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인종차별 반대’ 유럽, ‘속죄’는 얼마나?

입력 2020.09.08 (05:00) 수정 2020.09.0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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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에서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지자 전국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촉발됐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아래, 이른바 BLM 시위는 미국 국내뿐 아니라 유럽까지 확산했다.

영국 브리스틀에서는 6월 7일 시위대가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을 강에 수장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시위자들이 코로나19를 의식한 듯 일정 거리를 둔 채 나란히 서는 '인간사슬' 시위를 벌였고, 벨기에에서도 시민들이 아프리카 식민통치의 상징인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을 훼손했다.

하지만 인종 차별에 대한 시민 사회 인식이 무르익은 것과 별개로, 19~20세기 아프리카를 통치했던 유럽 국가들의 피해국들에 대한 대처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신제국주의를 표방한 유럽 열강은 1880년대 아프리카 점령을 본격화해 1910년대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90% 가까이 식민통치했다. 서구에 의해 자행된 '아프리카 분할'(Scramble of Africa)은 이 지역 국가들이 독립한 뒤까지도 내전·부족주의·차별 등 여러 후유증을 남겼다.

부룬디 "독일·벨기에, 식민지배 피해 배상하라"


부룬디는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 있는 작은 국가다. 부룬디의 리베리언 은디쿠리요 상원 의장은 지난달 14일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배상금 360억 유로(약 50조 6천억 원)를 독일과 벨기에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당시 열강이 강탈한 문화유산의 반환도 함께 요구할 예정이다.

부룬디는 독일로부터 1890년부터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17년까지 식민지배를 겪었고, 이어 벨기에에 점령된 뒤 1962년이 돼서야 독립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는 부룬디의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1890년부터 1962년까지 독일과 벨기에로부터 식민지배를 겪으며 본 피해 규모를 산정했다고 보도했다. 식민지배 당시 부룬디인들이 겪었던 강제노동, 비인권적 학대와 고통 등에 대한 배상 요청이라는 것이다.

부룬디 학자들은 특히 1931년 벨기에 지배하에서 국민을 인종에 따라 후투·투시·트와족 3단계로 분류한 당시 칙령이 부족 간 갈등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독립 한 뒤 부룬디가 겪은 내전은 결국 식민지배 때 공고화 된 부족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아프리카 서남부의 국가 나미비아도 독일과 2015년부터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 협상을 벌이고 있다. 1904~08년까지 독일에 의해 2만 명 가까운 나미비아인이 '인종 청소'된 데 대한 배상과 공식 사과가 핵심이다. 하지만 독일은 국가 발전과 치유 기금 명목으로만 1천만 유로(약 140억 5천만 원) 지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종청소에 대한 배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벨기에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콩고를 가혹하게 통치했던 레오폴드 2세의 잘못을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벨기에의 로랑 왕자는 "레오폴드 2세는 콩고에 간 적도 없다"며 가혹한 식민통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과거사 청산 노력이 거짓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다.

독일과 벨기에의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부룬디의 배상 요구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 배상 '유일'..이탈리아, 정권 교체로 약속 파기

2013년 6월 윌리엄 헤이그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하원 의사당에서 영국 식민지배 당시 케냐에서 벌어진 마우마우 봉기 때 고문 피해를 입은 케냐인들에 대한 보상안을 발표했다.2013년 6월 윌리엄 헤이그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하원 의사당에서 영국 식민지배 당시 케냐에서 벌어진 마우마우 봉기 때 고문 피해를 입은 케냐인들에 대한 보상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과거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피해국에 배상한 국가다. 지난 2013년 영국은 케냐 마우마우 봉기 때 케냐인을 고문·학대한 사실을 인정해 1,990만 파운드(약 312억 5천만 원)를 지급했다. 배상금은 피해자 5천 명에게 배분됐다.

이탈리아는 과거 식민지배 때 리비아인에게 가했던 암살·탄압·파괴 등을 인정하는 친교 협약을 지난 2008년 리비아 정부와 맺었다. 협약 체결 이후 25년간 매년 2억 달러(약 2,374억 6천만 원)씩 보상하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협상 주체였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1년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내전으로 실각한 뒤 협약이 깨졌다.

프랑스는 지난 2018년 식민지배 때 강탈한 아프리카 문화유산 9만 점을 각 국가에 반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까지 한 점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리베리언 은디쿠리요 트위터, https://old.parliament.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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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09-09 11: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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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에서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지자 전국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촉발됐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 아래, 이른바 BLM 시위는 미국 국내뿐 아니라 유럽까지 확산했다.

영국 브리스틀에서는 6월 7일 시위대가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을 강에 수장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시위자들이 코로나19를 의식한 듯 일정 거리를 둔 채 나란히 서는 '인간사슬' 시위를 벌였고, 벨기에에서도 시민들이 아프리카 식민통치의 상징인 국왕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을 훼손했다.

하지만 인종 차별에 대한 시민 사회 인식이 무르익은 것과 별개로, 19~20세기 아프리카를 통치했던 유럽 국가들의 피해국들에 대한 대처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신제국주의를 표방한 유럽 열강은 1880년대 아프리카 점령을 본격화해 1910년대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90% 가까이 식민통치했다. 서구에 의해 자행된 '아프리카 분할'(Scramble of Africa)은 이 지역 국가들이 독립한 뒤까지도 내전·부족주의·차별 등 여러 후유증을 남겼다.

부룬디 "독일·벨기에, 식민지배 피해 배상하라"


부룬디는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 있는 작은 국가다. 부룬디의 리베리언 은디쿠리요 상원 의장은 지난달 14일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 배상금 360억 유로(약 50조 6천억 원)를 독일과 벨기에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당시 열강이 강탈한 문화유산의 반환도 함께 요구할 예정이다.

부룬디는 독일로부터 1890년부터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17년까지 식민지배를 겪었고, 이어 벨기에에 점령된 뒤 1962년이 돼서야 독립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는 부룬디의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1890년부터 1962년까지 독일과 벨기에로부터 식민지배를 겪으며 본 피해 규모를 산정했다고 보도했다. 식민지배 당시 부룬디인들이 겪었던 강제노동, 비인권적 학대와 고통 등에 대한 배상 요청이라는 것이다.

부룬디 학자들은 특히 1931년 벨기에 지배하에서 국민을 인종에 따라 후투·투시·트와족 3단계로 분류한 당시 칙령이 부족 간 갈등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독립 한 뒤 부룬디가 겪은 내전은 결국 식민지배 때 공고화 된 부족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아프리카 서남부의 국가 나미비아도 독일과 2015년부터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 협상을 벌이고 있다. 1904~08년까지 독일에 의해 2만 명 가까운 나미비아인이 '인종 청소'된 데 대한 배상과 공식 사과가 핵심이다. 하지만 독일은 국가 발전과 치유 기금 명목으로만 1천만 유로(약 140억 5천만 원) 지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종청소에 대한 배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벨기에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콩고를 가혹하게 통치했던 레오폴드 2세의 잘못을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벨기에의 로랑 왕자는 "레오폴드 2세는 콩고에 간 적도 없다"며 가혹한 식민통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과거사 청산 노력이 거짓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다.

독일과 벨기에의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부룬디의 배상 요구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영국, 배상 '유일'..이탈리아, 정권 교체로 약속 파기

2013년 6월 윌리엄 헤이그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하원 의사당에서 영국 식민지배 당시 케냐에서 벌어진 마우마우 봉기 때 고문 피해를 입은 케냐인들에 대한 보상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과거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피해국에 배상한 국가다. 지난 2013년 영국은 케냐 마우마우 봉기 때 케냐인을 고문·학대한 사실을 인정해 1,990만 파운드(약 312억 5천만 원)를 지급했다. 배상금은 피해자 5천 명에게 배분됐다.

이탈리아는 과거 식민지배 때 리비아인에게 가했던 암살·탄압·파괴 등을 인정하는 친교 협약을 지난 2008년 리비아 정부와 맺었다. 협약 체결 이후 25년간 매년 2억 달러(약 2,374억 6천만 원)씩 보상하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협상 주체였던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1년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내전으로 실각한 뒤 협약이 깨졌다.

프랑스는 지난 2018년 식민지배 때 강탈한 아프리카 문화유산 9만 점을 각 국가에 반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까지 한 점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리베리언 은디쿠리요 트위터, https://old.parliament.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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