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자살 알고 있냐”…입주민들 갑질 또 갑질

입력 2020.07.14 (22:43) 수정 2020.07.15 (15: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얀색 국화꽃으로 가득했던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두 달 전,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을 못 이겨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가 머물던 곳이죠. 가해자를 꼭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했던 그의 울음 섞인 유언도 떠오르실 텐데요. 며칠 전, 강릉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최 씨 사건을 입에 담으며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폭언과 협박을 가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서울 경비원 자살 알고 있냐"…욕설과 반말 폭언 일삼아

늦은 새벽, 손전등을 들고 아파트 단지로 나선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직원늦은 새벽, 손전등을 들고 아파트 단지로 나선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직원

지난 11일 토요일, 새벽 4시도 채 안 된 야심한 밤이었습니다.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휴게 시간인 관리사무소 직원은 일찍이 잠들었을 시간입니다. 관리사무소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술에 만취한 채로 관리사무소 문을 두드린 남성은, 당직실에서 잠을 청하던 직원 B 씨를 깨워 다짜고짜 택시비 만 원을 대신 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현금이 없어 택시 기사 연락처를 받아놨더니, 이번에는 열쇠가 없어 집에 못 들어간다고 하는 입주민 A 씨. 그럼 잠깐 쉬었다 가라며 안으로 들여오자, 그는 대뜸 다른 관리사무소 직원의 며칠 전 근무 태도를 핑계로 폭언을 내뱉었습니다.

"서울에는 뭐 XX, 쥐어터지고 XX해서 문제가 됐잖아, 그죠? 자살하고. 여기는, 우리 여기 관리실이 완전히 더 '갑'이라니까." 입주민 A 씨의 '갑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동안 내린 비로 낙엽이 쌓이는 등 지저분해진 집수정들을 청소했는데, 그 작업이 제대로 안 돼 있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직원 B 씨는 아파트 단지 내 46개 집수정을 모두 깨끗이 치웠고, 못 믿겠으면 날이 밝은 뒤 확인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A 씨는 B 씨를 데리고 단지를 돌면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과 함께 "나하고 붙을 자신 있느냐", "나이가 몇이냐", "월급을 2백만 원 넘게 받으면서 하는 게 없다"며 폭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큰 소란을 피워 입주민 몇몇이 이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숨도 못 잔 B 씨가 다시 순찰을 가야 하는 새벽 5시가 돼서야, 입주민의 갑질은 종료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A 씨가 며칠 전 일이라며 근무 태도를 못마땅해 했던 관리사무소 직원 C 씨. 그가 겪었던 바로 그 날의 일입니다. C 씨는 아파트 동 대표인 또 다른 입주민에게 갑질을 당했습니다. 역시 휴게 시간을 앞둔 밤 11시 40분쯤. 취객 등이 난입할까 봐 문을 잠가놨더니 "왜 잠갔느냐"라며 입주민은 언성을 높였습니다. "야"라고 부르는 건 물론, 직원이 보고 있던 TV도 끄라며 반말과 명령조로 일관했습니다. 마치 '하인' 다루듯 대했다고 말하는 C 씨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 "눈만 감으면 '그날' 그려져"…고통 계속되는 관리사무소 직원들


이곳은 홀몸 노인들이 주로 사는 강릉의 작은 아파트입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아파트경비와 관리 업무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까지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만 3년을 일했던 B 씨는, 반가운 마음으로 올해 3월 복귀했던 터였습니다.

다른 동료들과도, 주민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만 감으면 그날의 악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고 합니다. 일흔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B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직원 C 씨도 분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라며, 폭언과 갑질을 못 견뎌 직장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들은 갑질 주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입주민 A 씨는 "직원이 먼저 욕해서 그랬다"며 발뺌하고, 동 대표인 입주민은 아예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입니다. 피해 직원들은 인권위와 노동청, 경찰 등 가능한 한 모든 기관에 이 문제를 제기할 계획입니다. 더는 어느 아파트 경비실, 관리사무소에도 이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경비원 자살 알고 있냐”…입주민들 갑질 또 갑질
    • 입력 2020-07-14 22:43:07
    • 수정2020-07-15 15:53:23
    취재K
하얀색 국화꽃으로 가득했던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두 달 전,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을 못 이겨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경비원, 고(故) 최희석 씨가 머물던 곳이죠. 가해자를 꼭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했던 그의 울음 섞인 유언도 떠오르실 텐데요. 며칠 전, 강릉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최 씨 사건을 입에 담으며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폭언과 협박을 가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서울 경비원 자살 알고 있냐"…욕설과 반말 폭언 일삼아 늦은 새벽, 손전등을 들고 아파트 단지로 나선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직원 지난 11일 토요일, 새벽 4시도 채 안 된 야심한 밤이었습니다.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휴게 시간인 관리사무소 직원은 일찍이 잠들었을 시간입니다. 관리사무소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술에 만취한 채로 관리사무소 문을 두드린 남성은, 당직실에서 잠을 청하던 직원 B 씨를 깨워 다짜고짜 택시비 만 원을 대신 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현금이 없어 택시 기사 연락처를 받아놨더니, 이번에는 열쇠가 없어 집에 못 들어간다고 하는 입주민 A 씨. 그럼 잠깐 쉬었다 가라며 안으로 들여오자, 그는 대뜸 다른 관리사무소 직원의 며칠 전 근무 태도를 핑계로 폭언을 내뱉었습니다. "서울에는 뭐 XX, 쥐어터지고 XX해서 문제가 됐잖아, 그죠? 자살하고. 여기는, 우리 여기 관리실이 완전히 더 '갑'이라니까." 입주민 A 씨의 '갑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동안 내린 비로 낙엽이 쌓이는 등 지저분해진 집수정들을 청소했는데, 그 작업이 제대로 안 돼 있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직원 B 씨는 아파트 단지 내 46개 집수정을 모두 깨끗이 치웠고, 못 믿겠으면 날이 밝은 뒤 확인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A 씨는 B 씨를 데리고 단지를 돌면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과 함께 "나하고 붙을 자신 있느냐", "나이가 몇이냐", "월급을 2백만 원 넘게 받으면서 하는 게 없다"며 폭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큰 소란을 피워 입주민 몇몇이 이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숨도 못 잔 B 씨가 다시 순찰을 가야 하는 새벽 5시가 돼서야, 입주민의 갑질은 종료됐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A 씨가 며칠 전 일이라며 근무 태도를 못마땅해 했던 관리사무소 직원 C 씨. 그가 겪었던 바로 그 날의 일입니다. C 씨는 아파트 동 대표인 또 다른 입주민에게 갑질을 당했습니다. 역시 휴게 시간을 앞둔 밤 11시 40분쯤. 취객 등이 난입할까 봐 문을 잠가놨더니 "왜 잠갔느냐"라며 입주민은 언성을 높였습니다. "야"라고 부르는 건 물론, 직원이 보고 있던 TV도 끄라며 반말과 명령조로 일관했습니다. 마치 '하인' 다루듯 대했다고 말하는 C 씨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 "눈만 감으면 '그날' 그려져"…고통 계속되는 관리사무소 직원들 이곳은 홀몸 노인들이 주로 사는 강릉의 작은 아파트입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아파트경비와 관리 업무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까지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만 3년을 일했던 B 씨는, 반가운 마음으로 올해 3월 복귀했던 터였습니다. 다른 동료들과도, 주민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만 감으면 그날의 악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고 합니다. 일흔을 넘긴 적지 않은 나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B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직원 C 씨도 분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이라며, 폭언과 갑질을 못 견뎌 직장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입주민들은 갑질 주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입주민 A 씨는 "직원이 먼저 욕해서 그랬다"며 발뺌하고, 동 대표인 입주민은 아예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입니다. 피해 직원들은 인권위와 노동청, 경찰 등 가능한 한 모든 기관에 이 문제를 제기할 계획입니다. 더는 어느 아파트 경비실, 관리사무소에도 이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