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① 폭우 감당 못하는 ‘배수펌프장’…“예산·땅값 탓에 늘리지도 못해”

입력 2020.07.28 (18:19) 수정 2020.08.03 (17:2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고 당시 초랑 1지하차도사고 당시 초랑 1지하차도
시간당 최대 87mm 이상의 폭우가 내린 지난 23일 밤, 부산 동구의 한 지하차도가 물에 잠겼습니다. 높이 3.5m의 지하차도에 물이 2.5m 이상 들어 찼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 여러 대가 침수됐습니다.  9명은 구조됐지만 결국 3명은 숨졌는데요. 기록적 폭우 탓만 하기엔 또 하늘만 원망하기엔 부산의 방재시스템은 너무나도 허술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호우경보'가 발효된 저녁 8시, 지하차도 교통이 통제만 됐어도 벌어지지 않을 참사였습니다.
    
KBS 부산은 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 각종 사고들을 토대로 사실상 '인재'에 가까운 부산의 침수 피해 원인과 그 대책을 짚어보는 재난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태풍 등 각종 자연재난 위험에서 과연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소방 등 관계기관의 재난 매뉴얼과 시스템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헤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빗물 처리시설 중 하나인 '배수펌프장' 문제를 짚어봅니다.

      지난 10일, 동천범람 영상(제공:부산 동구 전근향의원)

■ 침수피해 못 막는 배수펌프장

지난 23일 밤 9시부터 단 세 시간만에 부산에는 200mm가 넘는 비가 내렸습니다. 어떤 곳은 시간당 90mm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는데, 비라고 하기엔 하늘에 구멍이 나 물이 쏟아지는 수준이었습니다.한꺼번에 이 많은 비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땅으로 흡수돼야겠지만,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는 아스팔트로, 또 아파트나 건물이 이미 장악해 빗물이 갈곳이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도심 곳곳에 배수 펌프장이 설치됩니다. 집중호우 폭우로 도로나 복개천, 하수관에 밀려드는 물을 인근 하천으로 빼내 도심 침수를 막고자 한 거죠. 따라서 배수펌프장은 보통 지하차도와 같은 지하시설, 하천 인근 저지대 등에 설치됩니다. 부산에는 모두 59곳의 배수펌프장이 있고, 별도로 지하차도에 29곳이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배수펌프장이 있어도 범람과 침수 피해는 여전했습니다. 지난 10일과 23일 두 차례나 범람한 동천에는 두 개의 배수펌프장이 있지만, 시간당 80mm 이상의 집중호우에는 꼼짝없이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용량을 초과하면 감전 위험을 막기 위해 자동적으로 펌프 가동을 중단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천이 범람해도 배수펌프장은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초량 1하차도에도 배수펌프 시설이 가동 중이었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20톤짜리 펌프 3대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거제배수펌프장거제배수펌프장

■ 빗물 처리 어렵게 만드는 하수 오물

 배수펌프장은   '설계빈도'에 따라 수용 가능한 빗물의 용량이 결정됩니다. 설계빈도는 해당 구조물을 설계할 때 산출한 수문량의 발생빈도로, 보통 10년, 30년, 50년 주기의 빈도를 가집니다.쉽게 설명하면 설계빈도 10년이라는 것은 10년 동안 내린 가장 많은 비를 흘려보낼 수 있는 정도를 뜻합니다.

보통 하천에는 30년, 50년 빈도로 설정해 배수펌프장을 설치합니다. 빈도가 클수록 가장 많이 내린 비의 양도 더 많은 기간을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빗물의 용량도 늘어납니다. 통상 하천 인근에 가장 많이 설치된 30년 설계빈도는 시간당 96.8mm의 비를 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에 방문했을 때는 상황이 사뭇 달랐습니다.

집중호우 이후 오물이 가득한 거제배수펌프장집중호우 이후 오물이 가득한 거제배수펌프장

저지대 침수 피해 등으로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에 지정된 부산 연제구 거제지구 배수펌프장입니다. 이곳은 설계빈도 30년 기준으로 지어졌지만 지난 23일 시간당 80mm  수준의 비에도 침수피해를 막지 못했습니다.  당시 가동률 100%로 배수 작업을 실시했지만 현실에서는 80mm 정도를 소화하는데 그쳤는데,  결국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이처럼 실제 빗물 처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하수도에 각종 오물과 쓰레기, 만조 시 수위 상승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거제 배수펌프장 측은 인근의 복개천 물을 처리하고 있었고 별다른 오염원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하천으로 넘어가는 펌프장 내부에는 사람들이 버린 오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지자체는 예산 탓, 주민들은 땅값 탓지자체는 예산 탓, 주민들은 땅값 탓
이같은 상황을 토대로 산출했을 때 부산에 설치된 59곳의 배수펌프장 중 시간당 80mm 수준의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침수를 막을 수 있는 배수펌프장은 단 11곳입니다. 10년 설계빈도로 감당할 수 있는 강수량의 크기가 작은 배수펌프장의 경우 정부가 권장하는 30년 주기로 확대하는 방안도 일부 논의되고 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사실상 진행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두 차례 범람으로 각종 피해를 겪었던 부산 동천 자성대 배수펌프장의 설계빈도는 10년에 불과합니다.  결국, 이번 같은 호우엔 무조건 무용지물이란 겁니다.

이미 지난 2018년 이 문제가 지적돼 부산 동구청이 국비 50%를 지원받을 수 있는 자연재위험개선지구 지정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땅값이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무산됐고 현재까지 설계빈도 10년 주기의 펌프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결국 국비 지원이 어려워지면 지자체 예산으로 펌프장을 확장해야 하는데 실제 사용 가능한 예산이 없다는 게 부산시의 입장입니다.

■ 무책임한 행정, 부실한 시스템

재난은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 대비가 우선돼야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 담당자들 대부분 시설의 원인보다는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다'는게 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사실상 이처럼 비가 많이 오면 도로가 우수관로 역할을 해야하는 실정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분산되어 있는 관리체계에 있습니다. 빗물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수관로가 깨끗해야 하고, 하류에 주로 설치되는 배수펌프장에 과부하를 막기 위해각종 우수 시설이 도심 곳곳에 설치돼야 합니다. 하지만 각종 사업이 모두 시군구 별로 흩어져있고, 담당자도 매년 바뀌어 매뉴얼조차 숙지하지 못해 사고를 키우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천으로 내려가는 물은 하천 관리과가, 배수펌프장은 건설과, 지하차도는 도로과에서 담당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쁩니다.

일부 전문가들도 무작정 배수펌프장 용량과 대수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아무리 거대한 배수펌프장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관리자들의 판단과 치밀한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재난기획/부산 ‘물난리’]① 폭우 감당 못하는 ‘배수펌프장’…“예산·땅값 탓에 늘리지도 못해”
    • 입력 2020-07-28 18:19:17
    • 수정2020-08-03 17:21:33
    취재K
사고 당시 초랑 1지하차도시간당 최대 87mm 이상의 폭우가 내린 지난 23일 밤, 부산 동구의 한 지하차도가 물에 잠겼습니다. 높이 3.5m의 지하차도에 물이 2.5m 이상 들어 찼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 여러 대가 침수됐습니다.  9명은 구조됐지만 결국 3명은 숨졌는데요. 기록적 폭우 탓만 하기엔 또 하늘만 원망하기엔 부산의 방재시스템은 너무나도 허술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호우경보'가 발효된 저녁 8시, 지하차도 교통이 통제만 됐어도 벌어지지 않을 참사였습니다.
    
KBS 부산은 집중호우로 인해 발생한 각종 사고들을 토대로 사실상 '인재'에 가까운 부산의 침수 피해 원인과 그 대책을 짚어보는 재난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태풍 등 각종 자연재난 위험에서 과연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소방 등 관계기관의 재난 매뉴얼과 시스템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헤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빗물 처리시설 중 하나인 '배수펌프장' 문제를 짚어봅니다.

      지난 10일, 동천범람 영상(제공:부산 동구 전근향의원)

■ 침수피해 못 막는 배수펌프장

지난 23일 밤 9시부터 단 세 시간만에 부산에는 200mm가 넘는 비가 내렸습니다. 어떤 곳은 시간당 90mm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는데, 비라고 하기엔 하늘에 구멍이 나 물이 쏟아지는 수준이었습니다.한꺼번에 이 많은 비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땅으로 흡수돼야겠지만, 도시계획에 따라 도로는 아스팔트로, 또 아파트나 건물이 이미 장악해 빗물이 갈곳이 여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도심 곳곳에 배수 펌프장이 설치됩니다. 집중호우 폭우로 도로나 복개천, 하수관에 밀려드는 물을 인근 하천으로 빼내 도심 침수를 막고자 한 거죠. 따라서 배수펌프장은 보통 지하차도와 같은 지하시설, 하천 인근 저지대 등에 설치됩니다. 부산에는 모두 59곳의 배수펌프장이 있고, 별도로 지하차도에 29곳이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배수펌프장이 있어도 범람과 침수 피해는 여전했습니다. 지난 10일과 23일 두 차례나 범람한 동천에는 두 개의 배수펌프장이 있지만, 시간당 80mm 이상의 집중호우에는 꼼짝없이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용량을 초과하면 감전 위험을 막기 위해 자동적으로 펌프 가동을 중단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천이 범람해도 배수펌프장은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초량 1하차도에도 배수펌프 시설이 가동 중이었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20톤짜리 펌프 3대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거제배수펌프장
■ 빗물 처리 어렵게 만드는 하수 오물

 배수펌프장은   '설계빈도'에 따라 수용 가능한 빗물의 용량이 결정됩니다. 설계빈도는 해당 구조물을 설계할 때 산출한 수문량의 발생빈도로, 보통 10년, 30년, 50년 주기의 빈도를 가집니다.쉽게 설명하면 설계빈도 10년이라는 것은 10년 동안 내린 가장 많은 비를 흘려보낼 수 있는 정도를 뜻합니다.

보통 하천에는 30년, 50년 빈도로 설정해 배수펌프장을 설치합니다. 빈도가 클수록 가장 많이 내린 비의 양도 더 많은 기간을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빗물의 용량도 늘어납니다. 통상 하천 인근에 가장 많이 설치된 30년 설계빈도는 시간당 96.8mm의 비를 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현장에 방문했을 때는 상황이 사뭇 달랐습니다.

집중호우 이후 오물이 가득한 거제배수펌프장
저지대 침수 피해 등으로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에 지정된 부산 연제구 거제지구 배수펌프장입니다. 이곳은 설계빈도 30년 기준으로 지어졌지만 지난 23일 시간당 80mm  수준의 비에도 침수피해를 막지 못했습니다.  당시 가동률 100%로 배수 작업을 실시했지만 현실에서는 80mm 정도를 소화하는데 그쳤는데,  결국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이처럼 실제 빗물 처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하수도에 각종 오물과 쓰레기, 만조 시 수위 상승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거제 배수펌프장 측은 인근의 복개천 물을 처리하고 있었고 별다른 오염원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하천으로 넘어가는 펌프장 내부에는 사람들이 버린 오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지자체는 예산 탓, 주민들은 땅값 탓이같은 상황을 토대로 산출했을 때 부산에 설치된 59곳의 배수펌프장 중 시간당 80mm 수준의 집중호우가 내렸을 때 침수를 막을 수 있는 배수펌프장은 단 11곳입니다. 10년 설계빈도로 감당할 수 있는 강수량의 크기가 작은 배수펌프장의 경우 정부가 권장하는 30년 주기로 확대하는 방안도 일부 논의되고 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사실상 진행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두 차례 범람으로 각종 피해를 겪었던 부산 동천 자성대 배수펌프장의 설계빈도는 10년에 불과합니다.  결국, 이번 같은 호우엔 무조건 무용지물이란 겁니다.

이미 지난 2018년 이 문제가 지적돼 부산 동구청이 국비 50%를 지원받을 수 있는 자연재위험개선지구 지정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땅값이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무산됐고 현재까지 설계빈도 10년 주기의 펌프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결국 국비 지원이 어려워지면 지자체 예산으로 펌프장을 확장해야 하는데 실제 사용 가능한 예산이 없다는 게 부산시의 입장입니다.

■ 무책임한 행정, 부실한 시스템

재난은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 대비가 우선돼야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 담당자들 대부분 시설의 원인보다는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다'는게 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사실상 이처럼 비가 많이 오면 도로가 우수관로 역할을 해야하는 실정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분산되어 있는 관리체계에 있습니다. 빗물을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수관로가 깨끗해야 하고, 하류에 주로 설치되는 배수펌프장에 과부하를 막기 위해각종 우수 시설이 도심 곳곳에 설치돼야 합니다. 하지만 각종 사업이 모두 시군구 별로 흩어져있고, 담당자도 매년 바뀌어 매뉴얼조차 숙지하지 못해 사고를 키우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천으로 내려가는 물은 하천 관리과가, 배수펌프장은 건설과, 지하차도는 도로과에서 담당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바쁩니다.

일부 전문가들도 무작정 배수펌프장 용량과 대수만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아무리 거대한 배수펌프장이라도 이를 사용하는 관리자들의 판단과 치밀한 계획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