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살이 19채 임대사업자…‘부모 찬스’ 뿌리뽑을 수 있을까?

입력 2020.08.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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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사업자? 나이도, 사업 능력도 안 묻습니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동산 투기 수요 억제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됐다. 이날 통과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 핵심인데, 눈에 띄는 신설 조항이 하나 있다. 바로, '미성년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항목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는 19세 이하의 미성년자도 얼마든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는 것. 아직 옹알이밖에 못 하는 갓난아기도, 초등학생도 세를 주고, 임대료를 받고, 임차인들을 관리하는 '사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돼 있었다.

혹시 가족의 갑작스러운 변고 등 특별한 상황에서만 미성년자의 임대사업이 허용되는 것은 아닌지 알아봤다. 온라인으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인 '렌트홈'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연령 제한은 따로 없었다. 임대 등록하려는 주택과 관련된 정보를 성인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 사업자가 될 수 있게 돼 있었다.

결국, 1994년 등록임대사업자 제도가 도입된 이래 나이를 통해 소득 수준을 파악하거나 임대사업 능력 등을 심사하고 거르는 장치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나이 제한을 두지 않은 기존 제도에 대해 "미성년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지 누가 생각했겠는가, '계약도 하고 해야 하는데 설마 미성년자가 (등록을) 할까?' 생각해서 별도로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임대사업자 제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편법 증여 수단 같은 걸로 악용될 수 있다고 보고 미성년자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생각해 법 개정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국토부로서는 '법의 공백'을 늦게나마 인정한 셈이다.


■ '4살 자녀'가 다주택자 자산가의 절세 전략?

국토부 관계자도 거론했듯이, 미성년자에게 허용된 임대사업자 제도는 일부 고액 자산가의 '편법 증여'와 '불법 차명 임대사업'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단순한 증여 이외에도 절세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소득세는 개인별로 과세하기 때문에, 미성년 자녀에게 주택을 증여한 뒤 임대사업자로 활동하게 돼 있다면 증여자로서는 소득을 줄인 결과가 되기 때문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주택 증여 과정에서의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임대업을 하면서 매달 임대수익을 챙긴 것도 탈루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임대소득세 일부를 감면하는 등 세금 혜택을 줬기 때문에, 한 가정 안에서도 주택 소유자를 여러 명으로 분리해 지분을 쪼개는 방식이 세금 측면에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자녀를 전략적으로 '임대사업자'에 이름을 올린 다주택자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자녀가 추후 성인이 되어 증여할 때에 지금보다 집값이 오른다고 가정하면,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자녀에게 증여하고 임대사업자 혜택을 이용하면 장기보유 특별공제까지 받을 수 있다.

■ 최연소 임대사업자는 두 살배기…11살 초등학생은 19채 임대

이용호 의원실 제공이용호 의원실 제공

실제로 임대사업을 하는 미성년자들은 얼마나 될까?

KBS가 무소속 이용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현황을 분석해 본 결과, 올해 전국에서 가장 어린 임대사업자는 인천시 남동구에 사는 2살 유아였다. 태어난 해를 넘기기 전인 지난해 12월 주택 1채를 등록하며 임대사업자에 이름을 올렸다. 최연소 임대사업자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연속으로 2살 유아들이 차지했다.


2020년 19세 이하 미성년 임대사업자는 모두 229명으로 이들이 소유한 주택 수는 총 412채다. 2014년 22명에서 6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미성년 임대사업자는 2016년엔 61명이었던 것이 2017년 12월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이 발표된 뒤인 2018년엔 세자릿수인 179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2년 사이에 다시 50명이 더 늘었다.

가장 많은 주택을 등록한 미성년자는 인천시 남동구에 거주하는 11살 초등학생이었다. 본인 명의로 모두 19채를 소유해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다. 2위는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14살 중학생으로 18채를 소유하고서 임대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한 주택 수를 기준으로 19세 이하 임대사업자 상위 10위권(27명)이 보유한 주택은 모두 184채였다. 이 가운데는 4살 어린이가 3채를 보유한 경우도 있었다. 또 상위 10위권에 드는 다주택 미성년자 임대사업자의 절반이 넘는 14명이(51%)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 거주하고 있었다.

법은 통과됐지만…여전히 미성년자도 등록 가능

미성년자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법안은 늦게나마 통과됐지만, 여전히 '법의 공백'은 존재했다.

10살 초등학생을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 '렌트홈' 측과 지자체에 문의했더니 "법안은 통과됐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태라, 지금은 기존 절차대로 등록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법안의 시행일은 오는 12월 10일로 아직 4개월가량 남았다. 임대사업자의 세금 감면 혜택이 축소되고 있지만, 어떤 다주택자에게는 여전히 '부모 찬스-윈윈 전략'을 고려할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다.

'부모 찬스' 임대사업자, 징벌적 과세 추진되나?

이렇게 이미 등록을 마치고 임대 사업 중인 미성년자들은 현행법상으로는 지위가 계속 유지된다. 소급적용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10일 '미성년자 신규 등록 제한' 법이 시행되더라도 지위를 박탈할 수 없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자금 출처와 흐름을 지금이라도 면밀히 조사해 탈루 의심사례가 발각되면 세금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고, 징벌적 과세까지 물리자는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이 의원은 "제도적인 허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법을 악용해 금수저들의 부의 대물림 행태로 이어졌다"며 "지금이라도 이들의 임대사업소득에 대해서 중과를 하고 보유 주택에 대해서 보유세를 강화토록 하는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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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11살이 19채 임대사업자…‘부모 찬스’ 뿌리뽑을 수 있을까?
    • 입력 2020-08-11 16:24:59
    취재K
"임대사업자? 나이도, 사업 능력도 안 묻습니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동산 투기 수요 억제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됐다. 이날 통과한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 핵심인데, 눈에 띄는 신설 조항이 하나 있다. 바로, '미성년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항목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는 19세 이하의 미성년자도 얼마든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는 것. 아직 옹알이밖에 못 하는 갓난아기도, 초등학생도 세를 주고, 임대료를 받고, 임차인들을 관리하는 '사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 가능하게 돼 있었다.

혹시 가족의 갑작스러운 변고 등 특별한 상황에서만 미성년자의 임대사업이 허용되는 것은 아닌지 알아봤다. 온라인으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인 '렌트홈'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연령 제한은 따로 없었다. 임대 등록하려는 주택과 관련된 정보를 성인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 사업자가 될 수 있게 돼 있었다.

결국, 1994년 등록임대사업자 제도가 도입된 이래 나이를 통해 소득 수준을 파악하거나 임대사업 능력 등을 심사하고 거르는 장치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나이 제한을 두지 않은 기존 제도에 대해 "미성년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지 누가 생각했겠는가, '계약도 하고 해야 하는데 설마 미성년자가 (등록을) 할까?' 생각해서 별도로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답변했다.

"임대사업자 제도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편법 증여 수단 같은 걸로 악용될 수 있다고 보고 미성년자를 막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생각해 법 개정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국토부로서는 '법의 공백'을 늦게나마 인정한 셈이다.


■ '4살 자녀'가 다주택자 자산가의 절세 전략?

국토부 관계자도 거론했듯이, 미성년자에게 허용된 임대사업자 제도는 일부 고액 자산가의 '편법 증여'와 '불법 차명 임대사업'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단순한 증여 이외에도 절세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소득세는 개인별로 과세하기 때문에, 미성년 자녀에게 주택을 증여한 뒤 임대사업자로 활동하게 돼 있다면 증여자로서는 소득을 줄인 결과가 되기 때문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고 주택 증여 과정에서의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임대업을 하면서 매달 임대수익을 챙긴 것도 탈루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임대소득세 일부를 감면하는 등 세금 혜택을 줬기 때문에, 한 가정 안에서도 주택 소유자를 여러 명으로 분리해 지분을 쪼개는 방식이 세금 측면에는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자녀를 전략적으로 '임대사업자'에 이름을 올린 다주택자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자녀가 추후 성인이 되어 증여할 때에 지금보다 집값이 오른다고 가정하면,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자녀에게 증여하고 임대사업자 혜택을 이용하면 장기보유 특별공제까지 받을 수 있다.

■ 최연소 임대사업자는 두 살배기…11살 초등학생은 19채 임대

이용호 의원실 제공
실제로 임대사업을 하는 미성년자들은 얼마나 될까?

KBS가 무소속 이용호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현황을 분석해 본 결과, 올해 전국에서 가장 어린 임대사업자는 인천시 남동구에 사는 2살 유아였다. 태어난 해를 넘기기 전인 지난해 12월 주택 1채를 등록하며 임대사업자에 이름을 올렸다. 최연소 임대사업자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연속으로 2살 유아들이 차지했다.


2020년 19세 이하 미성년 임대사업자는 모두 229명으로 이들이 소유한 주택 수는 총 412채다. 2014년 22명에서 6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미성년 임대사업자는 2016년엔 61명이었던 것이 2017년 12월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이 발표된 뒤인 2018년엔 세자릿수인 179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2년 사이에 다시 50명이 더 늘었다.

가장 많은 주택을 등록한 미성년자는 인천시 남동구에 거주하는 11살 초등학생이었다. 본인 명의로 모두 19채를 소유해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다. 2위는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14살 중학생으로 18채를 소유하고서 임대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유한 주택 수를 기준으로 19세 이하 임대사업자 상위 10위권(27명)이 보유한 주택은 모두 184채였다. 이 가운데는 4살 어린이가 3채를 보유한 경우도 있었다. 또 상위 10위권에 드는 다주택 미성년자 임대사업자의 절반이 넘는 14명이(51%)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 거주하고 있었다.

법은 통과됐지만…여전히 미성년자도 등록 가능

미성년자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법안은 늦게나마 통과됐지만, 여전히 '법의 공백'은 존재했다.

10살 초등학생을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 '렌트홈' 측과 지자체에 문의했더니 "법안은 통과됐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은 상태라, 지금은 기존 절차대로 등록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해당 법안의 시행일은 오는 12월 10일로 아직 4개월가량 남았다. 임대사업자의 세금 감면 혜택이 축소되고 있지만, 어떤 다주택자에게는 여전히 '부모 찬스-윈윈 전략'을 고려할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다.

'부모 찬스' 임대사업자, 징벌적 과세 추진되나?

이렇게 이미 등록을 마치고 임대 사업 중인 미성년자들은 현행법상으로는 지위가 계속 유지된다. 소급적용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12월 10일 '미성년자 신규 등록 제한' 법이 시행되더라도 지위를 박탈할 수 없다.

무소속 이용호 의원은 자금 출처와 흐름을 지금이라도 면밀히 조사해 탈루 의심사례가 발각되면 세금 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고, 징벌적 과세까지 물리자는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이 의원은 "제도적인 허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법을 악용해 금수저들의 부의 대물림 행태로 이어졌다"며 "지금이라도 이들의 임대사업소득에 대해서 중과를 하고 보유 주택에 대해서 보유세를 강화토록 하는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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