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안 했다” 위증한 옛 안기부 수사관, 2심서 혐의 인정…유족은 엄벌 촉구

입력 2020.09.16 (16:17) 수정 2020.09.1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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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으로 몰려 불법 고문을 당한 피해자의 재심에서 자신은 고문을 하지 않았다며 위증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옛 안기부 수사관이, 항소심에서 입장을 바꿔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유석동 이관형 최병률 부장판사)는 위증 혐의로 기소된 76살 구 모 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옛 안기부 수사관이었던 구 씨는, '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에 연루돼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故 심진구 씨의 재심 재판에 2012년 4월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당시 구 씨는 '수사 과정에서 심 씨를 고문한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검사 질문에 '고문을 한 적이 없고 심 씨가 계속 자백해 다툼이 없었다'고 증언했는데, 재판부는 구 씨 증언을 배척하고 심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후 심 씨의 유족이 구 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고, 1심 재판부는 지난 6월 구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사건이 벌어진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구 씨가 피해자 측에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진술을 수시로 바꾸면서 법의 심판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재판에서 구 씨 변호인은 "구 씨가 1심에서는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당심에 이르러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변호인은 또 "구 씨가 78세 고령으로 각종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수감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특별한 전과도 없고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우려도 없어 불구속 상태에서 공판에 임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보석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검사는 최종 의견에서 "이 사건의 전제가 되는 수사관 가혹 행위라는 범죄가 중대하다"며 "피해자 유족이 구 씨에 대한 엄벌을 원하고 있고, 구 씨가 원심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에 대해 구 씨 변호인은 "구 씨가 안기부 수사관으로서 당시 대공 용의자였던 심 씨에게 가혹 행위를 하고 고통을 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고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심 씨에 대한 가혹행위는 구 씨 개인의 행위이기 앞서서 안기부 조직과 국가 구성원 모두가 반성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구 씨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보단 국가 차원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 활동, 사법부의 재심, 형사보상 등을 통해 심 씨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구 씨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형사처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지 심 씨에게 상처를 줄 의사는 전혀 없었다"며 "구 씨의 거짓말이 결과적으로 심 씨의 형사사건 결론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구 씨 변호인은 "구 씨 아내도 병든 남편을 교도소에 보내고 하루하루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며 "구 씨가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구 씨도 최후진술에서 "안기부에서 근무하면서 선배 수사관들로부터 수사기법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용의자에 대해 가혹행위를 하는 법도 배웠다"며 "고인이 된 심 씨를 수사할 때도 북한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겠다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가혹행위가 큰 죄가 된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나, 고인에 대한 가혹행위가 정말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작금에 이르러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미 사망했지만 고인이 된 심진구 씨와 그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전한다"며 "앞으로 남은 인생은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살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 심진구 씨의 유족에게도 발언 기회를 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심 씨의 유족은 "저희는 30여 년을 눈물과 아주 극심한 고통으로 지내왔다"며 "결국에는 고인이 그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심 씨 유족은 또 "안기부에서 잔혹하게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당시 공무원으로서 그걸 몰랐다고 말하고 선배들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유족은 "지금 와서 그걸 어떻게 '용서'라는 단 두 글자로 해결된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며 "구 씨가 반성한다지만 그게 진심으로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다가오지도 않는다"고 엄벌에 처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1일 구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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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6 16:17:37
    • 수정2020-09-16 16:18:49
    사회
간첩으로 몰려 불법 고문을 당한 피해자의 재심에서 자신은 고문을 하지 않았다며 위증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옛 안기부 수사관이, 항소심에서 입장을 바꿔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유석동 이관형 최병률 부장판사)는 위증 혐의로 기소된 76살 구 모 씨에 대한 항소심 첫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옛 안기부 수사관이었던 구 씨는, '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에 연루돼 이적표현물 제작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故 심진구 씨의 재심 재판에 2012년 4월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당시 구 씨는 '수사 과정에서 심 씨를 고문한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검사 질문에 '고문을 한 적이 없고 심 씨가 계속 자백해 다툼이 없었다'고 증언했는데, 재판부는 구 씨 증언을 배척하고 심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후 심 씨의 유족이 구 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고, 1심 재판부는 지난 6월 구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사건이 벌어진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구 씨가 피해자 측에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진술을 수시로 바꾸면서 법의 심판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재판에서 구 씨 변호인은 "구 씨가 1심에서는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당심에 이르러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변호인은 또 "구 씨가 78세 고령으로 각종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수감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며 "특별한 전과도 없고 증거인멸이나 도망의 우려도 없어 불구속 상태에서 공판에 임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보석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검사는 최종 의견에서 "이 사건의 전제가 되는 수사관 가혹 행위라는 범죄가 중대하다"며 "피해자 유족이 구 씨에 대한 엄벌을 원하고 있고, 구 씨가 원심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징역 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에 대해 구 씨 변호인은 "구 씨가 안기부 수사관으로서 당시 대공 용의자였던 심 씨에게 가혹 행위를 하고 고통을 준 점은 부인할 여지가 없고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심 씨에 대한 가혹행위는 구 씨 개인의 행위이기 앞서서 안기부 조직과 국가 구성원 모두가 반성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구 씨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보단 국가 차원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 활동, 사법부의 재심, 형사보상 등을 통해 심 씨와 같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구 씨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형사처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지 심 씨에게 상처를 줄 의사는 전혀 없었다"며 "구 씨의 거짓말이 결과적으로 심 씨의 형사사건 결론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구 씨 변호인은 "구 씨 아내도 병든 남편을 교도소에 보내고 하루하루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며 "구 씨가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선처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구 씨도 최후진술에서 "안기부에서 근무하면서 선배 수사관들로부터 수사기법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용의자에 대해 가혹행위를 하는 법도 배웠다"며 "고인이 된 심 씨를 수사할 때도 북한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겠다는 애국심의 발로에서 가혹행위가 큰 죄가 된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나, 고인에 대한 가혹행위가 정말 큰 죄가 된다는 것을 작금에 이르러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미 사망했지만 고인이 된 심진구 씨와 그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전한다"며 "앞으로 남은 인생은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살아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 심진구 씨의 유족에게도 발언 기회를 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심 씨의 유족은 "저희는 30여 년을 눈물과 아주 극심한 고통으로 지내왔다"며 "결국에는 고인이 그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심 씨 유족은 또 "안기부에서 잔혹하게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당시 공무원으로서 그걸 몰랐다고 말하고 선배들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유족은 "지금 와서 그걸 어떻게 '용서'라는 단 두 글자로 해결된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며 "구 씨가 반성한다지만 그게 진심으로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다가오지도 않는다"고 엄벌에 처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1일 구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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