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갑질 조사’한다더니…제 식구 갑질은 못 막은 국민권익위원회

입력 2020.08.14 (10:54) 수정 2020.09.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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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권익위원회가 만든 <공공분야 '직장 갑질' 종합 대책>

2018년, 정부는 '갑질'을 '생활 적폐'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공공분야부터 손을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후 국민권익위원회가 곧바로 <공공분야 '갑질'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신고와 조사 업무를 강화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공무원 행동강령까지 고쳤습니다. 13조 3항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직무 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행위 금지' 조항입니다. 쉽게 말해 공무원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갑질'을 하지 말라는 게 핵심입니다.



■ '갑질 조사' 하랬더니…국민권익위 내부서 고위공무원 '갑질' 의혹


그런데 '직장 갑질'을 조사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 내부에서 '갑질'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공직자 A 국장은 2018년부터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과정이 시작된 이후 직원들에게 가욋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입수한 권익위 직원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대학원 과제들 있잖아요. OOO 조사관이 (A 국장과) 같은 전공을 했거든요. (부서 직원이랑) 몇 명 이렇게 해서, 저희가 대충 써가지고 하고, 도와드렸죠."
- 국민권익위원회 A 직원 녹취 中

국장의 대학원 과제를 직원들이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A 국장은 같은 전공을 한 다른 부서 직원에게도 자신의 과제를 검토해달라고 했습니다. 검토해 달라고 과제를 보내는 것조차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같은 부서 부하 직원을 시켰습니다. 아래는 KBS가 입수한 A 국장 부하 직원의 이메일입니다.

해당 메일에는 A 국장의 이름으로 된 29장짜리와 9장짜리 과제물이 각각 첨부돼 있었습니다. 보낸 시기는 각각 2018년 12월과 2019년 5월. 모두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이던 시기입니다.



A 국장은 직원들에게 대학원 수업 영문 자료를 번역하는 일까지 맡겼습니다. A 국장의 과제에 동원된 한 직원은 "왜 이런 일을 도와줬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 국장의 온라인 강의를 대신 출석한 직원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아직도 이런 관행이 있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그런 생각 하면서도 뭐 저도 일개 직원인지라 또 안 했다가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게 어떤 불이익인지는 모르지만…."
- 국민권익위원회 B 직원 녹취 中


■ '취재 거부' 뒤 A 국장이 한 일은?

이제 A 국장에게 물을 차례입니다. 취재진은 해당 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먼저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취재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대변인실은 A 국장이 인터뷰 등 취재를 거절했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사자에게 사무실 전화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연락했고, 권익위를 찾아가 만남을 시도했지만, A 국장은 역시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권익위 앞에서 A 국장의 회신을 기다리던 그 시각, 취재를 거부했던 A 국장은 대학원 과제 등을 맡겼던 직원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KBS나 제보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접촉했는지, 감사실에서 연락을 받은 게 있는지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직장 갑질' 근절 외치던 권익위는 뭐했나?

이런 내부 갑질 문제는 이미 1년 전, 권익위 내부에서 공론화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5월, 권익위 감사실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이른바 '직장 갑질'에 관해 익명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사의 과제를 대신한 적이 있다는 답변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사실은 즉각 관련 사례들을 모아, 한 달 뒤 직원들을 대상으로 갑질 근절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올해도 일부 직원은 A 국장의 대학원 관련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KBS가 만난 복수의 전 권익위 공무원들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권익위가 행정 관료화가 됐어요. 그러니까 일반 정부 기관처럼 정부 기관은 행정조직이잖아요. 근데 권익위도 이미 행정 관료화가 됐다는 겁니다. 권익위는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잘못된 행정 관료화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는 걸 개선해야 하는 게, 또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권익위의 본질적 역할인데 오히려 권익위가 행정 관료화가 됐고 수직적 구조가 됐다는 거죠."


- 김영수 전 국민권익위 조사관 인터뷰 中

국민권익위원회는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으로부터도 갑질 신고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직접 조사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부에서 벌어진 갑질 의혹과 관련해 권익위가 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탐사보도부는 권익위에서 벌어진 '직장 갑질'에 대해 오늘 밤 KBS 뉴스9를 통해 심층 보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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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갑질 조사’한다더니…제 식구 갑질은 못 막은 국민권익위원회
    • 입력 2020-08-14 10:54:10
    • 수정2020-09-01 16:03:52
    취재K
■ 국민권익위원회가 만든 <공공분야 '직장 갑질' 종합 대책> 2018년, 정부는 '갑질'을 '생활 적폐'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공공분야부터 손을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후 국민권익위원회가 곧바로 <공공분야 '갑질'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신고와 조사 업무를 강화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공무원 행동강령까지 고쳤습니다. 13조 3항이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직무 권한 등을 행사한 부당행위 금지' 조항입니다. 쉽게 말해 공무원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갑질'을 하지 말라는 게 핵심입니다. ■ '갑질 조사' 하랬더니…국민권익위 내부서 고위공무원 '갑질' 의혹 그런데 '직장 갑질'을 조사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 내부에서 '갑질'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공직자 A 국장은 2018년부터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과정이 시작된 이후 직원들에게 가욋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입수한 권익위 직원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대학원 과제들 있잖아요. OOO 조사관이 (A 국장과) 같은 전공을 했거든요. (부서 직원이랑) 몇 명 이렇게 해서, 저희가 대충 써가지고 하고, 도와드렸죠." - 국민권익위원회 A 직원 녹취 中 국장의 대학원 과제를 직원들이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A 국장은 같은 전공을 한 다른 부서 직원에게도 자신의 과제를 검토해달라고 했습니다. 검토해 달라고 과제를 보내는 것조차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같은 부서 부하 직원을 시켰습니다. 아래는 KBS가 입수한 A 국장 부하 직원의 이메일입니다. 해당 메일에는 A 국장의 이름으로 된 29장짜리와 9장짜리 과제물이 각각 첨부돼 있었습니다. 보낸 시기는 각각 2018년 12월과 2019년 5월. 모두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이던 시기입니다. A 국장은 직원들에게 대학원 수업 영문 자료를 번역하는 일까지 맡겼습니다. A 국장의 과제에 동원된 한 직원은 "왜 이런 일을 도와줬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A 국장의 온라인 강의를 대신 출석한 직원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아직도 이런 관행이 있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죠. 그런 생각 하면서도 뭐 저도 일개 직원인지라 또 안 했다가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게 어떤 불이익인지는 모르지만…." - 국민권익위원회 B 직원 녹취 中 ■ '취재 거부' 뒤 A 국장이 한 일은? 이제 A 국장에게 물을 차례입니다. 취재진은 해당 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먼저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취재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대변인실은 A 국장이 인터뷰 등 취재를 거절했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당사자에게 사무실 전화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연락했고, 권익위를 찾아가 만남을 시도했지만, A 국장은 역시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권익위 앞에서 A 국장의 회신을 기다리던 그 시각, 취재를 거부했던 A 국장은 대학원 과제 등을 맡겼던 직원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KBS나 제보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접촉했는지, 감사실에서 연락을 받은 게 있는지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 '직장 갑질' 근절 외치던 권익위는 뭐했나? 이런 내부 갑질 문제는 이미 1년 전, 권익위 내부에서 공론화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5월, 권익위 감사실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이른바 '직장 갑질'에 관해 익명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사의 과제를 대신한 적이 있다는 답변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사실은 즉각 관련 사례들을 모아, 한 달 뒤 직원들을 대상으로 갑질 근절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올해도 일부 직원은 A 국장의 대학원 관련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KBS가 만난 복수의 전 권익위 공무원들은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권익위가 행정 관료화가 됐어요. 그러니까 일반 정부 기관처럼 정부 기관은 행정조직이잖아요. 근데 권익위도 이미 행정 관료화가 됐다는 겁니다. 권익위는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잘못된 행정 관료화로 인해서 문제가 생기는 걸 개선해야 하는 게, 또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권익위의 본질적 역할인데 오히려 권익위가 행정 관료화가 됐고 수직적 구조가 됐다는 거죠." - 김영수 전 국민권익위 조사관 인터뷰 中 국민권익위원회는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으로부터도 갑질 신고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직접 조사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부에서 벌어진 갑질 의혹과 관련해 권익위가 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탐사보도부는 권익위에서 벌어진 '직장 갑질'에 대해 오늘 밤 KBS 뉴스9를 통해 심층 보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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