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를 규제하려는 분들에게

입력 2020.07.08 (11:13) 수정 2020.07.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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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잠실아파트를 사려면 주택 거래를 허가받아야?
내 돈 주고 내 아파트 사려는데, 왜 대출을 못 받게 할까?
내가 재건축아파트에 실거주 안 했다고, 새 아파트를 안 준다고?

부동산규제가 심해진다. 보수신문들의 비판도 심해진다. 어느 신문은 ‘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이 열렸다’고 썼다. 규제는 악(Evil)의 대명사가 됐다. 정부는 시장을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을까?

#노태우 대통령은 개인 소유토지의 상한을 둔 택지소유상한제를 실시했다. 가구당 200평이 한도였다. 나라가 내 땅의 소유를 200평으로 제한하다니...

#이명박 대통령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카드회사에 내는 카드 수수료를 금융위원회가 정해주도록 했다. 이 대통령의 정부는 과자회사 사장까지 불러 과잣값을 낮추라고 했다. 나라는 참 많은 것을 간섭하려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규제가 어디까지 선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규제는 선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날 시장의 악이 되고, 나쁘다고 족쇄를 풀었다가 어느 날 다시 악으로 다가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모펀드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본금요건 등을 크게 완화했다. 요즘 한 달이 멀다고 사모펀드가 사고를 친다.

#내가 강남 아파트 사는 것을 정부가 허락하다니?
(사실 2년간 실거주 약속을 하고, 자금조달계획서를 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부는 거창하게 ‘주택거래허가제’라는 이름을 붙여 그럴듯한 권위를 부여하고 보수진영의 반발을 부른다. 김현미 장관은 특히 이런 걸 잘한다)

정부가 사고파는 것을 규제하면 그것은 사회주의일까? 미안하지만 시장에서 사고팔지 못하는 건 수도 없이 많다. 인간도, 인간의 장기도 사고팔 수 없다. 상장이 되면 대주주는 자기 주식조차 마음대로 팔지 못하고, 반려동물의 매매를 금지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대학졸업장도, 의사자격증도 심지어 헌혈증도 사고팔 수 없다.

#정부가 재건축추진 아파트에 실거주 안 했다고, 분양권을 주지 않는다고?

은마아파트는 10채 중 8채에 집주인이 살지 않는다. 대부분 사놓고 재건축을 기다린다. 집이 아니고 사실은 '재건축 펀드'다. 다시 집이 되려면 집주인이 조금이라도 거주하는 게 좋다. 그래서 2년 거주를 의무화했다. 41년 된 아파트에 2년이라도 살아달라는 뜻이다. 만약 내년이라도 은마아파트가 조합 설립을 신청한다면 그때라도 들어가 살면 된다.

(물론 이미 재건축아파트를 매입한 뒤 하루도 실거주하지 않았다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다른 아파트 조합원과의 형평성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규제한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규제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따져보면 1215년 마그나카르타도, 1791 혁명의회가 만든 프랑스 헌법도 (왕의 권한에 대한) 규제다. 그럼 선진국은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규제할까? 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세입자를 집주인이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다. 독일은 ‘특별한 이유’ 없이 세입자의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

프랑스는 세입자가 고령자거나 저소득층인 경우, 나가서 살 집이 확보돼야 집주인이 임대차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내 집인데 한번 들어오면 계속 살다니...)

선진국 대부분의 도시는 공공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임대료 산정에 끼어든다. 뉴욕시에는 임대료를 시민위원회가 결정하는 아파트(rent-regulated apartments)가 줄잡아 100만 채가 있다. 심지어 베를린시는 지난해부터 5년간 임대료를 동결했다.(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은 이미 유럽에서 열려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2년+2년이 지나면 언제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덕분에 우리 세입자들의 평균 거주기간은 3.2년이다(국토부 주거실태조사, 2019년).

이거 말고도 선진국은 주택이라는 재화에 참 지긋지긋하게 간섭을 한다. 퀴즈 하나.


(이쯤 되면 국가가 아니고 강도다.)

※ 참고로 지난해 뉴욕에 사는 내 지인은 우리 돈 7억 원이 안 되는 주택에 3천4백만 원의 재산세를 냈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뉴욕에도 사회주의의 바람이 준동하고 있다.


규제는 형태도 범위도 없다. 사회와 시대가 규정할 뿐이다. 200여 년 전 영국의 아이들은 주 7일, 하루 15시간 가까이 일했다. 그야말로 '존버'다. 논란이 계속됐고 1933년에서야 영국의회는 9세 이하 아동의 노동을 금지했다.

이 규제에 어린이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다수 귀족의 한탄이 이어졌다. 지금 보면 인류사의 '갓띵작'이지만, 그때는 파격적이고 초월적 규제였다.

지금 우리가 하는 규제는 옳은 것일까? 경제학이 이걸 계산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늘 말하지만) 경제학은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나 라면 끓는 물의 온도처럼 분명한 게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경제학 논리에 섞이면서 분석도 예측도 어렵다.

그러니 지금 정부의 규제가 어리석다고 단정하는 이들도 사실은 이 규제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계산하지 못한다. 다만 그들 역시 규제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뿐.(당신이 엉터리 기사를 써도 잘리지 않는 것은, 해고를 어렵게 만든 고용 규제 덕분이다)

정부는 이런저런 원칙을 만든다. 정부가 곧 규제다. 규제가 없다면 정부도 없다. “그런 자유시장은 없다”(어디선가 장하준 교수가 한 말이다). 인간은 규제를 만들면서 안전해졌고, 덕분에 담대해졌다.

그러니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이상을 규제하니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이다. 그런 류의 주장을 허용하기 위해, 또는 방지하기 위해 인류는 이미 수많은 규제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법' 또는 '원칙'이라고 하고, 사회학자들은 '문명의 발전'이라고 한다. 물론 그게 진짜 시장에 최선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Q 끝으로 예시하나.
서울 대치동 A 아파트는 주차장이 부족하다. 값비싼 수입차들이 2중 주차돼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경비인력이 아닌) 어르신들이 고용된다. 밤늦게까지 노출된 공간에서 비싼 차들을 지킨다. 영하 10도가 넘는 밤에도 근무는 계속된다. 우리는 이 고용을 규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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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제를 규제하려는 분들에게
    • 입력 2020-07-08 11:13:50
    • 수정2020-07-08 11:15:21
    취재K
잠실아파트를 사려면 주택 거래를 허가받아야?<br />내 돈 주고 내 아파트 사려는데, 왜 대출을 못 받게 할까?<br />내가 재건축아파트에 실거주 안 했다고, 새 아파트를 안 준다고?
부동산규제가 심해진다. 보수신문들의 비판도 심해진다. 어느 신문은 ‘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이 열렸다’고 썼다. 규제는 악(Evil)의 대명사가 됐다. 정부는 시장을 어디까지 간섭할 수 있을까?

#노태우 대통령은 개인 소유토지의 상한을 둔 택지소유상한제를 실시했다. 가구당 200평이 한도였다. 나라가 내 땅의 소유를 200평으로 제한하다니...

#이명박 대통령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카드회사에 내는 카드 수수료를 금융위원회가 정해주도록 했다. 이 대통령의 정부는 과자회사 사장까지 불러 과잣값을 낮추라고 했다. 나라는 참 많은 것을 간섭하려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규제가 어디까지 선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규제는 선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느 날 시장의 악이 되고, 나쁘다고 족쇄를 풀었다가 어느 날 다시 악으로 다가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모펀드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본금요건 등을 크게 완화했다. 요즘 한 달이 멀다고 사모펀드가 사고를 친다.

#내가 강남 아파트 사는 것을 정부가 허락하다니?
(사실 2년간 실거주 약속을 하고, 자금조달계획서를 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부는 거창하게 ‘주택거래허가제’라는 이름을 붙여 그럴듯한 권위를 부여하고 보수진영의 반발을 부른다. 김현미 장관은 특히 이런 걸 잘한다)

정부가 사고파는 것을 규제하면 그것은 사회주의일까? 미안하지만 시장에서 사고팔지 못하는 건 수도 없이 많다. 인간도, 인간의 장기도 사고팔 수 없다. 상장이 되면 대주주는 자기 주식조차 마음대로 팔지 못하고, 반려동물의 매매를 금지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대학졸업장도, 의사자격증도 심지어 헌혈증도 사고팔 수 없다.

#정부가 재건축추진 아파트에 실거주 안 했다고, 분양권을 주지 않는다고?

은마아파트는 10채 중 8채에 집주인이 살지 않는다. 대부분 사놓고 재건축을 기다린다. 집이 아니고 사실은 '재건축 펀드'다. 다시 집이 되려면 집주인이 조금이라도 거주하는 게 좋다. 그래서 2년 거주를 의무화했다. 41년 된 아파트에 2년이라도 살아달라는 뜻이다. 만약 내년이라도 은마아파트가 조합 설립을 신청한다면 그때라도 들어가 살면 된다.

(물론 이미 재건축아파트를 매입한 뒤 하루도 실거주하지 않았다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다른 아파트 조합원과의 형평성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니 규제한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규제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따져보면 1215년 마그나카르타도, 1791 혁명의회가 만든 프랑스 헌법도 (왕의 권한에 대한) 규제다. 그럼 선진국은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규제할까? 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세입자를 집주인이 마음대로 내보낼 수 없다. 독일은 ‘특별한 이유’ 없이 세입자의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

프랑스는 세입자가 고령자거나 저소득층인 경우, 나가서 살 집이 확보돼야 집주인이 임대차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내 집인데 한번 들어오면 계속 살다니...)

선진국 대부분의 도시는 공공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임대료 산정에 끼어든다. 뉴욕시에는 임대료를 시민위원회가 결정하는 아파트(rent-regulated apartments)가 줄잡아 100만 채가 있다. 심지어 베를린시는 지난해부터 5년간 임대료를 동결했다.(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은 이미 유럽에서 열려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2년+2년이 지나면 언제든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덕분에 우리 세입자들의 평균 거주기간은 3.2년이다(국토부 주거실태조사, 2019년).

이거 말고도 선진국은 주택이라는 재화에 참 지긋지긋하게 간섭을 한다. 퀴즈 하나.


(이쯤 되면 국가가 아니고 강도다.)

※ 참고로 지난해 뉴욕에 사는 내 지인은 우리 돈 7억 원이 안 되는 주택에 3천4백만 원의 재산세를 냈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뉴욕에도 사회주의의 바람이 준동하고 있다.


규제는 형태도 범위도 없다. 사회와 시대가 규정할 뿐이다. 200여 년 전 영국의 아이들은 주 7일, 하루 15시간 가까이 일했다. 그야말로 '존버'다. 논란이 계속됐고 1933년에서야 영국의회는 9세 이하 아동의 노동을 금지했다.

이 규제에 어린이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다수 귀족의 한탄이 이어졌다. 지금 보면 인류사의 '갓띵작'이지만, 그때는 파격적이고 초월적 규제였다.

지금 우리가 하는 규제는 옳은 것일까? 경제학이 이걸 계산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늘 말하지만) 경제학은 아기코끼리의 몸무게나 라면 끓는 물의 온도처럼 분명한 게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경제학 논리에 섞이면서 분석도 예측도 어렵다.

그러니 지금 정부의 규제가 어리석다고 단정하는 이들도 사실은 이 규제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계산하지 못한다. 다만 그들 역시 규제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뿐.(당신이 엉터리 기사를 써도 잘리지 않는 것은, 해고를 어렵게 만든 고용 규제 덕분이다)

정부는 이런저런 원칙을 만든다. 정부가 곧 규제다. 규제가 없다면 정부도 없다. “그런 자유시장은 없다”(어디선가 장하준 교수가 한 말이다). 인간은 규제를 만들면서 안전해졌고, 덕분에 담대해졌다.

그러니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그 이상을 규제하니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이다. 그런 류의 주장을 허용하기 위해, 또는 방지하기 위해 인류는 이미 수많은 규제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법' 또는 '원칙'이라고 하고, 사회학자들은 '문명의 발전'이라고 한다. 물론 그게 진짜 시장에 최선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Q 끝으로 예시하나.
서울 대치동 A 아파트는 주차장이 부족하다. 값비싼 수입차들이 2중 주차돼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경비인력이 아닌) 어르신들이 고용된다. 밤늦게까지 노출된 공간에서 비싼 차들을 지킨다. 영하 10도가 넘는 밤에도 근무는 계속된다. 우리는 이 고용을 규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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