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① “아버지 목숨값인데”…최저임금 받던 그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나

입력 2020.07.03 (13:14) 수정 2020.07.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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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여름 같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모인 이들이 들고 있는 알록달록한 피켓이 자꾸만 날아갔습니다. 신한, 하나, 우리, NH...낯익은 은행, 증권사 이름과 함께 라임, DLF, 디스커버리, 이탈리아헬스케어같은 낯선 단어들이 보입니다.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하게 징계하라, 징계하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자리를 잡은 이 사람들은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모펀드'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담는 촬영기자 옆에 서서 문득 '너무 춥다' 생각할 때쯤 인근 직장인처럼 보이는 두어 명이 제 뒤를 지나갔습니다.

"뭐야?" "있잖아, 사모펀드." "몰라,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거?" "응, 돈 날렸나 봐." "우리 얘기 아니다 야."

1. 사모펀드 하는 부자?…"아버지의 목숨값이었어요."

박OO 씨는 병원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비정규직으로 일했습니다. 월급 받고 적금 붓고 여느 직장인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보상금과 보험 등으로 5억여 원의 돈을 남겼고 그녀는 뜻밖에도 은행에서 눈독 들인 VIP 고객이 됐습니다. 그리고 박 씨의 '사모펀드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5억 2천만 원을 가진 투자자, '사랑하는 고객님'이 된 그녀에게 하나은행 PB는 DLF라는 사모펀드 상품을 권했습니다.


줄줄이 일어난 사모펀드 사고의 서막이었던 DLF 사태, 이 펀드는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입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팔았는데 미국과 영국CMS, 독일 국채수익률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사모펀드입니다. 즉, 해당 국가들의 금리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나는 펀드입니다. 금리가 기준선보다 떨어지면 원금의 최대 100%까지도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3,243여 명에게 7,950억 원어치가 팔렸습니다. 코로나19로 세계 금융시장이 마비되면서 하나은행 DLF의 경우 가입자 1,400여 명의 원금 손실률이 80%에 육박했습니다.

상담에서 박 씨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연 3~4% 수준의 수익률,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으니까 이자를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자는 적지만 대신 안전한, 원금은 안 까먹는 그런 상품이라는 겁니다. 겁이 난 그녀가 안전하냐고 몇 번이나 묻자 PB는 장담했다고 합니다. 100% 안전하다고.

울다가 고함을 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체념하듯 얘기하던 그녀의 말을 전해드립니다.

"이 돈을 목숨값으로 남기셨는데 저는 아무 지식도 없으니까 하나은행에 맡긴 건데, 단 1년 만에 날렸습니다. 아빠가 한 푼도 못 쓰고 가신 돈을.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하나은행 본사 사람들은 모든 거는 금감원을 가라…"

2. '불완전판매' 인정하라

문제가 된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이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부분은 바로 '불완전판매'입니다.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팔 때는 상품의 구조나 자금 운용 방식, 원금의 손실 여부 등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은행에서 사모펀드 가입을 권할 때 '원금 손실이 없다고 했다','100% 안전하다고 했다'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즉,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불완전판매를 했기 때문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면 금융투자업자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이 녹취나 문자메시지 등의 증거자료를 내놓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문서 위조 등의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입증이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가 받은 메시지‘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가 받은 메시지

피해자 : "가입 조건이라는 건 이탈리아 정부가 망하지 않으면 그냥 100% 상환된다. 그 설명이 다였어요. 카톡으로도 그렇게 보여줬고 통장에도 만기가 1년인 거로 썼는데 알고 보니까 2년, 3년짜리였는데."

70대 할아버지의 노후 자금, 40대 부부의 내 집 마련 준비금, 50대 중소기업 사장님의 설비 구입비...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온갖 돈의 주인들이 이날 금융감독원 앞에 모였습니다. 금감원이 피해액 1조 6천억 규모, '라임 사태'의 일부인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위원회를 여는 날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사모펀드]② 사모펀드에 자유 준 금융위의 전수조사 “시간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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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펀드]① “아버지 목숨값인데”…최저임금 받던 그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나
    • 입력 2020-07-03 13:14:22
    • 수정2020-07-04 19:21:01
    취재K
6월 30일, 여름 같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모인 이들이 들고 있는 알록달록한 피켓이 자꾸만 날아갔습니다. 신한, 하나, 우리, NH...낯익은 은행, 증권사 이름과 함께 라임, DLF, 디스커버리, 이탈리아헬스케어같은 낯선 단어들이 보입니다.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하게 징계하라, 징계하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 자리를 잡은 이 사람들은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사모펀드'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담는 촬영기자 옆에 서서 문득 '너무 춥다' 생각할 때쯤 인근 직장인처럼 보이는 두어 명이 제 뒤를 지나갔습니다.

"뭐야?" "있잖아, 사모펀드." "몰라, 돈 많은 사람이 하는 거?" "응, 돈 날렸나 봐." "우리 얘기 아니다 야."

1. 사모펀드 하는 부자?…"아버지의 목숨값이었어요."

박OO 씨는 병원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비정규직으로 일했습니다. 월급 받고 적금 붓고 여느 직장인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보상금과 보험 등으로 5억여 원의 돈을 남겼고 그녀는 뜻밖에도 은행에서 눈독 들인 VIP 고객이 됐습니다. 그리고 박 씨의 '사모펀드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5억 2천만 원을 가진 투자자, '사랑하는 고객님'이 된 그녀에게 하나은행 PB는 DLF라는 사모펀드 상품을 권했습니다.


줄줄이 일어난 사모펀드 사고의 서막이었던 DLF 사태, 이 펀드는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입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팔았는데 미국과 영국CMS, 독일 국채수익률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사모펀드입니다. 즉, 해당 국가들의 금리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나는 펀드입니다. 금리가 기준선보다 떨어지면 원금의 최대 100%까지도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3,243여 명에게 7,950억 원어치가 팔렸습니다. 코로나19로 세계 금융시장이 마비되면서 하나은행 DLF의 경우 가입자 1,400여 명의 원금 손실률이 80%에 육박했습니다.

상담에서 박 씨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연 3~4% 수준의 수익률, 정기예금보다 조금 더 높으니까 이자를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자는 적지만 대신 안전한, 원금은 안 까먹는 그런 상품이라는 겁니다. 겁이 난 그녀가 안전하냐고 몇 번이나 묻자 PB는 장담했다고 합니다. 100% 안전하다고.

울다가 고함을 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체념하듯 얘기하던 그녀의 말을 전해드립니다.

"이 돈을 목숨값으로 남기셨는데 저는 아무 지식도 없으니까 하나은행에 맡긴 건데, 단 1년 만에 날렸습니다. 아빠가 한 푼도 못 쓰고 가신 돈을.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하나은행 본사 사람들은 모든 거는 금감원을 가라…"

2. '불완전판매' 인정하라

문제가 된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이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부분은 바로 '불완전판매'입니다.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상품을 팔 때는 상품의 구조나 자금 운용 방식, 원금의 손실 여부 등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은행에서 사모펀드 가입을 권할 때 '원금 손실이 없다고 했다','100% 안전하다고 했다'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즉,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불완전판매를 했기 때문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면 금융투자업자는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입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부 피해자들이 녹취나 문자메시지 등의 증거자료를 내놓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문서 위조 등의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입증이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가 받은 메시지
피해자 : "가입 조건이라는 건 이탈리아 정부가 망하지 않으면 그냥 100% 상환된다. 그 설명이 다였어요. 카톡으로도 그렇게 보여줬고 통장에도 만기가 1년인 거로 썼는데 알고 보니까 2년, 3년짜리였는데."

70대 할아버지의 노후 자금, 40대 부부의 내 집 마련 준비금, 50대 중소기업 사장님의 설비 구입비...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온갖 돈의 주인들이 이날 금융감독원 앞에 모였습니다. 금감원이 피해액 1조 6천억 규모, '라임 사태'의 일부인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위원회를 여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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