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바가지 쓰는 조달청 ‘나라장터’ 안 쓰겠다”

입력 2020.07.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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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공공조달 독점한 '나라장터'
물품 더 비싸고 수수료도 수백억
지자체 "세금으로 바가지 쓰는 꼴"
감사원 지적에도 개선 안 돼
경기도 "공정조달 시스템 자체 개발"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카메라 렌즈 하나가 있습니다. 초점거리 55~250mm의 A 제조사 제품입니다. 시중가는 18만 9,190원입니다.

이 제품을 지자체가 조달하려면 31만 원에 사야 합니다. 시중가의 두 배 가까운 '바가지'를 쓰는 셈입니다. 국민들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하나 사려면 쿠폰 할인에 신용카드 할인에 최대한 할인받고 주문을 합니다. 하물며 국민의 세금으로 물품을 조달하는데 1원이라도 더 싸게 사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으로 지자체가 바가지를 쓰는 이 황당한 상황은 왜 생기는 걸까요?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

공공조달 독점하는 '나라장터'

바로 '나라장터'가 공공조달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은 지자체가 물품 조달을 할 경우 '나라장터'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금이 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경기도가 지난 4월부터 두 달 동안 나라장터에 등록된 동일한 물품 가격과 시중 가격을 비교한 결과 가격비교가 가능한 646개 제품 가운데 90개(13.9%)가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규격 바꿔서 '비교 불가'

그런데 `나라장터`에 등록된 물품은 6,129개입니다. 대부분은 가격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조달청이 시중에 판매되는 물품의 규격을 바꿔서 '나라장터'에 등록하기 때문입니다. 규격이 바뀌면 다른 상품이 되고 자연히 시중 제품과 가격비교가 어려워집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쓰는지조차도 모르게 물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원도 지난 2018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바가지' 쓰고 사는데 수수료도 내라?

지자체 입장에서는 또 억울할 일이 있습니다. 싸지도 않은 나라장터를 이용하는데 '조달 수수료' 명목으로 수백억씩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와 경기지역 지자체, 공공기관이 최근 3년간 조달청에 낸 '조달 수수료'만 246억 원입니다.

해마다 조달청이 받는 이 '조달 수수료'는 800억 원이 넘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888억 원에 달했습니다. 지자체는 물품이 싸지도 않고 또 선택권도 없는데 '나라장터'를 이용한다는 명목으로 수백억씩 내야 합니다.


막대한 조달 수수료, 어디에 쓰이나?

이 막대한 조달 수수료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지만, 조달청이 지자체를 위해 이 조달 수수료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조달청 운영경비 등으로 사용됩니다. 경기도는 "(조달 수수료가) 대부분 조달청 자체 운영비로 쓰이는 등 지방정부의 희생으로 조달청이 굴러가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나라장터의 문제점은 경기도만이 주장했던 게 아닙니다.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이미 수차례 지적했던 사안입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중앙조달을 강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슬로바키아뿐입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조달가격 정책은 최저가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또 나라장터로 공공조달을 일원화해 비리를 근절하는 목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 물품의 질에 대한 논란 등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경기도, "더 공정한 새 장터 만든다"

현재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게 지자체의 현실이지만 경기도가 최근 여기에 대안을 내놨습니다. 나라장터의 독점은 공정하지 않다며 조달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겠다는 겁니다. 나라장터 대신 더 공정한 '새 장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조달청 나라장터가 시장 단가보다 비싸게 판매하면 지방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 가격에 구매해야 한다"며 이는 "나라장터의 독점적 지위에 따른 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지사는 "이제 공공조달 시스템도 공정하게 바뀌어야 한다"며 "조달청은 관리·감독의 기능에 충실하고 지방정부에 운영 권한을 맡기면 자율 경쟁을 통해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정조달시스템 개발 계획 발표 기자회견(지난 2일)공정조달시스템 개발 계획 발표 기자회견(지난 2일)

시장경쟁으로 공정 조달, 수익은 배분

경기도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정부나 지방정부 출연기관, 지방공기업의 선택지를 늘려 공정한 조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정 조달시스템 자체 개발, 운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경기도 공정조달시스템'은 지방분권과 지방재정 독립, 조달시장 개방 경쟁체제 구축이 목표입니다. 시장 단가를 적용해 자율 경쟁이 반영된 값싸고 좋은 제품을 조달하겠다는 겁니다.

입찰담합, 부정당 업체 정보는 데이터로 관리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걸러낼 계획입니다. 자체 조달 시스템을 통한 수익은 공동운영에 참여하는 기초 지자체 등과 수익을 공유하고 조달 수수료를 많이 납부한 지자체는 수익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중앙부처 협의…2022년 초 시범 운영 목표

경기도는 올해 추경을 통해 시스템 구축 용역비를 확보하고 기획재정부와 조달청 등 관련 중앙부처의 협의와 법령개정을 거쳐 오는 2022년 시범 운영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공정조달시스템 운영을 맡을 '공정조달기구'의 본원은 경기 북부에 설립하고 남부에 사업소를 설치해 지역 간 균형도 배려했습니다.

지자체 등이 '세금으로 바가지'를 쓰는 행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도가 시도하는 '공정한 새 장터'가 오랜 관행을 깰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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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금으로 바가지 쓰는 조달청 ‘나라장터’ 안 쓰겠다”
    • 입력 2020-07-08 15:31:33
    취재K
공공조달 독점한 '나라장터' <br />물품 더 비싸고 수수료도 수백억 <br />지자체 "세금으로 바가지 쓰는 꼴" <br />감사원 지적에도 개선 안 돼 <br />경기도 "공정조달 시스템 자체 개발"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카메라 렌즈 하나가 있습니다. 초점거리 55~250mm의 A 제조사 제품입니다. 시중가는 18만 9,190원입니다.

이 제품을 지자체가 조달하려면 31만 원에 사야 합니다. 시중가의 두 배 가까운 '바가지'를 쓰는 셈입니다. 국민들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하나 사려면 쿠폰 할인에 신용카드 할인에 최대한 할인받고 주문을 합니다. 하물며 국민의 세금으로 물품을 조달하는데 1원이라도 더 싸게 사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으로 지자체가 바가지를 쓰는 이 황당한 상황은 왜 생기는 걸까요?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
공공조달 독점하는 '나라장터'

바로 '나라장터'가 공공조달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제5조 2항은 지자체가 물품 조달을 할 경우 '나라장터'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세금이 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경기도가 지난 4월부터 두 달 동안 나라장터에 등록된 동일한 물품 가격과 시중 가격을 비교한 결과 가격비교가 가능한 646개 제품 가운데 90개(13.9%)가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규격 바꿔서 '비교 불가'

그런데 `나라장터`에 등록된 물품은 6,129개입니다. 대부분은 가격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조달청이 시중에 판매되는 물품의 규격을 바꿔서 '나라장터'에 등록하기 때문입니다. 규격이 바뀌면 다른 상품이 되고 자연히 시중 제품과 가격비교가 어려워집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바가지'를 쓰는지조차도 모르게 물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원도 지난 2018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바가지' 쓰고 사는데 수수료도 내라?

지자체 입장에서는 또 억울할 일이 있습니다. 싸지도 않은 나라장터를 이용하는데 '조달 수수료' 명목으로 수백억씩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와 경기지역 지자체, 공공기관이 최근 3년간 조달청에 낸 '조달 수수료'만 246억 원입니다.

해마다 조달청이 받는 이 '조달 수수료'는 800억 원이 넘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888억 원에 달했습니다. 지자체는 물품이 싸지도 않고 또 선택권도 없는데 '나라장터'를 이용한다는 명목으로 수백억씩 내야 합니다.


막대한 조달 수수료, 어디에 쓰이나?

이 막대한 조달 수수료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지만, 조달청이 지자체를 위해 이 조달 수수료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조달청 운영경비 등으로 사용됩니다. 경기도는 "(조달 수수료가) 대부분 조달청 자체 운영비로 쓰이는 등 지방정부의 희생으로 조달청이 굴러가는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나라장터의 문제점은 경기도만이 주장했던 게 아닙니다.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이미 수차례 지적했던 사안입니다.

OECD 국가 가운데 중앙조달을 강제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슬로바키아뿐입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조달가격 정책은 최저가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또 나라장터로 공공조달을 일원화해 비리를 근절하는 목적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 물품의 질에 대한 논란 등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 페이스북
경기도, "더 공정한 새 장터 만든다"

현재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나라장터를 이용하는 게 지자체의 현실이지만 경기도가 최근 여기에 대안을 내놨습니다. 나라장터의 독점은 공정하지 않다며 조달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겠다는 겁니다. 나라장터 대신 더 공정한 '새 장터'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조달청 나라장터가 시장 단가보다 비싸게 판매하면 지방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 가격에 구매해야 한다"며 이는 "나라장터의 독점적 지위에 따른 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지사는 "이제 공공조달 시스템도 공정하게 바뀌어야 한다"며 "조달청은 관리·감독의 기능에 충실하고 지방정부에 운영 권한을 맡기면 자율 경쟁을 통해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정조달시스템 개발 계획 발표 기자회견(지난 2일)
시장경쟁으로 공정 조달, 수익은 배분

경기도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정부나 지방정부 출연기관, 지방공기업의 선택지를 늘려 공정한 조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정 조달시스템 자체 개발, 운영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경기도 공정조달시스템'은 지방분권과 지방재정 독립, 조달시장 개방 경쟁체제 구축이 목표입니다. 시장 단가를 적용해 자율 경쟁이 반영된 값싸고 좋은 제품을 조달하겠다는 겁니다.

입찰담합, 부정당 업체 정보는 데이터로 관리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걸러낼 계획입니다. 자체 조달 시스템을 통한 수익은 공동운영에 참여하는 기초 지자체 등과 수익을 공유하고 조달 수수료를 많이 납부한 지자체는 수익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중앙부처 협의…2022년 초 시범 운영 목표

경기도는 올해 추경을 통해 시스템 구축 용역비를 확보하고 기획재정부와 조달청 등 관련 중앙부처의 협의와 법령개정을 거쳐 오는 2022년 시범 운영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공정조달시스템 운영을 맡을 '공정조달기구'의 본원은 경기 북부에 설립하고 남부에 사업소를 설치해 지역 간 균형도 배려했습니다.

지자체 등이 '세금으로 바가지'를 쓰는 행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도가 시도하는 '공정한 새 장터'가 오랜 관행을 깰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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