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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창] 추석에 이산가족상봉 가능할까?…“허락된 시간이 짧아”
입력 2020.08.15 (08:01) 수정 2020.08.21 (15:58) 취재K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추석 기대감 높아

다가오는 10월 1일은 추석입니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을 그리워 해 온 이산가족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이번 추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남북관계는 꽉 막힌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들이 이번 명절을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달 새로 취임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산가족 상봉 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의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대북 정책 추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7월 21일 남북회담본부 앞에선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면서 "금강산에서 먼저 이뤄졌으면 좋겠고 금강산이 안 되면 판문점에서 아주 소규모라도 정책을 제안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21차례의 만남과 7번의 화상 상봉


한국전쟁 이후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한 건 1971년입니다. 한국적십자사가 처음으로 이산가족상봉을 북측에 제안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는데, 당시 우리 정부는 대북 정책의 변화 의지를 보이며 남북 간 물밑접촉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그해 남북은 자주·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담은 첫 공식 합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1984년 8월 서울과 경기권에 최악의 홍수가 내리면서 2차 이산가족상봉 논의는 진전을 보였습니다. 당시 북측은 9만 3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구호물자 지원을 제의했습니다. 이후 남북 교류에 물꼬가 트이면서 다음 해인 1985년 9월 이산가족들은 역사적인 첫 상봉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KAL 858기 폭파사건이 터지면서 남북 관계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90년대 북핵 위기까지 닥치면서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문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북한 역시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만큼 극심한 경제난과 자연재해를 겪으며 체제 유지를 위한 내부 결속에 집중해 이산가족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민간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성사됐습니다.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산가족 상봉에 전격 합의합니다. 그해 8월 20일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서 2007년까지 지속적인 만남이 이어집니다.

지난 2018년까지 총 21차례의 이산가족 상봉과 7차례의 화상 상봉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답보 상태에 빠진 북미 핵협상과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화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생존자 60% 이상 80살 넘어…."허락된 시간 짧아"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5만 7천여 명입니다. 이산가족 생존자의 60% 이상이 80살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 위해선 남북 간 이산가족의 명단을 주고받고, 생사 또는 상봉의사 확인 등 여러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남북 간 협의가 완료되고 실무 준비에만 적어도 2~3개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통일부가 이산가족 상봉에 속도를 내고, 북한이 이에 응답한다면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입니다. 애타고 절실한 가족 간의 만남에 실무 작업을 위한 촉박한 시간은 장애물이 될 수는 없겠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응답입니다.

관련 영상은 오늘(15일) 오전 7시 50분 KBS 1TV <남북의 창>과 유튜브 <이북리더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vod/program.do?bcd=0031&ref=pMenu#2020.06
https://www.youtube.com/channel/UCkLOF14rzE4O9K6WVP-cCJQ/videos
  • [남북의창] 추석에 이산가족상봉 가능할까?…“허락된 시간이 짧아”
    • 입력 2020-08-15 08:01:10
    • 수정2020-08-21 15:58:21
    취재K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추석 기대감 높아

다가오는 10월 1일은 추석입니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을 그리워 해 온 이산가족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이번 추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남북관계는 꽉 막힌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들이 이번 명절을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달 새로 취임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산가족 상봉 추진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의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대북 정책 추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7월 21일 남북회담본부 앞에선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겠다면서 "금강산에서 먼저 이뤄졌으면 좋겠고 금강산이 안 되면 판문점에서 아주 소규모라도 정책을 제안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21차례의 만남과 7번의 화상 상봉


한국전쟁 이후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한 건 1971년입니다. 한국적십자사가 처음으로 이산가족상봉을 북측에 제안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는데, 당시 우리 정부는 대북 정책의 변화 의지를 보이며 남북 간 물밑접촉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그해 남북은 자주·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담은 첫 공식 합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1984년 8월 서울과 경기권에 최악의 홍수가 내리면서 2차 이산가족상봉 논의는 진전을 보였습니다. 당시 북측은 9만 3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구호물자 지원을 제의했습니다. 이후 남북 교류에 물꼬가 트이면서 다음 해인 1985년 9월 이산가족들은 역사적인 첫 상봉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KAL 858기 폭파사건이 터지면서 남북 관계는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90년대 북핵 위기까지 닥치면서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문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북한 역시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만큼 극심한 경제난과 자연재해를 겪으며 체제 유지를 위한 내부 결속에 집중해 이산가족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민간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성사됐습니다.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산가족 상봉에 전격 합의합니다. 그해 8월 20일 대규모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서 2007년까지 지속적인 만남이 이어집니다.

지난 2018년까지 총 21차례의 이산가족 상봉과 7차례의 화상 상봉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답보 상태에 빠진 북미 핵협상과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대화 추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생존자 60% 이상 80살 넘어…."허락된 시간 짧아"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5만 7천여 명입니다. 이산가족 생존자의 60% 이상이 80살 이상의 고령자입니다.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 위해선 남북 간 이산가족의 명단을 주고받고, 생사 또는 상봉의사 확인 등 여러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남북 간 협의가 완료되고 실무 준비에만 적어도 2~3개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통일부가 이산가족 상봉에 속도를 내고, 북한이 이에 응답한다면 올 추석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입니다. 애타고 절실한 가족 간의 만남에 실무 작업을 위한 촉박한 시간은 장애물이 될 수는 없겠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응답입니다.

관련 영상은 오늘(15일) 오전 7시 50분 KBS 1TV <남북의 창>과 유튜브 <이북리더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bs.co.kr/vod/program.do?bcd=0031&ref=pMenu#2020.06
https://www.youtube.com/channel/UCkLOF14rzE4O9K6WVP-cCJQ/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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