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불황에 장마에 코로나까지”…남대문시장 상인의 편지

입력 2020.08.19 (13:19) 수정 2020.08.1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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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과 어제(18일) 두 차례 남대문 시장에 갔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던 케네디 상가를 비롯해 남대문시장 내 크고 작은 상가들과 갈치골목을 돌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상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못 살겠다"였습니다.

[연관기사] [르포] 장마에 코로나 직격탄…전통시장 상인들 ‘한숨만’(2020.08.18 KBS1TV 뉴스9)

한 상인은 취재진에게 먼저 다가와 자필로 쓴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역대급 폭우에 뒤이어 수도권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게 증가한 데 따른 불안과 걱정을 담은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불황이 이어지다가 힘든 중에 코로나가 터진 소상공인 장사(상인)들인데요. 손님이 이제 나오려나 했더니 폭우가 터져 매일 적자에 당장 쓸 돈이 없을 지경이에요. 생계가 걱정이에요. 막막해요. 장사 아니면할 것도 없는 우리…. 소상공인들 좀 살려주세요."

■코로나→폭우→다시 코로나…재난 '삼중고'

남대문시장 대도 아케이드 1층에는 130여 개의 의류판매장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 중 올해 35곳이 폐업했고, 8월 안에 두 곳이 더 폐업합니다. 이철해 대도 아케이드 상인회장은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인들이 30명 정도 더 있다"면서 "장마에 코로나까지 겹치니 손님이 더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전통시장의 특성상, 비가 오면 맑은 날보다 손님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이곳저곳 상가를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기보단, 편안하고 쾌적한 대형 할인점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상인회에 따르면, 코로나와 장마를 거치며 남대문 시장 전체 상가 세 곳 중 한 곳(30%)이 폐업했습니다.

폐업한 점포 앞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는 이철해 대도아케이드 상인회장폐업한 점포 앞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는 이철해 대도아케이드 상인회장

20년 동안 남대문 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이수연 씨는 "밤 11시에 나와서 이튿날 오후 4시에 들어가는데 개시를 못 할 때도 많다"면서 폭우가 내리던 시기 장부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장부엔 이틀에 한 번꼴로 매출 기록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한두 건에 그쳤습니다.

설상가상, 이달 초 일부 상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오던 손님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상가 전체에 방역을 마친 뒤, 상인 5만여 명 전체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습니다. 상인들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추가 확진자는 없었습니다. 구청과 상인회는 지금도 수시로 방역을 하며 혹시 모를 감염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장 못 떠나…위기 극복할 것"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복절을 낀 3일간의 연휴 동안 시장은 활력을 찾지 못했습니다. 갈치골목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이봉숙 씨는 최근 3명이었던 종업원을 1명으로 줄였습니다. 이 씨는 "예전에는 빨간 날에 줄이 길어 사람이 밀려날 정도였다"면서 "지금은 손님이 10분의 일 수준"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남대문시장 일부 점포주들은 지난 2월부터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20%에서 30%가량 깎아주고 있습니다. 함께 이겨내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매출이 0에 수렴하는지라, 상인들에겐 이마저도 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식자재 가게를 운영하는 김경용 씨는 "임대료를 내고 나면 적자가 돼 상인들이 수억 원의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일 점심시간 남대문시장 갈치골목평일 점심시간 남대문시장 갈치골목

악조건 속에서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연휴가 지나고 들려온 소식은 수도권 발 코로나19 확산 소식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와중에도 상인들은 당장 장사보다도 코로나19 확산세를 걱정합니다. 취재 당시, 남대문시장 내 코로나 확진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하던 한 상인은 방송이 나간 직후 취재진에게 이렇게 연락해왔습니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만 어렵다고 생색을 내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지 걱정되네요. 아무쪼록 어려운 시기 다같이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이 지나면, 남대문시장에서 폐업하는 상가는 절반 이상이 될 것이라는 상인회의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났던 상인들은 "그래도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적게는 20년에서 많게는 4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온 사람들입니다.

끊이지 않는 코로나19 확산 소식에, 이례적으로 비까지 많이 내린 올여름, 재난이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상인들은 유독 어려운 계절을 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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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불황에 장마에 코로나까지”…남대문시장 상인의 편지
    • 입력 2020-08-19 13:19:12
    • 수정2020-08-19 13:19:30
    취재후·사건후
지난 13일과 어제(18일) 두 차례 남대문 시장에 갔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던 케네디 상가를 비롯해 남대문시장 내 크고 작은 상가들과 갈치골목을 돌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상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못 살겠다"였습니다.

[연관기사] [르포] 장마에 코로나 직격탄…전통시장 상인들 ‘한숨만’(2020.08.18 KBS1TV 뉴스9)

한 상인은 취재진에게 먼저 다가와 자필로 쓴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역대급 폭우에 뒤이어 수도권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파르게 증가한 데 따른 불안과 걱정을 담은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불황이 이어지다가 힘든 중에 코로나가 터진 소상공인 장사(상인)들인데요. 손님이 이제 나오려나 했더니 폭우가 터져 매일 적자에 당장 쓸 돈이 없을 지경이에요. 생계가 걱정이에요. 막막해요. 장사 아니면할 것도 없는 우리…. 소상공인들 좀 살려주세요."

■코로나→폭우→다시 코로나…재난 '삼중고'

남대문시장 대도 아케이드 1층에는 130여 개의 의류판매장이 들어차 있습니다. 이 중 올해 35곳이 폐업했고, 8월 안에 두 곳이 더 폐업합니다. 이철해 대도 아케이드 상인회장은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인들이 30명 정도 더 있다"면서 "장마에 코로나까지 겹치니 손님이 더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전통시장의 특성상, 비가 오면 맑은 날보다 손님이 확연히 줄어듭니다. 이곳저곳 상가를 찾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기보단, 편안하고 쾌적한 대형 할인점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상인회에 따르면, 코로나와 장마를 거치며 남대문 시장 전체 상가 세 곳 중 한 곳(30%)이 폐업했습니다.

폐업한 점포 앞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는 이철해 대도아케이드 상인회장
20년 동안 남대문 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이수연 씨는 "밤 11시에 나와서 이튿날 오후 4시에 들어가는데 개시를 못 할 때도 많다"면서 폭우가 내리던 시기 장부 기록을 보여줬습니다. 장부엔 이틀에 한 번꼴로 매출 기록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한두 건에 그쳤습니다.

설상가상, 이달 초 일부 상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퍼지자 오던 손님마저 발길을 끊었습니다. 상가 전체에 방역을 마친 뒤, 상인 5만여 명 전체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습니다. 상인들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추가 확진자는 없었습니다. 구청과 상인회는 지금도 수시로 방역을 하며 혹시 모를 감염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장 못 떠나…위기 극복할 것"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복절을 낀 3일간의 연휴 동안 시장은 활력을 찾지 못했습니다. 갈치골목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는 이봉숙 씨는 최근 3명이었던 종업원을 1명으로 줄였습니다. 이 씨는 "예전에는 빨간 날에 줄이 길어 사람이 밀려날 정도였다"면서 "지금은 손님이 10분의 일 수준"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남대문시장 일부 점포주들은 지난 2월부터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20%에서 30%가량 깎아주고 있습니다. 함께 이겨내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매출이 0에 수렴하는지라, 상인들에겐 이마저도 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식자재 가게를 운영하는 김경용 씨는 "임대료를 내고 나면 적자가 돼 상인들이 수억 원의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는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일 점심시간 남대문시장 갈치골목
악조건 속에서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연휴가 지나고 들려온 소식은 수도권 발 코로나19 확산 소식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한 와중에도 상인들은 당장 장사보다도 코로나19 확산세를 걱정합니다. 취재 당시, 남대문시장 내 코로나 확진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하던 한 상인은 방송이 나간 직후 취재진에게 이렇게 연락해왔습니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우리만 어렵다고 생색을 내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지 걱정되네요. 아무쪼록 어려운 시기 다같이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이 지나면, 남대문시장에서 폐업하는 상가는 절반 이상이 될 것이라는 상인회의 전망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났던 상인들은 "그래도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적게는 20년에서 많게는 4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해온 사람들입니다.

끊이지 않는 코로나19 확산 소식에, 이례적으로 비까지 많이 내린 올여름, 재난이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상인들은 유독 어려운 계절을 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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