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제수용 생선 고래고기·돔베기, 언제부터 제사상에?

입력 2020.09.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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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 지금은 지역 구분 없이 많이 비슷해졌지만 경상도에서는 예로부터 돔베기(숙성한 상어 고기를 토막 낸 것)와 고래고기가 대표적인 제수용 생선으로 꼽혀 왔습니다. 돔베기와 고래고기, 언제부터 제사에 사용됐을까요?

경주 서봉총 발굴 모습(2017년)경주 서봉총 발굴 모습(2017년)

90년 만에 경주 서봉총 다시 발굴했더니...

경북 경주 대릉원 일대에 서봉총이라는 고분이 있습니다. 신라 왕족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그러니까 1500년 전 신라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먼저 만들어진 북분에 남분이 나란히 붙어 있는 쌍분의 형태입니다.

이 고분이 처음 발굴된 건 1920년대입니다. 당시 스웨덴[한자로 서전·瑞典] 황태자가 조사에 참여한 사실과 봉황(鳳凰) 장식 금관이 출토된 것을 고려해 '서봉총(瑞鳳塚)'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서봉총에서는 금관을 비롯해 다수의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출토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발굴을 진행한 일제는 발굴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한 데 이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서봉총을 다시 발굴했습니다.

그 결과, 당초 일제가 밝히지 못한 무덤의 규모와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했습니다. 일제는 북분의 직경을 36.3m로 판단했지만 재발굴 결과 46.7m로 밝혀졌습니다. 또 돌무지덧널무넘(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조성한 뒤 돌을 쌓아 올리는 고분 양식)의 돌무지는 금관총과 황남대총처럼 나무 기둥으로 가설물을 먼저 세운 뒤 쌓아 올렸다는 사실도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역사 기록에도 없던 신라 왕족 제사 흔적 발견

서봉총 남분에서 발굴된 큰항아리서봉총 남분에서 발굴된 큰항아리

그리고 무엇보다, 무덤 둘레돌에 큰항아리를 이용해 무덤 주인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을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신라 시대에 이렇게 제사를 지낸 전통은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처음 밝혀진 내용입니다.

고분 둘레돌에서는 27개의 제사용 큰항아리가 출토됐습니다. 북분에 10개, 남분에 13개가 있고, 경계가 모호한 것이 4개 있습니다. 큰항아리에서는 동물 유체(동물의 뼈와 이빨, 뿔, 조가비 등 생태물) 7,700점이 나왔는데, 조개류가 1,883점, 물고기류 5,700점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제사상에 올라간 고래고기, 복어요리, 성게

큰항아리에서 발견된 돌고래 뼈큰항아리에서 발견된 돌고래 뼈

특히 남분에서 발굴된 큰항아리에서는 돌고래와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도 확인됐습니다. 또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습니다. 1500년 전 신라 왕족의 제사상에 고래 고기와 성게, 복어 요리 등이 올라갔던 걸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 신라 왕족들의 식생활도 유추해볼 수 있는데요. 복어 요리와 성게, 고래 고기 등 아주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겼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독 제거가 필수인 복어의 뼈도 발견됐다.독 제거가 필수인 복어의 뼈도 발견됐다.

또 조개는 산란기 때 독소가 있어 먹지 않는 점, 또 항아리에서 다수 확인된 청어와 방어의 회유시기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대부분 가을철에 잡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울러 이 제사가 무덤 축조 직후에 실시된 점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은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는 향후 서봉총 북분과 남분의 주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돔베기도 신라시대 대부터 제사상에 올라

서봉총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돔베기 즉 상어고기 역시 1500년 전 신라시대 때부터 제사상에 올라간 걸로 추정됩니다. 경북 경산에 있는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사적 제516호)'의 무덤 내부에서 확인된 상어뼈가 그 증거입니다. 5세기쯤 만들어진 이 고분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상어뼈가 출토됐습니다.

대구와 경북 경주, 경산에 있는 신라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유적들에서 상어 관련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바 있는데요. 국립대구박물관 측은 "삼국시대 고분 중에는 망자가 저승에서 먹으라는 의미로 음식을 넣어뒀는데, 당시에도 구하기 힘든 귀한 상어고기도 바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고대 사람들, 적어도 삼국시대부터는 염장이나 발효를 통해 말린 상어고기를 제사 등 특별한 의례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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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도 제수용 생선 고래고기·돔베기, 언제부터 제사상에?
    • 입력 2020-09-07 18:55:46
    취재K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 지금은 지역 구분 없이 많이 비슷해졌지만 경상도에서는 예로부터 돔베기(숙성한 상어 고기를 토막 낸 것)와 고래고기가 대표적인 제수용 생선으로 꼽혀 왔습니다. 돔베기와 고래고기, 언제부터 제사에 사용됐을까요?

경주 서봉총 발굴 모습(2017년)
90년 만에 경주 서봉총 다시 발굴했더니...

경북 경주 대릉원 일대에 서봉총이라는 고분이 있습니다. 신라 왕족 무덤 중 하나로, 서기 500년 그러니까 1500년 전 신라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먼저 만들어진 북분에 남분이 나란히 붙어 있는 쌍분의 형태입니다.

이 고분이 처음 발굴된 건 1920년대입니다. 당시 스웨덴[한자로 서전·瑞典] 황태자가 조사에 참여한 사실과 봉황(鳳凰) 장식 금관이 출토된 것을 고려해 '서봉총(瑞鳳塚)'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서봉총에서는 금관을 비롯해 다수의 황금 장신구와 부장품이 출토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발굴을 진행한 일제는 발굴보고서를 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2014년 서봉총 출토품 보고서를 간행한 데 이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서봉총을 다시 발굴했습니다.

그 결과, 당초 일제가 밝히지 못한 무덤의 규모와 구조를 정확하게 확인했습니다. 일제는 북분의 직경을 36.3m로 판단했지만 재발굴 결과 46.7m로 밝혀졌습니다. 또 돌무지덧널무넘(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조성한 뒤 돌을 쌓아 올리는 고분 양식)의 돌무지는 금관총과 황남대총처럼 나무 기둥으로 가설물을 먼저 세운 뒤 쌓아 올렸다는 사실도 최초로 확인했습니다.

역사 기록에도 없던 신라 왕족 제사 흔적 발견

서봉총 남분에서 발굴된 큰항아리
그리고 무엇보다, 무덤 둘레돌에 큰항아리를 이용해 무덤 주인에게 음식을 바친 제사 흔적을 발견하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신라 시대에 이렇게 제사를 지낸 전통은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역사 기록에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처음 밝혀진 내용입니다.

고분 둘레돌에서는 27개의 제사용 큰항아리가 출토됐습니다. 북분에 10개, 남분에 13개가 있고, 경계가 모호한 것이 4개 있습니다. 큰항아리에서는 동물 유체(동물의 뼈와 이빨, 뿔, 조가비 등 생태물) 7,700점이 나왔는데, 조개류가 1,883점, 물고기류 5,700점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제사상에 올라간 고래고기, 복어요리, 성게

큰항아리에서 발견된 돌고래 뼈
특히 남분에서 발굴된 큰항아리에서는 돌고래와 파충류인 남생이와 함께 성게류도 확인됐습니다. 또 신경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복어도 발견됐습니다. 1500년 전 신라 왕족의 제사상에 고래 고기와 성게, 복어 요리 등이 올라갔던 걸로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 신라 왕족들의 식생활도 유추해볼 수 있는데요. 복어 요리와 성게, 고래 고기 등 아주 호화로운 식생활을 즐겼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독 제거가 필수인 복어의 뼈도 발견됐다.
또 조개는 산란기 때 독소가 있어 먹지 않는 점, 또 항아리에서 다수 확인된 청어와 방어의 회유시기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대부분 가을철에 잡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울러 이 제사가 무덤 축조 직후에 실시된 점을 고려하면, 서봉총의 남분은 가을에 완성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는 향후 서봉총 북분과 남분의 주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돔베기도 신라시대 대부터 제사상에 올라

서봉총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돔베기 즉 상어고기 역시 1500년 전 신라시대 때부터 제사상에 올라간 걸로 추정됩니다. 경북 경산에 있는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사적 제516호)'의 무덤 내부에서 확인된 상어뼈가 그 증거입니다. 5세기쯤 만들어진 이 고분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상어뼈가 출토됐습니다.

대구와 경북 경주, 경산에 있는 신라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유적들에서 상어 관련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바 있는데요. 국립대구박물관 측은 "삼국시대 고분 중에는 망자가 저승에서 먹으라는 의미로 음식을 넣어뒀는데, 당시에도 구하기 힘든 귀한 상어고기도 바쳤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고대 사람들, 적어도 삼국시대부터는 염장이나 발효를 통해 말린 상어고기를 제사 등 특별한 의례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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