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짐 싸는 뉴욕타임스, 한국 오는 까닭은?

입력 2020.07.1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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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중국 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을 강하게 비난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격의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4일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끝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아울러 홍콩 보안법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과 은행을 제재하는 법안에도 서명했습니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강행하면 홍콩에 부여하던 특별지위를 더는 제공하지 않겠다던 엄포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간 14일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행정명령 등에 서명한 뒤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출처=AP 연합뉴스]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간 14일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행정명령 등에 서명한 뒤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출처=AP 연합뉴스]

중국 정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오늘(15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에 대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자 홍콩 사무와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라고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를 계속 고집할 경우 중국은 반드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는 위협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강대국 간에 본격적인 주고받기식 보복전이 시작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가 오늘 홍콩 사무소 일부를 한국의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외국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점쳐져 왔는데, 미국 뉴욕타임스가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홍콩은 외국 기업에 대한 개방성과 중국 본토에 대한 근접성 등으로 인해 그동안 많은 일반적인 외국 기업뿐만 아니라 영어권 언론사들의 아시아 본부 역할을 해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홍콩 민주화 세력과 야당을 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홍콩보안법이 아시아 언론 중추로서의 홍콩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홍콩에 주재하고 있는 뉴욕타임스 직원들은 실제로 홍콩 당국으로부터 취업허가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신문은 밝혔습니다. 외국언론의 기자들에 대한 항시적인 감시, 까다로운 취업허가 등의 장애물들이 중국 본토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통상적인 일이지만, 홍콩에서는 과거에 이 같은 일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 신문의 설명입니다.

"우리는 비상사태 대책(contingency plan)을 마련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뉴욕타임스의 편집인과 경영진들이 현지시간 14일 사내 직원들에게 발송한 메모에서 한 말입니다.

지난 1일 본격 시행된 홍콩보안법은 중국이나 홍콩에 적대적인 활동을 하는 개인과 조직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국가 기밀이나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이나 외국 조직 등에 제공하는 것도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홍콩에서는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광범위하고 반민주적인 규제입니다. '적대적인 활동'은 우리나라의 과거 '막걸리 보안법'의 추억을 돌이켜보면 그것의 해석과 적용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홍콩에서 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취재하던 언론사 기자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출처=AP 연합뉴스] 지난 1일 홍콩에서 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취재하던 언론사 기자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출처=AP 연합뉴스]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하는 서방 언론사들이 홍콩보안법 시행에 얼마나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뉴욕타임스의 결정을 통해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도 내용이 중국 정부에 적대적이었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해당 언론사나 기자가 철퇴를 맞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올 초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취재활동을 하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3명을 추방한 적이 있는데, 이제 이 같은 일이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뜩이나 미국 정부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과 중국의 맞대응식 보복 천명으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 중국 정부가 보여주기 식으로 홍콩 주재 서방 언론사 추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입니다.

지난 1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보안법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을 향해 홍콩 경찰이 후추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있다.[출처=AFP 연합뉴스]지난 1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보안법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을 향해 홍콩 경찰이 후추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있다.[출처=AF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 홍콩 사무소는 크게 두 부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을 커버하는 기자와 특파원들의 본부 및 인터내셔널판 인쇄를 담당하는 부문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운영을 담당하는 디지털뉴스 부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뉴스 서비스를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그리고 홍콩 등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뉴욕과 런던이 잠을 자는 밤 시간대에는 낮에 깨어나 활동하는 홍콩에서 디지털뉴스 운영을 커버하는 식입니다.

뉴욕타임스가 홍콩에서 한국의 서울로 이전하는 기능은 바로 이 디지털뉴스 부문입니다. 뉴욕타임스 설명으로는 홍콩 주재 직원의 약 3분의 1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홍콩 사무소에서 짐을 싸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시기는 내년 중이 될 것이라고 신문은 밝혔습니다.

다만 홍콩을 커버하는 기자들은 홍콩에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홍콩을 지켜볼 뿐만 아니라 홍콩이 겪게 될 변화를 더욱 많이 보도하려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홍콩을 대신할 후보지로 서울 말고도 일본 도쿄와 태국 방콕, 싱가포르 등을 검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도시 가운데 "외국 기업과 독립적인 언론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그리고 아시아 주요 뉴스에서의 중심적인 역할 등에서 서울이 매력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의 높아진 위상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홍콩에 대규모 인력을 운용하고 있는 미국 블룸버그뉴스와 CNN방송은 당장 홍콩 철수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첫 물꼬를 튼 이상 외국 기업, 특히 서방 언론사 중에 제2, 제3의 철수 결정이 뒤따르더라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미국 유력 언론사의 서울 이전을 마냥 반갑게 바라볼 수만은 없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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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서 짐 싸는 뉴욕타임스, 한국 오는 까닭은?
    • 입력 2020-07-15 16:44:32
    취재K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타임스 본사

중국 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강행을 강하게 비난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격의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14일 홍콩에 대한 특별대우를 끝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아울러 홍콩 보안법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과 은행을 제재하는 법안에도 서명했습니다.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강행하면 홍콩에 부여하던 특별지위를 더는 제공하지 않겠다던 엄포를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간 14일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행정명령 등에 서명한 뒤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출처=AP 연합뉴스]
중국 정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오늘(15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에 대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자 홍콩 사무와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라고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를 계속 고집할 경우 중국은 반드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는 위협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강대국 간에 본격적인 주고받기식 보복전이 시작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가 오늘 홍콩 사무소 일부를 한국의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외국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점쳐져 왔는데, 미국 뉴욕타임스가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홍콩은 외국 기업에 대한 개방성과 중국 본토에 대한 근접성 등으로 인해 그동안 많은 일반적인 외국 기업뿐만 아니라 영어권 언론사들의 아시아 본부 역할을 해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홍콩 민주화 세력과 야당을 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홍콩보안법이 아시아 언론 중추로서의 홍콩의 앞날에 불확실성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홍콩에 주재하고 있는 뉴욕타임스 직원들은 실제로 홍콩 당국으로부터 취업허가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신문은 밝혔습니다. 외국언론의 기자들에 대한 항시적인 감시, 까다로운 취업허가 등의 장애물들이 중국 본토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통상적인 일이지만, 홍콩에서는 과거에 이 같은 일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 신문의 설명입니다.

"우리는 비상사태 대책(contingency plan)을 마련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뉴욕타임스의 편집인과 경영진들이 현지시간 14일 사내 직원들에게 발송한 메모에서 한 말입니다.

지난 1일 본격 시행된 홍콩보안법은 중국이나 홍콩에 적대적인 활동을 하는 개인과 조직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국가 기밀이나 국가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이나 외국 조직 등에 제공하는 것도 처벌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홍콩에서는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광범위하고 반민주적인 규제입니다. '적대적인 활동'은 우리나라의 과거 '막걸리 보안법'의 추억을 돌이켜보면 그것의 해석과 적용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얼토당토않은 일인지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홍콩에서 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취재하던 언론사 기자들이 경찰의 물대포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출처=AP 연합뉴스]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하는 서방 언론사들이 홍콩보안법 시행에 얼마나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지 뉴욕타임스의 결정을 통해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보도 내용이 중국 정부에 적대적이었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해당 언론사나 기자가 철퇴를 맞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올 초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취재활동을 하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3명을 추방한 적이 있는데, 이제 이 같은 일이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뜩이나 미국 정부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과 중국의 맞대응식 보복 천명으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지금, 중국 정부가 보여주기 식으로 홍콩 주재 서방 언론사 추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지 말라는 법은 없어 보입니다.

지난 1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보안법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을 향해 홍콩 경찰이 후추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있다.[출처=AF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 홍콩 사무소는 크게 두 부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을 커버하는 기자와 특파원들의 본부 및 인터내셔널판 인쇄를 담당하는 부문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운영을 담당하는 디지털뉴스 부문입니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뉴스 서비스를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그리고 홍콩 등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뉴욕과 런던이 잠을 자는 밤 시간대에는 낮에 깨어나 활동하는 홍콩에서 디지털뉴스 운영을 커버하는 식입니다.

뉴욕타임스가 홍콩에서 한국의 서울로 이전하는 기능은 바로 이 디지털뉴스 부문입니다. 뉴욕타임스 설명으로는 홍콩 주재 직원의 약 3분의 1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홍콩 사무소에서 짐을 싸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시기는 내년 중이 될 것이라고 신문은 밝혔습니다.

다만 홍콩을 커버하는 기자들은 홍콩에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홍콩을 지켜볼 뿐만 아니라 홍콩이 겪게 될 변화를 더욱 많이 보도하려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홍콩을 대신할 후보지로 서울 말고도 일본 도쿄와 태국 방콕, 싱가포르 등을 검토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도시 가운데 "외국 기업과 독립적인 언론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 그리고 아시아 주요 뉴스에서의 중심적인 역할 등에서 서울이 매력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의 높아진 위상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홍콩에 대규모 인력을 운용하고 있는 미국 블룸버그뉴스와 CNN방송은 당장 홍콩 철수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첫 물꼬를 튼 이상 외국 기업, 특히 서방 언론사 중에 제2, 제3의 철수 결정이 뒤따르더라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미국 유력 언론사의 서울 이전을 마냥 반갑게 바라볼 수만은 없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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