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TV조선 조사에 나선 까닭은?

입력 2020.08.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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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간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외주제작 드라마 대부분을 공급한 방송프로그램 제작사 '하이그라운드'.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TV조선(법인명: 조선방송)이 이 회사에 맡긴 300억 원가량의 일감이 부당한 내부거래라는 시민단체의 신고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접수해 최근 조사에 들어갔다.

■ 시민단체 "TV조선, 차남 회사 부당지원"…공정위, 조사 착수

오늘(5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지난달(7월) 10일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공동대표 하승수)가 신고한 조선방송의 불공정거래행위(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기로 하고 담당 조사관을 배정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조선방송의 외주제작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세금도둑잡아라는 "조선방송이 2018년부터 드라마 외주제작을 주면서 '하이그라운드'를 공동제작사로 끼워 넣는 방식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며 "하이그라운드 매출액의 98%가 조선방송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제작사에서 방송사로 이어지는 콘텐츠 공급사슬에 '공동제작'이라는 역할로 들어가 사실상 '통행세' 형태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3월 이후 TV조선이 방영한 드라마 8편 가운데 6편은 '하이그라운드'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

■ 적자 회사에 투자자가 200억 태운 까닭은?

하이그라운드는 2014년 5월 설립된 '씨스토리'가 2018년 11월 이름을 바꾼 회사다. 회사의 구체적 영업·재무상황이 베일에 싸여 있다가, 지난해 외부감사법인으로 지정되면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았고 올해 4월 그 내용이 공개됐다.

하이그라운드의 2019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192억 원, 2018년에는 110억 원 등 2년간 302억 원의 매출을 TV조선을 통해 올렸다. 각각 그해 전체 매출의 99%, 92%를 차지하는 규모다. TV조선의 물량이 없다면 연 매출이 10억 원을 넘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회사 주식은 지난해 말 기준 방정오 전 대표와 유한회사 '브릴리언트 고지 리미티드'가 35.3%씩 갖고 있다. 특이한 점은 방 전 대표 외에는 모두 보통주가 아닌 전환상환우선주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환상환우선주는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약정 수익률로 상환받을 권리 둘 다 가진 우선주를 말하는데, 벤처캐피털 등 재무적 투자자가 선호하는 형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브릴리언트 고지 리미티드는 현재, 하이그라운드가 2017년 12월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 100억 원어치를 갖고 있다. 발행 시점은 하이그라운드가 TV조선 제작사로 참여하기 몇 달 전이다. 지난해 2월에는 외국계 벤처캐피털 GTI매니지먼트와 악셀이 비슷한 형태로 100억 원을 투자했다.

사실 하이그라운드는 적자회사다. 지난해 1억 5,663만 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2018년에도 1억 8,620만 원의 적자를 봤다. 대손충당금과 자회사 더아이콘티비의 지분법 손실로 당기순손실은 이보다 10배가 넘는 18억 원(2019년)을 기록했다.

해외투자자 입장에서 2년 연속 영업 적자에 콘텐츠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지도 않은 회사를 매력적으로 평가할 요소는 TV조선과의 내부거래밖에 없어 보인다.

■ 공정거래법 위반 성립하려면 드라마 시장의 경쟁 제한성 밝혀야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는 크게 두 가지다. 대기업집단 특수관계인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공정거래법 23조의 2) 이른바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인데 총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적용하는 규제로 TV조선에는 적용할 수 없다.

다음은 부당한 지원을 통한 불공정거래(23조 1항 7호)인데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거래상 실질적 역할 없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할 때 제재할 수 있다.

다만, 지분율과 거래조건만 입증하면 제재할 수 있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정과 달리 부당지원은 통행세 거래가 전체 시장의 경쟁에 영향을 줬는지를 반드시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국내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 TV조선과 하이그라운드의 내부거래가 경쟁 생태계를 해칠 만큼의 영향을 줬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시정조치와 과징금, 고발 등의 제재를 내릴 수 있다.

예컨대 최근 공정위가 발표한 SPC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은 국내 빵 시장 1위 사업자가 밀가루, 달걀 등의 원재료에 통행세를 물리면서 실제 원재료 시장의 경쟁을 해쳤다는 점이 인정돼 강력한 수위의 제재를 내릴 수 있었다. 또 통행세 거래로 매출이 느는 동시에 막대한 이익을 얻은 사실도 밝혀졌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앞으로 TV조선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과 실제로 얻은 부당이익의 규모 등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민단체로부터 사건을 접수한 것은 맞다"며 "사건에 관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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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위, TV조선 조사에 나선 까닭은?
    • 입력 2020-08-05 15:47:21
    취재K
최근 2년간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외주제작 드라마 대부분을 공급한 방송프로그램 제작사 '하이그라운드'.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TV조선(법인명: 조선방송)이 이 회사에 맡긴 300억 원가량의 일감이 부당한 내부거래라는 시민단체의 신고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접수해 최근 조사에 들어갔다.

■ 시민단체 "TV조선, 차남 회사 부당지원"…공정위, 조사 착수

오늘(5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지난달(7월) 10일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공동대표 하승수)가 신고한 조선방송의 불공정거래행위(부당 내부거래) 의혹에 대해 조사를 착수하기로 하고 담당 조사관을 배정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조선방송의 외주제작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세금도둑잡아라는 "조선방송이 2018년부터 드라마 외주제작을 주면서 '하이그라운드'를 공동제작사로 끼워 넣는 방식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며 "하이그라운드 매출액의 98%가 조선방송의 거래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제작사에서 방송사로 이어지는 콘텐츠 공급사슬에 '공동제작'이라는 역할로 들어가 사실상 '통행세' 형태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3월 이후 TV조선이 방영한 드라마 8편 가운데 6편은 '하이그라운드'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

■ 적자 회사에 투자자가 200억 태운 까닭은?

하이그라운드는 2014년 5월 설립된 '씨스토리'가 2018년 11월 이름을 바꾼 회사다. 회사의 구체적 영업·재무상황이 베일에 싸여 있다가, 지난해 외부감사법인으로 지정되면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았고 올해 4월 그 내용이 공개됐다.

하이그라운드의 2019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192억 원, 2018년에는 110억 원 등 2년간 302억 원의 매출을 TV조선을 통해 올렸다. 각각 그해 전체 매출의 99%, 92%를 차지하는 규모다. TV조선의 물량이 없다면 연 매출이 10억 원을 넘기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회사 주식은 지난해 말 기준 방정오 전 대표와 유한회사 '브릴리언트 고지 리미티드'가 35.3%씩 갖고 있다. 특이한 점은 방 전 대표 외에는 모두 보통주가 아닌 전환상환우선주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환상환우선주는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약정 수익률로 상환받을 권리 둘 다 가진 우선주를 말하는데, 벤처캐피털 등 재무적 투자자가 선호하는 형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브릴리언트 고지 리미티드는 현재, 하이그라운드가 2017년 12월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 100억 원어치를 갖고 있다. 발행 시점은 하이그라운드가 TV조선 제작사로 참여하기 몇 달 전이다. 지난해 2월에는 외국계 벤처캐피털 GTI매니지먼트와 악셀이 비슷한 형태로 100억 원을 투자했다.

사실 하이그라운드는 적자회사다. 지난해 1억 5,663만 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2018년에도 1억 8,620만 원의 적자를 봤다. 대손충당금과 자회사 더아이콘티비의 지분법 손실로 당기순손실은 이보다 10배가 넘는 18억 원(2019년)을 기록했다.

해외투자자 입장에서 2년 연속 영업 적자에 콘텐츠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지도 않은 회사를 매력적으로 평가할 요소는 TV조선과의 내부거래밖에 없어 보인다.

■ 공정거래법 위반 성립하려면 드라마 시장의 경쟁 제한성 밝혀야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는 크게 두 가지다. 대기업집단 특수관계인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공정거래법 23조의 2) 이른바 총수일가 사익편취 행위인데 총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적용하는 규제로 TV조선에는 적용할 수 없다.

다음은 부당한 지원을 통한 불공정거래(23조 1항 7호)인데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거래상 실질적 역할 없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할 때 제재할 수 있다.

다만, 지분율과 거래조건만 입증하면 제재할 수 있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정과 달리 부당지원은 통행세 거래가 전체 시장의 경쟁에 영향을 줬는지를 반드시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국내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 TV조선과 하이그라운드의 내부거래가 경쟁 생태계를 해칠 만큼의 영향을 줬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시정조치와 과징금, 고발 등의 제재를 내릴 수 있다.

예컨대 최근 공정위가 발표한 SPC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은 국내 빵 시장 1위 사업자가 밀가루, 달걀 등의 원재료에 통행세를 물리면서 실제 원재료 시장의 경쟁을 해쳤다는 점이 인정돼 강력한 수위의 제재를 내릴 수 있었다. 또 통행세 거래로 매출이 느는 동시에 막대한 이익을 얻은 사실도 밝혀졌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앞으로 TV조선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드라마 제작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과 실제로 얻은 부당이익의 규모 등을 따져볼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민단체로부터 사건을 접수한 것은 맞다"며 "사건에 관한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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