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임신 아내 사망 보험금 95억…살인죄 면한 남편이 수령?

입력 2020.08.1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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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A(50)씨는 지난 2008년 1월 21일 캄보디아 국적의 B(당시 24세)씨와 재혼했다.

이후 A 씨는 약 5개월 후인 2008년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아내 명의로 모두 25개의 보험에 가입한다. A 씨는 보험료로만 매달 360여만 원을 납부했다. 만약 아내가 사망하게 된다면 A 씨가 받게 될 보험금은 약 95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2014년 8월 22일 오후 10시쯤 이들 부부는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서울 남대문시장을 함께 찾았다. 시장에서 볼일을 본 두 사람은 다시 충남 금산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다음날(23일) 새벽 3시 41분쯤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근처에서 A 씨가 운전하던 승합차는 갓길에 주차돼있던 화물차를 들이받았고 이 사고로 동승한 아내가 숨진다. 당시 B 씨는 임신 7개월이었다.

사고 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화물차를 보지 못해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도 처음에는 단순 교통사고로 수사했다. 하지만 A 씨가 아내 사망 전 25개 보험 상품에 가입, 사망보험금이 95억 원에 달하는 점 등을 이상하게 여겨 A 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아내 혈액에서 수면 유도 성분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A 씨를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A 씨 측과 변호인은, A 씨가 사고 전날 새벽부터 이 사건 사고 당시까지 21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운전, 결국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수의 보험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은, A 씨가 운영하는 생활용품점의 주 고객이었던 보험설계사들로부터 보험에 가입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거절하지 못한 것일 뿐 아내를 살해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A 씨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보험에 가입한 점, 아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곧 아들을 출산한 예정 등을 근거로 아내를 살해할 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A 씨 측은 서로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살인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간접 증거만으로는 범행을 증명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사고 두 달 전 30억 원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한 점 등을 보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은 A 씨의 살인 동기가 불명확하다며 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아내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려면 그 동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며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이상 객관적 증거와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 단호하게 진실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논리적 추론과 가능성의 우월함만으로 단죄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후 3년여의 치열한 법리 다툼 끝에, 대전고등법원 형사6부(허용석 부장판사)는 A 씨에게 살인죄 대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를 물어 금고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고의 교통사고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에 따른 보험금 95억 원 중 54억 원은 일시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 법정 상속인과 나눠 받게 돼 있다”며 “아이를 위한 보험도 많이 가입했던 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점 등으로 보아 살인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면 유도 성분과 관련해서 재판부는 "숨진 아내의 혈액에서 수면 유도 성분이 나온 것만으로 피고인이 먹였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혈흔에서도 수면 유도 성분이 나왔다"고도 했다.

고의 교통사고와 관련해서는 "충돌 부위가 68%에 달해 피고인 역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상을 입었는데, 피해자만 다치게 하려고 선택하는 방법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졸음운전을 했다는 점은 유죄로 인정된다" 며 살인죄가 아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과실치사죄를 적용 사실상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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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2 10:11:41
    취재후·사건후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A(50)씨는 지난 2008년 1월 21일 캄보디아 국적의 B(당시 24세)씨와 재혼했다.

이후 A 씨는 약 5개월 후인 2008년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아내 명의로 모두 25개의 보험에 가입한다. A 씨는 보험료로만 매달 360여만 원을 납부했다. 만약 아내가 사망하게 된다면 A 씨가 받게 될 보험금은 약 95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2014년 8월 22일 오후 10시쯤 이들 부부는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서울 남대문시장을 함께 찾았다. 시장에서 볼일을 본 두 사람은 다시 충남 금산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다음날(23일) 새벽 3시 41분쯤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근처에서 A 씨가 운전하던 승합차는 갓길에 주차돼있던 화물차를 들이받았고 이 사고로 동승한 아내가 숨진다. 당시 B 씨는 임신 7개월이었다.

사고 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화물차를 보지 못해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경찰도 처음에는 단순 교통사고로 수사했다. 하지만 A 씨가 아내 사망 전 25개 보험 상품에 가입, 사망보험금이 95억 원에 달하는 점 등을 이상하게 여겨 A 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아내 혈액에서 수면 유도 성분이 나온 점 등을 근거로 A 씨를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A 씨 측과 변호인은, A 씨가 사고 전날 새벽부터 이 사건 사고 당시까지 21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운전, 결국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수의 보험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은, A 씨가 운영하는 생활용품점의 주 고객이었던 보험설계사들로부터 보험에 가입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거절하지 못한 것일 뿐 아내를 살해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A 씨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보험에 가입한 점, 아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고 곧 아들을 출산한 예정 등을 근거로 아내를 살해할 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A 씨 측은 서로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살인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간접 증거만으로는 범행을 증명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사고 두 달 전 30억 원의 보험을 추가로 가입한 점 등을 보면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대법원은 A 씨의 살인 동기가 불명확하다며 무죄 취지로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이 특별히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아내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려면 그 동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며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는 이상 객관적 증거와 이에 기초한 치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살인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할 수는 없다. 단호하게 진실이라고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논리적 추론과 가능성의 우월함만으로 단죄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후 3년여의 치열한 법리 다툼 끝에, 대전고등법원 형사6부(허용석 부장판사)는 A 씨에게 살인죄 대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를 물어 금고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고의 교통사고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에 따른 보험금 95억 원 중 54억 원은 일시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 법정 상속인과 나눠 받게 돼 있다”며 “아이를 위한 보험도 많이 가입했던 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점 등으로 보아 살인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수면 유도 성분과 관련해서 재판부는 "숨진 아내의 혈액에서 수면 유도 성분이 나온 것만으로 피고인이 먹였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혈흔에서도 수면 유도 성분이 나왔다"고도 했다.

고의 교통사고와 관련해서는 "충돌 부위가 68%에 달해 피고인 역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상을 입었는데, 피해자만 다치게 하려고 선택하는 방법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재판부는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졸음운전을 했다는 점은 유죄로 인정된다" 며 살인죄가 아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과실치사죄를 적용 사실상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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