복역 중 집행유예...7개월 뒤 '또다시'

이춘재는 1989년 9월 경기 수원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듬해 2월 1심 재판부는 이춘재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두 달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이춘재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이춘재는 그해 11월 다시 살인을 이어갔고, 이번에 희생자는 13살 여중생었다.

강도예비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춘재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범행 공백기가 생겼다. 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춘재는 같은 해 11월 그리고 이듬해 1월과 3월, 4월 범행을 저질렀다.

"군 전역 후 무료함에 스트레스?"

그렇다면 이춘재는 왜 이런 잔혹한 범죄를 이어갔을까?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 상태에서,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다.

또 성범죄와 살인을 이어갔지만,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점차 범행수법도 잔혹해졌으며 가학적인 형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기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의 말이다.

"이춘재는 굉장히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프로파일러들이 면담한 결과, 과거 동생이 초등학교 다닐 때 물에 빠져 사망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도 그런 것을 표출하거나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렇게 성장하다가 군대에서 기갑부대에 배속됐고 자기가 탱크를 몰고 앞으로 갈 때 다른 탱크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면서 대단히 큰 우월감을 맛봤다. 군대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이 나서 한다. 그러다가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욕구 해소와 내재한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에 나섰다."

경찰은 이춘재는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과 교도소 생활만을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과시하고 언론과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살인의 추억? 진실은 드러났지만...

이춘재는 86년부터 91년까지 14명을 살해했다. 그리고 94년 1월 자신의 집으로 처제를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인근 공사장에 유기했다. 이춘재가 유일하게 처벌을 받은 살인사건이다.

경찰의 수사가 첫 사건 발생 34년 만에 마무리됐지만, 이춘재에 대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만료돼 처벌은 못 한다.

이춘재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살인인 피해자 권 모(69) 씨의 시신이 당시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 것은 1991년 4월 3일이다. 이 때문에 권 씨의 시신이 발견된 날로부터 15년이 지난 2006년 4월 2일을 기해 이춘재에 대한 살인죄 공소시효는 만료됐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007년 법 개정 후 25년으로 늘었다가 2015년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완전히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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