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 가정도 혐오와 차별뿐”…청소년 성소수자의 ‘눈물’

입력 2020.07.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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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가정과 학교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청소년 성소수자
결국 탈가정·탈학교…10대 때부터 사회 밖으로 밀려나
차별금지법이 첫걸음…"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메시지"

여기 14년의 역사를 가진 법안이 있습니다. 발의만 하면 각종 집회와 시위가 열리고, 반대와 논란 속에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법. 지난달 29일 정의당이 발의한 이른바 '포괄적 차별금지법'입니다.

2020년에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미래통합당 일부 국회의원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보호법'이자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조장법'에 불과하다"라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국회 청원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 넘겨졌습니다.

성소수자라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10대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이 상황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뿌리 깊은 차별과 좌절감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일상은 단지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깨지고 뒤엉킵니다.

"친했던 친구들이 도리어 따돌림에 나서"

A 군은 중학생 때,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전교에 자신의 성 정체성이 알려졌고 혐오 발언과 따돌림이 이어졌습니다. 적대적인 시선과 욕설을 견뎌야 했고, 어지럽혀진 책상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혐오는 A 군의 일상 곳곳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끝없는 괴롭힘에 결석도 잦아졌습니다. 선생님은 "네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던데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라며 오히려 A 군을 다그치고 혼냈습니다. 따돌림을 멈추게 할 수도, 자신의 상황을 터놓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을 또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가족에게도 자신이 왜 괴롭힘을 당하는지, 자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했습니다.

혼자 참고 앓던 긴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A 군은 결국 학교를 떠났습니다.

집에서도 안심할 수 없어…"엄마가 흉기 들고 위협"

고등학생이던 B양도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외출 금지와 연락 통제가 이어졌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정상이 아니다", "성소수자 친구들과 인연을 끊지 않을 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B양의 어머니는 "내 눈앞에서 성소수자 친구들의 연락처를 지우라"며 흉기로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B 양은 결국 집을 떠났습니다.

자녀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은 이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함께 정신병원을 가고, 기도원 등 종교의 도움도 빌립니다. 의사로부터 성 정체성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병원을 알아봅니다. 이런 노력에도 변화가 없다면, 자녀를 향한 분노는 폭력과 욕설로 변합니다.

지난달 18일, 대한불교조계종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진행한 국회 담장을 따라 도는 오체투지지난달 18일, 대한불교조계종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진행한 국회 담장을 따라 도는 오체투지

"차별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기준 '차별금지법'이 첫걸음"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 지난 5년간 상담·지원한 사례를 내용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신건강과 자살·자해 등을 고민한 경우가 756건(17.2%)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 내 갈등과 학대를 호소하는 경우가 660건(15%)으로 뒤를 이었고, 자립과 탈가정을 고민하는 경우도 589건(13.4%)이었습니다. 학교 내 괴롭힘과 탈학교를 상담한 사례는 121건(2.7%)었습니다. 특히 상담을 요청한 트랜스젠더 청소년 106명 중 27명(25.5%)은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센터 관계자는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생긴다면 학내 조례와 청소년 쉼터 제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거로 전망했습니다. 또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자체가 '이 사회는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사회'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평생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을 일을 누군가는 평생을 붙잡고 전전긍긍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남에게 말하는 그 쉬운 일에도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청소년일 때부터 나답게 살 수 있다면, 숨지 않아도 된다면, 이들은 좌절감과 무기력이 아닌 끝없는 가능성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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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도 가정도 혐오와 차별뿐”…청소년 성소수자의 ‘눈물’
    • 입력 2020-07-25 07:00:45
    취재K
가정과 학교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청소년 성소수자 <br />결국 탈가정·탈학교…10대 때부터 사회 밖으로 밀려나 <br />차별금지법이 첫걸음…"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메시지"
여기 14년의 역사를 가진 법안이 있습니다. 발의만 하면 각종 집회와 시위가 열리고, 반대와 논란 속에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법. 지난달 29일 정의당이 발의한 이른바 '포괄적 차별금지법'입니다.

2020년에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미래통합당 일부 국회의원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보호법'이자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조장법'에 불과하다"라며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국회 청원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 넘겨졌습니다.

성소수자라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10대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이 상황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뿌리 깊은 차별과 좌절감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일상은 단지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깨지고 뒤엉킵니다.

"친했던 친구들이 도리어 따돌림에 나서"

A 군은 중학생 때,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전교에 자신의 성 정체성이 알려졌고 혐오 발언과 따돌림이 이어졌습니다. 적대적인 시선과 욕설을 견뎌야 했고, 어지럽혀진 책상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혐오는 A 군의 일상 곳곳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끝없는 괴롭힘에 결석도 잦아졌습니다. 선생님은 "네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던데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라며 오히려 A 군을 다그치고 혼냈습니다. 따돌림을 멈추게 할 수도, 자신의 상황을 터놓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을 또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가족에게도 자신이 왜 괴롭힘을 당하는지, 자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했습니다.

혼자 참고 앓던 긴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A 군은 결국 학교를 떠났습니다.

집에서도 안심할 수 없어…"엄마가 흉기 들고 위협"

고등학생이던 B양도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외출 금지와 연락 통제가 이어졌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정상이 아니다", "성소수자 친구들과 인연을 끊지 않을 거면 집을 나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B양의 어머니는 "내 눈앞에서 성소수자 친구들의 연락처를 지우라"며 흉기로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B 양은 결국 집을 떠났습니다.

자녀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은 이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함께 정신병원을 가고, 기도원 등 종교의 도움도 빌립니다. 의사로부터 성 정체성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병원을 알아봅니다. 이런 노력에도 변화가 없다면, 자녀를 향한 분노는 폭력과 욕설로 변합니다.

지난달 18일, 대한불교조계종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진행한 국회 담장을 따라 도는 오체투지
"차별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기준 '차별금지법'이 첫걸음"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 지난 5년간 상담·지원한 사례를 내용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신건강과 자살·자해 등을 고민한 경우가 756건(17.2%)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 내 갈등과 학대를 호소하는 경우가 660건(15%)으로 뒤를 이었고, 자립과 탈가정을 고민하는 경우도 589건(13.4%)이었습니다. 학교 내 괴롭힘과 탈학교를 상담한 사례는 121건(2.7%)었습니다. 특히 상담을 요청한 트랜스젠더 청소년 106명 중 27명(25.5%)은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센터 관계자는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생긴다면 학내 조례와 청소년 쉼터 제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거로 전망했습니다. 또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성인이 될 때까지 사회 속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자체가 '이 사회는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사회'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평생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을 일을 누군가는 평생을 붙잡고 전전긍긍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남에게 말하는 그 쉬운 일에도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청소년일 때부터 나답게 살 수 있다면, 숨지 않아도 된다면, 이들은 좌절감과 무기력이 아닌 끝없는 가능성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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