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뒤 제출된 ‘일괄 사직서’…수리된 사람은 몇 명?

입력 2020.07.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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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김은경 전 장관이 재임 당시 청와대와 공모해 산하 공공기관에 기존 임원들에게 강제로 사직하도록 종용했다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사건 실체를 가리기 위한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요.

지난 24일 재판엔 권 모 전 한국환경공단 환경시설지원본부장, 박 모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본부장, 신 모 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장, 최 모 한국환경공단 물환경본부장, 정 모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관리이사, 김 모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6명 모두 환경부의 요구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지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입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증인들은 당시 제출한 사직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일괄 제출된 6명의 사직서…'재신임' 묻는 관행?

이날 재판엔 '재신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재신임을 묻는 차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1)
-변호인: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함께 할 수 있는지 임원에게 재신임을 묻는 취지인가요?
=박 전 본부장: 네
-변호인: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 임원이 재신임을 받기 위해 사표를 제출해왔다는 얘기를 들어봤나요?
=박 전 본부장: 네
2)
-변호인: 재신임을 묻는 차원에서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나요?
=권 전 본부장: 이사장님이 임명권자니까요.
-변호인: 그렇게 생각하셨다는 건가요?
=권 전 본부장: 네네

임원들이 제출한 사직서가 '재신임'을 묻는 차원이었지, 정권교체를 이유로 임원들을 강제로 쫓아낸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일부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이 산하기관에서 정년을 채우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도 계속 근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재신임을 묻는 차원이라고 해도 사직서가 수리되면 직장을 잃는 건데, 불안하진 않았을까요? 그렇진 않았다고 합니다.
-검사: (사표를 제출하면) 임원직을 잃게 되는 불안정한 지위에 처하게 되는 게 아닌가요?
=박 전 본부장: 실제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왜죠?
=박 전 본부장: 제 후임이 환경부에서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제 자리에 대해선 특별한 얘기가 없어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객관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처하는 건 맞는 거죠?
=박 전 본부장: 그럴 수도 있겠는데, 실질적으로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산하기관 임원 교체 진행 상황>이라는 문건을 제시했습니다.

-검사: 증인의 예상과는 달리 환경부에서 1월에 작성된 문건입니다. 예상과 달리 2018년 2월에 사직하고 순차적으로 임원을 교체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립되어 있던데요.…(중략)…문건 상 2018년 2월 말에 사직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알고 계셨나요?

증인은 이런 내용을 처음 봤다고 답했습니다. 그간의 믿음에 금이 갔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증인은 "만약에 재신임을 해주지 않고, 사직서를 수리할 것을 알았다면 사직서를 제출 안 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묻는 검사의 물음에 "저는 그에 대한 우려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증인은 사직서 제출을 공직검증 취지로 이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재신임'과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재신임, 혹은 공직검증이 필요했을까요? 결국 계기는 정권교체가 아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그건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사직서 제출했지만 6명 모두 임기보다 더 오래 일해

사직서를 제출한 임원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짐을 쌌을까요? 그렇진 않았습니다. 6명 모두 사직서 제출 이후에도 임기만료일보다 더 오래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검찰은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받은 점을 언급했습니다.

<공공기관운영법>은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임원은 1년을 단위로 연임될 수 있다.",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당 임원들이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했고,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기만료일을 넘겨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피고인 측은 사직서 제출 이후에도, 임원들이 임기만료일을 넘어 더 오랜 기간 일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또, 사직서 제출 이후 업무에서 배제되지도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블랙리스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렇듯 관행이냐, 월권이냐를 두고 공방이 계속되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 다음 재판엔 박천규 전 환경부 차관과 김 모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등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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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권 교체 뒤 제출된 ‘일괄 사직서’…수리된 사람은 몇 명?
    • 입력 2020-07-26 08:01:54
    취재K
환경부 김은경 전 장관이 재임 당시 청와대와 공모해 산하 공공기관에 기존 임원들에게 강제로 사직하도록 종용했다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사건 실체를 가리기 위한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요.

지난 24일 재판엔 권 모 전 한국환경공단 환경시설지원본부장, 박 모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본부장, 신 모 한국환경공단 기후대기본부장, 최 모 한국환경공단 물환경본부장, 정 모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탐방관리이사, 김 모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6명 모두 환경부의 요구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지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입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증인들은 당시 제출한 사직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일괄 제출된 6명의 사직서…'재신임' 묻는 관행?

이날 재판엔 '재신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재신임을 묻는 차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하는 관행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1)
-변호인: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함께 할 수 있는지 임원에게 재신임을 묻는 취지인가요?
=박 전 본부장: 네
-변호인: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 임원이 재신임을 받기 위해 사표를 제출해왔다는 얘기를 들어봤나요?
=박 전 본부장: 네
2)
-변호인: 재신임을 묻는 차원에서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나요?
=권 전 본부장: 이사장님이 임명권자니까요.
-변호인: 그렇게 생각하셨다는 건가요?
=권 전 본부장: 네네

임원들이 제출한 사직서가 '재신임'을 묻는 차원이었지, 정권교체를 이유로 임원들을 강제로 쫓아낸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일부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이 산하기관에서 정년을 채우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도 계속 근무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재신임을 묻는 차원이라고 해도 사직서가 수리되면 직장을 잃는 건데, 불안하진 않았을까요? 그렇진 않았다고 합니다.
-검사: (사표를 제출하면) 임원직을 잃게 되는 불안정한 지위에 처하게 되는 게 아닌가요?
=박 전 본부장: 실제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왜죠?
=박 전 본부장: 제 후임이 환경부에서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제 자리에 대해선 특별한 얘기가 없어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객관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처하는 건 맞는 거죠?
=박 전 본부장: 그럴 수도 있겠는데, 실질적으로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산하기관 임원 교체 진행 상황>이라는 문건을 제시했습니다.

-검사: 증인의 예상과는 달리 환경부에서 1월에 작성된 문건입니다. 예상과 달리 2018년 2월에 사직하고 순차적으로 임원을 교체하는 것으로 계획이 수립되어 있던데요.…(중략)…문건 상 2018년 2월 말에 사직하는 계획을 세웠는데 알고 계셨나요?

증인은 이런 내용을 처음 봤다고 답했습니다. 그간의 믿음에 금이 갔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증인은 "만약에 재신임을 해주지 않고, 사직서를 수리할 것을 알았다면 사직서를 제출 안 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묻는 검사의 물음에 "저는 그에 대한 우려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증인은 사직서 제출을 공직검증 취지로 이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재신임'과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재신임, 혹은 공직검증이 필요했을까요? 결국 계기는 정권교체가 아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그건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사직서 제출했지만 6명 모두 임기보다 더 오래 일해

사직서를 제출한 임원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짐을 쌌을까요? 그렇진 않았습니다. 6명 모두 사직서 제출 이후에도 임기만료일보다 더 오래 일하다 퇴직했습니다.

검찰은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받은 점을 언급했습니다.

<공공기관운영법>은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임원은 1년을 단위로 연임될 수 있다.", "임기가 만료된 임원은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당 임원들이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직서를 제출했고,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기만료일을 넘겨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피고인 측은 사직서 제출 이후에도, 임원들이 임기만료일을 넘어 더 오랜 기간 일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또, 사직서 제출 이후 업무에서 배제되지도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블랙리스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이렇듯 관행이냐, 월권이냐를 두고 공방이 계속되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 다음 재판엔 박천규 전 환경부 차관과 김 모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 등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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