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中 협조 요청…숙제 남긴 양제츠 방한

입력 2020.08.2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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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한국을 방문했다 떠났습니다.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한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양제츠 위원은 지난 22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부산에서 회담을 했습니다. 회담 시간은 5시간 50분. 회담을 마친 뒤 나온 두 사람의 표정은 매우 밝았습니다. 분위기는 무척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다른 나라보다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습니다. 오늘(24일)로 한중 수교 28주년입니다. 양제츠 위원은 "서로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의 동반자로 협력을 지속해나가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유쾌했던 상견례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회담의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 적극적으로 한국행 택한 양제츠…미·중 갈등 속 선택 요구?

양제츠 위원의 방한은 한국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 초청은 2018년 9월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방중해서 양제츠 위원을 만났을 때 했던 것으로, 이후 논의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년이 지난 뒤, 지금 이 시점에 중국 양제츠 위원이 한국에 오겠다고 적극성을 보인 것입니다. 특히 싱가포르를 들러 한국에 왔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 속에서 '상황 관리'를 하려는 분석이 힘을 얻습니다. 일본과 호주 같이 미국 쪽으로 기울어진 국가가 아니라, 한국과 싱가포르처럼 이른바 '줄타기 외교'를 하는 국가들만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외교부의 회담 발표 자료를 보면 "중국 측은 중미 관계의 원칙적 입장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했다"고 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설명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과의 회담에서 중국 측이 '미·중' 관계를 설명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례적입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이 첨예해진 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적인 공영과 정의'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제츠 위원도 서훈 실장에게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 ▲ 화웨이 제재 ▲ 탈중국공급망네트워크(EPN) ▲ 홍콩보안법 ▲ 남중국해 문제 협력 등에 한국이 참여하지 말라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것일까요?

일단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압박을 했다기보다는 큰 틀의 원칙만 먼저 설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예민한 문제인 탈중국공급망네트워크(EPN) 문제만 하더라도 아직 구체적으로 미국이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이 앞서 불참을 요구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국이 미·중 갈등에 대항하는 방안으로서, 지역 내 경제 공동체를 강조한 점은 눈에 띕니다.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인문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등입니다.

서훈 실장은 "미·중간 공영과 우호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향후 한국이 미·중 갈등 속에서 정책적 선택을 해야 할 때 고려해야 할 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된 건 분명합니다.


■ 시진핑 주석, 한국에 우선적으로 방한…'연내' 가능할까?

청와대는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 여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당국 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중국 측이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못박았습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지도자의 상대국 방문 일정이 확정되기 전까지 먼저 밝히지 않는 걸 관례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내에서도 10월에 7차 공산당 중앙위원회 개최가 있고, 코로나19 2차 대유행 가능성도 있는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일정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 측 발표에서도 당초 목표였던 '연내'라는 표현은 빠져 있습니다. 그만큼 코로나 19 상황이 엄중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은 유동적인 상황이지만, 상황이 개선된다면 시 주석 방한을 우선 추진한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시 주석이 방한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된 중국 입장에선 '우방국'이 생기는 셈이고, 우리 입장에선 사드 보복 등 문제 해결과 북한과의 관계 협조라는 모멘텀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중국이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 줄 수 있을까?

청와대는 "양측은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지역 및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과정에서 한중 양국 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양제츠 위원이 남북 쌍방이 발전 관계를 개선시키고 화해 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지지하며, 각 당사자들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은 남북 관계 개선에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양제츠 위원이 지지 입장을 밝히고 '정치적 해결 과정'을 강조한 셈입니다. 이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서 했던 "옆에서 돕겠다, 끌어당기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최종건 외교부 1차관까지 새롭게 꾸려진 외교안보 진영이 남북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과 갈등 관계인 중국 카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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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중 갈등 속 中 협조 요청…숙제 남긴 양제츠 방한
    • 입력 2020-08-24 17:24:08
    취재K
지난 주말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한국을 방문했다 떠났습니다.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한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양제츠 위원은 지난 22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부산에서 회담을 했습니다. 회담 시간은 5시간 50분. 회담을 마친 뒤 나온 두 사람의 표정은 매우 밝았습니다. 분위기는 무척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다른 나라보다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습니다. 오늘(24일)로 한중 수교 28주년입니다. 양제츠 위원은 "서로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의 동반자로 협력을 지속해나가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유쾌했던 상견례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회담의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 적극적으로 한국행 택한 양제츠…미·중 갈등 속 선택 요구?

양제츠 위원의 방한은 한국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 초청은 2018년 9월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방중해서 양제츠 위원을 만났을 때 했던 것으로, 이후 논의가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년이 지난 뒤, 지금 이 시점에 중국 양제츠 위원이 한국에 오겠다고 적극성을 보인 것입니다. 특히 싱가포르를 들러 한국에 왔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 속에서 '상황 관리'를 하려는 분석이 힘을 얻습니다. 일본과 호주 같이 미국 쪽으로 기울어진 국가가 아니라, 한국과 싱가포르처럼 이른바 '줄타기 외교'를 하는 국가들만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외교부의 회담 발표 자료를 보면 "중국 측은 중미 관계의 원칙적 입장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했다"고 돼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설명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과의 회담에서 중국 측이 '미·중' 관계를 설명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례적입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이 첨예해진 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것은 '국제적인 공영과 정의'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제츠 위원도 서훈 실장에게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 ▲ 화웨이 제재 ▲ 탈중국공급망네트워크(EPN) ▲ 홍콩보안법 ▲ 남중국해 문제 협력 등에 한국이 참여하지 말라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것일까요?

일단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압박을 했다기보다는 큰 틀의 원칙만 먼저 설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예민한 문제인 탈중국공급망네트워크(EPN) 문제만 하더라도 아직 구체적으로 미국이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이 앞서 불참을 요구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국이 미·중 갈등에 대항하는 방안으로서, 지역 내 경제 공동체를 강조한 점은 눈에 띕니다.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인문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등입니다.

서훈 실장은 "미·중간 공영과 우호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향후 한국이 미·중 갈등 속에서 정책적 선택을 해야 할 때 고려해야 할 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된 건 분명합니다.


■ 시진핑 주석, 한국에 우선적으로 방한…'연내' 가능할까?

청와대는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 여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당국 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특히 중국 측이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못박았습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지도자의 상대국 방문 일정이 확정되기 전까지 먼저 밝히지 않는 걸 관례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내에서도 10월에 7차 공산당 중앙위원회 개최가 있고, 코로나19 2차 대유행 가능성도 있는 등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일정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 측 발표에서도 당초 목표였던 '연내'라는 표현은 빠져 있습니다. 그만큼 코로나 19 상황이 엄중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은 유동적인 상황이지만, 상황이 개선된다면 시 주석 방한을 우선 추진한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시 주석이 방한하면, 국제적으로 고립된 중국 입장에선 '우방국'이 생기는 셈이고, 우리 입장에선 사드 보복 등 문제 해결과 북한과의 관계 협조라는 모멘텀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중국이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 줄 수 있을까?

청와대는 "양측은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지역 및 국제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며, 특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과정에서 한중 양국 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양제츠 위원이 남북 쌍방이 발전 관계를 개선시키고 화해 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지지하며, 각 당사자들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은 남북 관계 개선에 중국을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양제츠 위원이 지지 입장을 밝히고 '정치적 해결 과정'을 강조한 셈입니다. 이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서 했던 "옆에서 돕겠다, 끌어당기고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 최종건 외교부 1차관까지 새롭게 꾸려진 외교안보 진영이 남북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과 갈등 관계인 중국 카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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