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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시사] “봉제노동자 근로계약서, 4대 보험도 없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환경…70년대와 달라진 것 없어”
입력 2020.08.26 (09:45) 수정 2020.08.26 (10:14) 최경영의 최강시사
- 미싱사 규모 많이 줄었지만, 전국적으로 13만
- 학력 수준 높아지고, 근로조건 안 좋아 주로 5,60대가 대부분
- 하루 13시간 일해 10만원 공임 기준이나, 비수기에는 그나마도 일 못해
- 객공 체제.. 공식 계약없이 일 하는 만큼 수당 받는 시스템.. 자영업자로 분류되면서 4대보험 적용되지 않아
- 50년동안 일하면서 근로계약서 한번도 쓴 적 없고, 사업주들도 영세해
- 목디스크 기본.. 어깨병, 방광염 등의 지병들 있어
- 봉제노동자가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 없었어, 봉제노동조합이 영세사업주와 함께 시장에 대항해 단가 등 시스템 바꿔나가야
- 유통 중심의 시장.. 손기술 좋은 봉제노동자 덕분에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디자인한다는 인식 낮아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8월 26일(수) 07:20-08:57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기자 (뉴스타파)
■ 출연 : 김형탁 사무총장 (노회찬 재단), 박태숙 미싱사 (서울봉제인노조)


▷ 김경래 : 8월 한 달간 노회찬 재단과 함께하는 <6411 프로젝트> 진행했는데요. 오늘 그게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투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이었죠. 오늘은 봉제 노동자들 많이 줄었을 겁니다. 이게 1970년이었어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지켜라라고 분신을 했던 게. 지금 50년이 지났는데 그래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예전히 미싱 돌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해요. 어떤 현실인지 얘기 좀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얘기 함께해주실 분 두 분 모셨습니다. 먼저 봉제 노동자로 실제로 일하고 계신 박태숙 선생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박태숙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그리고 노회찬 재단 사무총장 김형탁 선생님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형탁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경래 : 봉제 노동자들과 뭔가 인연이 있으신가요? 김형탁 선생님. 

▶ 김형탁 : 예, 봉제 노동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요. 봉제인공제회 제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렇군요. 박태숙 선생님은 언제부터 봉제 노동자, 이게 미싱사라고 하나요? 어떻게 보통 미싱사라고 하나요? 언제부터 일하셨어요? 

▶ 박태숙 : 저는 1972년 14살에 처음 평화시장에 들어와서 그때부터 시다부터 시작해서 미싱사로 돼서 현재까지 미싱을 하고 있어요. 

▷ 김경래 : 근 50년 됐네요? 

▶ 박태숙 : 그렇죠. 

▷ 김경래 : 와, 50년 동안 그러면 같은 일을 계속하신 거예요? 

▶ 박태숙 : 그렇죠. 

▷ 김경래 : 계속 미싱을 만지시고. 

▶ 박태숙 : 미싱공. 네. 

▷ 김경래 : 아니, 그러면 지금은 노동자들이 많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옷이라는 게 동남아에서 많이 만들고 싸게 들어오고 이래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김 선생님? 

▶ 김형탁 : 봉제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추계입니다만 전국적으로 한 13만 명이 좀 넘는 것으로 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서울시도 한 9만 명 이상 일을 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추계를 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같이 일하시는 분들 많죠. 박태숙 선생님 혼자 일하시는 건 아닐 거고. 

▶ 박태숙 : 예전보다는 많지 않아요. 예전에는 제가 70년대 일할 때는 한 공장에 미싱이 보통 7~8대 되고 예전에는 다들 6.25 전쟁 이후로 먹고살기도 힘들고 이래서 공부 제대로 안 하고 돈 벌러 온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인구가 많고 제가 초등학교를 봄에 졸업했는데 평화시장에 바로 못 들어왔어요, 자리가 없어서. 가을에 들어왔거든요. 

▷ 김경래 : 자리가 없어서 들어가려고 해도? 

▶ 박태숙 : 예, 그 시절에는 그랬어요. 그래서 인구가 많아서 그랬는데 지금은 세월도 흐르고 또 지금은 다들 자녀들을 가능하면 대학교까지 다 보내려고 노력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러기도 하고 또 평화시장 근로조건이 너무 안 좋다 보니까 다들 평화시장에 잘 안 들어오죠. 그래서 지금은 저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 김경래 : 그때 1972년도에는 10대. 

▶ 박태숙 : 그때는 10대였고. 

▷ 김경래 : 어린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주로 일하신다. 

▶ 박태숙 : 그렇죠. 주로 50대, 60대가 주라고 봐야죠. 

▷ 김경래 : 저도 전태일 평전 같은 거 읽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에 열몇 시간씩 하루에 일하고 환경도 너무 안 좋고 먼지도 많고 그런 이야기들 많이 했잖아요. 요새는 나아졌어요, 그래도? 

▶ 박태숙 : 지금 별로 안 좋아졌어요. 별로 안 나아졌어요. 

▷ 김경래 : 안 나아졌어요? 

▶ 박태숙 : 지금도 예전에 70년대에는 8시 반 출근해서 10시, 11시까지 일을 했잖아요. 

▷ 김경래 : 모르죠. 10시, 11시까지 일했어요? 

▶ 박태숙 : 그랬어요. 그러니까 막차가 끊어질 때까지. 옛날에는 통행 금지가 있었으니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더 시키고 싶어도 못 시켰죠.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아침에 한 9시 출근해서 여전히 10시까지 기본 10시까지 일을 해요. 그리고 조금 더 하는 사람들도 많고 객공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하는 만큼 가져가기 때문에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조금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조금 더하기도 하니까 예전하고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 김경래 : 일단 김형탁 총장님 객공이 뭐예요, 객공? 

▶ 김형탁 : 객공이라고 하는 것은 공식적인 고용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고용돼서 일을 하는 건데 실제로 노동자가, 그러니까 노동 이력이 적립이 안 되는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자기가 일한 만큼만 받아갑니다, 그러니까 장당. 그러니까 옷을 만들려면 옷 1장당 얼마씩 받아가는 건데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로 분류가 되어 있지 않고 자영업자로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 김경래 : 특수고용 노동자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 김형탁 : 특수고용 노동이죠. 그래서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있고 그러하다 보니까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노동자들한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있지 않습니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입니다. 

▷ 김경래 : 박태숙 선생님, 50년 동안 일하셨는데 근로계약서 써보신 적 있으세요? 

▶ 박태숙 : 저 한 번도 없어요. 

▷ 김경래 : 50년 동안 한 번도 없으셨어요? 

▶ 박태숙 : 네, 그리고 근로계약서도 써보지도 않았지만 공장의 사장님도 사업자 등록 없는 분이 굉장히 많아요. 

▷ 김경래 : 그래요? 사업주들도 영세하다. 

▶ 박태숙 : 예전에는 공장이 가게에서 직접 공장을 운영했어요, 70년대에는. 그렇지만 현재는 가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고 공장에다 하청을 주잖아요. 하청을 주기 때문에 그 하청 공장 사장도 어차피 우리 미싱하다가 또 재단사 하다가 그렇게 해서 공장을 소규모로 차려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또 같이 늙어가고 공장 사장도 거의 다 50대, 60대 그래서 저희 일하는 사람들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요. 

▷ 김경래 : 그런데 가게에서 하청을 주면 예를 들어 온갖 옷을 다 만드실 것 아니에요, 그렇죠? 한 장에 얼마씩 받고 이런 게 있어요? 정해져 있어요? 

▶ 박태숙 : 그게 딱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본 틀은 있죠. 틀은 있는데 디자인에 따라서 기본 선생님이 지금 입으신 와이셔츠도 거기도 주머니가 하나 있잖아요. 어떤 거는 주머니가 2개 있는 것도 있잖아요. 

▷ 김경래 : 아, 단가가 다르구나. 

▶ 박태숙 : 그렇죠. 디자인에 따라서 뭐가 하나 더 붙느냐에 따라서 단가가 다른데 예전에는 그런 걸 조금 많이 신경썼는데 요즘은 그렇게 뭐 비슷비슷하더라고요. 

▷ 김경래 : 이런 거 한 장 만들면 얼마 받으십니까? 

▶ 박태숙 : 그거요? 

▷ 김경래 : 견적을 딱 내시는데 저를 보고. 

▶ 박태숙 : 미싱공임만 하면 얼마 안 줘요. 2천 원, 3천 원 주는 데도 있고. 

▷ 김경래 : 2천 원, 3천 원? 적구나. 

▶ 박태숙 : 하루에 몇 장 못하는데 그러니까 시간으로 하는 거죠, 워낙 싸니까. 

▷ 김경래 : 이게 정상적인 어떤 근로계약 관계가 안 되니까 이런 장시간 노동 같은 것들이 규제가 안 되는 거잖아요. 

▶ 김형탁 : 그렇죠. 

▷ 김경래 : 어떤 방법이 있어요? 아까 박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답답한 게 사업주들도 영세하고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지금 그래도 서울에 9만 명이라는 미싱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 김형탁 : 그러니까 이 봉제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가 별로 없는 상태입니다. 예전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다시 봉제인노동조합이 다시 만들어지는데 이제 한창 조합원들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조합원들이 많아지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텐데요. 이게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자기를 고용한 사람들과의 대립이라기보다 사실은 시장, 우리가 흔히 동대문시장 워낙 단가를 낮추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단가, 공정한 단가를 받기 위한 싸움이 될 텐데요. 사실은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같이 좀 힘을 합쳐서 시장에서 제대로 된 단가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또 공정한 임금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런 노력을 해야 됩니다. 

▷ 김경래 : 하루에 9시 반에 출근하셔서 아까 10시. 

▶ 박태숙 : 9시 출근. 

▷ 김경래 : 9시 출근해서 10시 넘어서까지 일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뭐 하루에 13시간, 14시간 일하시는 건데 그렇게 하면 하루에 얼마 벌 수 있습니까? 

▶ 박태숙 : 보통 하루에 10만 원 기준에서 공임이 정해져요, 보통. 

▷ 김경래 : 대략 기준이 10만 원이에요? 

▶ 박태숙 : 예, 보통 10만 원 기준이니까 하루에 13시간씩 일해서 10만 원 기준이면 우리가 최저임금도 안 된다고 봐야죠. 

▷ 김경래 : 시간당 1만 원이 안 되는 거죠. 

▶ 박태숙 : 그렇죠. 그런 데다가 평화시장은 옷이라는 게 계절을 타서 비철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이게 1년 12달 10만 원이면 한 달에 250만 원 이렇게 벌어가면 괜찮죠, 그래도 먹고사는 데에 풍족하게는 못 쓰지만. 

▷ 김경래 : 그나마 그것도 괜찮은데. 

▶ 박태숙 : 비철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 비철도 빼고 이러면 사실 계산해보세요. 

▷ 김경래 : 그러니까 몇 달은 일을 못하는 시간이 있다는 거죠. 그게 보통 언제예요? 계절로 따지면? 

▶ 박태숙 : 보통 제일 긴 거는 여름철이고요. 여름에는 옷을 많이 안 사입잖아요. 

▷ 김경래 : 그렇죠. 

▶ 박태숙 : 그러니까 여름 초기에 초에 잠깐 옷 한 장씩 사입고 여름에는 또 옷이 가벼우니까 티셔츠나 블라우스 이런 거 한 장씩 사입고 그러고 마니까 여름이 가장 길고 겨울에서 봄 그러니까 제일 긴 건 여름이고 중간중간에 계절계절마다 공백기가 조금씩 조금씩 있어요, 계절계절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반 최저임금보다 훨씬 더 적다고 봐야죠. 

▷ 김경래 : 일단 노동조합이고 근로계약서가 문제가 아니라 단가를 좀 올려야 되는 것 아니에요, 총장님? 

▶ 김형탁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실 노동조합이라고 그러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세한 봉제 업체들 같은 경우에는 병들입니다. 그러니까 병들끼리 전쟁을 할 수 없는 것들이죠. 

▷ 김경래 : 아, 갑, 을도 아니고. 

▶ 김형탁 : 갑, 을도 아니고 병들인데 병들끼리 싸워봐야 서로 힘만 드니까 사실은 같이 힘을 합쳐서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의류 쪽이 보면 대부분 유통 중심으로 시장 유통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외국의 사례들 보면 봉제 의류가 패션 의류가 사양산업이 아니고 생활밀착형으로 해서 도심 제조업으로서 상당히 발달한 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손기술이 좋은 봉제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들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이 갖추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주로 밖으로 보이는 외관만 신경쓰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봉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면 제대로 된 패션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한류 이야기하는데 왜 손기술이 좋은 우리나라가 패션 의류가 한류가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한류가 형성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이게 여러 가지 객공이라는 어떤 시스템의 문제가 있고 그렇죠? 정상적인 근로계약을 못 맺는 문제가 있고 단가가 너무 낮고 장시간 노동을 했는데 일당은 굉장히 적은 편이고 비수기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건강 문제인데 저도 아는 사람이 봉제 공장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먼지가 실밥하고요. 어마어마하잖아요. 그게 그런데 제가 본 게 20년 전, 30년 전이에요. 요즘은 어때요? 

▶ 박태숙 : 별로 다르지 않아요. 다르지 않고요. 먼지가 겨울에는 안에 털도 들어가고 이러잖아요. 그러면 밥 먹을 때 예전에도 밥 먹을 때 되면 우리가 밥 먹을 때 밥에 먼지가 제가 시다 때도 밥에 먼지가 들어갔었거든요. 빨간색 하면 빨간 먼지도 들어가고 그래서 건져내고 먹고 그랬는데 현재도 그래요. 

▷ 김경래 : 아니, 밥을 좀 나가서 사드셔야 되는 것 아니에요? 

▶ 박태숙 : 빨리 일하려고. 조금이라도 한 장이라도. 

▷ 김경래 : 빨리 일해야 되니까. 

▶ 박태숙 : 일해야 되니까 가능하면 공장에서 배달시켜서 먹어요. 

▷ 김경래 : 먼지구덩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 박태숙 : 그렇죠. 

▷ 김경래 : 일하실 때 마스크 쓰고 하시죠, 보통? 

▶ 박태숙 : 안 써요. 

▷ 김경래 : 왜 안 써요? 그거 써야 되는 것 아니에요? 

▶ 박태숙 : 써야 되는데 하루종일 쓸 수가 없잖아요.

▷ 김경래 : 답답해서? 

▶ 박태숙 : 하루에 13시간씩 어떻게 써요, 13시간 이상씩. 

▷ 김경래 : 지금 조혜숙 청취자님이 저희 아버지도 10대 때부터 봉제 공장에서 일하셨대요. 그런데 환갑 넘으신 지금도 일하시는데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다고 봉제 공장 현장이 너무 처참하다. 조금씩 바뀌기를 바라다. 이렇게 시스템도 굉장히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환경도 안 되고 그런데 환경 개선은 그래도 조금 되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지금 21세기 2020년인데? 안 되는 이유가 뭐예요, 환경 개선은? 

▶ 김형탁 : 환경 개선을 한다고는 하죠. 그런데 그게 공장마다 제대로 오지 않아서 그런 건데 그래서 정확하게 실태 조사를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고 제대로 된 실태 조사에 근거해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사업장들이 받는 수입이 많지 않다 보니까 그런 환경 개선에 많은 돈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워낙 단가가 낮다 보니까. 서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 그런 조건이다 보니까 환경은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들인데 그래서 전체적인 노동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돼요. 

▷ 김경래 : 그러려면 아까 사무총장님 말씀하셨듯이 노동조합이라든가 어쨌든 일하시는 분들의 이익, 권익을 권리를 조금 주장할 수 있는 모임이라든가 단체들이 필요하잖아요. 예전에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 노동조합 거기 아까 봉제인노동조합? 거기에 가입하셨어요, 박 선생님? 

▶ 박태숙 : 네. 

▷ 김경래 : 왜 가입하시게 되신 거예요, 처음에는? 

▶ 박태숙 : 제가 72년도에 평화시장에 들어왔다고 그랬잖아요. 76년도에 노동조합을 알았어요, 그때 시다 때. 

▷ 김경래 : 그때 청계피복노조였겠네요? 그렇죠? 

▶ 박태숙 : 네, 그때 노동조합을 알았는데 그때 마침 노조에서 시간 단축을 해서 그때는 8시에 퇴근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절이 너무 그립죠. 그리고 그때는 노동조합에서 임금도 옷 하나 단가 다 정해서 임금도 올리는 노력도 했고. 

▷ 김경래 : 1976년도예요? 

▶ 박태숙 : 네, 그리고 그때는 또 남자 잠바하는 집들은 시다 월급을 주인이 주지 않았어요. 미싱사가 지금처럼 객공이어서 미싱사가 팀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시다 월급을 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시다 월급을 주인이 줘야 된다고 그래서 시다 직불제도 했었고 그것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어요. 지금은 다 시다 월급은 주인이 주죠. 그렇게 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죠. 노동조합이 있으면 우리 노동자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힘을 쓸 수 있는데 그동안은 그런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이런 단체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 김형탁 : 첨언을 하자면 그때는 평화시장이 모여 있었으니까 노동조합 활동하기가 편했는데 지금 다들 주택가로 들어갔지 않습니까? 

▷ 김경래 : 흩어져 있으니까. 

▶ 김형탁 : 그러니까 같이 조직을 하기가 되게 어려운 조건이어서 이건 좀 별다른 노력 좀 필요하고 그래서 봉제인 노동조합에서 봉제인공제회로 해서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들을 하고 있는 거죠. 

▷ 김경래 : 활동하시니까 좀 나아졌어요, 나아지기는? 변화가 있습니까? 

▶ 박태숙 : 아직은 얼마 안 돼서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노력하면 되겠죠. 

▷ 김경래 : 지금 어깨가 안 좋으시다고. 미싱일을 50년 하셔서 그런 거예요? 

▶ 박태숙 : 저는 그렇다고 봐요. 제가 거의 50년 가까이 일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평화시장에서는 다들 이렇게 긴 시간 저같이 미싱사들은 거의 다 이렇게 40~50년씩 짧은 사람이 한 30년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까 또 우리는 이렇게 의자가 등받이 있는 의자가 아니고 긴 나무의자에서 일하기 편하게 그런 데서 일을 하다 보니까 기댈 수도 없어요. 

▷ 김경래 : 허리도 안 좋으시겠네. 

▶ 박태숙 : 그래서 대체적으로 디스크하고 목 수그리고 일하잖아요. 기본적으로 다 있고 어깨하고 방광염하고 이런 건 다 기본으로 있거든요. 

▷ 김경래 : 방광염, 화장실 자주 못 가니까? 

▶ 박태숙 : 네, 그래서 저도 옛날에 한 10년 전에 방광염 치료한 경험도 있고요. 현재는 어깨가 안 좋아서 몇 년 전에 오른쪽 어깨를 수술했어요. 그런데 또 왼쪽 어깨가 안 좋아서 조만간 수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 김경래 : 우예진님이 청취자분인데 시어머님이 봉제일을 오랫동안 하셔서 어깨 수술받으셨대요, 똑같이. 지금도 여전히 최저임금 받고 계시다고. 참 이게 사양산업이라고 보통 이야기하잖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까 시다라는 말 쓰셨는데 방송에서는 보조? 이쯤으로 쓰면 좋긴 하겠죠. 그런데 시다라는 말이 원래... 

▶ 박태숙 : 예전에는 그게 일본말이라고 그래서 견습공이라고 그랬어요. 

▷ 김경래 : 알겠습니다. 어찌 됐든 그래도 모임 노조도 만들어지고 뭔가 변화의 움직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이야기하죠. 고맙습니다. 

▶ 박태숙 : 감사합니다. 

▶ 김형탁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실제로 봉제 노동을 하고 계신 박태숙 선생님 그리고 노회찬 재단의 김형탁 사무총장님과 함께 <6411 프로젝트> 노동자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해봤습니다. 
  • [최강시사] “봉제노동자 근로계약서, 4대 보험도 없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환경…70년대와 달라진 것 없어”
    • 입력 2020-08-26 09:45:49
    • 수정2020-08-26 10:14:54
    최경영의 최강시사
- 미싱사 규모 많이 줄었지만, 전국적으로 13만
- 학력 수준 높아지고, 근로조건 안 좋아 주로 5,60대가 대부분
- 하루 13시간 일해 10만원 공임 기준이나, 비수기에는 그나마도 일 못해
- 객공 체제.. 공식 계약없이 일 하는 만큼 수당 받는 시스템.. 자영업자로 분류되면서 4대보험 적용되지 않아
- 50년동안 일하면서 근로계약서 한번도 쓴 적 없고, 사업주들도 영세해
- 목디스크 기본.. 어깨병, 방광염 등의 지병들 있어
- 봉제노동자가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 없었어, 봉제노동조합이 영세사업주와 함께 시장에 대항해 단가 등 시스템 바꿔나가야
- 유통 중심의 시장.. 손기술 좋은 봉제노동자 덕분에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디자인한다는 인식 낮아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8월 26일(수) 07:20-08:57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기자 (뉴스타파)
■ 출연 : 김형탁 사무총장 (노회찬 재단), 박태숙 미싱사 (서울봉제인노조)


▷ 김경래 : 8월 한 달간 노회찬 재단과 함께하는 <6411 프로젝트> 진행했는데요. 오늘 그게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투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이었죠. 오늘은 봉제 노동자들 많이 줄었을 겁니다. 이게 1970년이었어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지켜라라고 분신을 했던 게. 지금 50년이 지났는데 그래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예전보다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예전히 미싱 돌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해요. 어떤 현실인지 얘기 좀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얘기 함께해주실 분 두 분 모셨습니다. 먼저 봉제 노동자로 실제로 일하고 계신 박태숙 선생님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박태숙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그리고 노회찬 재단 사무총장 김형탁 선생님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형탁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경래 : 봉제 노동자들과 뭔가 인연이 있으신가요? 김형탁 선생님. 

▶ 김형탁 : 예, 봉제 노동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요. 봉제인공제회 제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그렇군요. 박태숙 선생님은 언제부터 봉제 노동자, 이게 미싱사라고 하나요? 어떻게 보통 미싱사라고 하나요? 언제부터 일하셨어요? 

▶ 박태숙 : 저는 1972년 14살에 처음 평화시장에 들어와서 그때부터 시다부터 시작해서 미싱사로 돼서 현재까지 미싱을 하고 있어요. 

▷ 김경래 : 근 50년 됐네요? 

▶ 박태숙 : 그렇죠. 

▷ 김경래 : 와, 50년 동안 그러면 같은 일을 계속하신 거예요? 

▶ 박태숙 : 그렇죠. 

▷ 김경래 : 계속 미싱을 만지시고. 

▶ 박태숙 : 미싱공. 네. 

▷ 김경래 : 아니, 그러면 지금은 노동자들이 많이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옷이라는 게 동남아에서 많이 만들고 싸게 들어오고 이래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김 선생님? 

▶ 김형탁 : 봉제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추계입니다만 전국적으로 한 13만 명이 좀 넘는 것으로 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서울시도 한 9만 명 이상 일을 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추계를 하고 있습니다. 

▷ 김경래 : 같이 일하시는 분들 많죠. 박태숙 선생님 혼자 일하시는 건 아닐 거고. 

▶ 박태숙 : 예전보다는 많지 않아요. 예전에는 제가 70년대 일할 때는 한 공장에 미싱이 보통 7~8대 되고 예전에는 다들 6.25 전쟁 이후로 먹고살기도 힘들고 이래서 공부 제대로 안 하고 돈 벌러 온 사람들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인구가 많고 제가 초등학교를 봄에 졸업했는데 평화시장에 바로 못 들어왔어요, 자리가 없어서. 가을에 들어왔거든요. 

▷ 김경래 : 자리가 없어서 들어가려고 해도? 

▶ 박태숙 : 예, 그 시절에는 그랬어요. 그래서 인구가 많아서 그랬는데 지금은 세월도 흐르고 또 지금은 다들 자녀들을 가능하면 대학교까지 다 보내려고 노력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러기도 하고 또 평화시장 근로조건이 너무 안 좋다 보니까 다들 평화시장에 잘 안 들어오죠. 그래서 지금은 저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 김경래 : 그때 1972년도에는 10대. 

▶ 박태숙 : 그때는 10대였고. 

▷ 김경래 : 어린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주로 일하신다. 

▶ 박태숙 : 그렇죠. 주로 50대, 60대가 주라고 봐야죠. 

▷ 김경래 : 저도 전태일 평전 같은 거 읽어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에 열몇 시간씩 하루에 일하고 환경도 너무 안 좋고 먼지도 많고 그런 이야기들 많이 했잖아요. 요새는 나아졌어요, 그래도? 

▶ 박태숙 : 지금 별로 안 좋아졌어요. 별로 안 나아졌어요. 

▷ 김경래 : 안 나아졌어요? 

▶ 박태숙 : 지금도 예전에 70년대에는 8시 반 출근해서 10시, 11시까지 일을 했잖아요. 

▷ 김경래 : 모르죠. 10시, 11시까지 일했어요? 

▶ 박태숙 : 그랬어요. 그러니까 막차가 끊어질 때까지. 옛날에는 통행 금지가 있었으니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더 시키고 싶어도 못 시켰죠.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아침에 한 9시 출근해서 여전히 10시까지 기본 10시까지 일을 해요. 그리고 조금 더 하는 사람들도 많고 객공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하는 만큼 가져가기 때문에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조금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조금 더하기도 하니까 예전하고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 김경래 : 일단 김형탁 총장님 객공이 뭐예요, 객공? 

▶ 김형탁 : 객공이라고 하는 것은 공식적인 고용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고용돼서 일을 하는 건데 실제로 노동자가, 그러니까 노동 이력이 적립이 안 되는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자기가 일한 만큼만 받아갑니다, 그러니까 장당. 그러니까 옷을 만들려면 옷 1장당 얼마씩 받아가는 건데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로 분류가 되어 있지 않고 자영업자로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 김경래 : 특수고용 노동자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 김형탁 : 특수고용 노동이죠. 그래서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있고 그러하다 보니까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노동자들한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있지 않습니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입니다. 

▷ 김경래 : 박태숙 선생님, 50년 동안 일하셨는데 근로계약서 써보신 적 있으세요? 

▶ 박태숙 : 저 한 번도 없어요. 

▷ 김경래 : 50년 동안 한 번도 없으셨어요? 

▶ 박태숙 : 네, 그리고 근로계약서도 써보지도 않았지만 공장의 사장님도 사업자 등록 없는 분이 굉장히 많아요. 

▷ 김경래 : 그래요? 사업주들도 영세하다. 

▶ 박태숙 : 예전에는 공장이 가게에서 직접 공장을 운영했어요, 70년대에는. 그렇지만 현재는 가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고 공장에다 하청을 주잖아요. 하청을 주기 때문에 그 하청 공장 사장도 어차피 우리 미싱하다가 또 재단사 하다가 그렇게 해서 공장을 소규모로 차려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또 같이 늙어가고 공장 사장도 거의 다 50대, 60대 그래서 저희 일하는 사람들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요. 

▷ 김경래 : 그런데 가게에서 하청을 주면 예를 들어 온갖 옷을 다 만드실 것 아니에요, 그렇죠? 한 장에 얼마씩 받고 이런 게 있어요? 정해져 있어요? 

▶ 박태숙 : 그게 딱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본 틀은 있죠. 틀은 있는데 디자인에 따라서 기본 선생님이 지금 입으신 와이셔츠도 거기도 주머니가 하나 있잖아요. 어떤 거는 주머니가 2개 있는 것도 있잖아요. 

▷ 김경래 : 아, 단가가 다르구나. 

▶ 박태숙 : 그렇죠. 디자인에 따라서 뭐가 하나 더 붙느냐에 따라서 단가가 다른데 예전에는 그런 걸 조금 많이 신경썼는데 요즘은 그렇게 뭐 비슷비슷하더라고요. 

▷ 김경래 : 이런 거 한 장 만들면 얼마 받으십니까? 

▶ 박태숙 : 그거요? 

▷ 김경래 : 견적을 딱 내시는데 저를 보고. 

▶ 박태숙 : 미싱공임만 하면 얼마 안 줘요. 2천 원, 3천 원 주는 데도 있고. 

▷ 김경래 : 2천 원, 3천 원? 적구나. 

▶ 박태숙 : 하루에 몇 장 못하는데 그러니까 시간으로 하는 거죠, 워낙 싸니까. 

▷ 김경래 : 이게 정상적인 어떤 근로계약 관계가 안 되니까 이런 장시간 노동 같은 것들이 규제가 안 되는 거잖아요. 

▶ 김형탁 : 그렇죠. 

▷ 김경래 : 어떤 방법이 있어요? 아까 박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답답한 게 사업주들도 영세하고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지금 그래도 서울에 9만 명이라는 미싱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 김형탁 : 그러니까 이 봉제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가 별로 없는 상태입니다. 예전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다시 봉제인노동조합이 다시 만들어지는데 이제 한창 조합원들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조합원들이 많아지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텐데요. 이게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자기를 고용한 사람들과의 대립이라기보다 사실은 시장, 우리가 흔히 동대문시장 워낙 단가를 낮추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단가, 공정한 단가를 받기 위한 싸움이 될 텐데요. 사실은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같이 좀 힘을 합쳐서 시장에서 제대로 된 단가를 받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또 공정한 임금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런 노력을 해야 됩니다. 

▷ 김경래 : 하루에 9시 반에 출근하셔서 아까 10시. 

▶ 박태숙 : 9시 출근. 

▷ 김경래 : 9시 출근해서 10시 넘어서까지 일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뭐 하루에 13시간, 14시간 일하시는 건데 그렇게 하면 하루에 얼마 벌 수 있습니까? 

▶ 박태숙 : 보통 하루에 10만 원 기준에서 공임이 정해져요, 보통. 

▷ 김경래 : 대략 기준이 10만 원이에요? 

▶ 박태숙 : 예, 보통 10만 원 기준이니까 하루에 13시간씩 일해서 10만 원 기준이면 우리가 최저임금도 안 된다고 봐야죠. 

▷ 김경래 : 시간당 1만 원이 안 되는 거죠. 

▶ 박태숙 : 그렇죠. 그런 데다가 평화시장은 옷이라는 게 계절을 타서 비철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이게 1년 12달 10만 원이면 한 달에 250만 원 이렇게 벌어가면 괜찮죠, 그래도 먹고사는 데에 풍족하게는 못 쓰지만. 

▷ 김경래 : 그나마 그것도 괜찮은데. 

▶ 박태숙 : 비철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 비철도 빼고 이러면 사실 계산해보세요. 

▷ 김경래 : 그러니까 몇 달은 일을 못하는 시간이 있다는 거죠. 그게 보통 언제예요? 계절로 따지면? 

▶ 박태숙 : 보통 제일 긴 거는 여름철이고요. 여름에는 옷을 많이 안 사입잖아요. 

▷ 김경래 : 그렇죠. 

▶ 박태숙 : 그러니까 여름 초기에 초에 잠깐 옷 한 장씩 사입고 여름에는 또 옷이 가벼우니까 티셔츠나 블라우스 이런 거 한 장씩 사입고 그러고 마니까 여름이 가장 길고 겨울에서 봄 그러니까 제일 긴 건 여름이고 중간중간에 계절계절마다 공백기가 조금씩 조금씩 있어요, 계절계절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반 최저임금보다 훨씬 더 적다고 봐야죠. 

▷ 김경래 : 일단 노동조합이고 근로계약서가 문제가 아니라 단가를 좀 올려야 되는 것 아니에요, 총장님? 

▶ 김형탁 :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실 노동조합이라고 그러면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영세한 봉제 업체들 같은 경우에는 병들입니다. 그러니까 병들끼리 전쟁을 할 수 없는 것들이죠. 

▷ 김경래 : 아, 갑, 을도 아니고. 

▶ 김형탁 : 갑, 을도 아니고 병들인데 병들끼리 싸워봐야 서로 힘만 드니까 사실은 같이 힘을 합쳐서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되고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의류 쪽이 보면 대부분 유통 중심으로 시장 유통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외국의 사례들 보면 봉제 의류가 패션 의류가 사양산업이 아니고 생활밀착형으로 해서 도심 제조업으로서 상당히 발달한 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손기술이 좋은 봉제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들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그런 기반이 갖추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주로 밖으로 보이는 외관만 신경쓰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봉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면 제대로 된 패션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한류 이야기하는데 왜 손기술이 좋은 우리나라가 패션 의류가 한류가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한류가 형성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이게 여러 가지 객공이라는 어떤 시스템의 문제가 있고 그렇죠? 정상적인 근로계약을 못 맺는 문제가 있고 단가가 너무 낮고 장시간 노동을 했는데 일당은 굉장히 적은 편이고 비수기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건강 문제인데 저도 아는 사람이 봉제 공장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먼지가 실밥하고요. 어마어마하잖아요. 그게 그런데 제가 본 게 20년 전, 30년 전이에요. 요즘은 어때요? 

▶ 박태숙 : 별로 다르지 않아요. 다르지 않고요. 먼지가 겨울에는 안에 털도 들어가고 이러잖아요. 그러면 밥 먹을 때 예전에도 밥 먹을 때 되면 우리가 밥 먹을 때 밥에 먼지가 제가 시다 때도 밥에 먼지가 들어갔었거든요. 빨간색 하면 빨간 먼지도 들어가고 그래서 건져내고 먹고 그랬는데 현재도 그래요. 

▷ 김경래 : 아니, 밥을 좀 나가서 사드셔야 되는 것 아니에요? 

▶ 박태숙 : 빨리 일하려고. 조금이라도 한 장이라도. 

▷ 김경래 : 빨리 일해야 되니까. 

▶ 박태숙 : 일해야 되니까 가능하면 공장에서 배달시켜서 먹어요. 

▷ 김경래 : 먼지구덩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 박태숙 : 그렇죠. 

▷ 김경래 : 일하실 때 마스크 쓰고 하시죠, 보통? 

▶ 박태숙 : 안 써요. 

▷ 김경래 : 왜 안 써요? 그거 써야 되는 것 아니에요? 

▶ 박태숙 : 써야 되는데 하루종일 쓸 수가 없잖아요.

▷ 김경래 : 답답해서? 

▶ 박태숙 : 하루에 13시간씩 어떻게 써요, 13시간 이상씩. 

▷ 김경래 : 지금 조혜숙 청취자님이 저희 아버지도 10대 때부터 봉제 공장에서 일하셨대요. 그런데 환갑 넘으신 지금도 일하시는데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다고 봉제 공장 현장이 너무 처참하다. 조금씩 바뀌기를 바라다. 이렇게 시스템도 굉장히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고 환경도 안 되고 그런데 환경 개선은 그래도 조금 되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지금 21세기 2020년인데? 안 되는 이유가 뭐예요, 환경 개선은? 

▶ 김형탁 : 환경 개선을 한다고는 하죠. 그런데 그게 공장마다 제대로 오지 않아서 그런 건데 그래서 정확하게 실태 조사를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고 제대로 된 실태 조사에 근거해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사업장들이 받는 수입이 많지 않다 보니까 그런 환경 개선에 많은 돈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워낙 단가가 낮다 보니까. 서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 그런 조건이다 보니까 환경은 그냥 무시해버리는 것들인데 그래서 전체적인 노동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돼요. 

▷ 김경래 : 그러려면 아까 사무총장님 말씀하셨듯이 노동조합이라든가 어쨌든 일하시는 분들의 이익, 권익을 권리를 조금 주장할 수 있는 모임이라든가 단체들이 필요하잖아요. 예전에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것도 그런 이유였고 노동조합 거기 아까 봉제인노동조합? 거기에 가입하셨어요, 박 선생님? 

▶ 박태숙 : 네. 

▷ 김경래 : 왜 가입하시게 되신 거예요, 처음에는? 

▶ 박태숙 : 제가 72년도에 평화시장에 들어왔다고 그랬잖아요. 76년도에 노동조합을 알았어요, 그때 시다 때. 

▷ 김경래 : 그때 청계피복노조였겠네요? 그렇죠? 

▶ 박태숙 : 네, 그때 노동조합을 알았는데 그때 마침 노조에서 시간 단축을 해서 그때는 8시에 퇴근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절이 너무 그립죠. 그리고 그때는 노동조합에서 임금도 옷 하나 단가 다 정해서 임금도 올리는 노력도 했고. 

▷ 김경래 : 1976년도예요? 

▶ 박태숙 : 네, 그리고 그때는 또 남자 잠바하는 집들은 시다 월급을 주인이 주지 않았어요. 미싱사가 지금처럼 객공이어서 미싱사가 팀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시다 월급을 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시다 월급을 주인이 줘야 된다고 그래서 시다 직불제도 했었고 그것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어요. 지금은 다 시다 월급은 주인이 주죠. 그렇게 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립죠. 노동조합이 있으면 우리 노동자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힘을 쓸 수 있는데 그동안은 그런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이런 단체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 김형탁 : 첨언을 하자면 그때는 평화시장이 모여 있었으니까 노동조합 활동하기가 편했는데 지금 다들 주택가로 들어갔지 않습니까? 

▷ 김경래 : 흩어져 있으니까. 

▶ 김형탁 : 그러니까 같이 조직을 하기가 되게 어려운 조건이어서 이건 좀 별다른 노력 좀 필요하고 그래서 봉제인 노동조합에서 봉제인공제회로 해서 노동자들을 위한 작업들을 하고 있는 거죠. 

▷ 김경래 : 활동하시니까 좀 나아졌어요, 나아지기는? 변화가 있습니까? 

▶ 박태숙 : 아직은 얼마 안 돼서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노력하면 되겠죠. 

▷ 김경래 : 지금 어깨가 안 좋으시다고. 미싱일을 50년 하셔서 그런 거예요? 

▶ 박태숙 : 저는 그렇다고 봐요. 제가 거의 50년 가까이 일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평화시장에서는 다들 이렇게 긴 시간 저같이 미싱사들은 거의 다 이렇게 40~50년씩 짧은 사람이 한 30년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까 또 우리는 이렇게 의자가 등받이 있는 의자가 아니고 긴 나무의자에서 일하기 편하게 그런 데서 일을 하다 보니까 기댈 수도 없어요. 

▷ 김경래 : 허리도 안 좋으시겠네. 

▶ 박태숙 : 그래서 대체적으로 디스크하고 목 수그리고 일하잖아요. 기본적으로 다 있고 어깨하고 방광염하고 이런 건 다 기본으로 있거든요. 

▷ 김경래 : 방광염, 화장실 자주 못 가니까? 

▶ 박태숙 : 네, 그래서 저도 옛날에 한 10년 전에 방광염 치료한 경험도 있고요. 현재는 어깨가 안 좋아서 몇 년 전에 오른쪽 어깨를 수술했어요. 그런데 또 왼쪽 어깨가 안 좋아서 조만간 수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 김경래 : 우예진님이 청취자분인데 시어머님이 봉제일을 오랫동안 하셔서 어깨 수술받으셨대요, 똑같이. 지금도 여전히 최저임금 받고 계시다고. 참 이게 사양산업이라고 보통 이야기하잖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까 시다라는 말 쓰셨는데 방송에서는 보조? 이쯤으로 쓰면 좋긴 하겠죠. 그런데 시다라는 말이 원래... 

▶ 박태숙 : 예전에는 그게 일본말이라고 그래서 견습공이라고 그랬어요. 

▷ 김경래 : 알겠습니다. 어찌 됐든 그래도 모임 노조도 만들어지고 뭔가 변화의 움직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이야기하죠. 고맙습니다. 

▶ 박태숙 : 감사합니다. 

▶ 김형탁 : 감사합니다. 

▷ 김경래 : 실제로 봉제 노동을 하고 계신 박태숙 선생님 그리고 노회찬 재단의 김형탁 사무총장님과 함께 <6411 프로젝트> 노동자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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