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의 불을 당긴 ‘백산대회’
입력 2020.08.11 (20:15)
수정 2020.08.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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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 전주방송총국은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외세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의 불씨가 된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는 연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전봉준 장군이 대장으로 추대되며 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기억 속에 잊힌 백산대회의 의미를, 조경모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동진강 줄기가 드넓은 호남평야를 휘돌아 서해로 흘러가는 길목.
그 가운데 홀로 솟아 있는 나지막한 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백26년 전 음력 3월,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백산대회가 열렸던 현장.
백산대회를 통해 중앙 지휘소가 설치되고, 혁명에 나선 민중들은 오합지졸이 아닌, 4대 강령과 12개 군율을 갖춘 혁명군으로 거듭났습니다.
[박대길/부안군 동학농민혁명 전문위원 : "혁명군으로서 지켜야 할 군율, 12개 조 군율이 선포됐던 곳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전봉준을 대장으로 하는 지휘부가 바로 이 백산대회를 통해서 결성됐다."]
19세기 후반 부안의 기행현이라는 선비가 45년 동안 일상을 기록한 '홍재일기'.
그동안 자료가 부족해 실체마저 부정됐던 '백산대회'를 입증한 중요한 사료가 됐습니다.
일기에는 백산대회 이전의 동학농민군을 '동학인'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백산대회 이후에는 '동학군'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철배/임실군 학예사·홍재일기 발굴자 : "그 사람들이 언제 집결했느냐 하는 것은 사실은 좀 부족했었거든요, 자료가. 그런데 여기에서 26일 날 그 수많은 사람이 모였었다가 흩어졌다고 하는 걸 증언한 거죠."]
격문을 통해 안으로는 탐관오리를, 밖으로는 외세를 몰아내겠다고 선언한 백산대회.
하지만 일제는 동학농민혁명을 고부 민란으로 왜곡, 축소하고, 급기야 천9백14년, 고부군에 속했던 백산면을 부안군으로 편입시켰습니다.
[박맹수/원광대학교 총장·문학박사 : "고창군으로, 부안군으로, 또 정읍시로. 이게 일제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였던 고부를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핑계로 사상적, 문화적으로 해체해버린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백산대회.
역사 속 의미가 큰 만큼, 체계적인 학술 연구와 유적 정비로 위상을 다져야 합니다.
KBS 뉴스 조경모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KBS 전주방송총국은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외세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의 불씨가 된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는 연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전봉준 장군이 대장으로 추대되며 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기억 속에 잊힌 백산대회의 의미를, 조경모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동진강 줄기가 드넓은 호남평야를 휘돌아 서해로 흘러가는 길목.
그 가운데 홀로 솟아 있는 나지막한 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백26년 전 음력 3월,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백산대회가 열렸던 현장.
백산대회를 통해 중앙 지휘소가 설치되고, 혁명에 나선 민중들은 오합지졸이 아닌, 4대 강령과 12개 군율을 갖춘 혁명군으로 거듭났습니다.
[박대길/부안군 동학농민혁명 전문위원 : "혁명군으로서 지켜야 할 군율, 12개 조 군율이 선포됐던 곳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전봉준을 대장으로 하는 지휘부가 바로 이 백산대회를 통해서 결성됐다."]
19세기 후반 부안의 기행현이라는 선비가 45년 동안 일상을 기록한 '홍재일기'.
그동안 자료가 부족해 실체마저 부정됐던 '백산대회'를 입증한 중요한 사료가 됐습니다.
일기에는 백산대회 이전의 동학농민군을 '동학인'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백산대회 이후에는 '동학군'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철배/임실군 학예사·홍재일기 발굴자 : "그 사람들이 언제 집결했느냐 하는 것은 사실은 좀 부족했었거든요, 자료가. 그런데 여기에서 26일 날 그 수많은 사람이 모였었다가 흩어졌다고 하는 걸 증언한 거죠."]
격문을 통해 안으로는 탐관오리를, 밖으로는 외세를 몰아내겠다고 선언한 백산대회.
하지만 일제는 동학농민혁명을 고부 민란으로 왜곡, 축소하고, 급기야 천9백14년, 고부군에 속했던 백산면을 부안군으로 편입시켰습니다.
[박맹수/원광대학교 총장·문학박사 : "고창군으로, 부안군으로, 또 정읍시로. 이게 일제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였던 고부를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핑계로 사상적, 문화적으로 해체해버린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백산대회.
역사 속 의미가 큰 만큼, 체계적인 학술 연구와 유적 정비로 위상을 다져야 합니다.
KBS 뉴스 조경모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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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의 불을 당긴 ‘백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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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8-11 20:15:06
- 수정2020-08-11 20:15:08

[앵커]
KBS 전주방송총국은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외세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의 불씨가 된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는 연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전봉준 장군이 대장으로 추대되며 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기억 속에 잊힌 백산대회의 의미를, 조경모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동진강 줄기가 드넓은 호남평야를 휘돌아 서해로 흘러가는 길목.
그 가운데 홀로 솟아 있는 나지막한 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백26년 전 음력 3월, 동학농민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백산대회가 열렸던 현장.
백산대회를 통해 중앙 지휘소가 설치되고, 혁명에 나선 민중들은 오합지졸이 아닌, 4대 강령과 12개 군율을 갖춘 혁명군으로 거듭났습니다.
[박대길/부안군 동학농민혁명 전문위원 : "혁명군으로서 지켜야 할 군율, 12개 조 군율이 선포됐던 곳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전봉준을 대장으로 하는 지휘부가 바로 이 백산대회를 통해서 결성됐다."]
19세기 후반 부안의 기행현이라는 선비가 45년 동안 일상을 기록한 '홍재일기'.
그동안 자료가 부족해 실체마저 부정됐던 '백산대회'를 입증한 중요한 사료가 됐습니다.
일기에는 백산대회 이전의 동학농민군을 '동학인'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백산대회 이후에는 '동학군'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철배/임실군 학예사·홍재일기 발굴자 : "그 사람들이 언제 집결했느냐 하는 것은 사실은 좀 부족했었거든요, 자료가. 그런데 여기에서 26일 날 그 수많은 사람이 모였었다가 흩어졌다고 하는 걸 증언한 거죠."]
격문을 통해 안으로는 탐관오리를, 밖으로는 외세를 몰아내겠다고 선언한 백산대회.
하지만 일제는 동학농민혁명을 고부 민란으로 왜곡, 축소하고, 급기야 천9백14년, 고부군에 속했던 백산면을 부안군으로 편입시켰습니다.
[박맹수/원광대학교 총장·문학박사 : "고창군으로, 부안군으로, 또 정읍시로. 이게 일제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였던 고부를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핑계로 사상적, 문화적으로 해체해버린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백산대회.
역사 속 의미가 큰 만큼, 체계적인 학술 연구와 유적 정비로 위상을 다져야 합니다.
KBS 뉴스 조경모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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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모 기자 jk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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