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골든타임]⑤ “아프면 3~4일 쉬라고?” 법 만든다는데 언제쯤

입력 2020.07.0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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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유아체육 강사인 A씨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체육강습을 나가는 프리랜서입니다. 직원들을 고용해 작은 사무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2월 말부터 모든 수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5월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면서 일부 유치원에서 수업을 재개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수도권발 감염이 확산되면서 다시 수업은 무기한 중단됐습니다. 결국, 사무실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져 짐을 빼야 했습니다.

A씨는 취재진에게 "프리랜서들은 하루를 쉬면 보수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아파도 그냥 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재앙인 만큼 아프면 쉬어야 하는 건 이해하지만, 정부에서도 대책을 세운 다음에 쉬라고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 '확진자 접촉' 이후로 기약 없는 실직

확진자가 나온 수도권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같은 처지입니다.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난 뒤 검사 결과가 음성이어도, 폐쇄된 물류센터가 다시 문을 열 때까지는 다른 물류센터에서도 일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물류센터들이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긴 했지만, 그날그날 계약을 해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휴업수당이나 유급휴가가 있을 리 없습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을까요?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채용사이트에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거나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지원할 수 없다'는 공고문들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진과 만난 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는 "(확진자가 나온 사업장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다른 회사에 취업이 제한되는 건 물론, 일상생활과 경제활동도 모두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 '아프면 3~4일 쉬라'고요? 회사 잘리는데 어떻게 쉬나요

정부가 발표한 '생활 방역' 5대 수칙 중 첫 번째 수칙은 '아프면 3~4일 쉬라'는 겁니다. 하지만 3일 쉬었다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영영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겐 지키기 어려운 수칙일 겁니다. 코로나19에 걸리는 게 누구보다 두려운 사람들도 바로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나 프리랜서들입니다.

정부가 실시한 대국민설문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8,747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민은 가장 지키기 어려운 수칙으로 개인 차원(38.9%)과 사회 구조적 차원(54%)에서 모두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 수칙을 꼽았습니다.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가 해당 수칙이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응답했습니다. ‘쉴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을 묻는 사람들도 가장 많았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5일부터 10일까지 시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화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6개월 동안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13.9%에 해당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응답자의 26.3%가 최근 실직을 경험했다고 답했는데, 이는 정규직(4%)의 6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사내에 '유급병가 제도가 없다'고 응답했고, '열이 나고 콧물이 나도 무급으로 쉬어야 한다면 출근하겠다'고 응답한 비율도 35%가 넘었습니다.


■ "아프면 쉬기"… 법제화·사회적 합의 어디까지?

그래서 아프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 아파서 쉬어도 급여를 주는 '유급병가'와 수당을 받는 '상병수당' 법제화 방안이 논의 중입니다. 두 제도 모두 노동자가 질병으로 일할 수 없을 때,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둘 다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업무상 외의 질병 및 부상에 대한 병가의 경우 법적 규정이 없습니다. 당연히 '유급' 병가에 대한 법적인 규정도 없습니다. 일부 대기업 등에서만 단체 협약을 통해 보장하고 있습니다.

상병수당에 대한 법적 근거는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령이 없어 실질적으로 '없는 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21대 국회에서는 '아프면 쉴 수 있는 법안'들을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상병수당 법제화를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각각 지난달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선 재원 마련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노동계는 "영세 사업장,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사업주에게 업무 외 상병까지 과도한 책임 부담을 유발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사전 검토를 더 자세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아프면 쉬기' 법제화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집단 감염은 계속 나오고 있고 가을, 겨울에는 2차 대유행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차 대유행이 예견된 상황에서 시간이 없다"며 "세부적인 논의는 사후적으로 하더라도, 법안을 통과시키고 세부적인 방안은 예고기간에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면 쉬기'가 제도로 자리 잡는 데에도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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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이 골든타임]⑤ “아프면 3~4일 쉬라고?” 법 만든다는데 언제쯤
    • 입력 2020-07-06 18:42:30
    취재K

■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프리랜서

유아체육 강사인 A씨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고 체육강습을 나가는 프리랜서입니다. 직원들을 고용해 작은 사무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2월 말부터 모든 수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5월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면서 일부 유치원에서 수업을 재개해도 좋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수도권발 감염이 확산되면서 다시 수업은 무기한 중단됐습니다. 결국, 사무실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져 짐을 빼야 했습니다.

A씨는 취재진에게 "프리랜서들은 하루를 쉬면 보수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아파도 그냥 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재앙인 만큼 아프면 쉬어야 하는 건 이해하지만, 정부에서도 대책을 세운 다음에 쉬라고 하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 '확진자 접촉' 이후로 기약 없는 실직

확진자가 나온 수도권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같은 처지입니다.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난 뒤 검사 결과가 음성이어도, 폐쇄된 물류센터가 다시 문을 열 때까지는 다른 물류센터에서도 일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물류센터들이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긴 했지만, 그날그날 계약을 해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휴업수당이나 유급휴가가 있을 리 없습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을까요? 역시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채용사이트에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거나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지원할 수 없다'는 공고문들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진과 만난 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는 "(확진자가 나온 사업장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다른 회사에 취업이 제한되는 건 물론, 일상생활과 경제활동도 모두 제한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 '아프면 3~4일 쉬라'고요? 회사 잘리는데 어떻게 쉬나요

정부가 발표한 '생활 방역' 5대 수칙 중 첫 번째 수칙은 '아프면 3~4일 쉬라'는 겁니다. 하지만 3일 쉬었다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영영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겐 지키기 어려운 수칙일 겁니다. 코로나19에 걸리는 게 누구보다 두려운 사람들도 바로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나 프리랜서들입니다.

정부가 실시한 대국민설문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8,747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민은 가장 지키기 어려운 수칙으로 개인 차원(38.9%)과 사회 구조적 차원(54%)에서 모두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 수칙을 꼽았습니다.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가 해당 수칙이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응답했습니다. ‘쉴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응 방법'을 묻는 사람들도 가장 많았습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5일부터 10일까지 시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화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6개월 동안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13.9%에 해당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응답자의 26.3%가 최근 실직을 경험했다고 답했는데, 이는 정규직(4%)의 6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절반 이상이 사내에 '유급병가 제도가 없다'고 응답했고, '열이 나고 콧물이 나도 무급으로 쉬어야 한다면 출근하겠다'고 응답한 비율도 35%가 넘었습니다.


■ "아프면 쉬기"… 법제화·사회적 합의 어디까지?

그래서 아프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 아파서 쉬어도 급여를 주는 '유급병가'와 수당을 받는 '상병수당' 법제화 방안이 논의 중입니다. 두 제도 모두 노동자가 질병으로 일할 수 없을 때,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둘 다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업무상 외의 질병 및 부상에 대한 병가의 경우 법적 규정이 없습니다. 당연히 '유급' 병가에 대한 법적인 규정도 없습니다. 일부 대기업 등에서만 단체 협약을 통해 보장하고 있습니다.

상병수당에 대한 법적 근거는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는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출산 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령이 없어 실질적으로 '없는 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21대 국회에서는 '아프면 쉴 수 있는 법안'들을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상병수당 법제화를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각각 지난달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선 재원 마련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우선 노동계는 "영세 사업장, 특수고용노동자 등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은 "사업주에게 업무 외 상병까지 과도한 책임 부담을 유발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는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사전 검토를 더 자세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아프면 쉬기' 법제화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겁니다. 하지만 코로나 19 집단 감염은 계속 나오고 있고 가을, 겨울에는 2차 대유행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차 대유행이 예견된 상황에서 시간이 없다"며 "세부적인 논의는 사후적으로 하더라도, 법안을 통과시키고 세부적인 방안은 예고기간에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면 쉬기'가 제도로 자리 잡는 데에도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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