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났다! ‘신라의 미소’를…
입력 2020.08.10 (11:03)
수정 2020.08.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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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요. 재개관을 알리는 전시는 성대합니다.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새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3건 196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가 바로 그겁니다. 문화적 갈증에 시달리던 분들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전예약을 하고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하도록 했는데도, 전시장은 평일 오전에도 제법 붐빕니다.
전시장에 모인 유물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공인한 국보 보물들입니다. 가만히 전시장을 돌다 보면 안구가 정화되는 기분을 절로 느낄 수 있죠. 하지만 누구에게든 유독 끌리는 유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고많은 귀한 보물들 가운데 저를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은 바로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였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6월호에 '신라의 가면와'란 제목의 글이 실립니다. 내용인즉슨 당시 경주의 야마구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던 27살의 젊은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가 경주 읍내 일본인 골동품상에게서 유물 한 점을 사들였는데, 특이하게도 사람 얼굴 모양을 한 기와장식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는지 잡지에까지 소개되죠. 글쓴이 역시 당시 경주고적보존회에서 활동하던 오사카 긴타로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유물의 소유자인 다나카 다카노부는 1940년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영영 이별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여 년 세월이 흐른 뒤 용케도 유물의 존재를 기억해낸 분이 있었죠.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었던 박일훈 선생입니다. 끈질기게 유물의 소재를 추적한 끝에 1972년, 마침내 유물의 주인인 바로 그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박 선생은 유물을 기증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결국 마음이 움직인 다나카는 그해 10월 직접 경주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기증합니다.
그렇게 한 뜻있는 분의 간절함으로 되찾아온 귀중한 유물이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 부르는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1932년,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 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지붕에 얹는 기와 중에서 하늘을 향해 볼록한 수키와의 끝에 장식하는 유물이죠. 다른 말로 와당(瓦當)이라고도 합니다. 기와의 뒷면에 수키와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실제로 지붕 장식에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느낌은 대체 뭘까요? 서글서글하고 한없이 정다운 저 눈매와 두툼하게 아래로 흐르는 콧대, 그 아래로 한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저토록 향기로운 웃음을 흙으로 빚어 구워낼 줄 알았던 신라 도공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흘러넘쳤을 겁니다. 더욱이 틀에다 찍어낸 게 아니라 도공이 손으로 직접 빚은 것이었다니….
그래서 신라의 미소는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당시 '새천년의 미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됐고, 저 유명한 경주 빵의 상표에까지 등장하며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으뜸 이미지가 됐죠. 그 미소에 매료된 시인들이 앞다퉈 노래로 화답했으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이봉직 시인의 동시 '웃는 기와' 한 대목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시대의 간격을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명품의 가치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죠. 신라의 미소에서 깊은 감흥을 얻은 또 다른 시인이 있습니다. 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 유구한 세월에도 전혀 빛 바라지 않은 그 소탈하고 후덕한 미소. 시인의 마음은 그 고운 웃음의 결을 따라 시간을 초극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유영합니다.
비록 오른쪽 아랫부분은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얼굴만으로도 감히 국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보면 볼수록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저 미소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보물이 달리 보물이 아닐 테죠. 수백 년, 아니 천몇백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름다움과 순박함에 이끌리게 한다면 그게 보물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보는 방향에 따라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저 작은 유물 앞에서 서 있는 동안 저는 한없이 겸허해질 뿐이었습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2018년 11월 17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됐습니다.
■전시 정보
제목: <2017-2019 신국보보물전 – 새 보물 납시었네>
기간: 2020년 8월 30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국보와 보물 83건, 196점
전시장에 모인 유물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공인한 국보 보물들입니다. 가만히 전시장을 돌다 보면 안구가 정화되는 기분을 절로 느낄 수 있죠. 하지만 누구에게든 유독 끌리는 유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고많은 귀한 보물들 가운데 저를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은 바로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였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6월호에 '신라의 가면와'란 제목의 글이 실립니다. 내용인즉슨 당시 경주의 야마구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던 27살의 젊은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가 경주 읍내 일본인 골동품상에게서 유물 한 점을 사들였는데, 특이하게도 사람 얼굴 모양을 한 기와장식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는지 잡지에까지 소개되죠. 글쓴이 역시 당시 경주고적보존회에서 활동하던 오사카 긴타로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동아일보〉 1972년 10월 14일 기사
유물의 소유자인 다나카 다카노부는 1940년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영영 이별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여 년 세월이 흐른 뒤 용케도 유물의 존재를 기억해낸 분이 있었죠.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었던 박일훈 선생입니다. 끈질기게 유물의 소재를 추적한 끝에 1972년, 마침내 유물의 주인인 바로 그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박 선생은 유물을 기증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결국 마음이 움직인 다나카는 그해 10월 직접 경주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기증합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신라 7세기경, 토제, 지름 11.5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그렇게 한 뜻있는 분의 간절함으로 되찾아온 귀중한 유물이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 부르는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1932년,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 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지붕에 얹는 기와 중에서 하늘을 향해 볼록한 수키와의 끝에 장식하는 유물이죠. 다른 말로 와당(瓦當)이라고도 합니다. 기와의 뒷면에 수키와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실제로 지붕 장식에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느낌은 대체 뭘까요? 서글서글하고 한없이 정다운 저 눈매와 두툼하게 아래로 흐르는 콧대, 그 아래로 한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저토록 향기로운 웃음을 흙으로 빚어 구워낼 줄 알았던 신라 도공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흘러넘쳤을 겁니다. 더욱이 틀에다 찍어낸 게 아니라 도공이 손으로 직접 빚은 것이었다니….
그래서 신라의 미소는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당시 '새천년의 미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됐고, 저 유명한 경주 빵의 상표에까지 등장하며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으뜸 이미지가 됐죠. 그 미소에 매료된 시인들이 앞다퉈 노래로 화답했으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이봉직 시인의 동시 '웃는 기와' 한 대목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시대의 간격을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명품의 가치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죠. 신라의 미소에서 깊은 감흥을 얻은 또 다른 시인이 있습니다. 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 유구한 세월에도 전혀 빛 바라지 않은 그 소탈하고 후덕한 미소. 시인의 마음은 그 고운 웃음의 결을 따라 시간을 초극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유영합니다.
비록 오른쪽 아랫부분은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얼굴만으로도 감히 국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보면 볼수록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저 미소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보물이 달리 보물이 아닐 테죠. 수백 년, 아니 천몇백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름다움과 순박함에 이끌리게 한다면 그게 보물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보는 방향에 따라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저 작은 유물 앞에서 서 있는 동안 저는 한없이 겸허해질 뿐이었습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2018년 11월 17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됐습니다.
■전시 정보
제목: <2017-2019 신국보보물전 – 새 보물 납시었네>
기간: 2020년 8월 30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국보와 보물 83건, 19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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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8-10 11: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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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요. 재개관을 알리는 전시는 성대합니다.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새로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3건 196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가 바로 그겁니다. 문화적 갈증에 시달리던 분들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전예약을 하고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하도록 했는데도, 전시장은 평일 오전에도 제법 붐빕니다.
전시장에 모인 유물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공인한 국보 보물들입니다. 가만히 전시장을 돌다 보면 안구가 정화되는 기분을 절로 느낄 수 있죠. 하지만 누구에게든 유독 끌리는 유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고많은 귀한 보물들 가운데 저를 사로잡은 단 하나의 보물은 바로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였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 6월호에 '신라의 가면와'란 제목의 글이 실립니다. 내용인즉슨 당시 경주의 야마구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던 27살의 젊은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가 경주 읍내 일본인 골동품상에게서 유물 한 점을 사들였는데, 특이하게도 사람 얼굴 모양을 한 기와장식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는지 잡지에까지 소개되죠. 글쓴이 역시 당시 경주고적보존회에서 활동하던 오사카 긴타로라는 일본 사람입니다.
유물의 소유자인 다나카 다카노부는 1940년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영영 이별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여 년 세월이 흐른 뒤 용케도 유물의 존재를 기억해낸 분이 있었죠.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이었던 박일훈 선생입니다. 끈질기게 유물의 소재를 추적한 끝에 1972년, 마침내 유물의 주인인 바로 그 의사 다나카 다카노부와 연락이 닿게 됩니다. 박 선생은 유물을 기증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고, 결국 마음이 움직인 다나카는 그해 10월 직접 경주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기증합니다.
그렇게 한 뜻있는 분의 간절함으로 되찾아온 귀중한 유물이 지금 우리가 ‘신라의 미소’라 부르는 얼굴무늬 수막새입니다. 1932년, 지금의 경주시 사정동 영묘사 터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지붕에 얹는 기와 중에서 하늘을 향해 볼록한 수키와의 끝에 장식하는 유물이죠. 다른 말로 와당(瓦當)이라고도 합니다. 기와의 뒷면에 수키와를 붙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실제로 지붕 장식에 쓰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 느낌은 대체 뭘까요? 서글서글하고 한없이 정다운 저 눈매와 두툼하게 아래로 흐르는 콧대, 그 아래로 한가득 머금은 자애로운 미소. 저토록 향기로운 웃음을 흙으로 빚어 구워낼 줄 알았던 신라 도공의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흘러넘쳤을 겁니다. 더욱이 틀에다 찍어낸 게 아니라 도공이 손으로 직접 빚은 것이었다니….
그래서 신라의 미소는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당시 '새천년의 미소'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사용됐고, 저 유명한 경주 빵의 상표에까지 등장하며 '신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으뜸 이미지가 됐죠. 그 미소에 매료된 시인들이 앞다퉈 노래로 화답했으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이봉직 시인의 동시 '웃는 기와' 한 대목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시대의 간격을 넘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합니다. 명품의 가치는 그래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죠. 신라의 미소에서 깊은 감흥을 얻은 또 다른 시인이 있습니다. 천 년을 훌쩍 뛰어넘는 유구한 세월에도 전혀 빛 바라지 않은 그 소탈하고 후덕한 미소. 시인의 마음은 그 고운 웃음의 결을 따라 시간을 초극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유영합니다.
비록 오른쪽 아랫부분은 떨어져 나갔지만, 남은 얼굴만으로도 감히 국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보면 볼수록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는 저 미소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보물이 달리 보물이 아닐 테죠. 수백 년, 아니 천몇백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아름다움과 순박함에 이끌리게 한다면 그게 보물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보는 방향에 따라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저 작은 유물 앞에서 서 있는 동안 저는 한없이 겸허해질 뿐이었습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2018년 11월 17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10호로 지정됐습니다.
■전시 정보
제목: <2017-2019 신국보보물전 – 새 보물 납시었네>
기간: 2020년 8월 30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국보와 보물 83건, 196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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