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경매사도 모르는 ‘정가 수의 매매’…허위 거래?

입력 2020.09.17 (19:58) 수정 2020.09.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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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제가 들고 있는 이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이 한때 만 5천원까지 올랐습니다.

2010년에 있었던 '배추대란' 때 일입니다.

만원 하던 배추가 하루 만에 만 5천원까지 오르더니, 다음날엔 다시 9천원으로 떨어집니다.

농민들 입장에선 답답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이렇게 가격이 널뛰기를 하자, 정부가 대안을 내놓습니다.

바로 '정가 수의 매매'입니다.

한마디로 농민이 내 배추를 얼마에 팔아달라고, 이렇게 가격을 정해 도매시장에 먼저 제안하면, 경매사가 미리 이 가격에 배추를 살 사람을 찾아서 연결해주는 제도입니다.

참 좋은 제도처럼 보이는데, 실제 현장에서도 그럴까요?

오늘은 정가 수의매매 제도를 악용해 불법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허점을 윤주성 기자가 추적해봤습니다.

[리포트]

광주의 한 도매시장 인근 상가.

산지에서 올라온 대파가 가득합니다.

농산물이 정가수의매매나 경매로만 거래해야 하는데 어떻게 유통된 농산물인지 물었습니다.

[작업자 : “(경매는 하신 거예요?) 네. (경매 받은 거예요?) 네. (언제? 오늘요?) 아니요. 지금 해요.”]

잠시 후 경매를 주관한 경매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경매사는 경매가 아니라 정가수의매매했다고 말합니다.

[○○청과 경매사 : “((정가수의매매) 출하자가 누구입니까?) A 씨라고. (거래하는 중도매인은 누구세요?) 이 분이 ○○○번이에요. (아니 안 쓰여 있잖아요. 판매 원표에. 방금 쓰셨잖아요.)”]

경매사와 함께 해당 중도매인을 찾아 확인해봤습니다.

[○○청과 경매사 : “(물건이 어디서 온 거예요?) 물건이 어디서 왔냐고요? (경북) 김천요.”]

그런데 중도매인에게 어디에서 온 물건인지 확인한 다음에는 출하자 이름이 바뀐 간이 영수증을 제시합니다.

[○○청과 경매사 : “이거에요. 어제 B 씨하고 이걸 거래한 거에요. 8천 원씩 해가지고 그거 하나(1톤 트럭 물량) 한 거에요.)”]

대파를 정가수의매매한 농민이 A 씨가 아니라 B 씨라는 경매사의 주장.

하지만, 농민 B 씨는 정가수의매매가 아닌 경매로 내놨다고 말합니다.

[출하자/음성변조 : “(경매를 맡기신 거예요? 어떻게 하신...) 경매죠. 촌에서 농사지으면 다 보내서 경매보고 하거든요.”]

정가수의매매를 주관하는 경매사가 거래내역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출하자와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

도매법인이 실제로 거래에 관여하지 않은 허위 거래, 이른바 '기록 상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광형/(사)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 “기본적으로 모든 정가·수의 거래는 경매사가, 법인이 중개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은 도매법인이 허위 거래를 하는 것은 산지 물량 수집 활동을 하지 않고도 손쉽게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또 정부의 도매법인 평가에서 정가수의매매 비율을 높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도매법인은 허위 거래라는 지적에 대해 경매사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빚어진 오해라고 해명합니다.

도매시장을 관리하고 있는 광주시도 해당 거래에 대해 서류상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광주각화도매시장관리사무소 관계자 : “그 물건을 보고 경매사가 금액을 합의하에 정하신 걸로 그래서 정산이 된 걸로 그렇게 확인하거든요.)”]

출하자의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정가수의매매 제도도 불투명한 거래 관행 속에 헛돌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윤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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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경매사도 모르는 ‘정가 수의 매매’…허위 거래?
    • 입력 2020-09-17 19:58:20
    • 수정2020-09-17 20:11:47
    뉴스7(광주)
[기자]

제가 들고 있는 이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이 한때 만 5천원까지 올랐습니다.

2010년에 있었던 '배추대란' 때 일입니다.

만원 하던 배추가 하루 만에 만 5천원까지 오르더니, 다음날엔 다시 9천원으로 떨어집니다.

농민들 입장에선 답답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이렇게 가격이 널뛰기를 하자, 정부가 대안을 내놓습니다.

바로 '정가 수의 매매'입니다.

한마디로 농민이 내 배추를 얼마에 팔아달라고, 이렇게 가격을 정해 도매시장에 먼저 제안하면, 경매사가 미리 이 가격에 배추를 살 사람을 찾아서 연결해주는 제도입니다.

참 좋은 제도처럼 보이는데, 실제 현장에서도 그럴까요?

오늘은 정가 수의매매 제도를 악용해 불법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허점을 윤주성 기자가 추적해봤습니다.

[리포트]

광주의 한 도매시장 인근 상가.

산지에서 올라온 대파가 가득합니다.

농산물이 정가수의매매나 경매로만 거래해야 하는데 어떻게 유통된 농산물인지 물었습니다.

[작업자 : “(경매는 하신 거예요?) 네. (경매 받은 거예요?) 네. (언제? 오늘요?) 아니요. 지금 해요.”]

잠시 후 경매를 주관한 경매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경매사는 경매가 아니라 정가수의매매했다고 말합니다.

[○○청과 경매사 : “((정가수의매매) 출하자가 누구입니까?) A 씨라고. (거래하는 중도매인은 누구세요?) 이 분이 ○○○번이에요. (아니 안 쓰여 있잖아요. 판매 원표에. 방금 쓰셨잖아요.)”]

경매사와 함께 해당 중도매인을 찾아 확인해봤습니다.

[○○청과 경매사 : “(물건이 어디서 온 거예요?) 물건이 어디서 왔냐고요? (경북) 김천요.”]

그런데 중도매인에게 어디에서 온 물건인지 확인한 다음에는 출하자 이름이 바뀐 간이 영수증을 제시합니다.

[○○청과 경매사 : “이거에요. 어제 B 씨하고 이걸 거래한 거에요. 8천 원씩 해가지고 그거 하나(1톤 트럭 물량) 한 거에요.)”]

대파를 정가수의매매한 농민이 A 씨가 아니라 B 씨라는 경매사의 주장.

하지만, 농민 B 씨는 정가수의매매가 아닌 경매로 내놨다고 말합니다.

[출하자/음성변조 : “(경매를 맡기신 거예요? 어떻게 하신...) 경매죠. 촌에서 농사지으면 다 보내서 경매보고 하거든요.”]

정가수의매매를 주관하는 경매사가 거래내역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출하자와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

도매법인이 실제로 거래에 관여하지 않은 허위 거래, 이른바 '기록 상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광형/(사)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 “기본적으로 모든 정가·수의 거래는 경매사가, 법인이 중개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농산물 유통 전문가들은 도매법인이 허위 거래를 하는 것은 산지 물량 수집 활동을 하지 않고도 손쉽게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또 정부의 도매법인 평가에서 정가수의매매 비율을 높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해당 도매법인은 허위 거래라는 지적에 대해 경매사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빚어진 오해라고 해명합니다.

도매시장을 관리하고 있는 광주시도 해당 거래에 대해 서류상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광주각화도매시장관리사무소 관계자 : “그 물건을 보고 경매사가 금액을 합의하에 정하신 걸로 그래서 정산이 된 걸로 그렇게 확인하거든요.)”]

출하자의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정가수의매매 제도도 불투명한 거래 관행 속에 헛돌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윤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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