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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임신 22주,폐지 권고안에 ‘주 수’없는 이유는?
입력 2020.08.21 (17:45) 취재K
검색창(구글)에 '형법 269조'라고 쳐보신 적 있으신가요. 현행법 조문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27장 낙태의 죄'라고 쓰여 있는 내용이 보이고, 형법 제269조(낙태)에 대해 다루는 내용도 보입니다.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 밑에 파란색 글씨로 쓰여 있는 내용은 이 법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제269조 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은 2020.12.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적용된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법은 결국 올해 12월 31일이 넘어가면 적용 안 한다는 말이 써있는 겁니다. 그때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없어질 법입니다. '자동 폐기' 전에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 취지에 따라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법무부 자문기구의 권고가 나왔습니다.

■쟁점은 '주 수(임신 기간)'였는데...권고안엔 없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는 3가지 정도로 권고를 내렸습니다. 짧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 '낙태 처벌' → '임신·출산 권리보장'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할 것
- 낙태죄 조항 모두 폐지하되, 산모 의사에 반하는 낙태는 상해죄 등으로 다룰 것
- 원치 않는 임신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출생·성장 대책 마련할 것.

결국, 낙태를 '벌'로 다스리지는 말자는 권고입니다. 그리고 낙태를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권고안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바라보는 시선 중 쟁점이 됐던 내용 중 하나가 '주 수'였습니다. 임신 몇 주부터 낙태를 제한하는 게 좋겠느냐는 논의였습니다. 그 언급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권고안은 헌재 결정보다도 앞서나간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헌재는 "22주부터 제한"...몇 주가 맞나?

헌법재판소가 제안한 '주 수'가 있었습니다. 22주와 14주 두 개입니다.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건 용인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게 22주와 14주입니다.

먼저 헌재는 임신 22주를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시점"으로 봤습니다. 22주 전에는 임신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만한 시기라고 본 겁니다. 14주는 "임신 1삼분기"라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어떠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여성 자신의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헌법재판관 의견이 있었습니다.

위원회에서는 이런 기준을 참고해서 '주 수'를 충분히 고려하긴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권고안에는 구체적인 '주 수' 언급이 빠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 수는 의료적 처치 등에만 사용하자"

'주 수'에 따라 처벌하는 걸 넘어서자는 게 이번 권고안의 배경입니다. 그리고 낙태 관련 논의에 대해서는새 판을 짜자는 이야기입니다.

위원회 측에서는 '현실성'도 이야기합니다. '주 수'에 따른 처벌을 내린다면, 정확한 '주 수'를 알아야만 하는데 이게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를 처벌하게 된다면 낙태된 태아가 임신 몇 주였는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데 명확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산모이고, 이것은 객관적인 검증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위원회 측은 '주 수'가 처벌이 아닌 의료적 처치 등 '사회서비스'를 위한 기준으로만 쓰여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예를 들면, 특정 주 수를 넘어서는 낙태에 대해서는 곧바로 허용하지는 않는 겁니다. 처벌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상담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숙려기간을 필수로 거치도록 하는 등의 조치에만 '주 수'를 활용하자는 겁니다.

■찬반론 유일한 절충점 있다?...법무부 '고심'

그런데도, 낙태죄 폐지는 여전히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이슈입니다. 종교계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고,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타협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래도 유일해 보이는 절충점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낙태보다는 출산을 선택하는 게 개인이나 가정에 득이 되는 정책을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먼 이야기지만, 낙태가 허용되더라도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말입니다.

권고에 따라 조만간 정부가 개정안을 내놓을 겁니다. 하지만 법무부가 정책위 권고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법무부가 개정안을 내놓더라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등을 넘어야 합니다. 여기에 정부 입법으로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국회의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낙태 권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모든 논란을 불식시킬 만한 대체 법안은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남은 시간은 넉 달로, 촉박합니다. 법무부가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낙태…임신 22주,폐지 권고안에 ‘주 수’없는 이유는?
    • 입력 2020-08-21 17:45:17
    취재K
검색창(구글)에 '형법 269조'라고 쳐보신 적 있으신가요. 현행법 조문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들여다보면 '27장 낙태의 죄'라고 쓰여 있는 내용이 보이고, 형법 제269조(낙태)에 대해 다루는 내용도 보입니다.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 밑에 파란색 글씨로 쓰여 있는 내용은 이 법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제269조 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은 2020.12.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적용된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 법은 결국 올해 12월 31일이 넘어가면 적용 안 한다는 말이 써있는 겁니다. 그때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없어질 법입니다. '자동 폐기' 전에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 취지에 따라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법무부 자문기구의 권고가 나왔습니다.

■쟁점은 '주 수(임신 기간)'였는데...권고안엔 없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는 3가지 정도로 권고를 내렸습니다. 짧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 '낙태 처벌' → '임신·출산 권리보장'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할 것
- 낙태죄 조항 모두 폐지하되, 산모 의사에 반하는 낙태는 상해죄 등으로 다룰 것
- 원치 않는 임신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출생·성장 대책 마련할 것.

결국, 낙태를 '벌'로 다스리지는 말자는 권고입니다. 그리고 낙태를 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권고안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바라보는 시선 중 쟁점이 됐던 내용 중 하나가 '주 수'였습니다. 임신 몇 주부터 낙태를 제한하는 게 좋겠느냐는 논의였습니다. 그 언급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권고안은 헌재 결정보다도 앞서나간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헌재는 "22주부터 제한"...몇 주가 맞나?

헌법재판소가 제안한 '주 수'가 있었습니다. 22주와 14주 두 개입니다.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건 용인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제안한 게 22주와 14주입니다.

먼저 헌재는 임신 22주를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시점"으로 봤습니다. 22주 전에는 임신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만한 시기라고 본 겁니다. 14주는 "임신 1삼분기"라고 했습니다. 그전에는 어떠한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여성 자신의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헌법재판관 의견이 있었습니다.

위원회에서는 이런 기준을 참고해서 '주 수'를 충분히 고려하긴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권고안에는 구체적인 '주 수' 언급이 빠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 수는 의료적 처치 등에만 사용하자"

'주 수'에 따라 처벌하는 걸 넘어서자는 게 이번 권고안의 배경입니다. 그리고 낙태 관련 논의에 대해서는새 판을 짜자는 이야기입니다.

위원회 측에서는 '현실성'도 이야기합니다. '주 수'에 따른 처벌을 내린다면, 정확한 '주 수'를 알아야만 하는데 이게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를 처벌하게 된다면 낙태된 태아가 임신 몇 주였는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데 명확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산모이고, 이것은 객관적인 검증이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위원회 측은 '주 수'가 처벌이 아닌 의료적 처치 등 '사회서비스'를 위한 기준으로만 쓰여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예를 들면, 특정 주 수를 넘어서는 낙태에 대해서는 곧바로 허용하지는 않는 겁니다. 처벌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정된 의료기관에서 상담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숙려기간을 필수로 거치도록 하는 등의 조치에만 '주 수'를 활용하자는 겁니다.

■찬반론 유일한 절충점 있다?...법무부 '고심'

그런데도, 낙태죄 폐지는 여전히 찬반이 팽팽히 맞서는 이슈입니다. 종교계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고,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타협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래도 유일해 보이는 절충점이 있습니다. 여성들이 낙태보다는 출산을 선택하는 게 개인이나 가정에 득이 되는 정책을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먼 이야기지만, 낙태가 허용되더라도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말입니다.

권고에 따라 조만간 정부가 개정안을 내놓을 겁니다. 하지만 법무부가 정책위 권고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법무부가 개정안을 내놓더라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등을 넘어야 합니다. 여기에 정부 입법으로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국회의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낙태 권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모든 논란을 불식시킬 만한 대체 법안은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남은 시간은 넉 달로, 촉박합니다. 법무부가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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